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 15. 제 1구역(6)
* * *
스르륵.
드러났던 칼날을 다시 감싸는 비늘 형태의 커버.
애쉬는 커버가 씌워지며 날에 잔류해 있던 기름기와 핏물을 긁어 털어내는 것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프흐, 이거 진짜 마음 안 드는 부분이 없네.”
두터운 장갑판을 갈라버리면서도 전혀 손상되지 않은 칼날과 후처리까지 가볍게 끝내버리는 커버 기능.
검의 내구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애쉬의 전투력을 20% 이상 끌어올릴 정도였는데, 이런 기능까지 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최고라고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과연 그 깐깐한 에리히 영감이 아직 완성만 안 됐다뿐이지 검 자체의 성능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의 검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다 표현한 물건.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서령과 에리히 영감에게 감사를 표한 애쉬는 시선을 돌려 남은 잔당들을 지켜보고 있는 게빌을 바라봤다.
“사, 살려줘. 다시는 이곳으로 눈길도 주지 않을 테니까….”
“조직에 보고하지도 않고 도망가서 숨어 살 테니까 살려줘!”
애쉬와 한 차례 전투를 벌인 잡졸들은 도망치지도 못한 채 게빌을 향해 그런 헛소리를 내뱉으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지만, 게빌은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애쉬에게 다가갔다.
그에 애쉬가 자신을 향하는 게빌에게 물었다.
“저 녀석들은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
당연히 전부 여기서 처리해야지.
게빌이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대답했다.
저쪽에서 파워 아머 같은 물건까지 끌고 사무실을 습격한 순간부터 전쟁은 시작된 것이다.
사무실의 인력이 풍부해 여유가 있었다면 저런 놈들을 써먹을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은 그게 아닌 만큼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게빌의 대답에 애쉬가 그를 놀리듯 말했다.
“오, 진짜? 우리 인권 운동가 게빌 리퍼슨 선생님께서 웬일로 처리하자고 하시는지 모르겠네.”
“어차피 살려둘 생각도 없었잖아.”
자신을 놀리는 애쉬의 목소리에 게빌이 인상을 팍 쓰며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게빌이 아는 애쉬 론모어는 일단 적으로 판명된 놈들이라면 살려두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 적이 요전번의 닌자처럼 대단한 미인도 아니고 저렇게 험악하게 생긴 갱들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아무리 살생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빌이라지만 지금 애쉬의 처분 판단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살려 보내봐야 ‘클라우드’에 다시 합류해 전장에서 적으로 보게 될 게 뻔했으니까.
게빌로서는 오히려 저 녀석들을 전투가 끝난 직후 처리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려둔 애쉬의 의도 자체가 궁금했었는데, 그 이유가 게빌 자신의 의지를 테스트하기 위함이었음이 지금 밝혀진 것이다.
“하아…. 이봐, 애쉬.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공과 사는 구분한다고.”
애쉬의 테스트에 일말의 불쾌감까지 느낀 게빌이었지만, 거기에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알았기에 불쾌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작게 한숨 쉬며 말했다.
게빌은 이미 뒷세계에서 10년 이상 활동해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뒷세계 신입 중 절반 가까운 숫자가 1년 내에 죽어 나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애쉬에 의해 스스로 잘랐던 손목 이전 커다란 부상 하나 없이 멀쩡했던 그의 실력과 결단력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괜히 ‘골든 캐니언’이라는 별명이 유명한 게 아니다.
하지만 애쉬는 그런 게빌의 말에도 픽 웃으며 손짓했다.
“그럼 저 녀석들이나 마무리해. 마침 꼬맹이랑 케일도 자리를 비웠겠다.”
무장 해제하고 무릎 꿇은 채 대기하고 있는 갱들의 처리.
케일과 샤인은 뒤처리가 끝날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 말한 뒤 린느를 호위로 붙여뒀기에 그 둘이 살해의 현장을 볼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불러둔 시체 처리반이 도착할 테니 그때까진 마무리를 봐야 한다.
애쉬는 그것을 게빌에게 맡겼고, 게빌은 그런 상사의 명령에 고개 저으며 다시 갱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찜찜하게 살려둬서는.”
터벅, 터벅.
갱들은 게빌이 애쉬와 얘기를 마친 뒤 돌아오자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도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둘이 나눈 대화가 자신들의 처분에 대한 것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사, 살려 주는 거야?”
“진짜 돌아가면 어떻게든 간부들을 설득….”
애쉬와 대화를 마치고 온 게빌의 표정은 평온했고, 갱들의 표정도 그런 게빌의 표정을 읽었기에 희망에 차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물음에 돌아온 것은 어느새 뽑힌 리볼버로부터 쏘아진 한 발의 탄환이었다.
타아앙!
퍼엉! 일반적으론 보기 힘든 대구경 리볼버의 탄환이 무릎 꿇고 있던 갱 하나의 머리를 말 그대로 터뜨렸다.
평온한 표정으로 당긴 방아쇠에 현실감을 잃은 갱들이 게빌을 바라봤다.
“왜…?”
“죽이러 왔다면 죽을 각오도 했어야지. 고통은 없이 보내주마.”
게빌 입장에서는 나름 배려랍시고 덧붙인 말이었지만, 그것은 공포에 억눌려 있던 갱들이 다시금 폭주하기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간의 생존 욕구는 공포보다도 강했다.
“이, 개자식이!!”
“죽…!”
타아앙!!
아무런 구속구도 채우지 않았기에 갱들은 단번에 일어나 달려들 수 있었지만, 그보다도 게빌의 리볼버가 다시 총성을 울리는 것이 빨랐다.
총구가 불을 뿜을 때마다 머리를 잃은 채 쓰러지는 시체가 한 구씩 추가된다.
“흐, 흐아아악!!”
다섯쯤 남았을 때부터는 저항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을 고른 갱들이었으나 게빌은 도망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넷.
셋.
둘.
그리고 마지막.
타아앙!
“아, 진짜.”
게빌의 일방적인 사냥을 지켜보던 애쉬가 출입구를 향해 뛰다 자신의 옆을 지날 때쯤 총탄에 머리가 터져나간 갱의 체액을 피해 뛰었다.
이미 피에 어느 정도 젖어있는 상태였지만 머리가 터져 나온 뇌수까지 뒤집어쓰고 싶진 않았던 탓이다.
“야, 일부러 그랬지.”
“흥.”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뇌수와 핏물을 피한 애쉬가 게빌을 노려보자 그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네가 시킨 대로 갱들을 모두 처리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머리 터진 시체 열댓 구가 사무실에 추가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뒷세계의 시체 처리반이 도착했다.
“뒷처리 의뢰를 받고 도착했습니다. 이 현장…을…?”
도착한 시체 처리반의 반장 정도로 보이는 이는 사무실에 들어선 직후 말을 이어가다 말고 흐렸는데, 그의 눈에 무릎 꿇은 두 체와 반으로 갈라진 한 체를 합쳐 총 세 체의 파워 아머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뒷세계의 시체 처리반으로서 매일 시체를 다루는 게 일인 그들이었던 만큼 머리가 터지고 목이 잘려나간 끔찍한 시체에는 익숙했지만 파워 아머의 존재는, 그것도 절반으로 갈라진 파워 아머를 보고서는 태연하게 있을 수 없었다.
“…일단 처리부터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처리 비용은 현장을 자세히 확인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잠시 처참하게 무너진 강철 거인들의 사체를 바라보던 반장은 곧 정신을 차리고 말했고, 애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처리반장을 비롯한 시체 처리반의 일원들은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 현장을 살폈다.
“사체 한 구 더 발견했습니다. 이걸로 24구 째입니다.”
“여기도 하나 있습니다!”
책상, 소파, 가전제품 등등 모든 것이 무너지고 박살 나 엉망이 된 현장에서 시체를 찾던 그들은 자신들의 예상보다 일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번화가 중심에 있는 것치곤 넓긴 하지만, 그래 봐야 사무실 하나.
이런 곳에서 사체가 무려 서른 구에 가깝게 발견된 것이다.
“정리에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워낙에 토막난 부분도 많고, 뼛조각이나 살점 등이 튄 것도 많다보니 못해도 이틀은 걸릴 것 같습니다.”
처리반장의 물음에 그의 부하가 대략적인 예상 소요 시간을 내놓았다.
예리한 것으로 베어 죽인 사체는 그나마 나았지만 강력한 충격에 머리가 터져나간 시체들이 문제였다.
뼛조각과 살점, 그리고 피와 뇌수가 사방팔방에 흩뿌려지며 작업에 손이 훨씬 많이 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파워 아머 안에 있는 사체들도 꺼내야 했는데….
“대체 어떻게 저런 꼴이 된 건지 모르겠군.”
세 체의 파워 아머를 향해 시선을 돌렸던 처리반장이 다시금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 체의 파워 아머를 보곤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파워 아머의 중장갑을 가를만한 장비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떻게 저걸 저런 꼴로 만들었을까.
‘칼잡이라곤 들었는데, 설마 칼로 베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처리반장이 애쉬의 소드 벨트에 매달린 검을 보며 그런 말도 안되는 우스갯소리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미친 칼잡이’에 대한 소문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뒷세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의 주인공이었으니까.
자신의 사무실을 건든 놈들을 모조리 찾아가 보복하고 있다던가.
‘소문만 듣고도 정신이 나간 놈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 이상인 것 같군.’
시체 처리반은 뒷세계 암투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청소하는 청소부였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일종의 정보상이기도 했는데, 시체를 처리하다 보면 그 사망 원인과 사망자의 신원을 어느 정도 알 수밖에 없다.
거기서 얻은 정보를 몰래 팔아먹는 것 또한 그들의 돈벌이 중 하나.
그런 청소부들이 사체에 남아있는 ‘클라우드’의 문양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무슨 원한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칼잡이와 그의 동료인 카우보이모자의 남자, ‘골든 캐니언’은 자신들의 사무실을 습격한 ‘클라우드’를 상대로 맞서 싸웠고, 이렇게 그들에게서 승리한 것이다.
그것도 파워 아머를 세 체나 끌고 온 놈들을.
“한동안 또 떠들썩해지겠군.”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 핏자국이나 제대로 지워!”
“옛!”
자신을 중얼거림을 얼핏 들은 부하에게 대답한 처리반장이 괜히 다른 쪽을 지적하며 소리쳤다.
아무것도 아니라곤 대답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클라우드’는 ‘미친 칼잡이’와 ‘골든 캐니언’을 제거하는데 실패했고, 그런 와중에 파워 아머를 세 체나 잃고 수십에 달하는 소속원들까지 이승을 떠났다.
그런 결과를 받고도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클라우드’는 반드시 자신들의 위상을 회복하기 보복할 것이었고, 그 수위는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을 것이 분명했다.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이 번화가 한복판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 정보는 비싸게 팔리겠어.’
그렇게 사고를 이어가던 처리반장이 생각했다.
특히나 ‘클라우드’를 적대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전력이 조금이라도 분산되는 상황이 무척이나 반가울 터.
예상 밖의 큰 부수입이었다.
그렇게 처리반장이 곧 자신의 손에 들어올 크레딧을 생각하며 미소 지을 무렵, 사무실을 정리하는 시체 처리반의 모습을 보던 애쉬가 게빌을 향해 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클라우드’라고 했던가? 우리가 먼저 치자.”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