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70화 (170/230)

〈 170화 〉 9. 과거(1)

* * *

“이 망할 동네.”

오전 10시.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 들어서는 게빌이 혼자 욕지거릴 내뱉었다.

그가 이 슬럼에서 머문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났다.

평생 슬럼과는 인연이 없던 게빌이었기에 그 동안 별다른 문제없이 지내자 그냥 조금 지저분하고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인가 보다 생각했었지만 오늘 새벽, 그런 그의 착각을 완전히 깨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그의 집에 강도가 든 것이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대여섯씩이나 되는 강도 무리가.

다행히 특별하게 훈련받은 병력들이 쳐들어온 것은 아니라 큰 일 없이 모두 제압할 수 있었지만, 오늘의 그에게 들이닥친 불행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게빌은 출근을 위해 주차장에 가자 작살이 나있던 자신의 애마를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큰맘 먹고 구매해 아직까지 애지중지하며 타고 다니던 Ravel­Classic.

출시 당시에 딱 일만 대만 한정으로 판매되던 그것은 7년이 지난 지금 중고로 내놓아도 백만 크레딧 이상 나갈 매우 값비싼 차량이었다.

그런데 그런 차량이 간밤에 고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주인인 게빌 자신조차 지문이라도 남을까 조심조심 열곤 했던 문고리는 둔기 따위로 흠씬 두들겼는지 문짝 전체가 산산이 부서진 채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고, 사방의 유리창이 모두 깨져 있는 것은 물론이다.

고급스런 가죽 시트는 난도질을 당하다 못해 누군가 뜯어가기라도 한 것 같았고, 핸들이나 그 외의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들이라고 멀쩡히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새벽에 강도들에게 습격당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게빌은 그것을 발견한 순간 멘탈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일단 출근은 해야 하니 사무소까지 나오긴 했는데, 지금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처럼 위험해 보여서 샤인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부탁한다.”

게빌이 샤인의 권유에 오갈 곳 없는 분노를 삼키며 대답했다.

오늘은 전처럼 짐승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총질을 좀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의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지금 머리에 올라 있는 열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을 테니.

그렇게 잔뜩 열 받은 채 사무소에 들어온 게빌은 샤인이 내어준 접객용 차를 한 잔 마시며 사무소장인 애쉬를 기다렸는데, 어째서인지 시간이 좀 지나도 그의 모습이 보일 생각을 않는다.

가끔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빼면 고요하다고 해도 좋을 사무실에서 샤인이 사락사락 서류 넘기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마음을 가라앉히던 게빌은 30여 분이 더 지났음에도 나타나지 않은 애쉬의 행방을 물었다.

“우리 애쉬 론모어 사장님은 어디 가셨나?”

“아, 사장님이라면….”

샤인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살짝 들어 위쪽을 쳐다봤다.

그에 따라 게빌의 시선도 함께 올라갔는데, 보이는 것은 칙칙한 회색 천장뿐이다.

그런 샤인의 대답 아닌 대답에 게빌은 설마설마 하며 물었다.

“아직 안 일어났다고?”

“…네.”

그러나 역시나.

게빌의 설마 하는 물음에 샤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현재 시각은 이제 오전 11시가 다 됐으나 애쉬는 아직도 자는지 뭘 하는지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인 모양인지 샤인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게빌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 아직 10대 중반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는 샤인에게 완전히 모든 것을 떠맡기고 혼자 농땡이를 치고 있다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거 안 되겠군.”

게빌이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자 샤인이 그런 그의 기색을 눈치 채고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오전에는 일이 좀 널널하기도 하고, 점심시간 정도에는 내려 오시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샤인이 아무리 나이에 비해 성숙한 성격이라고 해도 아직 어린 만큼 일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세상에는 오늘 새벽 그를 덮쳤던 강도나 차량을 테러했던 녀석들처럼 미친놈들이 많았으니까.

당연히 성인이 같이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미 애쉬의 사무소는 유명해질 만큼 유명해져서 자살 희망자가 아니라면 찾아와 깽판을 치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게빌의 생각은 그랬다.

“역시 안 되겠어. 내가 뭐라고 한 마디 해 줘야….”

­ 덜컥.

게빌이 말을 이어가는 가운데,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 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론모어 사무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은 사장인 애쉬와 샤인 뿐.

샤인은 지금 사무 일을 하고 있었으니 위에서 내려올 사람이라곤 애쉬 밖에 없었다.

게빌이 고개를 돌려 그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애쉬가 하품을 하며 느긋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우리 사장님은 정말 빨리도 일어나시는군 그래.”

이제 막 일어난 듯 머리가 뻗친 상태의 애쉬를 확인한 게빌이 비꼬듯 말했다.

그러나 애쉬는 그런 게빌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한술 더 뜨며 그것을 받아쳤다.

“으음. 오늘은 평소보다 빨리 일어나긴 했지.”

평소였다면 오후 한 시쯤 내려왔을 텐데, 오늘은 겨우 11시 정도에 내려왔으니 일찍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애쉬의 뻔뻔한 반응에 게빌은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애초에 이 사무소의 주인이 바로 애쉬였으니 어떻게 운영하든 그가 깊숙이 참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했다.

그렇게 간단히 게빌의 입을 다물게 한 애쉬는 샤인을 향해 방금 막 잡은 일정을 말했다.

“오늘 오후에 손님이 한 명 올 테니까 어지간하면 다른 방문객은 받지 마, 샤인.”

“네. 혹시 몇 시쯤에 어느 분이 오시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시간은 아마 점심시간 직후일 거고, 오는 사람은 레이라.”

“아, 레이라 플로리스 님이신가요. 알겠습니다.”

샤인은 애쉬의 입에서 나온 이름만 듣고 그녀가 누구인지 단숨에 기억해내어 대답했다.

거기엔 샤인의 뛰어난 기억력도 한몫했지만, 역시나 레이라 플로리스라는 사람이 시간 조금 흐른다고 잊어질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도 컸다.

평생을 살면서 그녀만한 미인을 몇 번이나 직접 볼 수 것이며, 그런 미인이 심지어 이곳 슬럼을 주름잡는 거대 갱단 중 하나의 보스라면 몇 개월이 아니라 몇 년이 지나도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애쉬와 샤인이 얘기를 주고받자 가만히 그것을 듣고 있던 게빌이 물었다.

“레이라 플로리스? 그게 누구지?”

“있어. 이 근방 구역 갱단 구역 보스.”

“…여자 이름인 것 같은데 갱단 보스라고?”

“어. 아마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걸?”

애쉬가 일부러 어느 정도 오해의 여지를 두고 얘기했다.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말하면 사고의 방향이 조금 엇나갈 터.

레이라와 만나면 그 반응을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것이다.

“…설마 ‘돈 프리에’ 같은 여자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애쉬의 말을 들은 게빌은 어느 영화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중얼거렸는데, 마침 애쉬도 한번 봤던 영화 속 캐릭터였기에 어떤 여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돈 프리에’.

‘무법자들’이라는 서부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덩치가 산만한 여성 악역이다.

성인 남성도 반동에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든 대형 샷건을 제대로 다루며 최전선에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갈아버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

그 이미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레이라의 그것과 정반대편에 있었지만, 애쉬는 굳이 그런 게빌의 상상을 깨뜨리지 않았다.

크게 착각하면 착각할수록 나중에 반응을 볼 때 더욱 재밌어질 테니.

샤인도 애쉬의 생각을 읽었는지 게빌의 상상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있었던 게빌은 곧 자신의 머릿속에서 레이라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돈 프리에’라는 캐릭터로 완전히 굳혔는지 애쉬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돈 프리, 아니, 갱단 보스라는 여자가 왜 찾아오는 거지? 설마 일종의 유착 관계라던가….”

물론 애쉬가 그럴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정말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그는 조금 실망할 지도 몰랐다.

게빌의 머릿속에서 갱단이라는 집단은 사회적 쓰레기, 암덩이들의 집합소였다. 실제 현실에서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런 녀석들과 손을 잡고 안 그래도 하루하루 넘기기도 힘든 빈민들을 털어먹는 짓거리에 함께하는 것은 그 갱들과 똑같은 쓰레기라는 뜻이었다.

게빌 자신 또한 선인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방관하는 것과 아예 거기에 동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게빌의 얼굴에 애쉬는 픽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나 갱단은 아닐걸.”

애쉬도 사실 ‘뱀파이어’가 어떤 조직인지 제대로 몰랐다. 과거 ‘달의 꽃’ 사건으로 한번 얽혔다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으니까.

다만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거대 갱단 중에서도 최근 세력이 눈에 띌 정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마약이나 인신매매 따위에는 손을 뻗고 있지 않는 듯했다.

그 외에 지저분하다고 할 만한 일이라고 해봐야 창관이나 기타 유흥업소 정도인데, 그건 애초에 연방 법률이 허락하는 영업 행위였고.

무엇보다 애쉬는 자신이 여태 봐왔던 레이라의 성향과 그녀가 목표하고 그리던 미래를 믿었다.

그녀는 지금도 자신이 이어준 서령과 함께하며 양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게빌이 생각하는 것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떨어질 일은 없다.

그런 묘한 확신이 느껴지는 애쉬의 목소리에 게빌은 표정을 조금 풀었다.

“뭐, 그렇다면 괜한 걱정을 했구만.”

“앞으로의 네 미래나 걱정하지, 그래.”

일단 내 사무소에 들어온 이상 뼈가 닳을 때까지 굴려먹을 테니까.

반은 농담이지만, 반대로 반은 진심인 애쉬의 말에 게빌이 하하 여유롭게 웃었다.

“하하,적어도 내가 있는 동안은 일거리가 밀릴 걱정이 없게 해주지.”

최근에는 하루에도 일거리가 십여 개 이상씩 들어오는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다보니 허세 가득한 말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만큼은 진심인 게빌이었다.

‘벌써 기분이 좀 풀리셨나보네.’

샤인은 처음 사무소에 들어올 때와 잔뜩 화가 났던 분위기와 달리 이제는 웃고 있는 게빌을 보다가 다시 서류 뭉치로 눈을 돌렸다.

웃어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째 샤인의 주변에 있는 남자 어른들은 단순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흔들리다 이제는 평온한 분위기로 돌아온 사무소.

느릿느릿 시간은 흘러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사무소에 있던 셋은 주문한 음식을 드론으로 배달 받았는데, 샤인이 그것을 내리며 말했다.

“오늘은 다행히 음식이 무사하네요.”

“그러게.”

“응? 음식이 무사하지 않을 때도 있나?”

아직 슬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게 낯선 게빌이 다른 둘에게 물었다.

그에 샤인이 대답했다.

“가끔은 드론이 격추당해서 음식을 못 받을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나가서 먹어야 해요.”

“드론을 격추한다고?”

“네. 총 같은 걸로 쏴서 떨어뜨릴 때도 있고, 그냥 돌멩이 같은 걸로 잘 맞추기도 하더라구요”

덕분에 음식 같은 것을 배달 받을 때가 아니면 어지간하면 드론 배송을 시키지 않고 직접 가서 물건을 구매한다는 게 샤인의 설명이었다.

게빌은 도심에서는 뉴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들이 이곳에선 일상처럼 벌어진다는 말에 문화 충격을 받아 음식을 배달 온 드론들에 시선을 주었다.

샤인의 말을 듣고 다시 보자 거기에 새겨진 온갖 흠집이나 작은 손상이 유난히 잘 보이는 것도 같았다.

“딴청 부리지 말고 먹을 준비나 해.”

“아, 그래야지.”

먼저 양 손에 음식을 들고 들어가는 애쉬의 목소리에 그 뒤를 따라 게빌이 함께 온 음료 따위를 들고 움직였다.

그렇게 식사 준비를 모두 마친 셋은 같이 자리에 앉아 식기를 들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 딸랑딸랑.

사무소 문에 달려 있는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또각또각 여성용 구두 굽 소리와 함께 다가온 발걸음의 주인은 한 자리에 앉은 셋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닿자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식사 중이었나 보네.”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을 바라보자 음식을 향해 움직이던 게빌의 식기가 공중에 멈추고, 항상 예리한 눈매를 유지하던 그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설마하니 상상도 못했던 미인이 그들 일행을 향해, 정확히는 애쉬를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누구시지?”

게빌이 얼빠진 목소리로 묻자 애쉬는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프흐,오늘 오후에 손님 한 명 온다고 했잖아.”

“설마 이 분이 그 ‘돈 프리에’?”

게빌은 정신이 얼마나 없었는지 지금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손끝, 발끝의 움직임 하나하나마저 시선을 잡아끄는 미인, 레이라 플로리스가 게빌을 눈짓하며 애쉬에게 물었다.

“새로운 직원이야?”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