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15. 제 1구역(5)
* * *
“어디 그 잘난 1구역 수준 좀 보자고!”
책상 위로 튀어 오른 애쉬는 그대로 책상을 박차고 단숨에 적들이 위치한 정면으로 치달았다.
당연히 그것을 멍청하게 지켜보고 있을 갱들이 아니다.
“사격!”
“쏴!!”
투두두두둥!!
빠르게 반응해 움직인 총구가 불을 뿜으며 총탄이 휘몰아쳤다.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는 암살자의 존재에 당황하고 있었다고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빠른 반응.
“겨우 이딴 걸로 날 막으려고!”
하지만 애쉬는 그들을 비웃으며 뒤랑달을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 그의 손이 흐려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허공에 은빛 실선들이 그어진다.
그리고 그 실선에 걸린 탄환이 불똥과 함께 튕겨 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티디디딩!!
“미친! 얘기는 들었지만…!”
탄환을 쏟아내던 갱들 중 하나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그들은 한 차례 애쉬와 게빌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지부 하나를 박살 냈는지 확인했으며, 그가 자신들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가만히 두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상을 통해 한 차원 너머로 그것을 보는 것과 직접 눈앞에서 감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게다가 영상 속에서는 몇 발 정도나 피하고 튕겨내는 수준이었지, 지금처럼 쏟아지는 탄환 전부를 커버하는 장면 따위는 나오지도 않았단 말이다!
“닥치고 3번 팀은 위치로! 1번 팀은 파워 아머를 가동해라!!”
오펜은 경악을 빠져 동요하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든 상황에 대한 준비는 끝났다. 예상보다 상대방의 실력이 더 괴물 같긴 했으나 그래도 그는 머릿속에서 애쉬 론모어라는 칼잡이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시뮬레이션을 끝낸 상태였다.
조심해야 할 것은 유일하게 보이지 않는 변수.
부하들의 손목을 자르고 목을 찌른 그 암살자 하나뿐이었다.
“1번 팀 준비 완료!”
“3번 팀도 준비 완료했습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던 부하들이 자리 잡은 준비가 완료됐다는 것을 알려왔다.
앞서 소파에 맞아 날아가고 암살자에게 당했던 놈들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한 미끼.
변수까지 파악이 끝났으니 이제 진짜 정예들을 투입한 것이다.
애쉬는 쏟아지는 탄환을 피하고 튕겨내며 꾸준히 전진하는 동안 뒤편에서 뭔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적의 모습을 확인했다.
위이이잉, 철컥.
요란한 소리 가동음과 함께 3미터에 가까운 강철 덩어리가 땅을 짚고 일어선다.
인간의 몸을 완전히 뒤덮은 기계 장치의 모습은 얼핏 강철의 거인처럼도 보였다.
그것을 발견한 애쉬는 자신의 눈을 노리고 날아오는 탄환을 고개 숙여 피하며 생각했다.
‘파워 슈트도 아니고 아머까지 챙겨왔다고?’
파워 슈트와 파워 아머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파워 슈트는 종류에 따라 개인의 소지가 허락된 데다 그 기능이 완전히 인간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았지만, 저 파워 아머는 아니다.
저 강철의 거인은 아마 애쉬보다도 훨씬 강력한 근력을 자랑할 터였으며 일반적인 탄환이나 칼질로는 결코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장갑을 자랑하는 군수품이었다.
한 마디로 저것은 거인의 모습을 한 전차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일개 범죄 조직 따위에서 가져오다니.
심지어 그 숫자가 하나도 아니고 무려 셋이나 되는 게 저들이 말하는 ‘클라우드’는 애쉬가 생각했던 규모 이상일 것이 틀림없었다.
“영광인 줄 알아라! 겨우 몇 명을 잡기 위해 파워 아머까지 동원한 경우는 너희가 처음이니까!”
‘클라우드’를 지휘하던 근육질의 남자, 오펜이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파워 아머의 등장만으로 모든 게 끝났다는 태도. 게다가 그런 와중에도 방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놈들이 그물포를 준비하는 게 보였다.
일반적인 용병들이 저런 것들을 앞에 뒀다면 절망에 빠지고도 남았을 상황.
그러나 애쉬는 아니었다.
“린느! 끼어들지 말고 내 직원들이나 지켜!”
티잉, 한 발의 탄환을 튕겨낸 애쉬가 이 자리 어딘가에 있을 순백의 닌자에게 명령하며 땅을 박찼다.
확실히 저들이 준비해온 전력과 그것이 가능하게 만든 상대방의 규모는 그의 예상 밖이다.
파워 아머의 등장에는 솔직히 그도 놀라고 말았을 정도.
하지만 여태까지 애쉬 자신을 향해 상상 밖의 무언가를 들이밀어 왔던 적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겨우 파워 아머와 그물포, 그리고 남아 있는 몇 자루의 소총에 당할 그였다면 1구역까지 오지도 못하고 진작 슬럼에서 죽어 나자빠졌을 터.
특히나 최근 그가 상대해왔던 ‘웃는 악마’나 ‘회사’의 전력은 명백히 저런 깡통 로봇보다 한참은 위에 있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전용 무장도 없어.’
바람을 가르고 빠르게 움직인 탓에 수 미터 안쪽까지 다가온 파워 아머의 모습.
놈의 겉모습을 살핀 애쉬는 녀석의 몸에 특별한 무장 따위가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파워 아머의 무장은 파워 아머 자체의 크기와 출력이 뛰어난 만큼 대전차포 이상의 화력을 지닌 것들로 가득하다.
아무리 파워 아머 자체를 공수해올 수 있는 놈들이라곤 해도 그런 걸 이 시가지 한복판에 위치한 빌딩에서 사용할 수는 없었겠지.
아니, 애초에 있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숨을 들이켠 애쉬가 웃으며 뒤랑달의 손잡이를 꽈악 잡았다.
그리고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와 자신에게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몸통만 한 손을 내미는 파워 아머를 향해 휘둘렀다.
콰가가가각!!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며 생겨나는 반발력과 불똥.
애쉬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요란한 소음을 듣기 좋은 음악처럼 뇌리에 새기며 손아귀에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반발력을 억누르고 검을 계속 내리그어갔다.
몇 센티에 달하는 중장갑을 검으로 그어 내려가는 그의 손이 멀쩡할 수는 없었지만, 파워 아머와 그것에 탑승한 조종사의 경우는 멀쩡하지 못한 수준 정도로 끝날 수 없었다.
“끄아아악!!”
쿠웅!
반으로 쪼개진 파워 아머가 기울어 쓰러지며 한쪽 팔다리가 잘려나간 조종사가 비명을 터뜨린다.
양쪽으로 무너지는 파워 아머를 사이를 뚫고 나온 애쉬는 조종사의 피를 뒤집어쓴 채 웃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클라우드’의 갱들이 경악에 빠져 그를 바라봤다.
“무, 뭘.”
“말도, 안돼….”
“악마…. 놈은 악마야!!”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듯 뒤로 물러서는 갱들.
그들을 지휘하는 오펜 또한 넋을 놓은 채 애쉬의 검에 반 토막이 난 파워 아머를 바라봤다.
있을 수 없다. 이런 건 현실에서 결코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 어떻게 인간이 검 한 자루로 파워 아머를 베어낼 수 있단 말인가.
“대, 대체, 도대체 무슨….”
그것은 상식을 따지기 이전에 현실이라고 볼 수조차 없는 일.
그 초진동 블레이드로도 파워 아머의 장갑을 뚫기 위해선 수십 초 이상의 시간이 걸릴 텐데 저 잿빛 은발의 칼잡이는 불과 수 초 만에 파워 아머를 반으로 절단했다.
“당장 놈을 죽여! 놈을 죽여라!!”
오펜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에게 제대로 된 지휘를 할 정신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당황한 채 애쉬에게서 어떻게든 멀어지려고 발악할 뿐.
혼이 나간 것은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으나, 다행히도 그들의 몸은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죽어어!!!”
투두두두둥!
몇 자루 소총이 다시 한번 불을 뿜으며 남아 있는 두 체의 파워 아머가 달려온다.
그리고 그 뒤에선 그물포가 애쉬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퍼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쏘아지는 커다란 포탄.
그것은 주포에서 벗어난 직후 펼쳐지며 애쉬의 정면을 모조리 덮는다.
파직파직 전류가 흐르는 게 보이는 그물은 어찌 보면 총탄으로 이뤄지는 탄막보다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물건이었지만, 한껏 감각을 끌어올린 애쉬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함께 달려들었다.
그리고 느려진 시간 속에서 검을 휘둘러 금속으로 이뤄진 그물을 베어냈다.
촤아악!!
‘특수 코팅으로 감전될 일은 없다더니.’
확실히 검을 타고 흐르는 전류의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애쉬는 전류가 흐르는 그물을 베었음에도 아무런 이상 없도록 돕는 검의 기능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에리히 영감이 과거 ‘웃는 악마’와의 전투에서 감전당했던 그의 경험을 듣고 추가한 기능이 제대로 그 효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으아아!!
베어낸 그물 사이로 몸을 뺀 애쉬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오는 파워 아머의 팔을 그대로 밟고 높이 뛰었다.
층고가 많이 높은 편은 아니라 팔을 밟고 뛰어오른 그의 몸이 천장까지 닿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타앗!
천장에 자신의 머리가 닿을 즘 몸을 뒤집어 천장을 땅처럼 박차고 밑으로 쏘아져 내린다.
그의 손에 들린 뒤랑달의 은빛 칼날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노리는 곳은 헬멧이 감싸고 있는 파워 아머 조종사의 머리.
한 차례 파워 아머를 반으로 갈라내며 검의 성능을 시험해봤으니 굳이 더 그 비효율적인 일을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사냥감을 노리고 낙하 비행하는 매처럼 떨어진 애쉬의 검이 파워 아머의 두터운 헬멧을 단번에 관통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이저의 안이 피로 물들었다. 즉사였다.
그것을 확인한 애쉬는 헬멧에 꽂힌 검을 뽑으며 다시 한번 뛰었고, 그 직후 애쉬가 있던 자리를 또 다른 파워 아머의 주먹이 내려쳤다.
콰아앙!
거의 폭발음처럼 들릴 정도의 충돌 소음이 울린다. 그야말로 끔찍할 정도의 괴력.
저 주먹에 한 번이라도 맞거나 손아귀에 잡히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애쉬라도 장난감처럼 부서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맞았을 때의 얘기였다.
“느려.”
파아악!
그의 머리통을 노리고 뻗어진 파워 아머의 주먹이 얼굴 옆을 스치고 지나가며 일으킨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 될 공격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으나 애쉬 오히려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 정도 위협은 돼야 재밌지.
헛손질한 파워 아머의 품에 파고든 애쉬는 놈의 무릎을 밟고 머리 높이까지 뛰어올랐고, 그 후 다시 한번 칼날이 빛을 발하며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헬멧 바이저를 꿰뚫었다.
쿠웅!
파워 아머의 어깨를 넘어 착지한 애쉬의 뒤로 제어를 잃은 강철의 거인이 무릎 꿇는다.
그 묵직한 무게에 층이 울리는 것 같았지만, 거기에 신경 쓸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그가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장면과 그의 움직임을 본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었으니까.
“…….”
연달아 파워 아머 세 체가 쓰러지자 사무실 내부가 적막에 잠겼다.
갱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고, 그들의 지휘자인 오펜 또한 멀쩡하지 못했다.
“이건 꿈이야…. 이런 게 현실일 리가….”
오펜이 중얼거렸다.
이미 상대방을 어떻게 잡겠다, 제압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
오늘의 손실로 인해 상사에게서 받을 불이익이나‘클라우드’내에서의 평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현실을 부정하며 이 모든 게 꿈이길 빌 뿐.
그러나 현실을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다.
“꿈은 무슨.”
픽 웃은 애쉬가 오펜의 중얼거림에 대꾸했다.
처음에는 아주 기고만장해서 덤비더니, 결국엔 이런 꼴이다.
터벅, 터벅.
애쉬가 망연자실한 채 현실을 부정하는 오펜에게 다가가자 그 발소리를 들은 오펜이 고개 돌려 애쉬를 바라봤다.
마주친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빛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한바탕 신나게 날뛰고 그 다음을 기대했건만 실망스러운 모습.
흥미를 잃은 애쉬는 검을 휘둘러 그 목을 떨궜다.
“잘 가라.”
피가 솟아오르고 툭 떨어진 머리통이 데구르르 바닥을 구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