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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57화 (57/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57화

57화. 한꺼번에

“너 여기서 뭐 해?”

검게 염색한 데릭의 머리를 보며 유릭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데릭이 다시 한번 얘기했다.

“나도 데려가라.”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유릭의 임무에 자신도 데려가 달라는 얘기.

그것 자체는 크게 문제 될 건 없는 이야기다. 위에 얘기해 허가만 받으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따라오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

유릭이 물음에 데릭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까지는 짐작이 간다.

안 그래도 최근에 고민이 많아 보이던 녀석이 아니던가.

모르겠는 건 그 고민이랑 자신의 임무랑 무슨 상관이 있냐는 거다.

“나한테 이 임무가 내려온 이유가 내가 불의 마나를 써서 그런 거라는 거 몰라?”

“알고 있다만.”

“그럼 평범하게 얼음을 쓰는 너는 오면 안 되잖아. 들킬 위험이 커지니까.”

“…….”

너무나 깔끔한 정론에 데릭은 받아칠 말도 없었다.

“이유도 말 못 하고 임무에 적절한 인선도 아니고……. 거기다 네 마검 잘못 썼다간 한 방에 들키는 거 아냐? 눈썰미 있는 녀석은 바로 알 텐데. 우리 집 가보라고.”

데릭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유릭의 말이 모두 맞다.

그가 자신을 데려갈 이유 따윈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여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유릭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곤 문을 열어 마차에 올랐다.

데릭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배웅이라도 하려고 돌아보았다.

그런데, 마차 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

“뭐 해, 안 타고.”

“어?”

데릭의 놀란 듯 반문했다.

유릭은 문을 닫지 않고 그가 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회귀 전을 생각하면 예쁠 것도 없는 놈이지만.’

회귀 전의 그와 데릭의 관계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무능하고 매사에 자신이 없던 유릭과 그런 유릭을 멸시하는 데릭.

유릭은 열등감에 데릭을 동생처럼 대하지 못했고, 데릭은 유릭을 형 취급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회귀를 한 지금, 둘의 관계성은 180도 달라졌다.

회귀 전과 회귀 후의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듯이, 데릭 역시 전혀 달랐다.

‘회귀 전에 20년간 얼굴 본 시간보다 회귀하고 5년간 본 시간이 훨씬 길 정도니.’

이미 유릭의 기억 속엔 회귀 전의 데릭보다 회귀 후의 데릭이 더욱 많이 비칠 정도였다.

“방해되면 버리고 갈 거니까 알아서 하고.”

“……고맙다.”

데릭이 마차에 올랐다.

그제야 마차의 문이 닫히고, 말이 투레질을 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 * *

목적지인 카자르 왕국까진 거리가 상당하다.

단순히 이동만 하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중간중간 마차도 바꾸고 복장도 바꾸며 내려갈 생각이라 더더욱 여정이 길어질 것이었다.

첫 번째 종착점으로 삼은 도시로 향하며 유릭이 임무 내용을 브리핑했다.

“장소는 카자르 왕국. 아칸의 영향력이 짙은 사막왕국이야. 알고 있지?”

“그곳 왕의…… 아니, 카자르에선 왕이 아니라 샤(Shah)라고 하던가? 그곳 샤의 딸이 아칸 가주의 8번째 처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모래술사라는 특이한 녀석들이 판치는 곳이라는 것도.”

“맞아. 사막에만 있는 독특한 술사들이지.”

모래술사란 말 그대로 모래를 사용해 술법을 부리는 자들을 말한다.

주로 사막에서 활동하는 이들로 사막왕국인 카자르 역시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흔히 비유하기를 사막에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물속에서 고래와 싸우는 것과 같다던가.

“그래서 임무는?”

“카자르 인근에서 고의로 사막을 넓히는 자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정황이 들어왔어.”

“사막을?”

“범인은 당연히 모래술사들이겠지. 사막이 넓어져서 좋아할 놈들은 걔네밖에 없으니까.”

“……문제는 ‘어느 편’의 모래술사냐는 거군.”

“맞아.”

아칸이 위치한 남부 영역은 전반적으로 불의 기운이 짙게 나타난다.

그 탓에 산천초목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라 매년 조금씩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칸에선 이를 막기 위해 꾸준히 인적ㆍ물적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과거 로스카까지 와서 숲의 근원을 빼가려던 귀염대 역시 아칸의 공작부대가 아니던가.

“사막화를 진행하는 모래술사들이 별개의 목적을 가진 독립적인 집단인지 아니면 왕국의 입김이 닿는 조직인지 확인하라는 건가?”

“그래. 정확해.”

적의 적은 아군이라 하였으니.

아칸이 질색하는 일을 꾸미고 있는 그들은 로스카에겐 친구가 될 수 있는 이들이다.

다만 친구가 된다 하더라도 신원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순 없는 법이다.

특히 놈들이 카자르 왕국 측의 지원을 받는 조직이라고 한다면?

“일이 커지겠군.”

“아칸의 입장에선 뒤통수를 맞은 셈이니까.”

카자르 왕국은 아칸과 끈끈한 정략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사실 끈끈한 건 겉뿐이고 뒤에선 몰래 아칸이 싫어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면?

내분을 넘어 어쩌면 전쟁이 날지도 모를 정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칸의 땅은 조금씩 조금씩 사막에 먹히고 있었으니까.

“사막화가 자연 현상이 아니라면 영토 침략으로 걸고넘어질 수도 있어. 그러면 뭐겠어? 바로 전쟁이지.”

“……그렇게 중요한 임무를 우리한테 맡겼다고?”

데릭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릭이 받은 것이 정체를 숨긴 첩보 활동이란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머리도 미리 염색해 놓은 것이고.

그런데 첩보 내용이 이 정도로 중요한 것일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애들 둘이서 괜찮은 것일까?

“말은 그렇게 해도 우리가 할 일은 대강 분위기만 살피는 정도니까 문제없어.”

“그런가.”

유릭이 얘기하니 데릭의 표정이 조금 풀려왔다.

그리고 데릭은 그런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유릭이 괜찮다는 한마디 했다고 이렇게 안심감이 들다니.

평소 자기 주관이 뚜렷했던 자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 자신이 이렇게 나약해졌단 말인가?

‘정신 차리자.’

데릭이 입을 다물며 결의를 다졌다.

언제까지고 지나간 일로 우울해 있을 때가 아니다.

정보 수집뿐이라곤 하지만 자신들은 적진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니까.

“…….”

유릭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그런 데릭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늘게 뜬 눈이 데릭의 상태를 살핀다.

과연 지금의 녀석을 사막까지 데려가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그 전에 내려서 돌아가게 해야 하는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은 많으니까,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고.”

중의적인 뜻을 가진 말이었지만, 데릭은 그중 하나의 의미밖에 깨닫지 못했다.

“그래.”

사막에 들어가면 어떤 방침으로 행동을 취할 것인지 상의를 이어간다.

그런 와중에도 둘을 태운 마차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 * *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끝없는 바다처럼 이어진 사막을 세 마리의 낙타가 횡단하고 있었다.

그 등에는 유릭과 데릭, 그리고 글렌이 타고 있었다.

‘결국 데려오게 됐군.’

중간에라도 데릭을 돌려보내야 하나 고민을 했었지만, 지켜보니 괜찮을 것 같아서 데려왔다.

스스로 정신을 차리려고 하고 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검 이솔렛을 든 5성 검사의 실력은 무시할 만한 전력이 아니다.

적진에서 수행하는 임무인 만큼 전력은 높을수록 좋았다.

‘단순히 안전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운신의 폭이 넓어지니까.’

전력이 오를수록 퇴각할 때의 힘도 늘어난다.

그 말은 곧 적진에 더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고, 더 대담히 행동할 수 있단 뜻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카자르의 수도입니다.”

입가까지 가리던 터번을 내리며 글렌이 얘기했다.

“얼마나 더 걸리지?”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진행 방향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보이는 건 모래의 산뿐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오전 중에는 도착할 겁니다.”

“후우…… 이제야 물도 마음껏 들이켤 수 있겠군.”

카자르의 수도는 사막에서 가장 거대한 오아시스에 세워졌다 하였다.

그곳까지 가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연히 물을 들이켜는 일이다.

식수를 챙겨오긴 했지만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어, 벌써 며칠째 제대로 마시지 못한 그들이었다.

“넌 괜찮냐?”

“문제없다.”

데릭에게도 말을 걸어보았지만 딱딱한 대답만 들려올 뿐이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데릭 역시 입술이 꽤나 갈라져 있다.

아마 목이 타는 걸 애써 참고 있는 거겠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가로지르며 일행이 카자르의 수도로 향했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과 모래가 반사하는 뜨거운 열기.

몸이 계란프라이처럼 퍼져 버릴 것 같은 열기다.

그래도 셋 모두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사람다운 꼴을 유지하며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때.

-어르신.

‘……나도 느꼈어.’

짐가방에 들어 있는 메르가 말을 검과 동시에, 유릭도 느껴졌다.

땅에서 올라오는 미약한 진동. 대기를 타고 전해지는 작은 소리들.

-두두두두두두!

옆쪽에 봉긋하게 올라온 언덕을 따라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조금 후 그곳에서 펄럭이는 깃발 하나가 보였다.

다 헤진 찢어진 천에 붉은 전갈이 그려진 깃발.

‘이런 건 또 오랜만이군. 아니지 회귀 후엔 처음인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도적 떼였다.

“스콜피온이군요.”

글렌이 찡그린 표정으로 얘기했다.

“카자르에서, 아니 이 사막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도적단입니다. 일개 도적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강한 데다 신출귀몰해서 카자르나 아칸도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하죠.”

“도적이라…….”

유릭이 턱을 쓰다듬었다.

회귀 이후론 처음 겪는 일이지만 나름 익숙한 일이었다.

회귀 전 용병 생활을 할 땐 지긋지긋하게 만나던 것이 도적들이니까.

-두다다다다다!

-뿌우우우우!

그러는 사이에도 놈들은 유릭 일행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일행을 포위하곤 원을 그리며 달린다.

길게 울리는 뿔피리는 훈련을 받지 않은 유릭 일행의 낙타를 겁주어 굳게 만들었다.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낙타의 다리는 쇠심줄처럼 꿈쩍도 하지 않게 되었다.

“크하하하하!”

부하들은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 두목으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왔다.

대충 비뚤게 쓴 터번에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긴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우선 가진 것부터 다 내려놔 봐라.”

길게 휘어진 환도로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놈이 얘기했다.

유릭이 놈들의 깃발을 힐긋 했다.

스콜피온이라면 유릭도 들어본 적이 있는 대도적단이다.

그런 도적단의 두목이 저런 놈일 리 없으니, 두목이 아니라 조장 정도 되려나?

“통행료를 내라면 내지. 얼마면 되지?”

“어이쿠, 우리 여행자님이 귓구멍이 막혔나? 전부 내놓으라는 말이 들리지 않나 봐?”

“내가 그 뒷구멍 좀 뚫어줄까?”

“뒤가 아니라 귀 인마!”

“크하하하하하!”

조장 도적과 그 부하들이 모래 산이 떠나가라 웃어젖혔다.

일행을 포위한 낙타들이 계속 달리는 소리까지 섞여 그것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

“어떻게 할까요.”

데릭과 글렌의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고.

“더워 죽겠는데 괜히 또 움직이게 하네.”

유릭이 투덜거리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걸 항전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조장의 눈이 한층 음험해지고 부하들 역시 더욱 기세를 올려댔다.

-두두두두두두두!

피어오르는 모래 먼지로 거의 소용돌이를 만들 기세였다.

그 가운데서 유릭이 검을 잡았다.

연녹색의 방울이 달린 손잡이.

그것이 자비 없이 뽑혀 나왔고.

콰앙-!

웅크리던 바람이 해방되듯,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터져 나갔다.

“뭣……!”

낙타를 타고 돌던 이들의 시야가 순간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본 마지막 풍경이 되었다.

촤촤촤촤촤촤촤촤!

엑셀레아가 터뜨린 칼바람이 그물과 같은 모양으로 방사되며, 도적들의 팔이나 다리, 혹은 목 따위가 허공을 수놓았다.

일순간 허공에 멈춘 듯이 보인 피보라와 사체 조각들이.

후두두두둑.

일제히 떨어져 내렸다.

떨어진 그것들이 황색 모래밭에 흉측한 붉은 원을 그렸다.

남은 건 운 좋게 칼바람을 피해 순식간에 달아나기 시작한 몇 마리의 낙타들과.

“아…… 으…….”

“…….”

조장이라 불린 사내.

그리고 조장의 뒷목을 잡고 뒤로 빠진 정체불명의 황색 로브도 있었다.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덤벼.”

유릭이 목을 덮은 하얀 천을 입가까지 올리며 얘기했고, 그걸 보는 조장이 흠칫 몸을 떨었다.

유릭의 별것 아닌 동작 하나하나가 이미 공포로 각인된 것.

그걸 보며 글렌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건 다 조지기 전에 하는 대사 아닙니까?”

지당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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