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12. 린느 데 파르셰(1)
* * *
의뢰의 끝이 다가온다. 애쉬와 게빌은 의뢰인과 약속했던 호위 기간의 마지막 날, 의뢰 완수를 앞에 두고 있다.
이제 슬슬 끝이 다 왔으니 의뢰인이 준비했다던 은거 방법을 물어본 애쉬와 게빌은 그의 대답을 듣고 놀라는 것을 넘어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애쉬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어 의뢰인의 대답을 되짚으며 확인했다.
“그러니까 거래 상대가 이쪽으로 데리러 온다고 했다고?”
“예….”
“그쪽은 그걸 그냥 멍청이처럼 받아들였고?”
“…….”
애쉬의 적나라한 비웃음에 의뢰인, 다니엘 벡이 얼굴을 붉혔다. 분노와 당황 등이 섞인 부정적인 감정이 그 얼굴빛에서 드러났지만 그는 애쉬의 말에 무어라 반박할 수 없었다.
물론, 애쉬의 말이 모두 맞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돌아올 결과가 두려운 것이지.
이제 미리 약속됐던 의뢰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들이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지 싶은 생각이었겠지.
거기까지 다니엘 벡의 생각을 읽은 애쉬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붙잡은 마지막 동아줄을 의심할 여지는 있으면서 자신이 연구물을 팔아넘긴 상대방을 의심할 생각은 왜 안 한단 말인가.
구매자 측에서는 내부의 배신자인 의뢰인을 굳이 구해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죽여서 입을 막으면 막았지.
애쉬와 게빌은 첫날 이후 그냥 편하게 지나가는가 싶었던 이 의뢰의 마지막에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직감했고, 역시나 그들의 예상은 빗겨 가지 않았다.
의뢰 마지막 날 애쉬와 게빌, 그리고 의뢰인으로 이뤄진 일행을 찾아온 일련의 무리.
그들은 의뢰인을 데리러 온다던 구매자 측의 인원이었고, 다니엘 벡은 찾으러 올 줄 알았다는 듯 그들을 반겼다.
그리고 그들은 애쉬와 게빌이 보는 앞에서 다짜고짜 총을 뽑아 의뢰인을 노렸고,
타아앙!
“허, 허억!”
털썩. 의뢰인은 자신의 뒷목을 잡아당기는 애쉬의 손길에 의해 이승에서의 탈출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애쉬는 주저앉은 의뢰인을 한심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했잖아, 멍청아.”
저놈들이 널 살릴 이유가 있겠냐고.
애쉬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며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뻔했다는 사실에 혼이 나간 듯한 다니엘 벡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애쉬가 그렇게 그의 목숨을 구하자 대뜸 의뢰인을 향해 방아쇠부터 당겼던 상대방 측의 대표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그쪽이 애쉬 론모어?”
“어. 그런데.”
“굳이 그쪽과 부딪히고 싶지는 않아. 그냥 자리를 비워주는 건 어때. 그쪽도 한 적을 만들고 싶지는 않을 텐데.”
“자리를 비워달라?”
“그래, 거기 있는 놈이 의뢰를 맡겼다지. 완수금을 받지 못했다면 이쪽에서 대신 지급하지.”
“흐음….”
제안을 들은 애쉬가 얼핏 고민하는 듯 침음을 흘리자 의뢰인, 다니엘 벡이 다급히 그를 올려다 봤다.
설마 자신을 그냥 버릴거냐는 듯.
그에 고민하는 척하던 애쉬는 게빌에게 슬쩍 물었다.
“게빌, 지금 몇 시지?”
“…오후 4시 20분.”
“오후 4시 20분.”
우리가 의뢰를 맡았던 게 몇 시더라.
애쉬는 잠시 고민에 빠졌고, 곧 대강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던 샤인의 모습. 의뢰인과 정식 계약을 맺은 것은 분명 오전이었다.
“우리가 의뢰를 맡았던 게 분명 오전이었지?”
“그렇긴 한데, 설마 의뢰인을 버리겠다는 건 아니겠지.”
게빌이 애쉬의 물음에 대답하며 물었다. 그에 애쉬는 즉각적으로 답하지 않으며 머릿속에서 하루하루 날짜를 세어갔다.
하루, 이틀…….
이어지던 날짜 세기는 결국 9일째에서 몇 시간이 더 지나 멈춘다.
의뢰 기간은 오늘이 마지막 날. 정확히 의뢰가 끝나는 열흘째가 되는 날은 내일 오전인 것이다.
거기까지 헤아리는 것을 마친 애쉬는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대표를 보며 말했다.
“너희한텐 아쉽게도 오늘이 딱 10 일차인데 우리 의뢰가 끝나는 날이 내일 오전이거든. 내일 점심 이후에나 다시 오지그래.”
“…그렇게 나오겠다는 건가?”
애쉬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지만 상대측의 대표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이해했는지 험악한 분위기를 띄었다.
그에 애쉬는 다시 한번 입을 열어 자신의 사정을 밝혔다.
“우리가 의뢰 성공률 100%를 유지하고 있거든. 그래서 지금 의뢰인을 건네줄 수는 없지만, 내일 오전에 오면 그냥 못 본 척 넘어가 준다니까?”
“건방진 놈. 어디 그 유명세만큼 실력도 대단한지 보마.”
속이 베베 꼬여서는 자신의 말을 오해하고 적대하려는 상대방의 태도에 애쉬도 장난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좋게좋게 넘어가 준다는데도 그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지.”
“하핫, 그래.”
“애쉬 씨, 게빌 씨….”
능청스런 애쉬의 말에 작게 웃으며 리볼버를 뽑아 드는 게빌. 의뢰인은 그런 둘을 보며 감동했다는 듯 바라봤지만, 그는 내일 오면 넘겨주겠다는 애쉬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그럴 수 있었다.
‘열흘만 찍으면 이쪽도 굳이 더 지킬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사실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러 오해하도록 말한 것도 있긴 했지만 내일 다시 온다고 하면 진짜 넘겨줄 생각도 있던 애쉬였다.
그런데 오늘 굳이 피를 봐야겠다고 나서니 이쪽도 한판 해주는 수밖에.
애쉬는 아직도 주저앉아있는 다니엘 벡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키며 숙소 안쪽 방향으로 밀어넣었다.
“거기 들어가 있어. 얼마 안 걸릴 테니까.”
상대방의 무장 중 폭발물 같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없으니 안쪽 방에 들어가 있으면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저쪽도 폭발 따위로 큰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겠지.
애쉬가 상대방 무리를 쓰윽 돌아보며 픽 웃었다.
“의뢰인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줘서 고맙긴 한데, 이쪽은 안 봐준다.”
“쳐!!”
타아앙!
애쉬의 조롱을 담은 말과 함께 상대방의 대표가 소리쳤고, 한 박자 빨리 불을 뿜은 게빌의 리볼버에서 비롯된 총성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 * *
우측 손목 1급 파쇄 골절. 회복 기간 1년 이상 소요 및 회복 후 후유증 예상.
신경 인터페이스 내 바이러스 잠복 침투. 바이러스 활동 시 사망 확률 96.1%, 무사 제거 확률 1.7%.
안가에 도착해 신체 및 인터페이스 검사를 마치자 눈앞에 결과 메시지가 떠오른다.
신체적 손상이나 신경 인터페이스나 어느 쪽이든 치명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 결과를 확인한 순백의 눈동자가 천천히 감기고 머릿속에서 온갖 시뮬레이션이 계속해서 돌아갔다.
‘남은 기간, 이틀.’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시간.
그 이틀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의미 없이 그녀는 사망하고 수대에 걸쳐 이어온 인내하는 자의 이름이 끊기게 된다.
그녀는 장장 하루 동안 쉬지않고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그 결과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확인. 최우선 조치 실행.”
그녀, ‘린느 데 파르셰’가 멀쩡한 왼손을 들어 손끝에서 예리한 칼날을 뽑아냈다.
스르륵.
소리도 없이 빠져나온 칼날이 어둠 속에서 옅은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것은 눈앞으로 들어 날 선 예기를 확인한 그녀는 그 손을 자신의 뒷목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푸우욱!
칼날을 거침없이 자신의 목으로 찔러넣어 움직였다.
툭, 투둑.
예리한 칼날이 목덜미 안쪽의 신경 인터페이스와 연결된 신경들을 모조리 잘라낸다.
마취조차 하지 않고 그 끔찍한 행동을 벌이는 그녀의 얼굴에서도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죽음보다 더한 통증이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다.
상처를 크게 벌려놨기 때문에 지금 멈추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뿐더러, 이상을 감지하는 순간 신경 인터페이스에 숨어있는 바이러스가 활동함으로서 뇌를 완전히 뒤집어버릴 테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쇼크사하더라도 이상치 않았을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해나갔고, 마침내 그녀의 손가락은 모든 작업을 마치고 살 속에 파고 들어있던 신경 인터페이스를 집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과정 하나만이 남았다.
린느 데 파르셰, 린느는 고문 훈련 이후 언제 이렇게까지 고통에 의해 긴장했을까 싶은 가슴을 가라앉히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한순간, 자신의 목에 삽입되어있던 신경 인터페이스를 뽑아냈다.
뜨드드득!!
“……!!”
살점이 뜯겨나가는 소리.
이번만큼은 그녀조차도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너무도 그것이 과했던 나머지 입이 벌어졌음에도 나오는 것은 고통의 신음 소리 대신 소리 없는 절규였다.
피가 철철 쏟아지고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고통이 엄습한 가운데,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지금 해야 할 것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 따위가 아니라 다른 신경 인터페이스를 삽입하는 것이었다.
“…페이즈 1, 인터페이스 삽입 시술 실행.”
비틀비틀 시술대로 다가간 그녀는 안가의 AI에 명령을 내렸고, 벌어진 상처에 새로운 신경 인터페이스의 삽입을 시작했다.
거기에 더불어 완전히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자신의 오른 손목의 절단 및 개조 신체 연결 또한.
“페이즈 2, 우측 손목 절단 및 개조 파츠 연결.”
위이이잉!
뒷목에 차가운 기계의 감촉이 느껴지고 그녀가 내린 명령에 따라 절단용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식은땀을 쉴새 없이 흘리며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것은 대대로 내려오던 사명을 이루기 위함.
수 대에 걸쳐 활동하면서도 여태껏 단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던 적합자.
‘데 파르셰’가의 제 11대 당주로서 절대로 사명을 저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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