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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03화 (103/230)

〈 103화 〉 5. 후계경쟁(27)

* * *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후계경쟁의 구도도 점차 변화했다.

“이번에 쌍둥이 쪽이랑 장남, 차남 쪽이 한판 벌인 모양이에요. 5구역 외곽 쪽이 난장판이 됐다고 하더라구요.”

“네?”

장남인 유선혁 사장과 차남인 유상혁 부사장. 둘이 쌍둥이 쪽과 맞붙었다는 빌헬름의 정보에 서령은 새삼스레 놀란 반응을 보였다.

본인도 직접 습격을 당했으면서 다른 경쟁자들끼리 싸웠다는 소식에 놀랄 건 뭔지.

서령을 바라보던 애쉬가 툭 던지듯 말했다.

“이쯤 되면 그쪽에선 완전히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결정한 것 같은데.”

본인의 금고에서 타인의 손에 들어가선 안 될 물건이 사라진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애가 탔을 것이다.

그게 조금만 풀리더라도 후계경쟁의 끝을 보기는커녕 유진혁 회장에 의해 완전히 내쳐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점점 쌓이던 불안과 초조, 스트레스가 점차 분노로 변질되어가며 더욱 극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 정보가 풀리고 자신이 끝장나기 전에 모든 경쟁자들을 제거한다는 식으로.

아무리 유성 그룹이 회장 자리를 대대로 세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놈이 모든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혼자 남는다고 한들 유진혁 회장이 저런 놈을 후계자의 자리에 앉힐지는 모르겠다.

애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서령과 빌헬름은 계속해서 후계경쟁의 근황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러고 보니 유성 미래전자의 사장, 부사장이랑 얘기해본다고 하셨는데, 결과는 어땠어요?”

“음…. 그게, 생각보다 쉽게 이쪽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분들께서 함정을 파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빌헬름의 질문에는 서령 대신 에아임이 대답했다. 서령과 함께 찾아간 미래전자 임원진의 우두머리, 사장과 부사장의 설득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한참은 쉬웠다.

너무도 쉬워서 의심이 될 정도로 말이다.

서령과 만난 그 둘은 그녀에게 회장이 된다면 무얼 하고 싶냐고 물었고, 서령은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답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럼 정말로….’

‘유서령 상무님, 아니, 지금은 아가씨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아가씨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유성 미래전자는 아가씨의 승리를 위해 한손 거들겠습니다.’

‘…….’

미래전자의 사장과 부사장은 자신들끼리 잠시간의 대화를 나누더니 곧 돌아와서는 서령을 지지하겠노라고 답한 것이다.

그런 짧은 문답 하나만으로 모든 경쟁자들이 노리던 유성 그룹의 최대 계열사, 미래 전자의 사장과 부사장이 이쪽에 합류했으니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다른 경쟁자들처럼 금전이나 권력 따위의 무언가를 약속하지도 않았는데도 단숨에 이쪽 손을 잡다니…….

그런 에아임의 말을 들은 빌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조금 의심이 가긴 하네요. 그럼 그쪽은 제가 나중에 한번 더 확인해볼게요.”

개인 계좌로 금전이 오고간 흔적은 없는지, 혹은 현물로 무언가를 받은 기록 따위가 CCTV에 남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검토해보면 좋을 것이다.

확인을 거친 뒤에나 그들의 힘을 빌리자는 빌헬름의 말에 에아임도 그게 좋겠다며 동의했다.

“예,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오늘은 부회장님을 만나러 가신다면서요?”

“네. 몇 가지 얘기할 게 있어서요.”

빌헬름의 물음에 서령이 결연한 태도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누구와도 관계되지 않던 부회장.

이제 와서 서령이 그를 만나 할 얘기란 당연히 하나뿐이었다. 후계경쟁에 대한 그의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

지금까지야 아무런 관심도 없을 것이라 추측하고 넘어갔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후계 자리를 노리는 만큼 앞으로도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지금이라도 확실하게 짚고 가야겠지.

“그럼 혹시 모르니까 애쉬 씨도 같이 가시는 건 어떠세요?”

“나? 뭐, 같이 가달라면 가지.”

서령의 의사를 확인한 빌헬름의 말에 애쉬가 긍정을 표했다.

아무리 서령의 기존 경호원들과 수십에 달하는 레이라의 부하들이 서령을 따라다닌다고는 하지만, 원래 그의 임무가 서령을 지키는 일이었던 데다 지금은 집에 있어봐야 할 것도 거의 없었다.

조금 귀찮긴 해도 한번 따라갔다 오는 것도 좋을 터다. 어린 서령을 방치했다던 부모의 낯짝도 한번쯤 보고는 싶었고.

“그럼 오늘은 이사님과 수석 비서님이 부회장을 보고 오고, 저는 말씀하셨던 미래전자 사장 쪽을 살펴보는 걸로 하죠.”

“예. 감사합니다. 정말 애쉬 씨와 빌헬름 씨, 두 분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에아임이 감상에 빠진 눈으로 그들을 둘러봤다.

이제는 어엿하게 자신의 두 다리로 선 서령과 그런 서령을 단단히 지탱해주고 있는 두 사람. 비록 잠깐일지언정 그들의 도움은 앞으로 시간이 얼마가 지나더라도 잊지 못할 것이었다.

에아임의 촉촉이 젖은 눈빛을 받은 애쉬가 괜히 툭 내뱉었다.

“나중에 회장이 돼서 잊지나 말라고.”

“물론입니다….”

“우는 거 아니지?”

“…예.”

울먹울먹한 에아임의 목소리. 애쉬뿐 아니라 서령도 그런 에아임의 깊은 감성에는 공감하지 못했는지 어색한 얼굴로 일과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 각자 정해진 일을 하러 가볼까요.”

* * *

“그래서 그만 웃고 말았지 뭡니까.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에아임. 그런 얘기는 굳이 안 해도 되잖아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아가씨.”

에아임과 서령이 어릴 적 추억을 얘기하고 애쉬와 베일라는 그것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들이 타고 에아임이 운전하는 차량은 점점 목적지인 2구역의 저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럼 이사님께서는 여덟 살부터 수석비서님과 함께하신 겁니까? 정말 오래된 인연이군요.”

“네. 벌써 15년째네요. 에아임이랑 만난 것도.”

“덕분에 이렇게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으니 저에겐 정말 행운과도 같은 일입니다. 아, 물론. 그것보다도 아가씨를 모실 수 있다는 게 제겐 더욱 큰 행운이지만요.”

“에아임…. 너무 대놓고 그러면 창피하다니까요….”

“하하, 알겠습니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얼굴이 붉어진 서령의 말에 운전대를 잡은 에아임이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으로 가끔 있는 에아임의 주책도 마무리됐다.

애쉬는 그런 얘기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15년 동안 돌봐왔다니, 저 정도면 이미 가족이나 다름없겠네.’

서령의 부모인 부회장과 이한설 사장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고 하니 거의 부모 역할까지 같이 해야 했을 것이다.

어릴 때의 서령은 어땠을까. 지금 보이는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 분명 나이 대에 비해서 어른스럽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어린아이.

돌보는데에는 꽤나 고생이 따랐을 것이다. 그걸 사춘기를 포함한 15년 동안 계속하다니.

애쉬 같은 성격이었다면 진작에 손을 놓고 도망갔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일행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차량은 저러다 하늘을 가리지는 않을지 걱정될 정도로 드높은 담들이 가득한 거리로 들어섰다.

“여기가 그 부자동네인가?”

창밖을 확인한 애쉬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도시의 중심부인 2구역이라고는 해도 그 안에서 빈부격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안 그래도 부유층이 많은 1, 2 구역에서도 유난히 재력이 뛰어난 이들이 살고 있는 곳 같았다.

땅값이 저 밑바닥 슬럼의 수십, 수백 배 이상 되는 도시의 중심부에 이만한 저택을 지을 이들이라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창밖을 보고 중얼거린ㄴㄹ 애쉬의 목소리를 들은 베일라가 대답했다.

“예. 저도 여긴 몇 번 와보지는 못했지만, 그 유명한 츠미모토 회장이나 리델 그룹의 직계도 이곳에 산다고 하더군요. 정말 바깥이랑은 다른 세상 같은 느낌입니다.”

말 그대로 빈틈없이 거리를 감시하는 CCTV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수십에서 수백 미터 간격으로 놓인 비상 호출벨까지.

어떤 이상이 감지되면 신고가 들어가기도 전에 경찰 등에서 출동할 것이 뻔히 보였다.

이곳에 사는 이들 중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들이 많은 만큼 공권력에서도 확실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에아임이 운전하는 차량은 사방이 담으로 가려진 도로를 달려 곧 어느 저택의 대문 앞에서 멈췄다.

그러자 양 측면 벽에 달린 센서에서 시작된 붉은 선이 차량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 차례 훑었다.

“음?”

창밖을 보던 애쉬가 자신의 눈을 찌르고 지나가는 레이저 센서에 의문을 표했고, 그에 베일라가 설명했다.

“출입이 허용된 차량이 맞는 지 확인하는 겁니다. 원래라면 이것 다음에도 외에도 다른 과정을 거쳐야하겠지만, 저희는 유서령 이사님의 관계자이니 거기까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 신기한 게 다 있네.”

확실히 유성 부회장의 자택인 만큼 이런 보안 장치들도 많이 달고 있는 건가?

애쉬가 바깥 측면의 레이저 센서를 바라봤지만, 한 차례 훑고 지나간 것으로 끝이었는지 더 이상 그것은 작동하지 않았고, 정면의 대문이 열리며 길을 터주었다.

­ 철컥.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자 안쪽의 모습이 드러난다.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 도로를 중심으로 조성된 녹빛 정원.

정면에는 화사한 꽃들이 피어있는가 하면 다른 양쪽에는 잘 관리된 관목이나 넝쿨식물 따위가 자연과 어우러진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전체적으로 멋지다기보다는 예쁘다는 느낌이 도는 정원이었다.

차량이 정원 중심의 도로를 가로질러 움직이는 동안 애쉬가 물었다.

“이 정원은 그 부회장이라는 사람 취향인가? 좀 여성스러운 느낌인데?”

“아뇨. 제 어머니의 취향으로 만들어진 정원이에요.”

“아. 그쪽도 같이 산다고 했었지.”

서령의 대답에 애쉬가 수긍했다. 여태껏 거의 언급되지도 않은 서령의 어머니, 유성 호텔의 사장인 이한설도 있었던 것이다.

부부이니만큼 당연히 같은 곳에서 살고 있겠지.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어머니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어떤 사람이냐…구요?”

“어.”

“그게….”

애쉬의 질문에 서령이 말끝을 흐리며 무어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에 애쉬가 의문 섞인 표정으로 물으니 서령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왜? 뭐라도 있나?”

“아, 아뇨…. 사실 저도 사석에서는 몇 번 뵙지 못해서.”

“뭐?”

“많이 바쁘시거든요. 어쩌면 부회장님보다 더 바쁘실 지도 몰라요.”

서령의 말에 애쉬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물었지만, 서령은 그런 모친을 변호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부모와 자식이 사석에서 몇 번 보지도 못했다는 게.

“몇 번 못 봤다고? 평생?”

“…가끔 회장님이 가족 모임을 열 때 말고는 거의 못 뵀죠.”

“이거 완전 콩가루 집안 아니야.”

“애쉬 씨.”

“아니, 맞잖아. 왜.”

자신을 부르는 에아임의 목소리에 애쉬가 대꾸했다.

이런 게 콩가루 집안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서령의 아버지인 부회장은 사용인을 통해 아주 최소한의 신경은 써주던 것 같았는데, 어머니인 이한설 사장은 얼굴도 거의 못 봤단다.

첫째 오빠라는 놈은 후계경쟁이 시작되자마자 막내인 서령을 제거하려 들질 않나, 부모라는 것들이 하는 짓은 무슨 거의 남남이다.

이런 얘기까지 들으니 서령의 부모란 놈들의 낯짝이 더 궁금해진 애쉬였다.

저런 인간들은 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애쉬가 잔뜩 벼른 채 어서 서령의 이야기 속 주인공인 부회장과 만나길 고대할 때였다.

길고 긴 정원을 지나, 저택 주차장에 도착한 차량이 멈춰 섰다.

“내리시면 됩니다.”

“그래.”

차에서 내린 애쉬와 일행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그의 궁금증이 풀리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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