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84화 (184/230)

〈 184화 〉 11. 죽음과 함께하는 자(2)

* * *

­ 딸랑딸랑.

“후우…. 벌써부터 푹푹 찌는군.”

작게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30분. 계약서에 적혀있던 출근 시간에 맞춰 도착한 게빌이 사무소 안으로 들어서며 카우보이모자를 벗었다.

웬만하면 저 카우보이모자를 벗는 일이 없는 게빌이었으나, 모자를 벗은 뒤 손으로 들고 오는 것을 보면 바깥은 그가 중얼거렸던 것처럼 상당히 더운 것 같았다.

그렇게 사무소에 들어선 게빌은 천천히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내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던 애쉬를 발견하곤 놀란 듯 물었다.

“응? 네가 웬일로 이 시간에 출근했지?”

“그냥.”

게빌의 물음에 애쉬가 단답했다.

당연히 그냥 일찍 일어나서 출근할 애쉬가 아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서령에게 잔소리를 듣느라 잠이 완전히 달아나버렸다는 것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게빌은 그런 애쉬의 대답에 네가 이럴 때도 있구나, 하는 듯 넘어갔지만, 오랫동안 애쉬를 봐온 샤인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마침 사장님 식사도 준비하려고 했는데, 게빌 씨도 같이 드실래요?”

“오, 그럼 나야 좋지.”

샤인의 제안에 게빌이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안 그래도 늦잠 때문에 식사를 못했는데 차려준다면야 당연히 반길 수밖에 없다.

“그럼 저는 잠시 주방에서 먹을 걸 준비해 올게요.”

“그래. 사무실에 오는 연락은 내가 받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에.”

게빌의 말에 샤인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1층은 오로지 업무용으로만 쓰는 공간이기 때문에 주방은 생활 공간인 2층으로 가야 했다.

게빌은 샤인이 올라가자 애쉬 맞은편 소파에 앉아 함께 TV 시청 모드로 들어갔다.

­ 오늘은 네가 죽을지, 아니면 내가 죽을지 끝을 보자.

­ 얼마든지!

타앙, 탕! 주연들의 대사 연기 이후 TV 스피커를 통해 총격음이 울린다.

애쉬와 게빌은 TV 속 영화에 잔뜩 몰입했다.

“젠장, 뭐하는 거야! 거기서 그렇게 하면…!”

“답답하네.”

다만 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대체로 불평이 가득했는데, 그것은 이 자리에 있는 게빌과 애쉬 모두가 저 영화 속 배우들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이며, 또 화려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자신들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도 저것보다 더 뛰어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기에 그저 연기만을 위해 운동한 배우들의 움직임이 답답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게빌과 애쉬가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몰입해 있을 때, 애쉬의 뒤쪽에서 들려온 소음에 분위기를 와장창 깨버렸다.

­ 따르르릉!

사무소에 비치해둔 구식 유선 전화는 그 외견에 걸맞게 벨소리도 예스럽다.

귀에 익은 그 소리를 들은 게빌이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한창 재밌을 때 방해하는군. 이봐, 전화 좀 받아봐.”

“네가 받는다며.”

게빌의 말에 애쉬가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그도 한창 재밌게 보던 차에 이렇게 전화벨이 산통을 깨니 짜증이 나는 건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다고 움직여서 저것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샤인에게 자신이 연락을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 장담했던 게빌이 바로 앞에 있었으니.

“그게 귀찮아서 지금….”

애쉬의 대꾸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눈가만 찌푸리고 있던 게빌이 이제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아니, 분명 애쉬 자신이 더 가까운 자리인데 겨우 몇 걸음 움직이는 게 귀찮아서 이쪽에 떠넘긴단 말인가.

‘그냥 때려쳐?’

게빌이 그냥 이쪽도 받지 말아버릴까 진심으로 고민하는 사이 전화벨이 두어 번이나 더 울렸다.

그렇게 몇 초간 이어지는 둘 사이의 눈치싸움.

거기서 불리한 것은 당연히 샤인에게 자신이 뒤를 책임지겠다 말한 게빌 쪽이었다.

­ 따르르릉.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과 슬슬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위협이 게빌을 위협한다.

애쉬가 완전히 눈을 돌린 채 울리고 있는 전화에는 시선도 주지 않자 끝내 버티지 못한 게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망할! 그래, 내가 받는다, 받아!”

“진작 그럴 것이지.”

게빌의 외침에 얄밉게 한 마디 더하는 애쉬의 목소리.

게빌은 그런 애쉬를 노려보며 전화기를 향해 움직였고, 수화기를 들었다.

“예,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입니다. 용무가 어떻게 되시는지?”

애쉬와의 기 싸움에서 졌기 때문일까.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는 게빌의 목소리가 묻는다.

듣는 사람도 살짝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접객 태도였지만, 사무소에 전화를 건 이는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다는 듯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 호, 호위. 호위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

“…호위 의뢰는 안 받는다는 걸 아실 텐데.”

게빌이 다급한 어조의 남자에게 대답했다.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가 호위 임무를 비롯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의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최소한 며칠 이상씩 걸리는 호위 의뢰로 벌어들이는 돈보다 그 사이에 다른 의뢰를 두세 건 하는 게 수익과 시간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의뢰를 위해 전화를 건 남자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곳이 최후의 보루라도 되는 듯 필사적으로 부탁했다.

­ 부탁드립니다! 딱열흘만…!

“딴 데서 찾아보쇼.”

하지만 게빌은 단호하게 그것을 끊어냈다.

이곳에 찾아오는 이들 중 다급한 이들은 넘쳐났고, 그런 이들 하나하나의 사정을 모두 봐주게 되면 제대로 된 업무가 불가능했으니까.

그렇게 게빌이 전화를 끊으려 할 때였다.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목소리가 그의 손을 멈췄다.

­ 이, 일당 10만! 열흘이면 100만을 드리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백만?”

심상치 않은 액수.

이렇게 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게빌은 곧장 내리려던 수화기를 다시 들며 애쉬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것을 듣고 있던 애쉬가 말했다.

“마음대로 해.”

받든 말든 어차피 그것을 하는 것은 게빌 자신일 테니 마음대로 정하라는 얘기.

그에 고개를 끄덕인 게빌은 수화기 너머를 향해 물었다.

“100만 코너가 아니라 크레딧?”

­ 예! 그러니 제발…!

단번에 긍정하는 의뢰인의 목소리.

그에 게빌은 일단 그를 침착하게 만들기 위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불 방식은 어떻게 해주실 건지, 그리고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얘기해주시죠.”

­ 지불 방식은 전액 선불이라도 괜찮으니 크레딧 카드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상황은…….

“예.”

전액 선불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면 지불 능력은 확실한 것 같았기에 게빌은 남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의뢰인의 얘기는 다소 더듬거리는 부분이 있어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종합해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의뢰인의 정체는 43구역에 위치한 어느 기업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었으며 현재 그는 기술을 외부에 유출한 것이 걸려 기업의 추적자들로부터 쫓겨 슬럼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기업 측에서는 자신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개발하던 기술이 유출된 만큼 복수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쫓고 있을 것이 분명한 상황.

남자의 목소리가 다급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잘못이라면 의뢰인이 한 것이지만 그들 해결사의 입장에서 의뢰인의 잘잘못은 중요하지 않았다.

게빌은 일단 움직이며 생각하기로 했다.

“이봐, 애쉬. 지금 들어온 게 좀 큰 건수 같은데 잠깐만 같이 움직이지.”

“굳이?”

“내 느낌상 못해도 300만 이상은 받아낼 의뢰야.”

그냥 혼자 가서 처리하면 되지 왜 자신까지 끌어들이려 하냐는 듯 묻는 애쉬에게 게빌이 대답했다.

의뢰인이 어떤 기술을 유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업에서 기를 쓰고 쫓고 있으며, 또 100만 크레딧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놓는 것을 보면 그 가치가 상당했을 것이다.

아마 의뢰인이 챙겼을 금액도 겨우 100만 크레딧에서 그치지 않고 그 몇 배는 되겠지.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니만큼 부르면 부르는 대로 내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총잡이들의 여명’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게빌의 감은 정확했고, 마침 의뢰인도 정당한 일로 벌어들인 돈이 아니니 뜯어내기에 죄책감이 들 이유도 없다.

여타 의뢰들 100여 건 이상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니만큼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의뢰인의 목숨을 구해내는 게 중요했다.

“300만이라면 뭐….”

그런 게빌의 확신 어린 목소리에 애쉬도 슬쩍 몸을 일으켰다.

지금 그에게는 부족함 없이 남는 것이 돈이었지만, 그럼에도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지구의 한화로 60억 정도 될 300만 크레딧이란 돈은 지금의 애쉬도 무시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애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확인한 게빌이 수화기에 대고 물었다.

“지금 의뢰인 분 위치가 어떻게 되시죠?”

­ 지, 지금은 70구역 어느 골목길에 숨어 있습니다….

“예. 지금 알려드리는 식별 번호로 위치를 전송해주시면 바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은 20분 정도 걸릴 텐데, 최대한 몸을 사리고 계시죠.”

­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뚝. 게빌은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서 의뢰를 받아준다니 당장 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감사를 외치는 의뢰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수화기를 내려놨다.

의뢰 실패율이 거의 0%에 수렴하는 그들 해결사 사무소의 신뢰가 가진 힘이었다.

“그럼 빨리 다녀오자고.”

검을 챙긴 애쉬와 리볼버 약실을 한 차례 확인한 게빌이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300만 크레딧. 절대 놓칠 수 없는 의뢰다.

둘은 사무소를 벗어나 빠르게 움직였고, 그로부터 십여분 정도 뒤.

“…어디 가셨지?”

음식을 준비해 내려온 샤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둘을 찾았다.

*

“예, 거기서 기다리시면 되고, 의뢰금에 조율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예, 예? 의뢰금에요?

“예. 어떤 기업인진 모르겠지만 대충 보아하니 꽤 규모가 있는 곳 같은데, 그런 곳과 척을 지는 대가로 100만은 너무 적은 것 같아서요.”

­ 그럼 얼마나…?

의뢰인과 게빌의 연락은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됐다.

게빌의 요구에 저항 한번 없이 받아들이려는 기색을 보이는 의뢰인. 게빌은 그런 의뢰인의 물음에 통 크게 한번 불렀다.

“500만 크레딧.”

­ 예? 오, 오백만 크레딧이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역시나 다급한 의뢰인도 이번 게빌의 요구에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에 게빌은 당황한 의뢰인을 제 손에 두고 주물렀다.

“잘 생각해보시죠. 못해도 중견은 돼 보이는 기업과 완전히 척을 지는 일인데 과한 금액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목숨보다 돈이 중요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예의를 차려서 정중히 말하는 말투임에도 위협처럼 들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애쉬는 자신의 옆에서 의뢰인과 연락 중인 게빌의 색다른 면을 보며 픽 웃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게빌은 의뢰인과 연락하며 그를 살살 구슬렸는데, 결과적으로 나온 금액이…….

“그럼 그렇게 250만 정도로 타협하겠습니다. 거의 다 도착했으니 이제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 …예.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힘없이 늘어지는 의뢰인의 목소리.

결국 의뢰인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빼돌린 연구 결과물의 대가로 받았던 400만 크레딧 중 250만 크레딧을 그들에게 헌납하게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300만보다는 적지만 250만이면 준수하지, 안 그런가?”

“뭐…, 괜찮네.”

의뢰인과 연락을 끊고 자신이 이 정도다 라며 뻐기는 듯한 게빌의 목소리에 애쉬가 웬일로 그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열흘 호위에 250만 크레딧.

의뢰인이 처음에 불렀던 100만 크레딧의 무려 2.5배가 되는 금액을 받아낼 수 있었으니 잠깐 정도는 칭찬해줘도 될 성과였다.

애쉬와 게빌은 곧 택시에서 내려 의뢰인의 위치가 찍히는 곳으로 향했고,

“으아아악!”

원래는 새하얀색이었을 터나 여기저기 구른 지금은 지저분하게 얼룩진 연구실 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 의뢰인을 괴한들에게서 구출해낼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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