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04화 (104/230)

〈 104화 〉 5. 후계경쟁(28)

* * *

“부회장님께 단도직입적으로 여쭐게요. 이번 후계경쟁에 제대로 발을 들이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짧게 정리했음에도 그 연륜을 보여주듯 희끗한 부분이 보이는 검은 머리칼.

유진혁 회장의 핏줄 중에서도 유난히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 유장혁 부회장.

이제 예순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그 예기를 잃지 않은 눈빛이 서령을 조용히 바라봤다.

“…….”

서령은 분명 그의 피를 이은 딸이었지만, 그런 딸을 보는 눈에 온기라곤 없었다. 그저 타인을 대할 때처럼 차가운 눈으로 상대방의 진의를 살필 뿐.

조용히 쏟아지는 제 아비의 눈빛을 받고 움찔한 서령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뒤에 선 애쉬와 베일라, 그리고 에아임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대답해주세요.”

“…있다고 한다면?”

“그럼….”

이쪽의 반응을 떠보는 듯한 물음. 그런 유장혁 부회장의 목소리에 서령은 말끝을 흐렸다.

만약 그에게 정말 회장이 되고자 하는 뜻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서령과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유력한 후보이니만큼 더욱 거칠어질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그녀가 회장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순간 혼란스러워졌다가도 점차 정리되어가는 서령의 눈빛을 지켜보던 유장혁 부회장이 입을 물었다.

“그보다 나는 궁금하구나, 딸아. 왜 생각을 바꾼 거냐. 너는 분명 회장의 자리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텐데?”

“그건.”

“혹시 네 옆에 붙은 수석 비서가 바람을 넣은 거냐? 아니면 이번에 저 밑바닥에서 굴러왔다는 경호원이?”

“…뭐?”

“애쉬 씨.”

서령과 얘기하던 중 자신을 지칭하며 내뱉는 밑바닥이란 말에 애쉬가 반응했지만, 옆에 있던 에아임이 속삭이듯 그를 부르며 진정시켰다.

애쉬는 무어라 더 입을 열 듯 하다가도 간곡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아임의 태도에 그냥 입을 다물고 상대방을 쏘아보는 것으로 그쳤다.

그렇게 자신의 뒤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을 느낀 서령이 애쉬를 대신하듯 단호하게 입을 대답했다.

“아뇨. 어느 쪽도 아닌 제 선택이에요. 그리고 제 동료들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과 행동이며, 허울뿐인 아버지보다도 자신을 위해주고 진심을 다해 도와주는 이들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그런 진심을 담은 그녀의 목소리였지만, 유장혁 부회장은 서령을 보며 작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그런 것 치곤 꽤나 불안해 보이는구나.”

애써 숨기려 하고 있었지만 나름 긴 세월을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을 봐오고, 또 대해온 유장혁 부회장은 얼핏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직 서령은 마음을 제대로 다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대담한 척 묻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의 의지는 생겼을지 모르나, 어디까지나 그 정도가 끝이었다.

과연 이 유약한 아이가 유성 그룹이란 거대 기업의 후계자 자리에 따르는 무게와 책임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모습만 본다면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서령의 현 상태를 단숨에 꿰뚫어 본 유장혁 부회장의 말에 서령은 반박하지 않고 순순히 그것을 인정했다.

“…맞아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불안해요.”

서령의 나이는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열 살 이상 어린 스물 셋에 불과했고, 그런 만큼 사회적 지위도, 경험도 모두 부족했다.

그런 그녀가 이런 거대한 사건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그야말로 당연한 일.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쪽이 이상한 것일 터다.

하지만.

서령에게는 그런 불안감보다도 커다란 믿음이 존재했다.

애쉬, 에아임, 베일라, 빌헬름…….

동료들이 돕는 자신은 더 이상 무력하지 않다. 그들의 믿음을 받는 자신에게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러니까 조금 흔들려도 괜찮아요.”

흔들려도 된다. 동료들이 흔들리는 자신을 지탱해줄 테니까.

“불안하면 어때요.”

지금의 불안은 어디까지나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있는 것. 이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질 허상에 불과했다.

“저는 이미 모든 각오를 마쳤어요.”

경쟁자들과 싸울 것이다. 그리고 이겨서 후계자의 자리를 쟁취해낼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내가 이겼노라고. 너희들이 무시하고 깔아보던 내가 승자고, 너희는 패배자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서령은 그런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막아서는 상대가 그 누구더라도, 설령 그녀 자신의 앞에서 차가운 눈빛을 보내오는 유장혁 부회장이라도 전력을 다해 부딪칠 각오를 마쳤다.

“…….”

유장혁 부회장은 결연한 각오를 내비치는 서령을 잠시 조용히 바라봤다.

그러나 이번의 침묵은 아까 전과는 다른 기색이 확연히 느껴진다.

서령의 목소리에 담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그리고 그로서 생기는 힘은 정말 오랜만에 유장혁 부회장에게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떠오르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몇 개월이라는 그 짧은 시간동안 유약하던 아이가 이리도 변할 수 있었을까.

그 원인이라고 한다면 얼마 전 서령이 겪었다던 목숨의 위협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동료들의 존재 때문에?

유장혁 부회장은 눈을 들어 서령의 뒤편에 선 이들을 바라봤다.

후계경쟁 이전부터 서령과 함께하던 수석비서와 경호원을 지나 아까부터 이쪽을 쏘아보고 있는 남자에게로 향한다.

잿빛 은발과 진청색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인상적인 미남자, 애쉬 론모어.

듣자하니 저 빈민가에서 제법 유명한 해결사라고 하던가.

‘만약 이 변화가 저 해결사의 작품이라면..’

전설적인 해결사가 아니라 전설적인 보모라는 칭호를 내려주어도 좋을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많은 인물이었지만, 만약 저 남자의 존재가 서령을 이렇게까지 바꿔놓은 것이라면 그 대단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무서운 기운을 뿜어내는 그의 진청안과 눈을 맞추던 유장혁 부회장은 다시 시선을 내려 서령에게로 가져왔다.

어리고 여렸던, 이제는 꽤나 성장한 것 같은 딸아이가 첫 물음에 대한 대답을 바란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장혁 부회장은 자신이 제대로 돌보지도 못한 딸이 이렇게까지 성장한 것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후계경쟁에 제대로 발을 들일 것이냐 물었지.”

“네.”

“대답하자면 나는 회장직에는 커다란 관심이 없다.”

“…역시.”

유장혁 부회장의 대답에 서령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서령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행보는 너무도 알기 쉬웠다. 그저 업무에 이은 업무의 계속.

유성 그룹이란 기업의 커다란 부품 중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인간. 그게 바로 유장혁 부회장이었으니까.

‘각오는 알겠다만, 그래도 부족하구나.’

그런 그의 대답을 듣고 안심하는 게 표정에 드러나는 서령이다. 그런 서령의 표정을 읽은 유장혁 부회장은 거기서 말을 끝내지 않고 계속했다.

“하지만 그게 회장직에 앉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지.”

“…네?”

“이대로 후계경쟁이 계속되면 너는 누가 후계자의 자리에 앉을 것 같으냐.”

“그건….”

지금으로선 미래를 알 수 없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유장혁 부회장 쪽이 올라갈 확률이 높았다.

왜냐면 유성 그룹의 후계 후보 중 이사직 전체의 3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은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부족한 서령의 형제자매들과 달리 능력이야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증명되었으며, 경험도, 연륜도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었기에 그 지지층은 굳건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 비율로만 봤을 때 서령의 지지층이 5% 미만, 다른 형제자매들도 10% 내외를 오락가락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난 격차였다.

“굳이 회장직에 앉고자 하는 생각은 없지만, 굳이 내려오는 것을 거절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내 것을 빼앗아봐라. 그것에 성공한다면 순순히 네게 회장직을 넘겨주마.

아니,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 그것에 성공한다면 나는 흔쾌히 왕관을 넘길 것이다.

그것이 유장혁 부회장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

유장혁 부회장의 저택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똘히 생각에 빠진 서령을 따라 조용한 차량 안에서 애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아저씨, 좀 재수 없긴 했는데 확실히 다르네. 그게 진짜 회장의 핏줄인가?”

“…어릴 적부터 두각을 드러내신 분이었습니다. 아마 그 분께서 진심으로 회장직을 원하셨다면 진작 엄청난 격차로 끝이 나 있었겠죠.”

마지막 부회장의 대답을 듣고 조금 놀란 듯한 애쉬의 말에 에아임이 대답했다.

지닌바 능력도 뛰어났는데, 제 자식들보다 20년 이상 앞서 자리하고 있었으니 과거부터 회장직을 위해 설계했다면 그 격차는 지금과 같은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다.

유장혁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가 경쟁자들이 힘을 합쳐도 밀어내기 힘들었겠지.

서령이나 다른 경쟁자들에겐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애쉬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서령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만만하게 뺏어보라던데. 어때, 아가씨. 자신 있어?”

“…네. 저희만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애쉬 씨랑 빌헬름 씨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할 수 있을 거예요.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던져진 애쉬의 물음에도 서령은 작게 미소 지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에는 이래서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서령도 진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서령의 대답에 애쉬도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돌아가면 다시 시작해보자고. 회장 자리를 뺏긴 놈들을 비웃어줘야지.”

“네! 파이팅이에요!”

* * *

“…겨우 셋한테 그 숫자가?”

“그래. 한 동안은 절대 경호원들을 두고 다니지 마. 유선혁, 그 미친놈이 불러온 용병들이 ‘악마’라는 얘기가 있으니까. 너도 그 이름은 들어봤지?”

“…어. 서령이한테 벌인 일부터 시작해서, 이젠테러리스트로 지정되기까지 한 놈들을 불러오다니. 진짜 어디까지 가려는지.”

“아무튼 조심해. 조만간 무슨 사고가 터져도 아주 크게 터질 테니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