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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4화 (4/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4화

4화. 인연을

혼란스러운 일투성이였다.

이 세계에 있을 리 없는 책을 발견하질 않나, 갑자기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오질 않나.

그래도 유릭은 빠르게 침착을 되찾았다.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전생까지 회귀한 경험보다 더 경악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저, 정말 귀신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당연히 사람이지.”

[“사람? 그럼 지금 전음을 보내고 있는 건가요?”]

전음?

어떤 만화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텔레파시같이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던가.

‘진짜 그런 세계인가?’

다소 놀란 유릭이었으나, 이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납득했다.

이 세계 역시 현대의 상식으로 보면 창작물에나 나올 법한 세계가 아니던가.

마법과 정령과 오러가 있는 세계 말이다.

“뭐 비슷한 거라고 해두지. 사실 나도 어떻게 너랑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거든.”

원인이 된 것이라면 안다.

염화신무의 비급.

그 책의 영향으로 무림에 있는 이 아이와 연결된 것이 아닐까.

‘무슨 원리인진 모르겠지만.’

어차피 원리를 모르는 것 따위는 세상에 산더미처럼 있다.

현대에서 살던 땐 리모컨의 원리도 잘 모르던 그가 아니던가.

중요한 건 현상 그 자체.

그리고 그 현상을 어떻게 이용할지다.

[“네? 아저씨도 몰라요?”]

“나도 갑자기 웬 목소리가 들리니 당황해서…… 아니, 근데 아저씨가 뭐야. 내 목소리가 아저씨처럼 들려?”

[“말투나 어조가 어른 같아서…… 몇 살인데요?”]

“13살.”

[“엑! 거짓말!”]

실제론 훨씬 많으니 거짓말이 맞긴 하다.

“넌 몇 살인데.”

[“10살……이요.”]

유릭이 이마를 쓸었다.

젠장, 어쩐지 목소리가 어려 보이더라니.

가능하면 최대한 지식이 많은 어른이면 했었는데.

[“아저…… 아, 아니, 오라버니? 우선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그냥 아저씨라 불러.”

[“네? 왜요?”]

“그게 편하니까 그렇게 해.”

정우의 나이인 28살만 해도 이미 아저씨라 불릴 나이다.

거기에 유릭으로 살아온 30년의 나이까지 합하면 그 이상.

자칫하면 할아버지 소릴 들을 수도 있을 나이 차였다.

[“네에…….”]

상대는 떨떠름한 모양이었지만 일단은 납득했다.

[“그래서 이름은요?”]

“유릭 로스카.”

[“헤에. 특이한 이름이네요. 서역 사람이신가 봐요?”]

“너는?”

[“저는 설유화예요. 나이는 열 살!”]

열 살인 건 아까 들었다.

그녀를 두고 유릭이 빠르게 고민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다.

그쪽 세계에 대한 것이나 설유화 본인의 신상에 대한 것이나.

하지만 가장 먼저 물을 것은 정해져 있다.

“혹시 염화신무란 이름을 알고 있어?”

방금 그 비급에 대해서.

[“염화신무?”]

“너랑 이렇게 연결된 게 염화신무라 적힌 책 때문이거든.”

[“우웅…… 모르겠는데요.”]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와 유릭이 살짝 실망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예상 범위 내의 대답이다.

아직 그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마나…… 아니, 내공이라 하나? 그게 아랫배에 모이던데 이거 정상 맞아? 심장에 모여야 하는 거 아냐?”

가장 신경 쓰이던 부분이 이곳이었다.

저쪽이 정말 무협 같은 세계라고 한다면 단전에 내공을 모으는 것이 보통이겠지.

하지만 그건 그가 봤던 웹툰에 불과했다.

현대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창작물 말이다.

그에 비해 ‘심장에 마나를 모은다’라는 것은 유릭 로스카로 살아온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상식.

이 세계에선 심장 이외의 곳에 마나 코어를 만드는 경우 따윈 일절 없었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내력이요? 당연히 단전에 모으는 거 아녜요?”]

다행히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유화의 반응을 보니 저쪽 세계에선 단전에 모으는 것이 평범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염화신무도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좋아.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알아가자.’

유릭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염화신무를 익히기 위한 지식.

그의 머릿속엔 염화신무의 비급에 적혀 있던 내용들이 모두 떠다니고 있다.

책이 통째로 들어 있다고 해도 되었다.

근데 풀이를 할 수가 없다.

‘뭐 소주천을 몇 번 하고 어쩌고 하는데 뭔 소린지 알아야지.’

책이 흡수되며 저절로 번역이 되었는지 읽을 수는 있다. 근데 단어 자체의 뜻을 모르겠다.

혹은 단어를 다 알고 있는데도 표현이 너무나 뜬구름 잡는 것들이라 애매모호한 문장도 수두룩했다.

혼자서 이걸 해석하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그래서 몇 가지 물어보고 있으니.

[“온몸의 음기가 모이는 곳을 백회라고 하는데 정수리에 위치한 혈이에요. 운기를 통해 이 기운을 인당, 천돌, 전중혈을 거쳐 아랫배로 내려 단전으로 돌리는 걸 임맥이라 하고…….”]

“…….”

[“반대로 양기는 단전에 모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걸 회음, 미려, 명문혈을 거쳐 백회까지 타고 올리는 게 독맥이에요. 임맥과 독맥 사이는 얇은 막이 막고 있어서 두 과정을 완전히 따로 치러줘야 하는데 물어보신 소주천이 이 과정을 뜻하는 거구요, 이렇게 매일매일 소주천을 통해 기운을 단전에 모아가는 걸 내력을 쌓는다고 하는 거예요.”]

유화는 생각보다도 더 훌륭하게 대답해 주었다.

오히려 질문한 유릭이 벙찔 정도였다.

무림에서는 10살짜리가 이런 걸 아는 게 보통인가?

10살의 권정우는 물론 10살의 유릭 로스카도 저만한 지식량은 없었는데.

‘이 정도면?’

어느새 10살이라 아쉽다는 생각은 싹 사라져 있었다.

설유화의 지식량은 염화신무의 비급을, 적어도 초반부를 해석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아, 잠깐. 단전은 방금 들어서 알겠는데 회음, 인당 이런 부분은 잘 모르겠는데.”

[“어, 그래요? 이제 보니 아저씨 혈 자리를 전혀 모르나 봐요?”]

“응. 완전히 처음 들어.”

[“혈 자리도 다 안 외우고 무공을 익히려고 하시다뇨! 이게 기초 중의 기초인데.”]

인체의 혈도라는 지식들.

그녀의 말로는 사람의 몸에는 혈관과 별개로 기가 흐르는 세맥이라는 길이 있고, 그 세맥의 요소요소에 위치한 중요한 장소를 ‘혈’이라고 부른다 한다.

그것을 모두 알아야만 제대로 무공을 익힐 수 있다고.

‘이게 당장의 과제라 이거지.’

유릭이 눈을 반짝였다.

인체의 혈 자리 수백 곳을 모조리 암기하는 것.

그게 염화신무를 익히기 위한 첫걸음으로 보였다.

‘위치만 암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혈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통달해야 한다라…….’

좋아. 당분간은 혈을 암기하는 것에 힘쓰자.

당면 목표가 결정됐다.

“고맙다. 도움이 많이 됐어.”

[“히히, 아니에요, 귀신 아저씨.”]

그녀의 너스레에 유릭이 피식 웃었다.

“이렇게 잘 아는 거 보니까 너도 무공을 배우고 있나 봐?”

[“…….”]

별것 아닌 잡담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화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아뇨. 책만 많이 봐서 그래요. 저는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이래요.”]

“그래?”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 유릭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쪽 세계에도 체질적으로 마나나 오러를 익히지 못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일까.

[“무공을 익히려면 내력이 돌아다니는 세맥이 뚫려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게 꽁꽁 얼어 있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내력이 전혀 돌아다니지 못한대요.”]

무척 슬픈 듯한 목소리였다.

무공과 관계없는 평범한 이라면 익히지 못한다 하여 슬퍼하지 않을 터.

슬퍼한다는 것은 곧 무공을 배우고 싶은데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괜한 얘기를 꺼낸 건가.’

유릭이 눈을 찌푸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괜스레 무거워졌다.

‘응?’

그러던 중 유릭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물었다.

“꽁꽁 얼어 있다는 건 비유적인 표현인가? 아니면 진짜 차가운 기운이 틀어막고 있다는 얘기?”

[“진짜 쪽이요. 그래서 맨날 침대에서 책만 읽으면서 지내고, 가끔은 몸이 엄청 차가워져서 너무 아파요.”]

몸의 혈이 차가운 기운으로 꽁꽁 얼어 있어 내기가 돌아다니지 못한다.

매일 침대에서 지낼 정도로 몸이 허약하며 가끔은 발작까지 있다.

유화가 얘기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유릭은 그것에 대해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정우의 기억이 아닌 유릭 로스카의 기억 속에.

‘설마…… 월하무녀(月下巫女)와 같은 증상인가?’

월하무녀.

그건 고대의 오랜 고문서에 실려 있는 일종의 체질 중 하나다.

전신의 마나 로드가 꽁꽁 얼어 있어 제대로 마나가 다니지 못하며 코어도 만들 수 없다.

유화의 증상처럼 몸이 굉장히 약해지며, 전설에 따르면 단명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월하무녀라는 이름은 차가운 기운을 품고 태어난 것이, 달을 품고 태어났다 여겨져 숭배받은 것이라 알려져 있다.

고대 주술학에서 달은 차가움을 상징하니까.

‘단명…… 아마 20살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던가.’

옛적부터 결코 극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니, 고대엔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일찍 죽는다는 사실조차 ‘세상의 독기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신의 곁으로 돌아갔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하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대의 이야기다.

“유화. 사실 나도 너랑 조금은 비슷한 상황이거든. 완전 같은 건 아니고.”

[“네? 비슷하다뇨?”]

“우리 가문은 서리 마나로 유명한 가문인데, 나는 그걸 전혀 익히지 못해.”

[“-? 서리 마나?”]

지금의 빙하백가에서 ‘월하무녀’라 칭해지는 일종의 체질은, 이미 극복한 지 오래였다.

오히려 월하무녀는 가문의 비전을 익히는데 최고의 체질이다.

몸을 꽁꽁 얼리고 있는 그 냉기를 자연스레 풀어내어 마나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로스카의 비전 중에 있기 때문에.

‘원래 가문의 직계에게만 내려오는 비전이지만, 월하무녀의 아이가 태어나면 직계가 아니더라도 가르치라는 선조의 말이 있으니까.’

직계가 아닌, 설령 귀족조차 아닌 아이더라도 월하무녀란 것이 확인되면 비전을 가르친다.

그리고 양자든 뭐로든 해서 가문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게 비전과 함께 내려오는 빙하백가 선조의 당부였다.

“무공에 대해 알려준 보답으로 마법을 가르쳐 줄까?”

그렇기에 유릭은 죄책감 없이 그 얘기를 입에 담을 수 있었다.

* * *

바깥에선 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보통 기연관에 들어간 아이들이 나오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유릭은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나오지 않고 있었다.

“좋지 않은가 봐.”

“아무 선택도 못 받아서 쪽팔려서 못 나오는 거 아냐? 킥킥.”

방계의 아이들 쪽에서 그런 비웃음이 들려왔다.

태생적으로 직계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방계의 아이들.

직계이면서 간단한 서리 마법 하나 못 쓰는 유릭은 그들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가주님. 무언가 사고라도 당한 것은…….”

한편 가신들은 사고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기연관 안에는 가지각색의 물건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는 끝이 뾰족한 창도 있고 단련한 기사들도 버거워하는 무거운 해머도 있다.

“잘못 건드렸다가 무너진 무구에 깔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물건 중 하나에 깔려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발렌티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가 냉랭하게 지시했다.

“밤이 깊었으니 아이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너희들도 돌아가도록.”

“아, 예. 아이들은 모두 돌려보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계속 남아 가주님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라고 말하려던 가신이 입을 다물었다.

발렌티나의, 항명을 허용치 않겠다는 눈짓을 받은 것이다.

가신들은 이내 사람들을 수습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내 모든 기척이 사라지고 발렌티나 혼자만이 남아 자리를 지켰다.

“웬일이십니까, 누님. 누님이라면 오히려 가신들에게 자리를 맡기고 당장 폐관실로 달려갈 줄 알았는데.”

그런데, 혼자 남은 그 장소에 어떤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벽면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자신만만한 미소와 당당한 걸음걸이.

발렌티나의 동생이자 그녀의 왼팔인 발터 로스카였다.

“시끄러워. 너도 꺼져.”

발렌티나의 목소리는 방금보다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신경질을 부리는 거침은 아니다.

마음의 장벽을 조금 내린, 가족을 대하는 거침이었다.

“누님의 호위인 제가 꺼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약해빠진 녀석은 필요 없다.”

“하하하! 누님보다 약하다고 필요 없다고 하지 마십쇼. 그러면 온 세상 사람들이 필요 없어지지 않습니까.”

발터가 적당히 너스레를 떨며 그녀의 곁에 시립했다.

발렌티나는 눈을 찌푸리긴 하였으나, 더 이상 꺼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진짜 오래 걸리는군요.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글쎄.”

“데릭은 참 대단했죠. 세상에 초대 가주님의 검이라니! 이전부터도 몇 수 가르쳐 주긴 했지만 참 가르칠 맛이 나는 아입니다.”

“확실히 그 아이는 뛰어나긴 하지.”

“그에 비해 지금 들어간 유릭은…… 귀여운 조카한테 이런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재능은 전혀 없더군요. 어쩌면 정말 아이들 말처럼 선택받지 못해서 못 나오고 있는 걸지도…….”

“……발터.”

“아차차,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누님이 화를 내는 것을 느꼈는지 발터가 입을 싹 다물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해버렸다. 칭찬만 하고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

“…….”

시끄럽던 발터가 입을 다무니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때.

끼이익-

침묵을 깨며 기연관의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어진 공동을 의아하게 바라본 유릭이, 이내 발렌티나와 발터를 발견하곤 다가왔다.

“유릭.”

발렌티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축하한다.”

유릭 로스카는 무언가를 얻어왔다.

그 기세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감사합니다.”

발렌티나가 건넨 축하의 말은 여전히 차갑고 건조했다.

하지만 유릭은 그 말이 무척 기꺼웠다.

미래가 변했다는 증거였으니까.

“유릭, 안에 들어가서 뭘 얻었니?”

발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빨리 알고 싶어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어조였다.

‘검? 창? 활? 아니면 악세사리 같은 물건일지도.’

몸에 걸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사용자의 몸속에 깃드는 무구야 발에 챌 정도로 많았다.

어쩌면 영약이나 비전서일 가능성도 있고.

발터와 마찬가지로 발렌티나 역시 드물게 흥미를 띈 눈이었다.

그녀가 유릭을 보며 물었다.

“말해보거라. 절세의 무구를 얻었느냐? 아니면 선조의 비전을 얻었느냐?”

자신을 응시하는 어머니와 외숙의 열기 어린 시선.

그 시선 아래서 유릭이 대답했다.

“인연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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