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45화 (145/230)

〈 145화 〉 7. 총잡이들의 여명(1)

* * *

치이이익.

잘 달궈진 그릴 위에 고기가 올라가는 순간 먹음직스런 소리와 함께 옅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부하가 고기를 굽는 동안 단말기의 홀로그램 영상으로 무언가를 보던 핏빛 눈동자의 주인이 물었다.

“이 녀석이 바로 그 녀석이다?”

“예.”

“재밌네. 저번 슬럼에서 벌어졌던 일을 방해한 것도 이 녀석이라면서?”

“맞습니다. 덕분에 ‘회사’ 쪽의 황태자께서 화가 잔뜩 났었죠.”

듣기로는 그쪽의 전투부대 하나가 전멸했다고 하더군요.

고기를 한 차례 뒤집은 부하가 흘러 지나가듯 덧붙였다. 그러자 그것을 들은 핏빛 눈동자의 주인이 눈을 반짝이며 확인하듯 되물었다.

“그쪽의 전투부대 하나를 통째로?”

“예. 그 손실 때문에 책임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모조리 갈아엎었다고 합니다.”

“그 인간 성격에 그럴 만도 하지.”

주인, ‘웃는 악마’의 단장은 익히 겪어 알고 있는 황금빛 미남자의 성격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지금 한창 바쁘다고 들었는데, 그런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 전투 부대 하나를 통째로 잃었으니 아주 열불이 났을 것이다.

최근 ‘웃는 악마’ 또한 그 잿빛 해결사에게 한 방 크게 맞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이쪽뿐 아니라 그쪽 또한 당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했대? 그쪽 전투부대 하나가 모여 있으면 꽤 곤란했을 텐데.”

중얼거린 단장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뭔가 특별한 무기가 있나? 아니면 회피도, 방어도 불가능하게 광범위를 쓸어버릴 수 있는 폭발물을 사용했다던가.

‘웃는 악마’의 서열권에 들어 있는 악마들은 하나하나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실력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중심이 최상위 서열의 경우에는 거기서도 차원을 달리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은 있었다.

이를테면 방금 들었던 잿빛 해결사의 업적 같은 것이다.

‘회사’의 전투부대 하나를 홀로 상대해서 몰살시키는 것.

그것은 부단장들은 고사하고 ‘웃는 악마’의 정점에 서있는 단장에게도 곤란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현시대에서 첨단을 달리는, 아니, 첨단을 넘어 차세대 그 이상의 기술을 적용시켰으며 마찬가지로 최고의 장비들로만 무장한 정예 사이보그 부대의 힘은 누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그런 놈들을 상대로 커다란 부상 하나 없이 몰살시켰다는 건 부단장 하나에게 초죽음까지 간 그 해결사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단장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단장의 부하는 그런 우두머리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제대로 된 장비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반쯤은 기습적으로 들이닥쳤다니 부단장 급 이상의 실력자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만도 하죠.”

“그런가?”

‘웃는 악마’의 단장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얼마나 무장을 대충 하고 있었으면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역시 부단장 하나를 죽인 인물다웠다.

“다 익었습니다. 드시죠.”

“아, 그래.”

우물우물.

단장은 부하가 구워놓은 갈비를 시원하게 뜯었다. 육즙 넘치는 고기가 쫘악 씹히는 게 그렇게 감칠맛 날 수가 없다.

‘고기 진짜 잘 굽네.’

내가 부하 하나는 잘 골랐다니까.

만족스런 자신의 선택에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고기를 뜯던 단장은 어느 순간 문득 생각난 듯 식사를 같이 하고 있는 부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말인데, 그 해결사 영입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가능하다면 좋겠습니다만, 음성 기록에 따르면 이미 수차례 거절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래도 내가 가면 다르겠지. 적어도 관심은 생기지 않을까?”

“…한번 시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부하는 어차피 말려봐야 통하지도 않을 것, 그냥 원하는 대로 하라며 답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단장은 들고 있던 갈비를 마저 뜯으며 본론으로 돌아가 말했다.

“음음. 그럼 기회가 나면 한번 보러 가는 걸로 하고…, 찾았다며.”

그 탈주자.

방금 전까지 기분 좋게 웃고 있던 단장은 ‘웃는 악마’의 탈주자를 언급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가볍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부하는 그런 단장의 분위기 변화에 따라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안 그래도 부단장급 하나와 중상위권의 악마들을 여럿 보내놨습니다. 조금 과한 인력 투자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 인간이라면 그 정도는 필요하지.”

누가 뭐래도 ‘웃는 악마’의 전 단장이었던 남자니까.

“그럼 나도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러 가볼까.”

일이 바쁜 몸이지만, 이것저것 잘 처리하고 가면 어떻게든 맞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웃는 악마’의 현 단장은 그 선홍빛 눈동자 안에서 과거 자신과 사투를 벌였던 남자를 떠올리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 * *

­ 땅! 땅! 땅!

점심이 막 지난 시간. 슬슬 금속 두들기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한다.

애쉬는 오랜만에 에리히 영감의 얼굴도 볼 겸 점검도 받을까 해서 에리히 대장간에 들렀다.

“여어, 영감.”

“…설마 이번에도 내 자식 새끼를 부러뜨려 먹은 건 아니겠지.”

“무슨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도 안하고 그런 소리부터 하나.”

“흥, 네가 여태껏 한 짓거리를 생각해봐라. 내가 이런 말을 안 하게 생겼는지.”

에리히 영감은 섭섭하다는 듯한 애쉬의 말에 콧방귀를 끼며 대꾸했다.

그에 애쉬는 잠시 자신의 과거를 생각해봤는데, 과연 에리히 영감의 말대로 이곳에 들른 이유는 검을 부숴먹었기 때문일 때가 많았다.

애쉬 자신의 기억만 봐도 이런데, 매번 자신의 작품이 부러져서 돌아온 에리히 영감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겠는가.

할 말이 없어진 애쉬는 그냥 말을 돌렸다.

“뭐 그건 됐고, 검이나 잠깐 봐줘.”

“다행히 부러뜨린 건 아닌가보구나.”

인사를 나누기도 잠시, 애쉬가 내미는 검을 받아든 에리히 영감은 검을 뽑아보더니 곧 웬일이냐는 듯 말했다.

“이번엔 전보다 더 소란스럽더니 검은 멀쩡하게 가져왔구나.”

“뭐야, 영감도 알아?”

“그럼, 내가 대장일이나 한다고 바깥소식에는 귀를 닫고 있는 줄 알았느냐.”

“그런 줄 알았지.”

솔직히 71구역 구석에 쳐박힌 대장간의 위치도 그렇고, 에리히 영감의 나이도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면 최신 문물에 어두워지기 마련이었는데, 어째 에리히 영감은 그렇지가 않은 듯 했다.

자신을 골방 늙은이 취급하는 애쉬의 말에 잠시 그를 노려본 에리히 영감은 곧 한숨을 작게 내쉬곤 말했다.

“기업과는 깊게 얽히지 않는 게 좋다.”

“나도 알아.”

“아니, 잘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치들이 얼마나 지독한 놈들인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오랫동안 겪어온 연방 정부와 시 정부, 그리고 기업들에 시달린 에리히 영감의 깊은 회한이 담긴 말이었다.

그는 연방 정부에 소속된 최고 등급 장인으로서 수많은 외력을 감당해왔다. 그 중에는 당연히 기업들의 것도 있었고.

그가 이제 와서 과거를 돌아볼 때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서 자존심을 지키다 이런 곳까지 좌천을 당한 게 아니라, 젊을 적 기업들과 어울렸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겪었던 기업의 더러운 짓거리들은 아직까지도 그의 안에서 최악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애쉬는 그런 에리히 영감의 진심어린 걱정의 목소리에 픽 웃고는 대답했다.

“내가 그런 거에 당할 사람이었으면 무너져도 진작 무너졌겠지.”

비록 방향성은 다를지언정 슬럼의 갱단들 또한 악질적이기는 어지간한 기업 못지않았다.

본인을 위협하는 일은 예삿일이고, 가족과 주변인들의 목숨까지도 흔하다.

그래서 애쉬도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놓지 않았던가.

온갖 악질적인 위협과 협박에 시달리던 애쉬는 주변인들의 안전을 위해 인질로 잡힌 그들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저 그 이후에는 희생된 모든 이들의 철저한 복수를 약속하고, 그것을 시행할 뿐.

결과적으로 그것은 무척이나 옳은 선택이었다.

그런 애쉬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에리히 영감은 쓴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과거의 내가 너 같았다면 지금 이렇게 후회하고 있지는 않았겠지.”

“뭐,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지. 그래서 검은 어때?”

“날이 살짝 상하긴 했다만 딱히 큰 이상은 없다. 날을 조금 갈아줄 테니까 기다려라.”

“어.”

에리히 영감의 말에 애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은 곧 애쉬의 검을 들고 장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애쉬는 그런 그가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길 가만히 기다렸다.

애쉬가 구식 단말을 꺼내 게임을 켜기도 잠시.

­ 띠리리릭.

“뭐야.”

곧 그에게 걸려온 연락이 게임 화면을 물들였다.

애쉬는 뒤바뀐 화면에서 발신자를 확인했는데, 발신자는 다름아닌 그의 사무소.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애쉬는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어, 무슨 일이야.”

­ 아, 사장님. 지금 사장님께 용무가 있으신 분이 찾아오셨어요.

“용무?”

­ 네. 그러니까 성함이….

­ 게빌 리퍼슨!

헷갈린다는 듯 말끝을 흐린 샤인의 목소리 뒤로 누군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그게 용무가 있다는 사람의 이름인 것 같았다.

­ 게빌 리퍼슨 님이라고 하시네요. 아는 분이신가요?

“게빌 리퍼슨? 음….”

애쉬는 잠시 자신의 기억 속을 뒤져봤다.

게빌 리퍼슨. 게빌 리퍼슨이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했는데, 당장 뚜렷하게 생각나는 건 없었다.

“딱히 기억나는 이름은 아닌데. 어떻게 생겼어?”

­ 음…. 그, 서부극에 나오는 것 같은 카우보이모자에 망토를 두른 특이한 행색이신데, 기억나시는 게 없으신가요?

“카우보이모자에 망토라고?”

­ 네.

카우보이 모자에 망토. 그 특징을 들어보니 딱 떠오르는 녀석이 있었다.

유성 그룹의 일에서 마주쳤던 총잡이. 녀석의 이름이 분명 게빌 리퍼슨이었던 것 같다.

애쉬가 그 이름과 외모를 떠올릴 때쯤 쇄기를 박는 샤인의 목소리가 더해졌다.

­ 이름만으로 잘 기억을 못하면 이렇게 말씀드리면 알 거라고 하시네요.

‘골든 캐니언이 맡겨둔 물건을 받으러 왔다.’ 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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