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16화 (216/230)

〈 216화 〉 14. 동료(4)

* * *

“그럼 이제 저희가 가져온 선물이나 한번 열어보는 게 어때요?”

“그럴까.”

파티의 들뜬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다 못해 슬슬 져갈 무렵.

빌헬름이 마지막으로 분위기를 조금 띄워보자는 듯 얘기를 꺼냈고, 그것을 들은 애쉬가 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은 당연히 오늘의 파티에 참여한 이들이 가져온 선물들이 쌓여있는 곳.

애쉬가 움직이자 각자 떠들고 있던 이들도 모두 모여들었고, 그렇게 모두가 모여 시선을 집중하자 빌헬름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얘기는 꺼냈는데, 다른 분들이 준비한 거에 비해서 초라하진 않을까 걱정이네요.”

“하하, 선물에 있어 내용물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받는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인 법.

에아임은 빌헬름에게 선물의 값어치 같은 건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는 애쉬도 동감했다.

그는 이미 개인이 갖기엔 과분할 정도의 현금을 쥐고 있었고, 그런 만큼 금전적인 가치에는 커다란 뜻을 두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물건이 아니라면 본인도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설령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짧게 그런 생각을 마친 애쉬는 바로 기대하는 이들의 눈빛을 받으며 가까이 있는 쇼핑백 하나를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빌헬름이 가져온 물건이었다.

“그럼 이거부터 열어볼까.”

“별거 아니니까 너무 기대하진 말아 주세요.”

“이미 기대 가득인데.”

“아, 정말….”

애쉬의 놀리는 목소리에 빌헬름이 장난스럽게 얼굴을 짚었다.

확실히 이곳에 있는 면면들이 다들 제법 대단한 이들이라 그런 이들이 준비한 물건에 비하면 빌헬름이 준비한 물건의 가치는 빛바랠지 몰랐지만, 적어도 여기에 그것을 비웃을 사람은 없었다.

애쉬는 빌헬름이 준비한 쇼핑백을 열어 그 내용물을 꺼냈다.

“오, 이건.”

쇼핑백 안에 들어있는 물건은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드 벨트였다. 일반적인 허리띠가 아니라 그곳에 검을 고정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물건.

애쉬가 그것을 보며 마음에 들었다는 듯 목소리를 흘렸지만, 빌헬름은 여전히 내세우기엔 창피하다는 듯 시선을 피한 채 작게 설명했다.

“애쉬 씨를 항상 봤는데 검을 따로 고정할 벨트가 없는 게 불편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하나 구해봤어요.”

“그렇긴 했지. 허리띠에 대충 매달아두면 다리에 자꾸 치이기도 하고.”

빌헬름의 말대로 그는 검을 특별히 매달 수 있는 옷이나 소드 벨트가 있는 게 아니라서 그냥 허리띠와 골반의 틈새에 검을 대충 끼우고 다니곤 했다.

그러나 당연히 그러라고 만들어진 게 의복이 아니었으니 불편할 수밖에.

허리에 대충 매달아두면 검집은 자꾸 다리에 치이고, 검을 뽑을 때의 각도도 이상해지는 등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는데, 빌헬름이 그것을 잘 캐치 하고 선물한 것이다.

애쉬는 그런 빌헬름의 센스에 소드 벨트를 들어 만져보았다. 그러자 부드러운 가죽의 질감이 손안에 착 감겨왔다.

빌헬름은 겨우 정말 별것 아닌 물건이라는 듯 반응하고 있지만, 기성품이 아니라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진 고급품임이 틀림없었다.

겉을 감싸고 있던 쇼핑백은 어디서 적당히 구해온 것이고, 내용물은 그와 전혀 상관없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좋네.”

소드 벨트를 쥐어본 애쉬가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1구역에 왔겠다, 이런 물건을 만들기 위해 슬럼에는 없던 가죽 공방 같은 것을 찾아보려 했는데 이렇게 선물로 받게 될 줄이야.

솔직히 이런 센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빌헬름의 선물치고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물건이었다.

“다, 다행이네요. 그럼 다음 물건으로 넘어가 보죠.”

애쉬의 반응에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을 안 빌헬름이 내심 안도하며 주제를 자신의 선물에서 다른 이들의 선물로 넘겼다.

그에 애쉬는 차례대로 하나씩 선물을 풀어헤쳤다.

“넥타이? 이건 누구 선물이야?”

“제 선물입니다. 당신이라면 쓸 일은 없겠지만 좀 신사다워지라는 뜻에서.”

“…그래, 고맙네.”

애쉬는 선물을 뜯어가던 중 물었고, 자신의 물음에 돌아온 베일라의 대답에 애매한 느낌으로 감사를 표했다.

일단은 선물이라고 가져왔는데, 이걸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애쉬가 그 다음으로 집은 것은 레이라와 그녀의 부하, 케인이 잔뜩 들고 왔던 쇼핑백들이었다.

처음 받을 당시 대충 훑어본 애쉬는 그 내용물이 의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하나씩 꺼내보았다.

“포믈라?”

“이건 오스칼인데요…?”

애쉬가 옷을 하나씩 꺼내보자 그것의 상표를 확인한 베일라와 빌헬름의 입에서 떨떠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그런 애쉬의 의문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답을 알려준 것은 게빌과 케일의 짧은 대화였다.

“아주 대단히 사랑받고 있으신가 보구만, 우리 사장님은.”

“세상에. 저게 다 얼마래.”

애쉬야 의류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레이라가 선물로 사온 옷들에 적혀있는 상표 하나하나가 명품으로 유명한 브랜드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저렇게 놀랄 정도라면 한두 푼 하는 게 아닐 터.

레이라는 그런 주변인들의 반응에도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으며 아직 내용물이 찰랑거리는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다만 그 눈길만큼은 애쉬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 그를 향해 있었는데, 그런 브랜드에 대해 잘 모르는 애쉬는 무슨 반응을 보여줘야 좋을지 고민하다 그냥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감사를 표했다.

“반응들을 보아하니 괜찮은 물건인가 보네. 고마워, 레이라.”

“천만에. 당신이 내게 준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레이라는 애쉬의 고맙다는 말에 최대한 담담히 반응했지만, 기분 좋게 올라가는 입꼬리만큼은 완전히 가릴 수 없었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고 애쉬를 바라보며 잔에 남은 주류를 홀짝였다.

그렇게 레이라의 선물을 확인한 뒤 다시 정리하여 집어넣고, 애쉬가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린 것은 한참 전부터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던 커다란 케이스 하나였다.

“이건 대체 뭐가 들어있길래 이렇게 부피가 커?”

“직접 확인해봐요, 애쉬.”

서령과 에리히 영감이 함께 준비했다던 무언가 중요한 물건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케이스.

서령은 애쉬의 물음에도 그저 방긋 웃으며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케이스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그가 보일 반응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예의상 놀라는 척이라도 해줘야 하나.’

꽤나 신경을 쓴 물건 같은데.

그런 케이스를 바라보던 애쉬가 고민했다.

워낙에 내숭을 떨거나 감정을 연기하는 행동을 못 하다 보니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의 반응을 보고 서령이 실망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괜히 연기를 하는 것도 조금 아닌 것 같고.

애쉬가 잠시 그런 생각에 빠져 있자 에리히 슈만이 답답하다는 듯 그를 재촉했다.

“뜸 들이지 말고 어서 열어보거라.”

“…안 그래도 슬슬 열어보려고 했어.”

고민하던 중 에리히 슈만의 재촉에 떠밀린 애쉬는 똑바로 세워진 커다란 케이스에 다가갔다.

세워두니 그 높이가 1.5 미터는 될 케이스는 그 포장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키 카드와 비밀번호로 된 이중 보안 잠금장치는 물론이고, 재질조차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게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숨겼길래.’

애쉬는 겨우 개업 선물 하나에 이런 정성을 쏟은 것을 보고는 픽 웃으며 서령을 향해 물었다.

“비밀번호는?”

“0915에요.”

0915. 애쉬는 잠금 장치에 손을 대 떠오른 홀로그램을 터치하는 것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했고, 그 다음 보안을 해제할 키 카드를 찾으려던 때.

그의 행동을 읽은 에리히 영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를 향해 카드 하나를 던졌다.

“받거라.”

툭.

그렇게 빠르게 날아오지도 않은 키 카드는 애쉬의 손에 정확히 붙잡혔고, 애쉬는 그것을 케이스의 스캐너에 대는 것으로 보안 잠금을 해제했다.

­ 스르륵, 탁, 티딕.

케이스 내부에서 무언가가 맞물리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잠금장치가 풀린다.

그것을 들은 장내의 시선이 모두 그 케이스로 쏠렸고, 애쉬는 자신과 동료들의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기 위해 그 잠금장치가 풀린 케이스를 확 열어 재꼈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검? 아니, 그냥 검이 아니라 카타나인가?”

“그래. 그게 나와 유서령 이사가 준비한 물건이다.”

“어때요?”

“어떻냐니. 그야….”

이미 알고 있으면서 굳이 그걸 물을 필요가 있을까.

애쉬는 케이스가 열리면서 자신의 눈에 들어온 한 자루 검, 아니, 예술품에 시선을 빼앗겼다.

사람의 손아귀 모양에 잘 맞도록 인체공학적인 방식으로 조형된 손잡이와 그 끝자락에 자리 잡아 푸른빛을 뽐내는 장식.

어둠과 빛의 공존을 형상화하기라도 한 듯 검은 문양의 코등이에서부터 뻗어 나가는 은빛 외날은 그야말로 아름답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이 카타나에는 일반적으로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카타나와 달리 칼날에 물결치는 금속 무늬 같은 건 없었지만 현대 기술이 집약되어 미래 지향적 디자인의 칼날이 오히려 그보다 더한, 이 세계에 진정으로 어울리는 멋을 살리고 있었다.

애쉬는 자신의 눈에 들어온 카타나의 외향에 감탄하는 것도 잊고 그것의 손잡이를 잡아 들었다.

­ 척.

손아귀에 꽉 차는 묵직한 감각.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도 그립감이었지만, 외형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게감 있는 느낌이 더 마음에 들었다.

애쉬가 그것을 들어 올리자 불빛에 반사된 은빛 외날을 자세히 확인한 동료들이 그 멋진 외양에 작게 감탄들을 내뱉었다.

“젠장, 나는 저런 물건 하나 못 구하나.”

“…솔직히 멋있네요. 저 칼은.”

“훙, 그럼. 저 검이 누구 자식인데.”

게빌과 케일이 떠드는 목소리에 에리히 영감이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것은 에리히 영감이 예전 애쉬의 도움으로 유성 그룹에 들어간 직후부터 계획하고 만들기 시작했던 것으로, 서령에게 알려진 뒤 적극적으로 지원 받으며 근래 들어 만들었던 그 어떤 검보다도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연방 최고의 마이스터가 진심을 담아 만들었으며 스스로도 가장 완벽하다고 자부할 정도였으니, 칼잡이라면 누가라도 감탄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애쉬 또한 한 명의 칼잡이였기에 그러한 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카타나의 감촉과 무게감을 느끼며 십여 초 가까이를 감탄성만 내뱉었다.

“와.”

이건 진짜 제대로 된 물건이다.

다시 한번 감탄성을 흘린 애쉬가 홀린 듯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외날을 바라봤다.

에리히 영감이 만들어 넘겨주었던 검들은 모두 하나같이 일품이라고 할만한 물건들이었다.

최근까지 쓰다가 지금은 엉망이 되어 장식이 된 새까만 검 또한 마찬가지.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 만들었다지만 최고의 마이스터의 손길이 닿았으니 그만한 수준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애쉬가 들고 있는 이 검, 카타나는 그가 에리히 영감으로부터 건네 받아왔던 이전 물건들과도 전혀 느낌이 달랐다.

완벽한 무게 중심과 가느다란 검신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무게감.

손잡이의 그립감은 완전히 그의 손에 맞춘 듯 맞아 떨어졌으며, 그 차가운 감촉은 애쉬로 하여금 황홀감에 빠지게 만들 정도였다.

‘이게 에리히 영감의 진짜 실력과 유성 그룹의 과학 기술이 합쳐진 결과물인가?’

애쉬는 검이 더 좋아 봐야 이전에 쓰던 것보다 얼마나 좋아지겠냐는 생각을 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더불어 연방 최고의 마이스터 중 한 명이라는 에리히 영감을 내심 얕잡아 봤다는 것도.

에리히 영감은 정말 자신이 말한 대로 연방 최고의 마이스터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애쉬는 천천히 입을 열어 에리히 영감에게 물었다.

“이게 영감이 약속했던 ‘세계 최고의 검’이구나. 그렇지?”

이런 게 세계 최고의 검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세계 최고라고 불릴 수 있을까.

그만큼이나 애쉬가 카타나를 잡고 받은 느낌은 충격적이었고, 이전에 써왔던 그 어떤 것들과도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묘한 확신에 찬 어조로 물은 애쉬였으나 그런 그에게 돌아온 에리히 영감의 대답은 부정이었다.

“아니, 그건 아직 세계 최고의 검이 아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