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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5화 (5/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5화

5화. 쟤가 있었지?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어색한 침묵이 아니었다.

발렌티나도 발터도,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말문을 잃은 것이다.

“풉, 푸하하하하!”

침묵을 깬 것은 발터였다.

그가 시원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인연을 얻었다니, 이런 대답을 하는 어린아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 맞다! 네 말이 정답이구나. 기연관은 인연을 얻는 곳이니 말이야.”

기연이란 곧 기이한 인연.

그리고 세례 의식의 경우에 그건 선조와의 인연을 뜻했다.

후손을 위해 힘을 남겨준 선조의 배려를 인연이라 얘기하다니.

발터의 눈에 기특함이 깃들었다.

조카의 조숙한 대답이 결코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좋은 대답이구나.”

허를 찔린 발렌티나 역시 드물게 입꼬리가 미미하게 풀려 있었다.

아들의 대답이 퍽 귀엽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훈훈한 분위기도 잠시.

그녀가 표정을 지우곤 발터에게 얘기했다.

“발터. 잠시 꺼져 있도록.”

발터가 눈을 깜빡거렸다.

“아까도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누님의 호위인 제가 꺼질 리가 없잖아요.”

솔직히는 이 귀여운 조카와 조금 더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발렌티나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너의 호위 임무는 내가 출타를 할 동안만이다. 가문에 있는 동안은 필요 없어.”

친절하게 꺼져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발터는 잘 알고 있다. 이건 가족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가주로서의 말이다.

가족으로서의 누님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은 수고는 들이지 않는다.

욕부터 박거나 냅다 걷어차거나 둘 중 하나.

오히려 가주 모드일 때가 더 친절한 것이 그의 누이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경을 치기 전에 발터가 잽싸게 대답하곤 떠나갔다.

자리에는 발렌티나와 유릭, 둘밖에 남지 않았다.

유릭이 조용히 시립했다.

‘아직 물어보려는 건가?’

어머니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평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유릭, 무엇을 얻었느냐.”

아니나 다를까 그런 질문이 들렸다.

유릭이 잠시 고민했다.

‘대충 둘러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애초에 염화신무의 비급은 불타 사라져 자신에게 들어왔다.

즉 어제까지만 해도 잘 있던 책이 갑자기 사라졌단 말이다.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낡은 책 한 권을 얻었습니다.”

유릭의 대답에 발렌티나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예상대로라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그 책’의 주인이 나타난 것에 혼란스러워해야 할지.

“어머니?”

발렌티나의 모습이 이상하자 유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그 책을 얻었으니 얘기해 주지 않을 수 없구나. 그 책은 초대 가주의 물건이란다.”

“……예?”

유릭이 눈을 깜빡였다.

초대 가주? 갑자기 그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초대 가주가 남긴 물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데릭이 얻은 마검 이솔렛, 다른 하나는 네가 얻은 그 이름 모를 책.”

그러고선 이런 말을 남겼다.

그 검은 세상을 위해, 그 책은 한 아이를 위해.

“이솔렛은 그동안 몇 번은 세상에 등장했지. 역대 가주들 중에 그 검을 잡았던 이는 적지는 않아.”

유릭이 끄덕였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가문의 수백 년 역사에서 초대의 검은 여러 번 등장했었다.

뛰어난 이에게 쥐어져 이름을 드높이고 대륙을 주유했다.

지금에 와선 ‘빙하백가’라고 하면 마검 이솔렛을 떠올리는 이조차 있을 정도로 가문을 대표하는 무구다.

“하지만 그 책이 기연관 바깥에 나온 것은 처음이구나.”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발렌티나의 말은 추궁을 위한 것도 책의 정체를 캐묻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알려줘야 할 것을 알려주는 담담한 말투.

“…….”

유릭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염화신무가 초대의 물건이었다니, 그 말은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지 않은가?

‘초대는 유화와 같은 세계 사람이었나?’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기연관에 왜 그 책이 있었는지, 그걸 쥐니 어째서 유화와 이어진 것인지.

차원을 넘은 건지 환생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대 가주는 무림에서 온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또한 가주에게만 내려오는 사실이다만, 초대는 차가운 달빛은 물론 뜨거운 태양마저 품고 있었다고 하였지. 혹시……?”

숨길 이유도 없다.

유릭이 작은 손바닥을 폈다.

단전에 웅크리고 있던 불의 기운이 풀려나오며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렇군.”

발렌티나가 수심 깊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초대의 서책이 세상에 나온 것만 해도 기이한 일일진대, 그 검과 책을 유릭과 데릭 두 쌍둥이가 나눠 가지다니.

얼음의 검과 불꽃의 책.

초대의 두 유물이 이 시대에 갑자기 등장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묘한 예감.

머지않아 세상이 요동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혼탁한 시대에서 가문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지?

심상치 않은 예감에 발렌티나가 표정을 굳히고 있을 때.

‘이거 원래 날 위한 게 아닌데 그걸 내가 얻어버렸네.’

유릭은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그는 진실을 알고 있다.

이 책은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만약 내가 이걸 얻을 운명이었다면 회귀 전에도 얻었겠지.’

회귀 전 유릭은 기연관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염화신무는 그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

그런데 정우로서의 기억 덕택에 자신이 가로채 버린 것이다.

아마 책의 제목을 읽는 게 주인이 되는 조건이겠지.

‘뭐, 죽기 전에 다시 책으로 만들어서 넣어놓으면 문제없겠지?’

물론 죄책감 같은 건 없다.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지.

심각한 예감에 휩싸여 있는 발렌티나와 반대로, 유릭은 가벼운 기분으로 으쓱이고 있을 뿐이었다.

* * *

하늘이 높고 맑았다.

따스한 태양이 차디찬 땅을 내리쬐고 있었다.

엘드가르드 산맥.

빙하백가 로스카가 터를 내린 땅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만 수만에 이른다고 알려진 거대한 산맥이다.

어지간한 왕국 이상의 크기를 가진 대륙의 지붕.

산맥 전체가 빙하백가의 영역이었으며, 동시에 빙하백가를 지키는 천혜의 요새이기도 했다.

‘오늘은 눈이 안 오는군.’

엘드가르드에는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리곤 했다.

봄이고 여름이고 그런 것은 관계없다.

그날 날씨가 추우면 눈보라가 부는 것이고, 비교적 따스하면 맑은 하늘을 보는 지역.

‘일주일 동안 맨날 왔으니까.’

실제로 유릭이 회귀하고 세례 의식을 치른 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눈이 왔었다.

오늘은 회귀 후 처음으로 보는 맑은 하늘.

모처럼의 일이니 유릭이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방을 나왔다.

“헉! 도련님! 어, 어쩐 일이세요!?”

바깥으로 나가려는 길, 도중에 한 시녀와 마주쳤다.

그녀가 기겁하며 유릭을 쳐다보았다.

“잠깐 운동이나 할까 해서.”

그녀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얼핏 보면 무서운 망나니를 보며 두려워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잘 생각하셨어요! 그래요, 매일 방에만 계시면 몸에도 안 좋답니다! 그렇지, 주방장에게 얘기해서 샌드위치라도 만들라고 할까요? 음료는 어떤 게 좋으세요?”

“됐어, 됐어.”

감격에 눈을 빛내는 시녀에게 손사래를 치며 유릭이 바깥으로 향했다.

그런데 놀라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도, 도련님!?”

“도련님이 밖으로 나오셨어!”

“오늘 무슨 중요한 행사 날인가!?”

마주치는 사용인 전부가 밖에 나온 유릭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다들 왜 저러는지 유릭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시기, 자신은 방에만 틀어박혀 서리 마법의 마법서를 탐독했다.

절대 빠질 수 없는 행사가 아니라면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다.

운동은커녕 정원을 산책하는 일조차 없었고, 그 시간도 아껴가며 서리 마법을 익히려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서리 마나를 그 몸에 깃들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모두 실패하고 피폐해져만 갔지만.

“시끄러우니까 호들갑 좀 피우지 마.”

유릭이 작은 한숨과 함께 대꾸를 하고는 별궁 바깥에 있는 야외수련장으로 향했다.

이제는 서리 마법엔 조금의 관심도 없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만큼이나 헛된 일이니까.

유릭은 염화신무에 모든 것을 걸어볼 생각이었다.

‘아무도 없네.’

이윽고 도착한 수련장엔 아무도 없었다.

유릭이 가볍게 몸을 풀고는 뜀박질을 시작했다.

규칙적인 숨을 내뱉으며 머릿속으로는 지난 일주일을 점검했다.

‘일단 혈은 모두 외웠어.’

지난 일주일, 유릭은 방을 벗어나지 않았다.

운동이 시급한 것은 알았지만 그 전에 무공의 기초라는 혈도를 모두 외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을 꼬박 쏟아 유릭은 수백에 달하는 혈을 모두 외울 수 있었다.

‘그냥 위치만 외우는 거였다면 하루 이틀이면 됐을 테지만.’

혈을 외운다는 것은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각각의 혈의 위치와 의미, 그것이 인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외부에서 혈을 짚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마나를 바늘처럼 가늘게 뽑아서 짚으면 된다고 했던가.’

이른바 점혈(點穴)이라고 하는 기술.

손가락 끝에서 마나를 가늘게 뽑아 상대의 혈을 짚는다.

단 이 경우 짚고자 하는 혈에 따라 바늘의 길이와 굵기 등을 모두 다르게 해줘야 한다고 하였다.

심지어 마나의 밀도조차 중요하다고.

이런 것까지 모두 익히느라 일주일이란 시간을 꼬박 새운 것이다.

‘오히려 일주일 만에 외운 게 대단할 정돈데.’

회귀 전의 권정우였다면, 아니 마나를 익힌 유릭 로스카였다고 해도 이 방대한 양을 일주일 내에 외울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의 자신은 익혔다.

지난 일주일로 유릭은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회귀 전보다 기억력이 훨씬 올라갔다.

‘염화신무 때문이겠지.’

원인이야 하나밖에 없다.

자신의 단전에 웅크리고 있는 1성의 염화신무.

이것을 얻은 후로 유릭은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기억력뿐만 아니라 몸에는 활력이 넘쳐흘렀고 감각은 더욱 섬세해졌다.

눈은 세상의 빛을 더욱 깊이 빨아들였고, 귀는 종이 쪼가리가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는 듯했다.

식사를 할 때마다 신체가 음식의 영양분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듯한 기분까지 들며, 급속도로 체력을 붙여가고 있었다.

일전에 느껴본 적 없던 급격한 변화.

‘이대로 꾸준히 몸을 만들자.’

지난 일주일은 책상머리에 붙어 있었지만 지금부턴 다르다.

혈도를 모두 익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무공 단련과 운기에 들어갈 차례였다.

그런데 그전에.

‘점혈…… 내 몸에 말고 남한테도 한번 써보고 싶은데.’

유화에게 배운 점혈법.

스스로의 몸에다가 손이 닿는 만큼 시험해 보긴 했다.

후유증이 없는 것들만 골라 사용해봤고, 실제로 제대로 성공해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움직이는 상대에게 써보지는 못했다.

그런 기술을 실전에 들고 갈 수는 없다.

‘그런데 마땅치가 않단 말이지.’

대뜸 시녀나 시종을 불러와 써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대련을 요청할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유릭이 달리고 있던 중.

“……해가 서쪽에서 뜰 일도 다 있군.”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곤 유릭의 눈이 크게 떠졌다.

“데릭?”

데릭 로스카.

자신의 쌍둥이 동생.

‘맞다. 쟤가 있었지?’

유릭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딱 좋은 상대가 찾아왔다.

건방진 동생은 옛날부터 형의 좋은 사냥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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