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69화 (169/230)

〈 169화 〉 8. 게빌 리퍼슨(2)

* * *

“그쪽으로 간다!”

“네!”

­ 타다닥!

69구역 어느 골목길.

게빌이 털 뭉치 하나를 쫓아 이동 방향을 유도하자 코너에 숨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샤인이 정면에서 튀어나오며 덮친다.

그러나 바닥을 달리던 네 발 짐승은 믿을 수 없는 순발력으로 샤인의 키 두 배쯤 되는 높이를 뛰어올라 그 시도를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덮치는 것에 실패한 샤인이 넘어지자, 잠시 후 다가온 게빌이 자신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십여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고양이를 향해 불평을 내뱉었다.

“하, 저러니까 여태껏 잡았다는 놈이 없지.”

“…죄송해요.”

“죄송할 것 없어. 애초에 저런 걸 맨몸으로 잡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니까.”

자신을 탓하는 것 같은 샤인을 게빌이 위로했다.

그의 말대로, 골목에서 저 고양이를 동물 제압용 수면탄 없이 잡는 건 무리가 좀 있는 일이었다.

일반 고양이였다면 게빌 혼자서도 잡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유롭게 제 앞발을 핥고 있는 저 고양이는 일반적인 고양이가 아니었다.

무슨 대학 실험실에서 이곳 슬럼까지 도망쳤다는 저 고양이는 유전자가 개조된 개체로, 일반 고양이보다 한참은 우월한 반사 신경과 운동 능력을 갖고 있어 이런 좁은 골목에서는 그로서도 잡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제압용 탄환을 사용하자니 의뢰인 측에서 달았던 조건이 그것을 막았다.

‘절대로 외부 약품이 그 녀석의 몸속으로 들어가선 안 됩니다!’

첫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의 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동안 투자됐던 연구비가 모두 날아간다나 뭐라나.

게빌은 단호하게 말하던 안경잡이의 목소리를 떠올리곤 표정을 구겼다.

‘그럼 니들이 저걸 제압용 탄환 없이 잡아보든가.’

실제로 이 의뢰를 맡은 것은 게빌과 샤인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이전에 도전했던 이들은 모두 그냥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어 시간 정도 쫓아다닌 지금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도저히 맨몸으로 잡을 수 있을만한 고양이가 아니다.

“야옹.”

회색 털의 고양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샤인과 게빌을 향해 한번 울어보이고는 담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에 게빌은 무언가 수를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샤인을 불렀다.

“가자, 샤인.”

“아, 네.”

넘어졌던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던 샤인이 급히 게빌을 따라 움직였다.

게빌이 향한 곳은 자신이 타고 온 차량이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철컥.

“역시 인간은 도구를 써야지. 안 그래?”

“아, 이런 장비들까지 챙겨 오셨었네요.”

“따로 챙겨온 건 아니고, 항상 들고 다니는 건데 이런 일에 쓰게 될 줄은 몰랐지.”

차량에 도착한 게빌은 바로 트렁크를 열었는데, 거기에 들어있는 것들은 그가 애용하는 그물과 로프 따위의 물건들이었다.

그는 사격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이런 물건도 기가 막히게 다뤄서 분명 이번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여기 이 버튼은 뭐예요?”

“아, 그건 실수라도 누르지 않게 조심해. 로프에 전기를 흘리는 버튼이니까.”

샤인이 로프 끝에 있는 작은 버튼을 확인하고 묻자 게빌이 주의시켰다.

로프가 자신에게서 좀 떨어져있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직접 들고 있을 때 잘못 누르면 그것을 누른 사람도 감전당할 수가 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전류가 흐르지는 않지만 일단 감전당하고 나면 그 후유증이 꽤나 클 터였다.

“그런데 이런 물건을 쓰면 의뢰인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하하, 몸 내부에 약품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지, 감전 시키면 안 된다고는 안 했잖아.”

샤인의 걱정스런 물음에 게빌이 웃으며 대답했다.

몸 내부에 약품이 들어가지 않도록 생포할 것. 그게 의뢰인 측의 조건이었으니 그것만 맞추면 되는 것이다.

미리 조건을 달지도 않았으면서 감전 당했다는 걸 핑계로 의뢰금을 해먹으려 하면 매운 맛을 보여주면 된다.

그렇게 로프와 그물 등의 물건을 모두 챙긴 게빌이 위치 추적기를 들고 있는 샤인에게 물었다.

“지금 녀석의 위치는?”

“여기서 130m정도 떨어진 곳에 잠시 멈춰 있어요.”

“그럼 적당히 그 근처에 판을 깔아보자고.”

“네.”

이제는 건방지게 인간님을 약 올리는 고양이의 버릇을 고쳐줄 차례였다.

게빌과 샤인은 고양이 목에 달린 위치 추적기를 따라 움직이며 그 주변에 함정을 깔아놓고 녀석의 이동 방향을 제한할 계획을 짰다.

“알겠지. 녀석이 그물 위에 올라오면 바로 이 버튼을 누르는 거야.”

“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게 잘 해볼게요.”

“좋아. 가보자고.”

샤인의 각오에 고개를 끄덕인 게빌이 목표물인 고양이를 유도하기 위해 움직였고, 얼마 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샤인의 귀에 다급한 고양이의 발소리와 게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샤인! 그쪽으로 간다!”

“맡겨주세요!”

이번에는 고양이를 직접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함정으로 잡으려는 것이었기에 직접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소리와 함정 바로 위에 제한된 시야로 반응해야하는 것.

샤인은 눈을 크게 뜬 채 깔아둔 함정에 집중했고, 고양이가 그 위에 발을 딛는 순간 스스로도 믿기 힘들 반응 속도로 버튼을 눌렀다.

­ 파지지직!

“웨에엥!!”

자신의 발밑에 전기가 흐르자 고양이가 비명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펄쩍 튀어 올랐다. 녀석이 의도하고 한 게 아니라 신경 반사적인 움직임인 것이다.

전기가 흐르는 순간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샤인의 예상과 달리 높이 튀어 오른 녀석은 그물이 덮치는 것을 그대로 피할 듯했다.

그 때였다. 굵은 로프 하나가 공중에 떠오른 고양이의 허리를 휘릭 휘감은 것은.

­ 파아악!

그물을 벗어나려던 고양이는 허리가 묶이자 그대로 다시 그물 위로 내동댕이쳐졌고, 그대로 그물 안에 갇혀 몸부림쳤다.

“잡았다!”

“샤아아!”

게빌이 고양이를 가둔 그물을 들어 올리자 녀석은 하악질을 해댔지만 이미 완전히 갇힌 상태에서 그런 게 위협이 될 리가 없었다.

샤인은 게빌이 그물을 회수하자 다가와 감탄하며 물었다.

“와아…. 방금 로프는 직접 던지신 거예요?”

“물론이지. 봐, 다른 발사 장치가 없잖아.”

게빌이 아직 잡고 있는 로프 끝자락을 보여줬다. 그곳에는 샤인이 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기를 통하게 하는 버튼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는 순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로프를 던져 목표물을 휘감은 것이다.

샤인은 그런 그의 대답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눈 깜짝할 새 날아오더니 살아있는 뱀처럼 고양이의 허리를 덥썩 물어버린 로프의 움직임은 예술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저 카우보이모자가 아깝지 않은 실력.

지금 샤인의 눈에는 게빌이 어느 서부 영화 속에서 튀어 나온 등장인물 같이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이걸로 황소도 눕힐 수 있다 이 말이야.”

물론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그런 뒷말을 숨긴 게빌의 말에 샤인이 대단하다며 감탄하자 그는 자신의 사격 솜씨를 칭찬받았을 때보다 더 기분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그것을 기억해두기로 한 샤인은 게빌에게서 고양이가 갇힌 그물을 건네받아 챙겨온 케이지에 녀석을 옮겨 보관했고, 차량을 타고 의뢰인의 거처로 이동했다.

운행을 시작합니다.

작은 알림음과 함께 자동 주행모드로 움직이는 차량.

앞좌석에 함께 앉은 게빌과 샤인은 이동 중 지루하지 않도록 대화를 나눴다.

“그 녀석은 원래 그렇게 게으른가?”

“사장님이요?”

“그래. 우리 사무소장님.”

게빌이 장난치듯 애쉬를 칭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총잡이들의 여명’에서 함께 일하며 느꼈던 것과 지금 여기에 와서 느껴지는 것이 달랐다.

애초에 평소 분위기로 봐서도 게으른 편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지만, 설마 자기가 가기 싫다고 한창 바쁜 샤인을 보낼 줄이야.

일단 어떤 일을 시작하면 단숨에 몰아쳐서 끝내버리는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런 게빌의 물음에 샤인이 잠시 평소의 애쉬를 머릿속에 그려보다 대답했다.

“음…. 대체로 일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시는 편은 아니셔요.”

평소의 애쉬라 함은 소파에 늘어져서 TV를 보거나 가끔 늦은 저녁 나가서 다음날에 돌아오는 등 조금은 나태하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만, 그런 모습도 상사로서 볼 때는 그만큼 좋은 사장이 없었다.

일에는 간섭 하나 안 하지, 그렇다고 따로 더 시키는 일도 없다.

샤인은 처음부터 가정부 겸 접객 담당 같은 느낌으로 고용된 몸이었고, 지금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서 하는 사무일은 전부 샤인 자신이 하고 싶어서 스스로 하는 일이었다.

덕분에 봉급도 만족할 만큼 더 받고 있고.

아마 이 슬럼에서 샤인 자신만큼 어린 나이에 이만한 봉급과 복지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찾기 힘들 것이었다.

“그래도 정말 좋은 분이에요.”

“그래?”

“네.”

샤인의 진심어린 대답에 게빌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반응했다.

성격이 아주 나쁜 건 아니었지만, 같이 일할 때는 배타적이고 조금 신경질적으로까지 보였는데 어린애들한테는 다른가?

“녀석이 나처럼 부드러운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스스로를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이며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이성적인 사람이라 자부하는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에 비해 많이 거칠게 보이는 애쉬의 모습과 샤인의 평가 매치가 되질 않았다.

그런 게빌의 말에 샤인은 작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 계속 지내보시면 아실 거예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그런 샤인의 대답 이후로도 둘은 계속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게빌은 샤인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성숙하다는 것에 놀랐고, 샤인은 애쉬의 동료인 것 같은 게빌의 성격이 생각보다 더 온건한 것에 놀랐다.

솔직히 여태껏 애쉬의 지인이라고 찾아온 사람들이 다 좀 특이하지 않았던가.

대단한 실력의 해커이며 일단 기계장치 앞에만 서면 매우 과격해지는 빌헬름도 그랬고, 엄청난 미인이지만 그 악명 높은 ‘뱀파이어’의 보스라던 동업자, 레이라도 그랬다.

내색은 안했지만 그런 사람들이 올 때마다 놀라곤 했던 샤인이었다.

이번에는 같이 일할 사람이 온다기에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온건한 사람이었다니.

게빌과 얘기를 나누며 어느 정도 친밀감이 쌓이자 샤인은 그에게 다시 한번 짧게 인사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그래, 이쪽이야말로.”

게빌도 마주 인사하며 둘은 기분 좋게 의뢰인의 거처에 도착했으나, 멀쩡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샤인의 평가는 그 생각을 한 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 개자식이!”

­ 뻐억!

“프헉!”

의뢰인과 대화를 나누다 어떻게 분위기가 좀 이상해지더니, 어느 순간 게빌이 의뢰인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주먹질에 맞은 의뢰인이 쓰러지자 게빌은 고양이가 갇힌 케이지를 넘어진 의뢰인 머리 바로 옆에 던져놓았고, 그대로 허리를 숙여 그를 내려다보며 위협했다.

“닥치고 네가 말한 대로 살려서 잡아왔으니 오늘 내에 입금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가 어디 소속인지는 그쪽도 잘 알겠지?”

“미, 미친 칼잡이의 사무소….”

“그래. 그 유명한 미친 칼잡이가 밤에 널 찾아오지 않게 조심하라고. 알겠어?”

겁 먹은 의뢰인이 억지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렇게 말을 끝낸 게빌은 그대로 일어나 샤인을 불렀다.

“이 망할 안경잡이들은 전부 재수가 없다니까. 가자, 샤인.”

“아…. 네.”

뒤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샤인은 앞서 자신이 했던 평가를 조심스럽게 수정했다.

‘역시 이 분도 사장님의 지인 분이구나.’

게빌 리퍼슨.

그도 애쉬의 다른 지인들과 마찬가지로 특이한 사람이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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