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7. 총잡이들의 여명(3)
* * *
“다녀오시게요?”
“어. 저녁 식사는 알아서 해먹든지 하고.”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오냐.”
애쉬에 의해 갑작스럽게 정해진 휴일이 왔다.
언제나 그렇듯 샤인이 차려준 식사를 끝내고 준비를 마친 애쉬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일어섰다.
‘좀 많이 기대되는데.’
이전부터도 스릴 넘치는 싸움을 좋아하긴 했지만, 최근 한번 죽다 살아난 뒤로는 그것이 더 심해진 느낌이다. 전날은 어찌나 기대됐던지, 그냥 내일이 휴일이고 뭐고 때려 치고 지금 당장 가버릴까 고민했을 정도로.
다행히 스스로 정한 것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버텨냈지만, 당일이 된 오늘만큼은 참을 필요가 없었다.
애쉬는 곧 있을 만남을 기대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소를 나섰고, 곧 불러뒀던 택시가 도착해 그를 태우고 도시 안쪽으로 향했다.
“가는 건 좋은데, 장거리 이동은 지루하다니까.”
7구역까진 적어도 5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기껏해야 한 시간이나 택시를 타고 움직였을까.
이젠 단말기로 게임을 하는 것도 조금 질렸다. 애쉬가 그냥 단말기 화면을 끄고 눈이나 붙일까 고민할 때였다.
띠링, 하고 알람이 한번 울렸다. 메시지의 수신음이었다.
그것을 들은 그는 바로 메시지 창을 열어 확인했다.
*
빨강 꼬맹이 : 오늘 우리가 가서 찍었던 영상 올렸는데 한번 봐줘! (>ω
*
“…그 꼬맹이네.”
얼마 전, 그가 구해줬던 베리 트윈즈의 쌍둥이 중 빨간 쪽, 페일 에스티였다.
연락처를 먼저 주길래 확인 차 메시지를 한번 보냈었는데, 그 뒤로 그의 연락처를 알아서는 이렇게 가끔 연락하곤 했다.
‘그나저나 영상이 올라왔다고.’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구독자가 1,100만이나 되는 거대한 채널의 주인인 넷 아이돌 쌍둥이의 영상이라도 그다지 흥미는 없었지만, 나름 아는 얼굴이 참여했다보니 어떤 식으로 연출하고 편집했을 지가 궁금해졌다.
마침 따분한 시간을 때우는 데도 좋을 것 같았기에 그는 바로 쌍둥이의 분홍분홍한 채널을 찾아가 영상을 확인했다.
그.래.서! 오늘은 블루베리와 함께 그 유명한 71 구역까지 나왔어! 물론, 경호팀과 촬영팀을 대동해 움직인 것이니 착한 베리베리단은 절대 함부로 따라하지 말 것!
와, 와아아….
스트로베리, 페일 에스티의 말에 빌헬름이 어색하게 환호하며 박수치는 게 보인다.
빨강파랑 쌍둥이와 빌헬름의 뒤편에는 경호팀과 함께 따분한 표정으로 대기하는 그가 슬쩍 비치기도 했다.
아마 저것도 노리고 찍은 거겠지. 그렇게 찍지 말라고 했는데 꼼수를 부린 것 같았다.
애쉬는 그것을 적당히 머릿속에 담아두며 영상을 계속 이어봤다.
그리고 오늘의 안내역! 우리 베리베리단 No.4 번 팬인 빌헬름 씨야! 다들 이쪽에도 박수!
오오…!
짝짝짝.
빨강머리 꼬맹이의 말에 박수치는 촬영팀.
그 뒤로도 영상은 계속 이어졌는데, 그것을 1분 정도 멍하니 보던 애쉬는 이제 슬슬 꺼버릴까 고민했다.
겨우 1분이다. 영상을 켠 지 1분 정도가 지났는데 벌써부터 한계였다.
현장에서 직접 볼 때는 나름 재밌게 본 것 같은데 이렇게 특정 방향의 취향을 위한 편집이 가미되니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걸 더 봐야할까?
‘아니.’
1분 정도 더 고민하던 애쉬는 결국 그것을 꺼버리고 페일 에스티에게서 왔던 메시지에 답장했다.
*
빨강 꼬맹이 : 오늘 우리가 가서 찍었던 영상 올렸는데 한번 봐줘! (>ω
나 : 잘 봤다. 20초 전
빨강 꼬맹이 : ...3분 전에 올린 건데 벌써 다 봤다고? 영상 길이가 13분인데? ( ) – 방금 전
*
그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곧장 돌아오는 답장.
얼마 보지도 않고 꺼버린 것을 들킨 애쉬는 곧 쏟아지기 시작하는 빨강 꼬맹이의 메시지 세례를 쳐다보다 그대로 단말기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냥 무시할 걸 그랬네.’
괜히 답장 한번해서 더 귀찮아진 것 같다.
애쉬는 주머니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울려오는 메시지 알림음을 무음으로 돌린 뒤 팔짱을 끼고 눈을 붙였다.
아직 ‘리퍼슨 물류’가 위치한 7구역까지는 몇 시간 정도 남았으니 시간은 넉넉했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음.”
택시의 AI가 목적지의 도착을 알린다. 애쉬는 차량이 정차하는 느낌에 눈을 떴다.
창밖으로 주변을 보니 실시간 맵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온갖 건물이 가득한 도심이다.
그는 곧장 문을 열고 내리며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
좁은 차 안에 구겨져 있으려니 뻐근해졌던 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애쉬는 주변을 돌아보며 ‘리퍼슨 물류’가 위치한 건물로 향하려 했지만, 그 전에 그를 반기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이~!”
“응?”
타다닷, 반갑다는 듯이 반쯤 달려오는 발소리.
고개 돌려 보니 낯익은 얼굴, 게빌 리퍼슨과 그의 동료로 보이는 카우보이모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이었기에 총 같은 걸 겨누기도 힘들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저 반응을 보니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적대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에게 다가온 게빌과 동료들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조금 늦었는데, 그래도 잘 왔어.”
“그때 봤던 얼굴이 맞군.”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돼.”
게빌의 동료들인 카우보이모자들은 과거 ‘유성 그룹’때 그를 한 번 봤던 이들인지, ‘리퍼슨 물류’의 사옥으로 애쉬를 안내하면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 왔다.
“그때는 진짜 오금이 저렸지. 사신이 내 앞에 있는 것 같았다니까.”
“맞아. 난 무슨 영화 속 주인공이 튀어나온 줄 알았어.”
“그런데 게빌의 연사를 그 근거리에서 베어냈다던데, 정말인가?”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솔직히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
이런저런 잡담을 하던 카우보이모자들은 엘리베이터에서 애쉬에게 물었다.
그에 애쉬도 그들의 질문을 듣자마자 무엇을 묻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과의 마지막 순간을 말하는 것일 테지.
애쉬는 아직도 기억에 강하게 박혀있는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끼리릭. 방아쇠 당겨지는 소리와 단 한 번 울리듯 들려온 총성. 그리고 느려진 시간 속 거의 동시에 다른 네 곳을 노리던 탄환들.
그때 자신은 어떻게 했더라.
‘아.’
워낙 인상 깊은 일이었기에 떠올리려 애쉬는 그것을 바로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중력과 공기저항, 물리법칙을 모두 벗어난 듯 자유로운 느낌을 받았던 것은.
그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초근접 거리에서 쏘아진 4발의 총탄을 깨끗하게 베어냈었다.
그 감각을 다음으로 느낀 것은 ‘웃는 악마’의 부단장이라던 놈을 상대할 때가 끝이었으니 기억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감이 잡힐 듯 말 듯한 그 상태를 떠올리던 애쉬는 게빌의 동료 카우보이모자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진짠데.”
“…진짜라고?”
“거봐! 진짜라니까! 피한 게 아니라 그 거리에서 반응해서 칼로 벴다고!”
“아니,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지?”
카우보이모자의 총잡이들은 애쉬의 대답에 반신반의하며 의문을 나타냈다.
분명 마지막 순간 둘의 거리는 1미터 이내였다. 그런데 그 거리에서 어떻게 총격에 반응해 탄환을 베어냈단 말인가.
하지만 동료 총잡이들이 믿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게빌은 신이 나서 다른 녀석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어서 내놔. 내가 말한 대로 오늘 왔고, 본인의 입으로 확인시켜줬지. 두 당 100크레딧. 총 400크레딧이다.”
“망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직 모르는 일 아닌가? 자세한 건 확인을 해봐야….”
“어디까지나 조건은 ‘본인의 입에서 사실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었을 텐데? 잔소리 말고 내놓으시지.”
“하….”
카우보이모자들이 품에서 주섬주섬 크레딧카드를 꺼내 게빌의 손에 넘겼다.
그것을 보던 애쉬는 이 카우보이모자들이 자신을 두고 내기를 벌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애쉬가 살짝 어이없다는 투로 게빌을 바라보자, 그는 그것을 느꼈는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말도 안하고 일을 벌여서 미안하군. 하지만 내기 내용을 미리 밝히면 반칙이여서 말이야. 다음에 술이라도 한 잔 사지.”
“…그러던가.”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할까 고민하던 애쉬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그것을 관두기로 했다. 여기까지 와서 저런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가 이곳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띵. 44층입니다.
곧 엘리베이터가 알림음과 함께 멈추며 문 열렸다. 목적했던 ‘리퍼슨 물류’의 사무실이 위치한 층에 도착한 것이다.
게빌 리퍼슨과 카우보이모자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애쉬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 ‘리퍼슨 물류’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도착했다.
[리퍼슨 물류]
작게 이름만 적혀있는 간판이 붙은 사무실에.
“어서 와라. 리퍼슨 물류에.”
스르륵.
게빌의 목소리와 함께 자동인식 센서가 붙어있는 듯 불투명한 유리문이 열렸다.
그러자 무슨 파티라도 할 듯 꾸며놓은 사무실의 안이 드러났다.
“오, 왔나? 그 무성한 소문의 당사자가.”
“진짜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더 젊은 느낌이네?”
“그러게 말이야. 젊다 못해 좀 어린 느낌이군.”
“잘생기긴 했네.”
사무실의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몰려들며 순식간에 애쉬에 대한 짧은 평가들이 튀어나왔다.
게 중 마지막 목소리는 여자였는데, 게빌은 그녀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며 말했다.
“오, 케일. 오늘은 웬일로 술자리에 끼는 모양이야?”
“네가 그렇게 떠들고 다녔던 사람이 온다잖아. 궁금해서라도 남아있어야지.”
“그렇긴 하지. 자, 여기 이 친구가 애쉬 론모어야. 최근에는 뉴스에도 나왔었지, 아마?”
비록 모습은 블러 처리 됐었지만.
게빌이 사무실 안의 사람들에게 애쉬를 소개했다.
그에 애쉬도 그들을 마주 바라봤는데, 그들은 케일이라는 여성을 제외하곤 나이 대가 좀 돼 보이는 이든, 아니든 하나같이 카우보이모자를 쓰거나 들고 있는데다, 짧은 케이프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컨셉 하난 확실한 곳이군.’
‘총잡이의 여명’.
분위기가 이 정도로 괜찮은 것을 보면 원작 게임 속에서도 여타 빌런 집단과 다른, 주인공의 조력자 쯤 되는 포지션의 조직인 모양이다.
게빌은 애쉬를 이끌고 파티장처럼 꾸며진 사무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마침 내일이 주기적으로 여는 파티가 있는 날이란 말이지. 네가 오늘 온다길래 내가 하루 당겨서 열자고 했어. 아, 술 한 잔 하겠나?”
“아니.”
애쉬는 테이블에 적당히 놓여 있던 술잔을 권해오는 게빌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는 분명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술에 빠져들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는 인간을 만나고 싶었다.
애쉬가 고개를 젓자 게빌은 그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씩 웃으며 말했다.
“역시 그 늙은이가 보고 싶은 모양이구만. 그럴 줄 알았지.”
애쉬에게 말한 게빌은 다른 인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사무실의 가장 안쪽, 문이 닫혀있는 곳을 향했다.
“잠깐 먼저들 놀고 있으라고! 난 늙은이한테 이 녀석을 안내해주고 올 테니까!”
“어, 그래라.”
“나도 저 녀석이랑 얘기좀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라는 목소리와 아쉬운 듯한 목소리가 멀어진다.
유일하게 닫혀있는 문 하나에 가까워진 게빌은 그곳에 노크했다.
똑똑.
“영감. 전에 말했던 손님을 데려왔는데.”
……들어와라.
안쪽에서 낮게 긁는 듯한 중저음이 대답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 존재 자체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애쉬는 잔뜩 기대한 채 게빌을 바라봤고, 게빌이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네가 그 애쉬 론모어란 애송이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