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7. 총잡이들의 여명(2)
* * *
“제대로 손질해 뒀으니 조심해서 써라. 또 부러뜨려오지 말고.”
“노력은 해볼게.”
“뭐라?”
에리히 영감이 그의 무성의한 대답에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애쉬는 이미 발걸음을 빨리해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돌아가는 애쉬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에리히 영감이 소리쳤다.
“이놈아! 일 있을 때만 오지 말고 다음엔 좋은 술이나 갖고 찾아와라!”
나이도 있는 양반이 목청도 좋다니까.
애쉬는 그런 에리히 영감에게 손만 한 번 흔들어 답하고는 대장간을 떠났다.
*
십여 분 정도 지나 도착한 사무소 앞.
하늘은 쾌청하고, 평소 다소 매캐하던 공기도 괜히 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꽤나 날씨가 좋은 편이다.
이런 날에 만날 것이 털 북슬북슬한 사내놈이 아니라 매력적인 이성이었다면 더 좋았겠지.
딸랑딸랑.
애쉬는 그런 작은 아쉬움을 삼키며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익숙한 종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거기에 어딘가 익숙하면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도.
“오, 왔구만.”
애쉬는 목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렸고, 남자는 잘 기억하지 않는 자신의 머릿속에도 그 존재를 뚜렷이 새겼던 남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애쉬가 짧게 그를 불렀다.
“총잡이.”
“총잡이? 내 이름까지 가르쳐줬는데, 그렇게 부르니 서운한데.”
챙이 얼굴을 슬쩍 가릴 정도로 덮어쓴 카우보이모자와 그 밑으로 언뜻 드러나는 눈빛.
멋들어진 콧수염은 물론이고 독수리가 그려진 케이프는 여전히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제 집 안방이라도 되는 듯 손님용 소파에 다리를 꼰 채 몸을 반쯤 눕혀 앉은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름 인연이라면 인연이긴 하지.’
애쉬는 자신을 반기는 그의 목소리에 픽 웃으며 소파 맞은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자 한창 무언가에 집중하던 샤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다녀오셨어요, 사장님!”
“어. 별 일은 없었고?”
“네. 사장님 손님이 오신 것 말고는 항상 그렇듯이 별 일 없었어요.”
“그래? 알겠어.”
“네. 아, 마실 것 좀 준비해드릴까요?”
“난 됐어. 그쪽은?”
“이쪽도 괜찮아. 이미 한 잔 마셨거든.”
애쉬의 물음에 게빌 리퍼슨, 게빌이 아직 내용물이 남아있는 컵을 쓱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역시 손님 접객에 일가견 있는 샤인답게 기다리는 동안 미리 마실 것과 간단한 다과 따위를 내어준 것 같았다.
“그렇다네. 일 봐.”
“네.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샤인은 괜찮다는 애쉬의 말에 대답하고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애쉬가 뉴스에 나오고 시간이 좀 지나자 식는 듯 했던 관심도 이번에 다시 영상이 떠돌기 시작하며 크게 바빠졌다.
덕분에 일은 거의 하지도 않는 애쉬도 조금 바빠졌지만 역시나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샤인.
애쉬는 기특한 샤인에게 언젠가 상여금 같은 것이라도 더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정면의 게빌에게 눈을 돌렸다.
그리고는 멀쩡하게 붙어있는 것 같은 그의 두 손을 보며 놀리듯 툭 말을 던졌다.
“손목은 어때? 그때 좀 아파 보였는데.”
그 손목을 내놓게 한 당사자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것은 굉장히 기분 나쁠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그런 것을 신경 쓰고 배려할 애쉬가 아니었다.
애초에 좋은 관계로 만난 것도 아니었고, 적이었는데 살려준 게 어딘가.
그가 손목만 받고 보내주지 않았다면 아마 눈앞의 남자, 게빌 리퍼슨은 지금까지 숨 쉬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게빌 또한 애쉬의 말에 기분 나쁘다는 느낌 하나 없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심지어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스스로 절단했던 손목 부위의 옷소매를 걷어 보였다.
“아, 그거라면 물론 멀쩡하지. 한번 보겠나?”
옷소매가 말려 올라가자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깊이의 봉합자국이 남은 손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애쉬는 그것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게빌이 잘린 신체 부위를 기계 신체 따위로 대체한 게 아니라 원래 자신의 손을 다시 이어 붙였다는 것을.
게빌은 자신의 손목에 흉측할 정도로 크게 남은 봉합 자국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벗어나 곧장 병원으로 향했지. 그랬더니 늦지는 않았는지 그대로 봉합할 수 있다더군. 다행인 일이지.”
솔직히 아직은 내 몸을 고철 따위로 대신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게빌은 손목을 자르게 만든 당사자의 앞에서도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어찌나 뒤끝 없이 깔끔하던지 오히려 먼저 놀리듯 말했던 애쉬가 조금 신경 쓰일 정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뀐 애쉬가 손가락 끝만 움찔움찔하는 그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잘 움직이긴 해?”
“아니. 아직은 저릿저릿하기만 하고 거의 움직이질 않아. 의사 말로는 반년은 재활을 해야 할 거라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네게 부탁할걸 그랬어.”
그랬다면 그나마 절단면은 깔끔해서 재활 기간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라며 게빌이 농담을 던져왔다.
그에 애쉬는 미묘한 표정만 지을 뿐, 그 농에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고 겪어왔지만, 이런 녀석은 또 처음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것처럼 역시나 특이한 녀석이었다.
나쁜 쪽은 아니고, 조금 좋은 쪽으로.
그렇게 잠시 게빌과 짧은 잡담을 나눈 애쉬는 곧 그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떠올리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리볼버를 받으러 왔다고 했었지.”
“아아, 맞아. 8구역의 리퍼슨 물류로 오면 격하게 환영해준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적이었으니 의심을 풀기엔 부족했던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이쪽이 찾아왔지.
환영해준다는 건 진심이었는데 애쉬가 찾아오지 않아 아쉬웠다며 게빌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애쉬가 그를 찾아가지 않은 이유를 잘못 짚어도 한참은 잘못 짚은 것이었다.
애쉬는 그 일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었다.
“아, 그거. 의심돼서가 아니라 솔직히 까먹고 있었는데.”
“……까먹고 있었다고?”
애쉬의 입에서 나온 진실에 게빌의 카우보이모자가 한 박자 늦게 툭 삐뚤어졌다. 그는 설마 상대방이 그것을 까먹었으리라고는 정말 예상도,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나름 멋있게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까먹고 있었단 말인가.
자신의 손목이 잘려나갔던 것에는 아무런 뒤끝도 없이 지나갔던 게빌이었으나, 이것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가 삐뚤어졌던 카우보이모자를 확 벗어들고 애쉬에게 진심으로 따졌다.
“아니, 어떻게 그걸 까먹을 수 있지? 잊지 말라고 내가 애지중지하는 리볼버까지 맡겼는데!”
“…그걸 따지는 거냐?”
“그럼! 내가 인정한 남자에게 그 정도의 기억밖에 남기지 못했다고?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야!”
“대체 뭔….”
애쉬는 이상한 부분에서 열을 올리는 게빌의 반응에 당황해서 대체 뭐하는 놈이지, 하고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 후유증이 남을 것이 확실한 손목 절단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더니 이런 쪽에서 흥분을 한단 말인가.
한동안 열을 올린 채 말하던 게빌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진정했는지 억울한 말투로 애쉬에게 하소연했다.
“최근 네가 TV에까지 나오면서 괴물 늙은이가 얼마나 놀려 댔는지 아나? 가짜 영웅 만들기에 놀아나는 애송이한테 당했다고…!”
“…괴물 늙은이? 그리고애송이라고?”
“그래! 그 늙은이가 얼마나 무시하던지 이젠 생각만 해도 열불이 날 지경이야!”
게빌의 하소연은 그의 지인 정도로 보이는 어느 늙은이와 동료들의 그것으로 가득했다.
애쉬는 손목을 자른 채 돌아간 게빌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관심 없었지만, 그의 하소연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괴물 늙은이’라는 존재에게는 조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게빌에게서 그가 당한 경위를 듣은데다 나중에는 뉴스를 통해 유출된, 그가 총탄을 쳐내는 영상을 봤다고 함에도 애송이라고 칭하다니, 그게 허세 섞인 험담이 아니라면 상대방은 진짜 실력자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래서 애쉬가 자신을 애송이라고 불렀다는 그 괴물 늙은이란 인간에 대해 물었다.
“잠깐, ‘괴물 늙은이’? 그건 뭐하는 늙은이야?”
“그 늙은이는….”
애쉬의 갑작스런 질문에 게빌이 말끝을 흐리며 그를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말을 골랐다.
괴물 늙은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그랬지만, 지금 지어지는 복잡한 표정에서 그냥 일반적인 늙은이는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곧 머릿속을 정리한 듯 게빌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 괴물 같은 늙은이는 내 스승이야. 내 아버지기도 하고.”
“네 아버지?”
“그래. 나이는 이제 60줄이 다 됐는데, 아직까지도 괴물 같은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늙은이지.”
외모는 계속해서 나이 들고 있음에도 실력만큼은 지금이 전성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총잡이.
게빌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데일 리퍼슨’을 어느 때보다도 이렇게 표현했다.
“솔직히 인정하긴 싫지만…, 그 악마 같은 늙은이는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총잡이야.”
감히 장담컨대,‘세계 최고의 총잡이’라고….
그것을 들은 애쉬가 짧게 중얼거렸다.
“세계 최고라….”
좀 웃긴 하소연이라곤 해도 그것을 들어주는 것도 잠깐이지, 슬슬 질려가던 애쉬의 눈에 흥미가 돌았다.
세계 최고라고? 그것은 누가 됐든 함부로 쓸 수 있는 수식어가 아니다.
특히나 스스로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어 보이며, 멋에 꽤나 신경 쓰는 것 같은 게빌 리퍼슨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는 말로 자신의 아버지를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일 터였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라는 존재가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총잡이다 이거지.’
궁금해지는데?
이미 한 차례 게빌 리퍼슨의 실력에 감탄한 바 있었던 애쉬로서는 그것만으로도 흥미가 돌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껏 봐왔던 총잡이들 중에서도 첫손에 꼽을 실력을 갖고 있던 게빌 리퍼슨이 장담하는 세계 최고의 총잡이는 과연 어떤 인물이며,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을까?
최소한 게빌 리퍼슨, 그보다 훨씬 뛰어날 것은 틀림없어보였다.
하소연하는 것을 들어봤을 때도 그렇고,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말하는 뉘앙스 하나하나에서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라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으니까.
“…재밌네. 그런 인간이 날 보고 애송이라고 했다고?”
“그래. 내가 찾아온 이유는 맡겨둔 리볼버를 받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내 체면 회복을 위함도 있지.”
가능하다면 영상으로만 널 접한 그 늙은이의 큰 코를 다치게 해주고 싶다.
잡담을 나누고, 하소연을 하다가 이제 와서야 자신의 용무를 밝힌 게빌 리퍼슨의 말이었다.
애쉬는 그런 게빌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내 실력을 봤으면서도 ’가능하다면‘이다 이 말이지.’
더 이상 뭔가를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그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는 녀석이 있다면 직접 보여줘야겠지.
마침 쓸데없는 일들로 귀찮음만 느끼고 있었는데, 잘 된 일이었다.
“샤인, 이번 주말은 영업 쉬자. 이만 쉬어.”
“네? 아, 네.”
사무소를 닫자는 애쉬의 말에 잠시 의문을 나타낸 샤인이었으나, 곧 고개를 끄덕이며 들여다보던 의뢰서들을 정리했다.
최근 들어 뜸해지긴 했으나, 종종 있는 일이었다.
애쉬가 무언가에 빠져서 갑자기 휴일을 정하는 일은.
그렇게 샤인에게 통보한 애쉬는 다시 게빌 리퍼슨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능하다면’이 아니라 제대로 박살을 내줄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세계 최고의 칼잡이인 자신과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는 늙은이의 대결은 그저 상상만 해도 즐거울 것 같다.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는 그 인물에 대한 기대감과 약간의 고양감이 그를 웃게 만들었다.
"프흐, 재밌겠네. 재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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