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33화 (33/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33화

33화. 그렇게 생각했다

스카디 왕국의 상업도시 그웬델.

황금가 골든하트는 10가문 중에서도 무척 특이한 통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간단히 얘기하면 의회제와 비슷한 구조.

당주가 있는 골든하트 가문이 있고 그밖에 2개의 가문과 3개의 왕국이 더해진다.

3가문의 가주와 3왕국의 국왕, 도합 6명이서 최고 회의를 거쳐 여러 가지 정책을 결정하는 곳이 황금가라는 곳이다.

다시 말해 황금가라는 이름은, 하나의 가문이 아니라 여러 가문이 결합된 세력 자체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 3왕국 중 한 곳이 지금 가는 그웬델이 속한 왕국인, 스카디 왕국.

“로스카에서 오신 분들이군요. 이 먼 땅까지 잘 찾아오셨습니다.”

유릭이 탄 마차가 경비병의 경례를 받으며 성문을 지나갔다.

덧붙여 아니스는 말을 타고 마차 옆을 호위하고 있고, 마부는 글렌이었다.

평소와 다른 평범한 복장에 복면도 벗고 있는 글렌. 마부라는 잡일을 떠맡은 것에 한마디 불평할 법한데도 묵묵히 마차를 끄는 그였다.

“시끌벅적하네. 이게 다 보물을 노리고 온 놈들이란 말이지?”

유릭이 창밖을 내다보며 얘기했다.

내부로 들어온 그웬델은 시장통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떠들썩했다.

황금가 골든하트가 공개한 보물 지도로 인해 온 대륙의 트레져 헌터들이 몰려든 상황.

참고로 트레져 헌터란 것은 딱 누구라고 정해져 있는 직업이 아니다. 누구라도 트레져 헌터가 될 수 있다.

보물에 눈이 멀기만 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 숙소나 제대로 잡을 수 있겠어?”

“걱정 마십시오. 이미 구해놨습니다.”

다그닥, 다그닥. 아니스가 가까이 말을 붙이며 대답했다.

“오, 그래?”

“로스카를 떠나기 전에 통신구로 미리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일정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습니다만 별문제 없을 겁니다.”

마차는 아니스가 예약한 숙소를 향해 천천히 달리는 중이었다.

복잡스러운 시내였기에 속도는 내지 못했지만 유릭은 느긋하기만 했다.

유유자적하기 그지없는 것이, 얼핏 보면 유랑 나온 한량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 어디서 도련님 하나가 찾아왔나 보군.

-분위기를 보면 꽤 높은 곳인 거 같은데…… 어디지?

그웬델에 모인 트레져 헌터…… 즉 떠돌이 용병들이나 모 가문의 사람들이 유릭의 마차를 보며 소곤거렸다.

마차엔 로스카의 깃발이나 문양 같은 것은 달지 않았고, 복장 역시 수수한 것으로 골라 입고 왔지만 그렇다고 안목 있는 이들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나른한 듯한 눈으로 도시를 살피는 백색 머리칼의 아이.

평범히 있으려고 해도 몸에 밴 사소한 몸짓이 지체 높은 귀족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옆에는 말을 탄 기사도 동행하고 있고, 심지어 몇몇 이들은 마부조차 범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

-쳇. 뭐 상관없어. 신분이 보물을 찾게 해주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조심해. 귀족 도련님이야 그냥 애송이라 쳐도 데리고 다니는 호위 기사들은 진짜니까.

경계심 짙은 그들을 지나 유릭의 마차가 여관에 도착했다.

‘달의 향기’라는 이름의 여관으로 유릭의 방은 최상층의 1인실이었다.

유릭이 방에서 잠시 기지개를 켜는 사이, 글렌과 아니스는 마차를 맡기고 종업원에게 말의 여물을 주문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방을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글렌과 아니스가 테이블 하나를 잡아놓은 상태였다.

“도련님, 내려오셨군요. 마침 여쭤보러 가려던 참입니다. 식사 먼저 하시겠습니까?”

“응.”

“많이 피곤하실 텐데 괜찮으십니까?”

“나는 잠보단 밥인가 봐. 배고파서 그런지 전혀 안 졸리네.”

“한창때의 남자아이들은 다 그런 법이죠.”

아니스가 작게 미소 짓더니 유릭의 의자를 빼주었다.

그러곤 종업원에게 뭐라 얘기하자, 곧바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언제 유릭이 내려오더라도 바로 음식을 내올 수 있게 준비를 시켰던 모양이었다.

“이제부턴 어떻게 할 거야?”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중을 받으며 유릭이 물었다.

“도련님께서 쉬시는 동안 간단히 정보를 얻으러 다녀올까 합니다.”

대답한 건 아니스가 아니라 글렌이었다.

“정보?”

“이런 건 좋은 곳이 있지요.”

글렌이 씨익 웃으며 엄지와 검지로 꼴깍 잔을 넘기는 동작을 해 보였다.

과연, 정보를 핑계로 한 잔 걸치고 오겠단 뜻이다.

‘아니, 핑계라고만 볼 순 없나.’

본디 작은 소문이든 커다란 정보든 술과 음식이 있는 자리에서 나돌게 마련이다.

그건 정우로서 살던 현대도 마찬가지고 이 세계도 다를 바 없었다.

“나도 동행할게.”

그때 구석에 있던 아니스가 불쑥 얘기했다.

“선배님이요? 이런 자리는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더니 웬일입니까?”

“도련님의 첫 임무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얼핏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그 눈이 열기를 띠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릭은, 정식은 아니어도 그녀의 제자와 다름없는 아이.

그 첫 임무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어색한 이유는 아니었다.

“주로 무력 담당이긴 하지만 나도 13번 기사단이다. 이런 형태의 정보 수집은 여러 번 해봤으니 방해가 되진 않을 거다.”

“……뭐 그러시다면야.”

글렌이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성격상 혼자 다니는 걸 선호하는 그였으나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명분도 없다.

그때 유릭이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뭐, 남자 혼자 불쑥 들이대는 것보단 남녀 혼성이 경계는 덜 받겠지. 특히 글렌 너는 여자들한텐 잘 먹히겠지만 남자들은 오히려 경계할 외모니까.”

“칭찬입니까?”

“칭찬이지 그럼.”

쯧. 글렌이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유릭이 여자였다면 저 말이 칭찬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남자인 유릭의 입에서 남자들은 경계할 외모라고 하는 게 어딜 봐서 칭찬이란 말인가?

“글렌. 이전부터 생각했지만 도련님께 너무 무례하지 않나?”

아니스가 도끼눈을 뜨며 얘기했다.

“어디가 말입니까. 나만큼 공손한 사람이 없는데.”

“너의 평소 행실을 나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간간이 도련님에 대한 무례가 엿보여. 도련님의 섀도우라면 좀 더 그에 걸맞은 의식을 가지도록.”

“참견 마십쇼.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잠시 동안 식탁 위로 파직거리는 신경전이 오고 갔다.

정작 가운데 있는 유릭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수프를 떠먹고 빵을 찢어 먹고 고기를 썰고, 보란 듯이 식사를 하고 있는 그였다.

이윽고 눈싸움하던 둘이 식사를 재개했다.

글렌은 조금 험해진 손놀림으로 식기를 달그락거렸고, 아니스는 평소와 같이 조용히 먹을 뿐이었다.

그러던 사이, 적당히 배를 채운 유릭이 입을 열었다.

“정보수집 말인데, 필요 없어. 좀만 쉬고 바로 출발할 거니까 괜한 짓 하지 말고 방에서 쉬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저흰 드래곤의 레어가 있다는 그 수정동굴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딱 이것뿐이다.

그웬델 근처에 수정동굴이 있고, 그 동굴 어딘가에 수정드래곤이 버리고 간 레어가 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심지어 수정동굴의 위치조차.

“내가 아니까 괜찮아.”

“예?”

글렌이 눈을 깜빡거렸다. 아니스 역시 새총 맞은 비둘기 같은 표정이 되었다.

“도련님이 그걸 어찌…….”

“아니, 뭐. 그래, 안다고 칩시다. 그래도 제대로 탐사를 하려면 대강 돌아가는 상황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어디까지는 탐사가 완료되었고 어디부터가 미답사 지역이고 이런 거라도 알아야 효율적이죠.”

딸각.

유릭이 수프를 떠먹던 스푼을 내려놓았다.

시끌벅적한 식당이었음에도 그 소리는 묘하게 두 사람의 귀를 파고들었다.

“필요 없어. 레어의 위치도 내가 알고 있거든.”

“…….”

“…….”

글렌과 아니스가 말을 잃었다. 놀란 듯한, 납득이 안 되는 듯한 묘한 표정.

유릭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다 먹었으니까 먼저 올라간다. 말했던 대로 괜히 싸돌아다니지 말고 얌전히 쉬고 있어. 한숨 자고 출발할 거니까.”

반론을 받을 생각은 없다는 듯, 유릭은 두 사람을 두고 방으로 올라왔다.

* * *

정보꾼들 사이에선 이런 격언이 있다고 한다.

아는 정보를 술술 부는 사람은 삼류다. 그리고 꼭꼭 숨기는 사람은 이류.

진정 일류의 정보꾼이란, 과하게 불지도 숨기지도 않는, 정보를 통제할 줄 아는 이.

……미래의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던 유릭이 떠올린 격언이었다.

‘이런다고 회귀했다는 게 들키는 것도 아니니까.’

괜히 쓸데없는 것까지 숨긴다고 끙끙거리지 말고, 오픈할 건 오픈하면서 할 일이나 빠르게 하자.

애초에 맛이 간 놈이 아니고서야 이 상황에서 ‘도련님이 회귀를 하셨나!?’ 하고 생각할 리가 없다.

오히려…….

“도련님. 레어의 위치는 어떻게 아신 겁니까? 혹시 저 말고 다른 정보원이라도?”

언제 왔는지,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글렌이 나타났다.

그리고 대차게 착각을 해주었다.

그래, 저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

“있다고 하면 어쩔래?”

유릭이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함께 협의하여 정보를 분석하면 효율이 올라갈 거라 생각합니다만.”

“다 뭉개서 너 말곤 의지할 수 없게 고립시킬까 생각하는 건 아니고?”

“…….”

정곡을 찔렸는지 글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정보를 물어다 주는 이가 본인 하나라면 주인이든 뭐든 얼마든지 허수아비처럼 조종할 수 있게 된다.

글렌이라면 충분히 생각할 법한 일이었다.

‘이래서 뭐든 교차 검증이 중요하다니까.’

의심받을 걸 알면서도 레어의 정보를 푼 이유였다.

가문 내에서만 있을 땐 상관없었지만, 앞으론 임무를 받아 돌아다닐 일이 많다.

그렇게 되면 더더욱 정보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 의지할 정보원이 글렌 밖에 없다면, 녀석은 분명 무슨 일을 꾸밀 것이다.

‘당장은 이걸로 견제가 됐을 테고.’

자신에게 또 다른 정보원이 있다고 착각을 시키면, 글렌도 조심스러워진다.

이게 유릭이 노린 효과였다.

물론 레어의 탐사가 더욱 빨라지는 것도 있고.

‘기회가 되면 진짜 다른 정보 루트도 만들어놔야지.’

그런 속내를 숨긴 채 유릭이 태연히 얘기했다.

“정 알고 싶으면 직접 찾아보든가. 내기라도 해볼까?”

잠시 침묵하던 글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당신에게 하는 단 한 번의 설욕전을 그런 잔 승부로 날릴 순 없죠.”

설욕을 다짐한 이후 글렌은 한 번도 유릭에게 대련이나 승부를 신청하지 않았다.

물어보니 최고의 상황에서 최고의 상태인 자신을 쓰러뜨리고 싶다나.

뭐 본인만의 집착점이 있는 모양이다.

대충 냉면의 계란은 마지막까지 아껴 먹는 타입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알아들었으면 방으로 돌아가. 마차 끄느라 힘들었을 거 아냐.”

“그 정도로 피로가 쌓일 만큼 나약하게 단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일을 앞두곤 쉬어줘야지. 나도 자게 좀 가라.”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글렌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곤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저거 저거, 자라는 잠은 안 자고 내내 주변을 찾아다니겠구만.

실체 없는 자신의 정보원을 찾겠다고 뜬눈으로 지새울 게 확실했다.

“머리가 너무 좋아도 몸이 고생하네.”

유릭이 기지개를 켜고는 침대로 파고들었다. 보들 거리는 이불이 기분 좋게 그의 볼을 쓸었다.

잠깐 눈을 붙여 여독을 풀고, 일어나는 즉시 수정드래곤의 레어로 직행.

거기 있는 보물을 있는 대로 쓸어 모아 도시를 뜨면 그걸로 끝이다.

떨어진 보물을 그저 줍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

간단한 임무다.

‘오늘 새벽이나 내일 아침이면 귀갓길에 오를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