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14. 동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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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에리히 영감의 목소리에 애쉬가 의문을 나타냈다. 이 검은 분명한 완성품.
그것도 애쉬 자신이 감탄을 넘어 황홀감까지 느끼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에리히 슈만은 ‘아직’ 세계 최고의 검이 아니라며 이런 물건이 미완성품이라는 듯 말하고 있다.
애쉬가 의문의 시선을 보내자 에리히 슈만이 그런 애쉬의 눈빛을 읽고 대답했다.
“네가 쥐고 있는 그 녀석은 IE0916이라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연방에서 아주 끔찍이도 귀중하게 관리하고 있는 전략 물자지.”
“덕분에 구하느라 힘들었어요.”
서령이 에리히 슈만의 말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금속이자 가장 완벽한 금속이라고도 불리는 IE0916은 같은 무게의 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값어치를 지녔으며 이는 핵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따위의 자원이 아니라 단순 금속으로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그 가치가 같은 무게의 다이아몬드와 비슷할 정도라고 하겠는가.
내열성, 내구성, 충격 흡수력, 결합력 기타 등등의 모든 항목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보이며 신이 내린 금속이라고 불리고 있는 IE0916은 그 효용이 대단한 만큼 연방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고 있었기에 유성 그룹의 후계자인 서령으로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에리히 슈만은 설명을 계속했다.
“신이 내린 금속이라고 불리고 있는 IE0916의 특징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것은 그 내구성과 내열성이다. 단점이라면 무게가 조금 무겁다는 건데, 그건 너라면 상관 없는 단점이겠지.”
“…단단해 보이긴 하는데.”
“아마 그 검은 네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써도 손상시킬 수 없을 게야.”
IE0916은 유성 그룹의 최첨단 장비로도 그것을 녹이는데 무려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녹은 금속은 너무도 뜨거워 방호복을 끼지 않으면 가까이 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에리히 슈만이 몸을 담고자 한 곳이 유성 그룹이 아니었다면 감히 다룰만한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금속.
당연히 그 내열성은 말할 것도 없었고, 내구성 또한 테스트해본 결과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런 물질로 검을 만드는 것은 차라리 사치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지만, 서령과 에리히 슈만은 애쉬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시도했고 끝내 성공적으로 검을 완성한 것이다.
애쉬는 검의 단조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에리히 슈만의 말에 다시 한번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그 정도란 말이지.”
“그래. 그리고 그 녀석이 갖고 있는 기능은 내구성만이 아니다. 그건….”
“아, 마이스터. 그건 제가 설명해도 될까요?”
“예, 얼마든지.”
검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려던 에리히 슈만이 자신이 설명하고 싶다는 서령의 목소리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히 슈만의 허락을 얻은 서령은 애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천천히 입을 열어 설명했다.
“앞서 마이스터께서 말씀하셨다시피 그 검은 내구성이 뛰어난 게 전부가 아니에요. 절삭력은 물론이고, 저희가 만들면서 특별한 기능도 몇 개 넣어뒀거든요.”
“특별한 기능?”
“네. 잠시 저한테 줘볼래요, 애쉬?”
“자.”
“고마…앗!”
애쉬가 하도 가볍게 들고 있기에 한 손으로 그것을 받은 서령은 떨어뜨릴 뻔한 것을 다른 한 손을 보태는 것으로 겨우 막았다.
애쉬는 그런 그녀를 보며 픽 웃고는 충고했다.
“조심해, 그거 생각보다 더 무거우니까.”
“아, 알아요. 7.1kg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무거울 줄은.”
애쉬에게서 검을 건네받은 서령은 아닌 척 기를 쓰고는 그것을 똑바로 들어 올려 애쉬를 향해 물었다.
“그보다 이 검에 검집이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음? 그러고 보니….”
애쉬가 서령의 물음에 활짝 열려 있는 케이스를 다시 바라봤다. 검을 고정하는 장치 외에는 별다른 것이 들어가 있지 않은 케이스.
서령의 말대로 그곳에는 마땅히 검을 감싸야 하는 검집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서령은 애쉬가 케이스 안쪽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 검은 검집이 필요 없는 검이거든요.”
“검집이 필요 없는 검이라고?”
“네. 잘 봐요.”
그렇게 말한 서령은 손잡이 밑에 달린 푸른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조작했다.
그러자.
챠르륵.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검은 무언가가 은빛의 칼날을 감싸 안는 게 아닌가.
애쉬는 비늘처럼 검면에서 일어난 무언가를 발견하곤 거기에 신경을 집중했다.
저게 뭐지?
애쉬의 의문 어린 표정에 서령은 그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애쉬 씨를 위해 특별히 추가한 기능이에요. 검집은 날을 감싸기 위해 필요한 거긴 하지만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건 사실이잖아요.”
서령은 검은 비늘로 뒤덮인 검을 바닥에 대고 세우며 한 손으로는 칼날을 맨손으로 만져 그 예기가 완전히 가려졌다는 것을 애쉬에게 보였다.
“이 기능이 있으면 검집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게다가.”
“뭐가 더 있어?”
검집이 필요 없다는 얘기에 기분이 좋아지고 있던 애쉬가 서령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을 다시 바라봤다. 저렇게 비늘로 감싸 칼날을 감추는 것 외에도 뭔가 더 있단 말인가.
“이건 별 것 아니긴 한데, 길이를 조금 조정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스스슥.
서령이 다시 한번 푸른 장식을 건드리자 그녀의 말대로, 검날이 십여 센티씩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자재를 남길 수도 없고, 검이 조금 긴 것 같아서 추가한 기능이에요. 잘 사용해서 마음에 드는 길이로 맞추면 좋을 거예요.”
“오….”
저게 별 것 아닌 기능이라고?
확실히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제작 난이도만 본다면 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생활의 편의성이나 전투에 있어서는 별 것 아닌 게 절대 아니었다.
조절할 수 있는 검신의 길이는 원래 길이에서 10여 센티 정도.
겨우 10여 센티 정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얼마 안 되는 것 같은 길이는 분명 전투에서 상대방에게 엄청난 차이를 보여줄 것이었다.
그렇게 설명을 마친 서령에게서 검을 건네받은 애쉬는 빌헬름에게서 선물 받은 소드 벨트를 찬 뒤 검을 매달아 보았다.
확실히 허리띠에 대충 꽂아 넣었을 때 보다는 훨씬 편안한 기분.
새로운 장비를 얻게 된 애쉬는 괜히 가슴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지금 당장이라도 뭔가 베어보고 싶은데.’
간만에 뭔가 할 의욕이 넘쳐났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슬럼이 아닌 제 1구역.
슬럼이었다면 골목길에만 들어가도 쓰레기들이 달려들었을 확률이 높았을 터나 이곳은 그런 일이 전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치안이 좋다.
애쉬는 슬럼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그곳을 떠올리며 그리움이나 아쉬움을 느낄 줄은 몰랐으나 지금 당장은 그런 감정까지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 욕구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물건이 아직 완성품이 아니라는 듯 말했던 에리히 영감은 뭘 말하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이런 물건이 아직 세계 최고의 검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애쉬는 그런 욕구를 어떻게든 가라앉히며 서령과 에리히 영감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에리히 슈만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거기엔 아직 더해질 요소가 하나 남았으니 말이다.”
“여기에 뭔가 더 더해질 요소가 있다고?”
“네, 애쉬가 저번에 연구소에서 부탁했잖아요.”
“부탁?”
서령의 목소리에 애쉬가 자신이 무엇을 부탁했었나 떠올려 보았지만, 워낙에 대충 지나간 일이라 뭔가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내가 뭘 부탁했었지?’
애쉬가 그렇게 자신의 머릿속을 뒤져보고 있을 때 서령이 목소리를 냈다.
“나노 머신으로 만들어진 파워 슈트. 갖고 싶다면서요.”
“…그건 신경 인터페이스가 없으면 힘들다고 하지 않았나?”
“그 파워 슈트는 자동제어 형태로 만들고, 신호기 역할을 검에 맡기는 거죠.”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지금 당장은 저희 쪽 연구원들도 힘들다고 해서 탑재하지 못했지만, 성과는 꾸준히 나오고 있어요. 얼마 뒤면 결과물이 나올 거예요.”
“그럼 나도 그 파워 슈트를 입을 수 있다고?”
“네. 애쉬의 신체 능력을 봤을 때 근력이나 민첩성의 보조는 힘들겠지만요.”
“그게 어디야!”
애쉬가 감탄하며 눈을 빛냈다.
신체 능력의 보조야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은 사항이었다. 그런 게 불가능할 거라는 건 애쉬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부분으로 눈을 돌려본다면 파워 슈트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바로 몸을 지키는 갑옷의 역할과 멋이라는 부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소구경의 탄환은 파워 슈트를 뚫지 못할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애쉬는 이제 어지간한 숫자 사격수들이 만드는 탄막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기존에도 탄환을 쳐내고 피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되긴 했지만 파워 슈트를 입게 되는 순간 완전히 면역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멋, 간지.
애쉬는 게빌이 나노 머신으로 만들어진 파워 슈트를 착용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챠르륵, 하고 부드럽게 몸을 타고 오르며 형태를 갖추던 그 모습을.
이제는 자신도 그런 모습으로 변신하듯 파워 슈트를 착용할 수 있을 것이라니,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애쉬는 그런 감정에 북받쳐 자신을 바라보는 서령과 에리히 슈만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
별다른 미사여구도 더해지지 않은 감사의 한 마디였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만큼은 감출 수 없다.
그는 어느 때보다도 둘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애쉬 씨한테 부탁할 게 하나 있었어요. 그렇죠, 마이스터?”
“예.”
“그 명검에는 특별한 이름을 붙인다면서요? 애쉬 씨가 이름을 붙여주셨으면 해요. 그 아이도 그걸 바랄 거예요.”
“이름이라….”
서령과 에리히 슈만의 부탁에 애쉬는 잠시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내려다봤다.
확실히, 현실과 전설 속에서 명검으로 유명한 것들은 각기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한국의 사인참사검四???이라든가.
중국의 거궐巨?이라든가.
일본의 마사무네??라든가.
모르긴 몰라도 이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지금 에리히 슈만이 만들어 넘겨준 이 검 또한 역사에 이름을 남길 명검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건 애쉬도 인정하는 바였으나.
‘이름을 지어달라니.’
갑자기 그런 부탁을 하면 어떻게 이름을 짓는단 말인가.
너무 갑작스런 부탁이었던 데다 애쉬에게는 좋은 이름을 지을 만한 작명 센스가 없었다.
“어서요.”
“그 녀석에게 이름을 붙여다오.”
“잠깐 생각 중이야.”
애쉬는 서령과 에리히 슈만의 기대에 찬 눈빛을 받으며 고심했다.
대체 이 검에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지?
딱히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없다.
그에 애쉬는 천천히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지구의 전설 속에 등장하던 명검들의 이름을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엑스칼리버? 바리사다? 발뭉? 아니면 아스칼론?
아니면…, 뒤랑달?
문득 떠오른 이름이었다.
프랑스의 영웅, 롤랑이 사용했다던 명검의 이름.
뒤랑달은 천사가 내려준 검으로,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닌 전설 속 명검이었다.
마침 무슨 짓을 해도 손상되지 않을 것이라던 에리히 영감의 말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가.
‘게다가.’
검을 내려준 천사, 서령의 존재도 애쉬에겐 때마침 잘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럽 쪽 명검이라기엔 외견이 카타나인 게 조금 오류였지만, 뭐 어떤가.
자신의 마음에만 들면 됐지.
그렇게 결정을 내린 애쉬는 서령과 에리히 영감에게서 받은 검에 뒤랑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뒤랑달’. 이 검의 이름은‘뒤랑달’이야.”
“뒤랑달…. 무슨 뜻이지?”
“내 고향에서 유명했던 전설 속 명검의 이름.”
에리히 영감의 질문에 대답한 애쉬가 그렇게 이름 붙인 검의 손잡이를 만족스럽게 쥐었다.
그렇게 애쉬가 검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개업 파티는 마무리를 향해 달렸지만, 제 1구역,새로운 곳에서의 일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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