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76화 (176/230)

〈 176화 〉 9. 과거(7)

* * *

“오오…!”

애쉬가 유성 그룹에서 만든 파워 슈트를 보고 탄성을 흘리는 것과 동시에 케이지 바깥에서 그것을 구경하던 게빌도 감탄을 터뜨렸다.

캐리어의 형태를 띠고 있던 파워 슈트가 베일라의 몸을 뒤덮으며 형태를 갖춘 순간 옆에 자신이 해할 뻔 했던 유성 그룹의 후계, 서령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그저 파워 슈트 하나에 집중하며 눈을 빛낸다.

저 파워 슈트의 외형과 그 장착 방식에는 뭇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을 정도의 감동이 있었다.

게빌이 무의식중에 케이지에 달라붙듯 하며 안쪽에 시선을 빼앗기자 옆에 있던 서령이 웃으며 물었다.

“대단하지 않아요? 저도 볼 때마다 놀란다니까요. 어떻게 저런 물건이 나왔는지.”

“…예, 대단하군요.”

서령의 목소리에 게빌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성능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테스트 단계까지 들어간 것을 보니 꽤나 괜찮은 수준까지 올라온 것 같다.

외형과 성능 그 모두를 잡은 파워 슈트라니. 마음 같아선 얼마를 쓰더라도 집에 하나 쯤 장만해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게빌이 정신이 홀린 채 파워 슈트를 바라보고 있을 때, 케이지 안에 있던 애쉬가 바깥의 서령을 보며 물었다.

“나는 뭐 없어?”

굉장히 기대하는 듯한 눈빛과 말투. 곧 테스트에 들어갈 애쉬는 자신도 저런 파워 슈트를 입어보고 싶다는 의지를 전해왔다.

하지만 서령이 그런 애쉬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어색한 웃음뿐이었다.

“아하하…, 이번에 만들어진 파워 슈트는 신경 인터페이스가 없으면 사용이 불가능한 물건이라서요.”

나노 머신에 명령을 내릴 시스템을 탑재해야 하는데, 신경 인터페이스는커녕 순수주의자들처럼 몸에 칼 한번 대지 않은 애쉬로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럼?”

“대신 이걸 드리겠습니다!”

그런 서령의 대답에 실망한 애쉬에게 한 연구원이 던져준 것은 두 쌍의 보호구 뭉치였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인지 묵직하고 광택이 보호구 두 쌍.

연구원이 던져준 보호구를 받은 애쉬가 이건 뭐냐는 듯 그를 쳐다보자 눈치 없는 연구원이 대답했다.

“아무리 테스트가 중요하다지만 부상은 입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두 분 모두 보호구를 착용하고 테스트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너도 여기 올라와.”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며 글러브를 받았던 애쉬가 그 설명에 연구원을 험악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이건 뭐 자신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가 겨우 이런 글러브 하나 받자고 물어본 것이겠는가.

“예, 예? 저는 그, 테스트 데이터 기록 때문에….”

“됐으니까 올라오라고.”

아주 흠씬 두들겨 줄 테니까.

애쉬가 살벌한 목소리로 부르자 아무리 눈치 없는 책상물림이라도 자신을 향하는 위협을 모를 리가 없었다.

슬금슬금 물러나던 연구원은 곧 핑계를 대며 쌩 어디론가 도망 가버렸다.

“그, 그럼 저는 데이터 기록 준비를 위해 이만!”

“야, 이리 올라오라니까!”

연구원을 뒤쫓을 기세로 케이지를 벗어나려던 애쉬.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뒤에서 들려온 베일라의 목소리에 그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혹시 겁먹으셨습니까?”

“…뭐?”

그 간덩이가 부은 말에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었던 애쉬가 돌아보니 베일라가 씨익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질 것 같아 겁난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사람을 구하면 되니.”

마침 이 자리에는 애쉬의 동료라던 게빌도 있었다.

앞에서 악수를 하며 느낀 바, 그도 현장직인 것 같았는데 애쉬의 동료라고 할 정도이니 그 실력만큼은 보장돼 있을 터.

네가 싫다면 너 대신 그를 테스트 상대로 들이겠다.

그런 시건방진 베일라의 말에 험악한 기세를 내뿜던 애쉬가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런 뻔한 도발에 어울려달라고?”

“뻔한 도발이라고 하면서도 이미 마음은 돌아선 것 같습니다만.”

“하.”

애쉬가 베일라의 말에 기가 찬다는 듯한 시늉을 해보였다.

자신을 계속 자극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저 파워 슈트를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과거 자신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졌던 것은 모두 잊을 정도로.

“감당 가능하니까 하는 말이겠지, 아줌마.”

“…아줌마라고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애쉬를 도발하며 웃고 있던 베일라의 표정이 슬쩍 구겨졌다. 저 아줌마라는 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애쉬 특유의 말투와 목소리로 들으니 심각하게 거슬리는 느낌이다.

“됐고, 어디 오랜만에 실력 좀 보자고.”

과연 자신에게 도발을 던질 만큼 실력이 늘었는지.

그렇게 말한 애쉬는 그녀를 향해 글러브 한 쌍을 던져주곤 자신도 그것을 찼다.

하지만 파워 슈트로 전신을 감싼 베일라와 달리 애쉬는 글러브 외에 자신에게 주어진 보호구를 차지 않았다.

“애쉬! 보호구는 써야죠!”

그것을 본 서령이 케이지 밖에서 보호구를 착용하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애쉬는 그녀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보호구를 차는 대신 베일라를 보며 픽 웃으며 그것들을 다시 케이지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딴 게 왜 필요해? 저 아줌마를 보호할 글러브만 있으면 되지.”

“…나중 가서 후회하지나 마십시오.”

“그쪽이나 후회하지 마.”

몸을 다루는 것으로 지금의 그와 다투려 하다니, 아무리 파워 슈트의 성능을 믿고 있다고 해도 너무 건방지다.

‘어디 좀 볼까.’

애쉬도 파워 슈트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알고 있었다.

원작 게임 내에서는 일정 수준 이하의 신체 능력을 정해진 고정치까지 끌어 올려주거나, 혹은 그것을 초과했다면 신체 능력을 약간 상승시키며 방어력과 기타 기능들을 더해주던 장비다.

분명 저것을 착용한 베일라는 예전에 한판 했을 때보다 한참은 더 뛰어난 신체 능력을 보일 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그때와 달리 애쉬는 최근 깨달음 비슷한 것을 얻으며 전체적인 감각이나 실력이 한층 성장한 상태.

그렇다면 그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테스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주 확실하게 박살내주지.”

“이쪽이야말로 숨도 못 쉬게 해드리겠습니다.”

애쉬와 베일라가 글러브를 차고 마주섰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호승심이 가득하다.

그렇게 마주선 베일라가 준비가 끝났다는 듯 케이지 밖의 연구원을 쳐다보자 그가 외쳤다.

“그럼 지금부터 실전 성능 테스트 및 데이터 수집을 시작하겠습니다!”

“기록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연구원의 목소리가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공이라도 된 것처럼 애쉬와 베일라는 서로를 보며 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달했을 때.

“시작!!”

­ 파아앙!

연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달려든 애쉬의 글러브가 작렬했다.

* * *

­ 타다닷, 파앙, 퍼엉!

달려들어 주먹을 내뻗는 베일라와 그것을 쳐내는 동시에 반대 손 카운터를 뻗는 애쉬.

주고받는 펀치에서 무언가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프로 경기에서도 저렇게 사력을 다할까 싶은 모습에 기가 질린 연구원들이었지만, 그런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무슨, 글러브를 끼고도 이런 충격량이 나오는데 저게 사이보그가 아니라고?”

“신체의 가동 범위와 유연성을 보면 분명 사이보그는 아닌데….”

그런데 파워 슈트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전해지는 데이터 수치가 심상치 않다.

어지간한 강화 인간의 배는 되는 듯한 충격량.

그의 글러브가 뽑아내는 에너지는 믿기 힘들지만 파워 슈트를 찬 베일라 이상이었다.

“아무리 초기 모델이라지만 기본적인 성능은 다 갖춘 슈트를 강화인간이 맨몸으로 이긴다고?”

대체 어디서 어떤 시술을 받은 것인가.

이미 그룹 내에 떠도는 소문으로 애쉬 론모어라는 경호원이 ‘웃는 악마’를 홀로 쓸어버렸다는 얘기를 듣긴 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데이터를 확인한 연구원들이 파워 슈트 대신 애쉬의 강화 시술에 대해 연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는 사이 게빌과 서령은 손에 땀을 쥐고 테스트 장면을 보고 있었다.

“흡…!”

­ 파아앗!

최적의 루트로 완벽하게 뻗어낸 주먹이 옆에서 들어온 손길에 쳐내지며 자세가 흐트러지는 베일라와 여유롭게 복부에 주먹을 꽂는 애쉬.

­ 퍼억!

“베일라 힘내요!”

“…진짜 즐거워 보이는구만.”

서령은 누가 봐도 열세에 밀어붙여지고 있는 베일라를 응원했고, 게빌 저 싸움의 흐름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웃고 있는 표정을 보며 자신이 저 안에 들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했다.

믿기 힘든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모든 공격을 파훼하고 자신의 정타만을 일방적으로 꽂아 넣는 애쉬와 그것을 최소한의 충격으로 받아내며 터프하게 계속해서 파고드는 베일라.

어느 쪽이든 격투기로 상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역시 그나마 수월한 쪽을 고르라면 파워 슈트를 입고 있는 베일라 쪽일 터였다.

오늘 처음 보는 그녀의 움직임은 분명 깔끔하고 위협적이었다.

굳이 저 파워 슈트가 아니더라도 아마추어들 따위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그러나.

‘저 녀석은 그때보다 더 괴물이 된 것 같은데.’

역시 지금 그녀를 압도하고 있는 애쉬에 비하면 손색이 컸다.

과거 애쉬의 움직임은 예측하기 힘든 거친 느낌과 그 폭발성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파괴력에 예리함과 지능이 더해진 느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스탠스를 바꿔가며 상대를 부수는 것 외에도 베거나 찌르는 등 도구를 골라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느낌이 강하다.

지금 애쉬가 베일라를 밀어붙이는 것도 그저 그의 신체 능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수 싸움에서 그녀를 찍어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의 짐승의 감각과 폭발력에 다른 무기들까지 갖춰졌으니 이제 누가 저 녀석을 막을 수 있을까.

“후우…. 아줌마, 그러다 죽는 거 아니야?”

케이지 밖의 모두가 둘의 싸움을 보며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잠시 공격을 멈추고 꽉 조이고 있던 숨통을 풀어준 애쉬가 물었다.

그에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고 있는 베일라가 힘겹게 대답했다.

“허억, 헉…. 아직…!”

“그래?”

파워 슈트에는 여러 기능이 있었지만, 일단 일반적으로 파워 슈트의 장점이라고 하면 그것을 착용함으로서 얻는 신체 능력의 강화였다.

몸을 좀 더 빠르게 하고, 근력을 좀 더 높이는 능력.

하지만 신체 능력을 그렇게 끌어올리는 만큼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도 당연했다.

특히 지금처럼 완력을 주로 쓸 때가 아니라 민첩성을 올릴 때는 말이다.

근력이야 파워 슈트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몸을 더 빨리 움직이는 민첩성은 그것과 달리 파워 슈트의 움직임과 함께 착용자 또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자신보다 빠른 애쉬를 따라 오버 페이스로 움직였으니 그만큼 빨리 지칠 수밖에.

애쉬는 베일라가 그렇게 포기하려 하지 않자 땀을 뻘뻘 흘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럼 그때처럼 완전히 기절시켜줘야겠네.”

파워 슈트가 목 위의 턱까지 모두 고정시켜주고 있어 턱을 가격하는 것으로 뇌를 흔들기가 힘들었지만, 그것도 좀 더 힘을 더하면 충분히 해결될 일이었다.

실컷 두드리다보니 대충 저 파워 슈트의 성능도 감이 잡혔다.

‘확실히 파워 슈트는 파워 슈트인데, 멋진 것 치고 아주 특출나다고는 못하겠군.’

신체 능력 강화 수준은 중~중상 정도.

형태를 마음껏 바꿀 수 있기에 휴대성이 굉장히 좋은 것을 빼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파워 슈트.

그게 시험작에 대한 애쉬의 짧은 평가였다.

“그럼 간다.”

“후욱, 후욱…. 얼마든지, 오십시오…!”

애쉬의 예고에 베일라는 몸을 다시 곧추세워 공격에 대비했고, 애쉬는 그녀의 정면으로 덤벼들며 주먹을 뻗었다.

반사적으로 가드를 올림과 스탭을 밟아 뒤로 빠져나가려는 베일라.

그러나 그것은 애쉬가 이미 몇 번이나 본 대처 방법이었다.

­ 타악!

주먹을 뻗어가던 그대로 한 발 더 폭발적으로 내딛으며 나아간 애쉬는 가볍게 뻗었다 회수했던 왼 팔을 힘껏 내질렀고, 그것은 가드의 빈틈을 꿰뚫고,

­ 뻐어억!

베일라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컥…!”

그것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며 의식이 흐려져 몸이 무너진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애쉬의 웃는 얼굴을 본 베일라는 문득 이 구도가 꽤나 익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기에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던 구도.

바로 과거 스파링의 재현이다.

마무리가 레프트인 것도, 쓰러지는 것이 자신인 것도 완벽하게 똑같이 나타난 상황에 베일라는 평소 쓰지도 않는 욕지거릴 속으로 내뱉으며 정신을 잃었다.

‘망할 자식, 끝까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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