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15. 제 1구역(4)
* * *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사무실.
분 당 천 발 이상을 쏟아내는 소총 스무 자루가 십여 초 동안 쏟아낸 탄환은 말 그대로 사무실 눈높이에 있는 모든 것을 갈아버렸다.
나무로 된 가구들은 모조리 분쇄돼 조각조각 바닥을 굴렀고, 금속으로 된 것들도 여기저기 구멍 뚫리고 찌그러지는 등 멀쩡할 순 없었다.
부스스.
그렇게 폭풍이 지나간 직후의 사무실은 적막에 빠져 먼지만 피어오를 뿐이었지만 애쉬 론모어와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 처벌의 지휘를 맡은 거구의 남자, 오펜은 아직 목표물들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애초에 지금의 일제 사격은 그들을 단숨에 죽여버리기 위해 실행된 것이 아닌 인사치레에 불과했고, 또 지금도 인공 안구에 탑재된 스캐너를 통해 소파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목표물들의 형태가 뚜렷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파사삭 전투화 밑에 밟히는 유리 파편의 감촉을 느끼며 부하들을 두고 안쪽으로 몇 발자국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애쉬 론모어.”
정확히 시트가 모조리 터져나가 철제 프레임이 드러난 소파 뒤를 똑바로 향하는 시선.
그가 자신들의 생존을 이미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눕혀진 소파 뒤에서부터 몸을 일으키는 하나의 인영이 먼지 너머로 비쳤다.
“인사 한번 화끈하네.”
시야가 완전히 가려질 정도로 짙게 일어난 먼지도 아니었기에 소파 위로 솟아난 상체만으로 상대방이 누구인지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잿빛 은발에 내려앉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내는 진청색 눈동자의 미남자.
그는 이전에 확인했던 영상 속 인물과 동일인이 분명했으며 그 뒤에서 콜록콜록 기침하며 몸을 일으키고 있는 카우보이모자의 남자는 그 ‘골든 캐니언’이 맞아 보였다.
오펜은 총구를 겨눈 채 대기 중인 부하들에게 눈짓해 대기시킨 뒤 자신을 바라보는 애쉬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에게 선택지를 주겠다. 우리의 명령에 따라 네게 사주를 넣은 놈을 치든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려 오늘 7시 뉴스의 주인공이 되든지.”
제 1구역 번화가 한복판에서 목이 잘린 머리들이 매달려 있는 게 발견된다면 뉴스 메인에 뜨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주 제대로 된 난리가 날 것이었다.
공영 방송국은 물론이고 치안 유지국에서 지랄을 하겠지.
하지만 오펜과 그에게 명령을 내린 ‘클라우드’의 상위층은 거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마약과 각종 밀매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자본의 대부분이 어디에 재투자된다고 생각하는가.
마약은 그 제조 과정에서 큰돈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이 1구역에서 그런 마약을 거래하기 위해 기름칠하는 돈이 훨씬 컸다.
그런 과정에서 시 정부 고위층과 쌓은 커넥션이 어느 정도일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
사건 자체를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클라우드’를 향해 수사권의 손길이 뻗어지는 것을 막기엔 충분했다.
매시간 이어지는 뉴스 중에서도 가장 시청률이 높고 영향력이 큰 오후 7시 뉴스.
그 메인에 ‘클라우드’를 건드린 놈들의 목이 효수된다면 경고장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할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나는 후자를 권하고 싶군. 이게 무척이나 자비로운 제안이라는 것을 알아라.”
하지만 오펜의 상사는 곧장 죽어 매달리는 것 외에 또 다른 선택지를 내주었다.
곧 있을 ‘다크 머천트’와의 전쟁에서 쓸만한 전력 하나를 끌어들이는 것.
당연히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살려주는 일 따위는 없겠지만, 적어도 당장 죽지는 않을 테니 저쪽에도 좋은 제안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상대방, 애쉬 론모어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그가 내어준 두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구가 스무 개가 넘어가는 와중에도 픽 웃으며 자신에게 물어오는 게 아닌가.
“근데 너흰 어디서 온 놈들이냐? 짚이는 곳이 한둘이 아니라.”
“…헛소리를 한다면.”
“아니, 진짜 몰라서 그래.”
딱딱한 오펜의 목소리에 애쉬 론모어가 여유로운 태도로 대답했다.
오펜은 그런 상대방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말의 내용 자체는 최근 애쉬 론모어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게 한둘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었다.
거슬린다는 이유로 1구역 뒷세계의 용병들을 전부 박살 내고 다닌 게 저 녀석이었으니만큼 적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
애초에 죽기 직전 자신들의 정체도 밝힐 생각이었던 만큼 지금 가르쳐주지 못할 것도 없다.
오펜은 이 이상으로 헛소리를 이어간다면 바로 쳐죽이겠다는 기세로 자신들의 정체를 밝혔다.
“‘클라우드’다.”
“아하, 어디서 왔나 했는데. 그 약쟁이들이었나 보네.”
“…이럴 줄 알았지. 그러게 그 의뢰는 하지 말자고 했건만.”
그제야 알았다는 듯한 애쉬 론모어의 말 직후에 올 게 왔다는 듯한 ‘골든 캐니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예리한 눈빛으로 자신의 홀스터에 고정된 리볼버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아닌 척 언제라도 곧장 전투에 들어갈 태세가 준비됐다는 게 보였다.
‘골든 캐니언’이라고 하면 웨인 시 최고의 총잡이들을 꼽을 때면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고의 실력자였으니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 저것을 뽑아 몇 명에게 바람구멍을 만들어주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겠지.
“대답은?”
척.
오펜은 그런 카우보이모자의 총잡이를 경계하면서 애쉬를 향해 물었고, 그의 뒤에 대기 중이던 부하들은 눈치껏 느슨하게 풀었던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거절의 대답이 나오는 순간 방아쇠를 당길 기세.
일반인들은 입도 쉽게 떼지 못할 분위기였지만 애쉬 론모어는 과연 그 유명한 미친 성격을 보여주듯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한 총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가 엉망이 된 사무실을 몸뚱이로 닦는다면. 고민 정도는 해볼 것 같은데, 어때?”
“기어코 제 무덤을 파는군. 뭐, 좋다. 어차피 나도 마음에 안 들던 차였으니.”
터벅.
목표물들의 어리석은 선택을 비웃은 오펜이 등을 보이며 부하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명령했다.
“죽여라.”
투두두둥!!
소음기에 억눌린 소총들이 재갈을 문 맹수처럼 낮게 흉성을 쏟아냈다.
*
투두두둥!!
“하!”
타앗!
애쉬는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케일과 샤인이 몸을 숨기고 있는 소파 옆에서 떨어져 반대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를 따라오는 총구가 절반, 그리고 비전투 인원인 둘을 지키기 위해 남은 게빌을 향하는 총구가 절반.
대놓고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옆으로 뛴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그를 쫓아오는 총구가 많지 않았다.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서령이 보내준 저 소파의 프레임과 밑판은 내구성이 뛰어난 특수합금으로 이뤄져 있어 잠깐 정도는 탄환을 막아줄 수 있을 터다.
그럼 소파가 버텨주는 동안 애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비전투 인원인 샤인과 케일이 자리를 피할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게빌!”
애쉬는 게빌을 향해 소리치며 반대편을 구르던 소파를 들어 게빌과 비전투 인원들을 향해 탄환을 쏟아내던 적을 향해 집어 던졌다.
5인용 소파가 스티로폼이라도 된 것처럼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광경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모습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날아간 소파가 적들과 부딪친 이후의 상황이었다.
“알겠어!”
게빌은 애쉬가 던진 소파에 맞은 적들이 바닥을 나뒹군 순간 케일과 샤인은 각각 양 옆구리에 끼고 바닥을 박찼다.
최우선 사항은 언제나 비전투 인원의 안전 확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꺄아악!”
“……!!”
갑자기 애쉬에 의해 바닥을 구르질 않나, 총탄이 쏟아지질 않나.
이제는 그 총탄 사이를 맨몸으로 뚫고 가게 된 케일과 샤인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경악과 공포를 표했다.
하지만 게빌은 그에 개의치 않고 난장판이 된 사무실 중앙을 가로질렀다.
바닥의 장애물들을 피해 발을 딛고, 무너진 책상을 뛰어넘는다.
그것을 본 오펜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잡아! 아니, 죽이기라도 해!!”
날아오는 소파에 진형이 붕괴돼 틈을 보이던 갱들이 오펜의 명령에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소파에 맞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놈들 몇을 제외하더라도 아직 반수가 넘는 갱들이 멀쩡한 상태였기에 행동은 빨랐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당기고 턱을 붙이며 가늠자를 목표물에게 향해 정조준한 뒤 방아쇠에 손가락을 당기면…….
스르륵.
“…어?”
방아쇠를 당기면, 탄환이 나가야 하는데.
어째서 발포가 되지 않는 거지?
그런 의문에 자신이 들고 있던 총을 내려다본 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것을 발견하곤 다시 줍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곧 이상하게도 손목이 비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내 손. 내 손이!!”
바닥을 구르고 있는 소총과 아직도 그것을 붙잡고 있는 창백한 손.
그의 것이 분명한 손목 윗부분이 어느새 잘려나가 있었던 것이다!
“으, 으아악!!”
그것은 정면 가장 앞에 있던 갱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그를 비롯한 서너 명이 동시에 손목을 붙잡고 무릎 꿇은 채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뭔가 있다!!”
“광학미채?!”
쓰러진 동료들의 모습에 당황한 갱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원인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렸지만 그 애쉬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던 닌자를 그들이 찾을 수 있을 리가.
그것은 오히려 혼란을 퍼뜨리며 틈을 더욱 크게 벌리는 행동에 불과했다.
“스캔에도 아무것도 안 잡혀!”
“제, 젠장!!”
픽.
“제퍼슨이!!”
이번엔 갱 하나가 목에서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손목이 잘려나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놈들과 달리 즉사한 것이다.
‘일부러 혼란을 만들고 있군.’
그것을 바라보던 오펜은 보이지 않는 적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처음부터 전부 죽일 수 있었으나 손목만 자른 것은 소란을 만들고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것.
이제는 모두가 자신의 주변을 경계하게 됐으니 대놓고 하나를 죽임으로써 생겨난 혼란과 공포를 키워낸다.
정체가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효율적이고 잔혹한 판단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휘관인 오펜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오펜은 그런 적의 존재에 오히려 입가를 끌어올리며 명령을 내렸다.
“죽거나 다친 놈들은 두고 물러나! 지금 보이진 않아도 탄환을 쏟아내면 쉽게 다가올 수 없을 거다!!”
어차피 사무실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는 그들이 완벽하게 막고 있는 상황.
문을 막고 탄환을 계속 쏟아내면 당연히 보이지 않는 암살자 또한 쉽게 다가올 수 없을 터였다.
당장 인질을 잡거나 놈들을 쳐죽이지 못하고 몸을 피할 수 있는 틈을 준 건 아쉬웠지만 천천히 조여간다면 결국 놈들은 숨통이 막혀 질식하듯 죽어가게 될 것이다.
그의 명령에 쓰러진 동료들을 두고 물러난 갱들은 오와 열을 맞춰 탄환을 쏟아냈다.
기존에도 애쉬를 향해 탄환을 쏘던 녀석들까지도 단번에 움직임을 맞춰 행동하는 그 모습은 갱이라기보단 차라리 군인에 가까울 정도.
제대로 훈련 받지 않았다면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티잉!
‘확실히 일반적인 갱들이랑 다르긴 하네.’
벽과 바닥을 맞고 튀어 오르는 탄환을 피한 애쉬가 생각했다.
다른 것을 따지기 이전에 잡졸들도 이 정도 움직임을 보이는 걸 보면 확실히 이곳의 수준이 슬럼에 비해 높다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럼 이제 제대로 가볼까.”
그렇다고 해서 개미들이 인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빌이 케일과 샤인을 데리고 몸을 피하며 편히 움직일 수 있게 된 애쉬는 그 진청색 눈동자에 푸른 귀화를 피웠다.
그리고 허리춤에 걸려 있던 검, 뒤랑달을 뽑자 챠르륵, 날을 감싸고 있던 비늘이 걷히며 번뜩이는 날이 드러났다.
검을 든 애쉬가 몸을 숨기고 있던 책상 위로 튀어 오르며 재밌겠다는 듯 미소 지었다.
“어디 그 잘난 1구역 수준 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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