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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42화 (42/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42화

42화. 황색 지대에

가문으로 돌아올 때쯤 유릭의 상처는 완전히 나아 있었다.

거칠게 찢겨 나가, 일부는 뼈까지 보일 정도로 깊이 입은 상처였으나 시간이 지나니 흉터 하나 남지 않았다.

염화신무를 익히며 활성화된 신진대사에서 오는 회복력과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비법으로 제조한 고약 덕분이었다.

“아, 성문이 보입니다.”

마차 바깥에서 들리는 아니스의 말에 유릭이 창을 열었다.

뺨과 이마를 스치는 바람결을 느끼며 앞을 보니, 멀리서도 보이는 웅장한 겨울의 성이 보였다.

그 성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수많은 길과 건물들, 그리고 영지를 감싸고 있는 외성벽.

“헉! 유릭 공자님이십니까? 공자님의 무사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성문의 경비병이 바짝 군기가 든 자세로 시립하더니 경례를 하였다.

뭔가 평소보다도 긴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화장실이라도 급한가.’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유릭의 마차가 느긋하게 성문을 지나 영지로 들어갔다.

영지 안에선 여행할 때와 달리 빠르게 달리진 못한다.

달그락. 천천히 움직이는 마차 안에서 유릭이 돌아온 고향의 공기를 맡았다.

영지 내를 가로질러 성으로 향하는 길.

—저기 봐…… 공자님이…….

—헉…… 정말로…….

그런데 묘한 시선과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유릭이 갸웃거렸다.

왜 저러지?

너무 멀고 작은 소리인 데다, 마차와 말발굽 소리 탓에 정확히 듣진 못했지만, 자신을 향한 관심임은 확실했다.

“아니스, 뭔 일 있어?”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스에게 물어봤지만 당연히 알 리가 없다.

그녀 역시 방금까지 유릭과 함께 영지를 떠나 있던 몸이 아닌가.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두 사람.

그 궁금증은 성에 도착하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유릭 공자님께서 도착하셨다! 식의 준비를 서둘러!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사절들에게도 알려라!”

유릭이 도착하자마자 분주해진 성안.

무슨 행사라도 하는 듯 사용인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릭, 잘 왔다. 고생 많았어. 아니스도 수고 많았어.”

멈춘 마차에서 내리는 유릭을 엘린이 맞았다.

얼굴 한가득 짓고 있는 미소.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히 귀여운 동생의 귀환을 기뻐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무슨 일 있어?”

유릭이 묻자 엘린이 뭘 시치미를 떼냐는 듯 유릭의 이마를 톡 두드렸다.

“당연히 네 수여식이지. 큰 공을 세웠다며?”

“수여식?”

유릭이 두어 번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곤 깨달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수여식이라니, 스카디의 왕비가 얘기한 그 훈장의 건 말인가?

그거라면 델라임 자작가로 보낸다고 했었는데?

‘그걸 어떻게……. 혹시 누나한테 따로 연락이 갔고 누나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가져온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엘린의 말이 그 생각을 부정했다.

“저번 주에 스카디에서 사절단이 왔어. 너에게 줄 훈장을 가져왔다면서. 무려 왕비가 직접 보낸 거라고 하던걸?”

“사절단……이 여기로?”

“응.”

그제야 유릭은 모든 것을 깨닫고는 눈가를 짚었다.

‘다 알고 있었구나.’

그때 달의 향기 여관에서 미레유 왕비와 만났을 때.

왕비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델라임 자작가라는 건 거짓이고, 사실은 로스카의 사람이라는 것을.

‘하긴, 왕비쯤 되는 사람이 속는 것도 이상하지.’

어린 리헨델 왕자나 바깥일에 무지한 노기사 파비스라면 속을 만하다.

하지만 일국의 섭정을 맡고 있는 왕비라면 충분히 눈치채고도 남았다.

‘특히 스카디는 황금가의 일원이기도 하니까.’

황금가는 기본적으로 상행과 계약을 중심으로 한 이익집단이다.

때문에 정보력에 있어선 평균을 웃도는 월등함이 있었다.

그건 그들의 소속 중 하나인 스카디 왕국 역시 마찬가지일 터.

‘오히려 잘됐어. 스카디 왕국을 시작으로 새로운 정보 루트를 구상해 봐야지.’

훈장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렴풋하게 떠올리던 것이지만, 그쪽에 정보 루트를 만들어 놓는 것도 좋아 보였다.

글렌이나 13기사단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루트.

왕비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면 든든하다.

이번 임무는 글렌이 있었기에 이런 쪽으로 움직이진 못했지만, 다음엔 혼자서 스카디에 들러봐야지.

“어서 준비하렴. 너도 옷이니 뭐니 준비할 게 많잖니.”

순간 유릭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성인식 때 시녀들에게 시달렸던 일이었다.

“나 지금 막 도착해서 피곤한데…… 대충 차려입고 나올게.”

“무슨 소리! 타국의 사절들도 있는 자린데 쫙 빼입고 와야지.”

그러나 그런 말이 엘린에게 통할 리가 만무.

“아니, 잠-”

유릭은 어느새 둘러싼 시녀들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환복을 위해 끌려갔다.

수여식이 시작하려면 저녁때는 되어야겠지만, 어차피 유릭의 준비도 씻고 갈아입고 하려면 그만큼 걸릴 테니까.

그렇게 유릭을 보내놓고, 엘린이 아니스를 보았다.

“어땠어? 사절단한테 대강의 얘기는 들었는데.”

“엘가이아 로젠베르그를 만났습니다.”

방금까지 싱글벙글했던 엘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왔다.

“엘가이아? 그 소드 마스터?”

대륙에 존재하는 마스터들의 이름은 무척이나 유명하며 엘린도 모두 꿰고 있었다.

마스터에 올랐다는 사실을 숨기고 은거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은 온 대륙에서 주시하는 대상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대칭급의 전력으로 측정되는 이들이 그들이었으니까.

“예. 아니 만났다고 하는 말은 어폐가 있군요. 꽤 떨어진 거리에서 저희를 요격하려 했습니다.”

“그런가…… 과연, 스카디에서 사절까지 보내면서 훈장을 보낼 만하네.”

굳어 있던 엘린의 표정이 점차 풀려왔다.

마스터를 만났다는 사실엔 놀랐으나, 그래도 어찌 됐든 유릭은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

결과가 좋게 끝났단 말이겠지.

“유릭이 아니스 널 데려간 게 정답이었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그놈한테 죽…… 당했을지도 모르니까.”

엘린이 안도하며 아니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아니스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니었어도 도련님이라면 괜찮았을 겁니다.”

“응?”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엘린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스가 입을 열었다.

숨길 생각 따위 없다. 아니, 오히려 얘기하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나도 꼭 듣고 싶군.”

그때 굵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린과 아니스가 깜짝 놀라 움찔거리며 돌아보았다.

품이 넓은 옷차림. 양 소매 속에 손을 넣은 채 그녀들에게 다가오는 노인.

그가 거처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엘린이 크게 놀랐다.

“하, 할아버님?”

“태상 가주님을 뵙습니다.”

로스카의 태상 가주이자, 유릭의 조부인 레오폴딘이었다.

* * *

수여식은 야외의 파티장에서 행해졌다.

성인식과 달리 대규모로 치러지는 행사가 아니다.

성에서 근무하는 이들이나 가문의 몇몇 인물들만 참석하여 조촐히 축하하는 자리.

“……위와 같은 공을 세웠기에 스카디 왕국의 이름으로 훈장을 수여하는 바입니다.”

짝짝짝짝짝짝!

그러나 박수를 치는 이들의 면면은 절대 조촐하다 얘기할 수 없었다.

각 부서의 부서장들이나 기사단장들, 그리고 로스카의 방계들과 장로들.

사실상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라 봐도 되었다.

“도련님이 대단하시군. 첫 임무라고 했던가?”

“첫 임무고 뭐고 바로 올해 성인식을 치렀지 않은가. 가문 바깥에 나가는 것조차 처음일 텐데.”

“내가 첫 임무 땐 뭘 했더라? 근처 고블린이나 잡으러 갔던 거 같은데.”

그들이 놀란 얼굴로 유릭의 칭찬을 하는 것을 레오폴딘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대단한 공을 세우셨습니다.”

“운이 좋았지.”

한쪽에선 그의 자랑스러운 손자가 손님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었다.

그걸 보며 레오폴딘이 아까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엘가이아 경의 검을 막아내셨습니다.

—막아내? 마스터의 검을?

—예. 그 대가로 크게 다치긴 했지만 다행히 후유증 없이 완치했습니다.

소드 마스터의 검을 막아냈다.

비록 직접 휘두른 것이 아니라 멀리서 날린 검기라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갓 성인이 된 아이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걸 유릭은 해낸 것이다.

—크하하하! 고 녀석 참 물건이구나! 엘린, 참으로 다행이겠구나.

—예? 제가요?

—유릭에게 있던 것이 화염의 재능이 아니라 얼음의 재능이었다면 네 자리도 위협받았을 것이 아니냐.

—만약 그것으로 가문이 더욱 반석에 오르게 된다면 저는 기꺼이 그리할 것입니다.

레오폴딘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손자 손녀들은 참으로 착하게 자랐다.

그 유대감을 잃지 않는다면 가문의 미래는 더욱 탄탄해지겠지.

“발렌티나 고것이 자식 농사는 잘 지었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딘?”

“맞습니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딘이란 이름의 사내가 레오폴딘의 뒤에 서 있었다.

레오폴딘도 꽤 키가 큰 편인데 딘이란 남자는 그보다도 더욱 컸다.

거인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거대한 덩치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 발렌티나를 기른 것이 나이니 결국 내 자식 농사가 성공한 것이라 봐도 되렷다?”

“말씀대로입니다.”

“크하하하하!”

딘은 사무적으로 대답했을 뿐이지만 레오폴딘은 그것에도 크게 기꺼워했다.

사실 지금의 그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껄껄 웃을 만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유릭 공자의 재능은 확실히 범상치 않습니다. 어째서 그만한 불의 재능이 로스카에서 태어난 것일까요?”

딘이 물었다.

어조는 여전히 사무적이었지만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것이기도 했다.

레오폴딘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전대 가주였던 그는 가주에게만 내려오는 비밀, 초대 가주가 불도 쓰던 남자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딘이 묻고 있는 것은 그런 원인 규명 따위가 아니리라.

원인 같은 지나간 ‘과거’의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이번에야말로 아칸을 밟고 올라서란 뜻이 아니겠느냐?”

이 시대에 초대의 불꽃이 나타난 진정한 이유.

운명의 신이 점지하는 ‘미래’의 일.

“유릭은 장래에 반드시 거대한 인물이 될 거다. 이 북쪽 땅의 왕 정도는 작게 보일 만한 거대한 인물이.”

—하지만 그 아이는 가주 자리를 바라지 않을 겁니다. 제 동생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애한텐 이 가문이 좁게 느껴질 거예요.

떠오른 것은 아까 들었던 엘린의 말.

그 말이 맞다. 빙하백가의 가주 자리는 엘린에게 맡겨놓으면 된다.

유릭 그 아이는 이 땅에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저 넓은 대륙에서 마음껏 활약하게 하는 것이 옳다.

엘린이 가문을 지키고 유릭이 대륙에서 그 이름을 드높인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며 가보 이솔렛을 들고 있는 데릭이 그 사이를 받치는 기둥이 되어주고.

완벽하다.

자신의 자식 세대는 발렌티나가 홀로 너무 뛰어나 뭘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반대로 손주 세대는 셋의 역할 분담이 너무나 완벽했다.

뭘 더할 필요도 뺄 필요도 없이 완전무결한.

이걸로 로스카는 향후 수십 년은 안정적이리라.

“할아버지.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때 유릭이 잔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향이 좋은 포도주가 반쯤 차 있는 잔이었다.

그에게 다가온 유릭이 잔을 건네다, 잠시 멈칫하였다.

그 눈이 한 박자 늦게 레오폴딘의 뒤에 있는 딘에게 향했다.

“……이런, 혼자 계시는 줄 알고 두 잔만 가져왔는데.”

“저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그림자라 생각해 주십시오.”

유릭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혹시 13기사단의?”

“단장인 딘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자님.”

레오폴딘이 피식 웃으며 유릭이 건네는 잔을 받았다.

“용케 눈치챘구나.”

“직접 보고도 얼떨떨합니다. 분명 눈앞에 이렇게 커다란 남자가 보이는데도 기척이 전혀 없군요.”

“그리 감탄할 것도 없다. 이것밖에 재주가 없는 사내이니.”

레오폴딘이 장난스레 얘기하였지만 딘은 우직하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후우. 유릭이 살짝 숨을 내쉬었다.

신경 쓰지 말라고 하였으니 그렇게 하면 될 테지.

그가 레오폴딘과 잔을 마주쳤다.

“할아버지.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뭐든지 말해보거라. 오늘은 무척 기분이 좋으니 다 들어주마. 하하하!”

레오폴딘은 정말로 귀여운 손자에게 뭐든지 줄 마음이 들었다.

돈이든 보석이든, 가문의 창고를 개방해 달라는 얘기든.

그러나 유릭의 부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칠색 마경의 황색 지대까지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마경의, 더욱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말.

예상외의 부탁에 레오폴딘이 눈을 크게 떴다.

“황색 지대에 말이냐?”

“예.”

유릭이 끄덕였다.

‘이런 때가 아니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지.’

황색 지대에 있을 영약을 찾으러 가는 일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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