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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58화 (58/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58화

58화. 당장 돌려보내야

철푸덕.

“히익!”

황색 로브가 조장을 아무렇게나 땅에 내던졌다.

그걸 불평할 겨를도 없이 조장은 네발로 기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쳤다.

순간 데릭이 놈을 쫓으려 발을 디뎠지만.

쿠르르릉!

어느새 솟아오른 모래의 가시가 데릭의 목을 스쳤다.

가까스로 고개를 틀어 피한 데릭의 등골에 땀이 흘러내렸다.

“흥.”

황색 로브가 그걸 보며 코웃음 쳤다.

호람 자르파. 스콜피온 도적단의 모래술사로, 6성의 경지에 있는 술사였다.

“어디 보자…… 제법 실력이 있는 모양이구나.”

로브 안에서 고목처럼 갈라진 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얼핏 비치는 얼굴은 잔뜩 주름져 놈의 나이를 짐작게 한다.

그러나 형형히 빛나는 눈빛만은 여전히 현역이었다.

“웬 보호자가 하나 따라와 있었군.”

“보호자라? 나를 말하는 것이더냐?”

“그럼 아냐?”

“맞지, 맞아. 킥킥킥, 눈치가 좋은 애송이로구나.”

유릭 일행은 사막에 들어온 직후부터 주시의 대상이었다.

대충 흔한 복장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그 외모와 행동거지에서 숨길 수 없는 귀티가 흘러나온다.

누가 봐도 여행 중인 어딘가의 도련님.

사막에서 두려울 게 없는 도적단인 그들이 그런 일행을 보고 지나칠 리 없었다.

“5성 둘과 6성 하나라……. 과연. 괜히 보물을 걸치고 다니는 것이 아니구나. 제법 하는 것들이야. 어딘가 무가(武家)의 사람인가?”

호람의 눈엔 화려한 금발을 가진 글렌 쪽이 도련님으로 보였다.

도련님인 글렌의 경지는 6성. 양옆에 있는 흑발형제의 경지는 둘 다 5성.

호람이 파악한 유릭 일행의 경지였다.

“혼자서 자신 있어? 덤벼볼래?”

“흥, 시건방진 녀석이.”

유릭의 도발에 호람이 같잖다는 듯이 웃더니 손바닥을 올렸다.

후우웅-

그 손위에 작은 모래폭풍이 일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쿠웅!

솨아아아아!

땅에서 거대한 탑이 솟아났다.

동그란 구슬이 몇 개나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생긴, 끝부분은 바늘과 같이 뾰족한.

아니, 그건 탑이 아니었다.

“사막전갈!”

글렌의 외침과 동시에 꼬리가 낙뢰처럼 그들을 덮쳤다.

쿠구구궁!

단두대처럼 떨어지는 꼬리를 피해 일행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꼬리의 여파로 생겨난 모래의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그사이.

“잘 있어라!”

호람은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언제 불렀는지 어스웜의 위에 꼿꼿이 선 자세로, 그러나 거리만은 쏜살같이 멀어졌다.

-걱정 말거라. 네놈들 검을 회수하러 내 반드시 다시 찾아올 터이니! 킥킥킥킥킥킥!

이제는 목소리마저 메아리처럼 멀게만 들려온다.

유릭이 이를 갈며 당장에 땅을 밟았다.

<태양천보>.

그러나 보법을 밟아도 헤엄치는 어스웜에 올라탄 녀석을 쫓을 수는 없었다.

보법은 어디까지나 풋워크.

전투에서의 발동작이지 달리기를 위한 동작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가지.”

그런 유릭을 지나쳐 데릭의 신형이 쑤욱 나아갔다.

“너-”

유릭이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보법과 다르게 온전히 빠른 달리기를 위한 발놀림.

이 세계에선 보통 주법(走法)이라고 부르고, 유화에게 들은 바론 무림에선 경신법이라 부르는 기술이었다.

데릭의 신형이 표홀히 뛰어오르며 호람을 쫓는다.

모래사장에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 것이 상당한 수준의 주법이었다.

“언제 그런 기술을 익힌 거야?”

“어스웜을 죽이고 발을 묶어 놓을 테니 빨리 쫓아와라!”

호람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데릭이 빠르게 몸을 날렸다.

이젠 꼬리뿐만 아니라 몸까지 튀어나온 사막전갈이 데릭의 앞을 막으려 하였으나.

화륵!

눈앞까지 당도한 불꽃 탓에 데릭을 막을 수 없었다.

콰앙!

“치이이이익!”

머리를 강타한 불덩어리에 사막전갈이 마구 고개를 저었다.

머리에 붙으려 하는 불꽃을 강제로 꺼뜨리려 모래에 마구 비볐다.

“글렌, 데릭을 쫓아갈 수 있겠어?”

“저도 발재간엔 자신 있는 편입니다만 저 정도는 안 됩니다.”

“그러면 다른 일을 부탁하지. 도망친 사내 하나 있지?”

“조장이라던 자 말입니까?”

“그놈을 처리하고 와.”

“예.”

글렌이 곧바로 조장의 발자국이 찍힌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면-”

유릭이 사막전갈을 바라보았다.

탑과 같은 꼬리를 가진 거대한 전갈.

“후딱 처리하고 가볼까.”

쿠웅-!

유릭이 땅을 밟았다.

모래가 들썩인다.

태양천보의 위압이 사위를 압박하며 사막전갈을 내리눌렀다.

그 걸음의 대상은 인간에 한하지 않았으니.

“치이이!”

거대한 꼬리를 가진 사막전갈이 압박감을 떨쳐내려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 * *

로스카의 서고에는 다양한 비전서가 있다.

그중 주법에 관한 것만 뽑아도 책장 하나 정도는 가득 메울 정도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주법들 중에서 최상위로 치는 비전은 세 가지.

데릭이 배운 것은 그중에서도 몸을 가볍게 만드는 쪽으로 특화된 것으로, 숙부인 발터 로스카가 익힌 것이기도 했다.

데릭에게는 가볍고 빠른 몸놀림이 어울린다 하여 발터가 직접 가르쳐준 것이다.

‘보인다.’

이윽고 데릭의 눈에 도주하는 호람과 어스웜이 들어왔다.

어스웜은 땅속에서 머리만 살짝 드러낸 상태였고, 호람이 그 위에 꼿꼿이 서 있었다.

‘따라잡을 필요는 없다.’

데릭이 검 손잡이에 가볍게 손을 가져갔다.

레이스를 하는 것도 아니니 굳이 따라잡을 필요는 없다.

이 지상에는 어스웜의 모습이 머리 조금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선 길게 이어져 있을 터.

그 몸통만 베어내면 된다.

“쯧!”

그때 데릭을 눈치챈 호람이 혀를 차며 휙!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데릭의 사선 방향에 있던 모래가 불쑥 솟아오르며 칼날이 되어 데릭을 덮쳤다.

한창 달리던 중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공격이었으나.

타타탁!

데릭은 너무나 가볍게 그걸 피해냈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칼에 베이지 않는 것처럼, 데릭의 몸은 너무나 가벼워 모래칼날의 압력을 쉬이 비껴내었다.

“이 자식이!”

호람이 분개하며 즉시 다음 술법을 준비했다.

그러나 데릭은 이미 검을 뽑아 들곤 공격 준비를 마친 후였다.

촤악!

‘손맛이 있다.’

성공했다.

모래 표면에 파묻혀 헤엄치는 어스웜의 신체를 베어냈다.

놈의 보랏빛 체액이 모래를 어둡게 적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흥!”

어스웜의 속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호람이 비웃으며 두 팔을 펼쳤다.

그러자 양옆에서 모래가 솟아올라 박수를 치듯이 데릭을 짓누르려 하였다.

쿵!

일순간 그것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파사사삭!

수차례나 검을 휘둘러 모래를 베어낸 데릭이 그대로 호람을 쫓아 달렸다.

하나하나의 검로에 담긴 위력은 적지만, 눈 깜짝할 새에 10차례 이상이나 쏘아진다.

일격의 무게보다는 속도를 중요시한, 극한의 실전성을 띤 속검(速劍).

다시 어스웜에게 따라붙은 그가 지면 속에 수십 차례의 검격을 내질렀다.

촤촤촤촤촤촤!

-쿠우우우우우우!

어스웜이 고통에 꿈틀거리니 지면이 흔들려왔다.

하나하나의 깊이는 얕으나 이 정도나 베이면 고통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스웜은 꿋꿋이 도주할 뿐이었다.

조금도 멈추거나 돌아보는 일 없이.

‘이게 말로만 듣던 스콜피온의 조련술인가?’

스콜피온이 이 사막에서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고 신출귀몰한 이유.

그것이 바로 이 어스웜의 조련술 때문이었다.

대륙에서 오직 그들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어스웜의 조련술은, 난폭한 어스웜을 말 잘 듣는 강아지로도, 혹은 충의를 다 하는 군마로도 만들 수 있다 하였다.

모래 속을 헤엄치듯 이동하는 어스웜 특유의 기동성.

낙타 밖에 이동 수단이 없는 이 사막에서 그 기동성은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격차였고, 일개 도적단인 스콜피온의 이름을 전 대륙에 알리게 해주었다.

“달려! 더 빨리!”

-쿠우우우우!

호람이 재촉하자 어스웜이 한층 더 속력을 올렸다.

피나 다름없는 체액을 폭포처럼 쏟아내는 주제에 기력만큼은 전혀 쇠하지 않았다.

아니, 시들어가는 기력을 주인을 위해 쏟고 있다 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러거나 말거나 호람은 가열 차게 채찍질하며 어스웜 재촉하고 있었다.

‘……더 멀어지면 안 된다.’

조금만 더 멀어지면 완전히 사거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 번 벗어나면 다신 따라잡을 수 없으리라.

도적 떼 하나 놓친다고 무슨 큰일이 있겠냐마는.

‘괜히 일을 키우면 곤란해져.’

자신들은 이곳에 첩자로 들어온 것이란 걸 잊으면 안 된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

그 때문에 유릭도 처음엔 통행세를 주고 넘어가려 하지 않았던가.

-쿠우우우우우!

땅속에서 어스웜의 비명 소리가 자못 웅장하게 울려왔다.

비록 마물일지언정 목숨 바쳐 주인을 도망치게 하려는 기개만은 인정할 만했다.

“고통 없이 보내주마.”

데릭이 검을 집어넣었다.

딱히 엑셀레아처럼 꽂혀 있어야 위력을 발휘하는 검 같은 게 아니다.

지금 꽂은 건 그냥 평범한 철검.

이윽고 그가 뽑아 든 것은 철검과 함께 매여 있던 다른 한 자루의 검이었다.

푸른 빙화(氷花)의 마검, 이솔렛.

‘…….’

어스웜은 아직 자신을 완전히 따돌리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몇 걸음 정도만 더 나아가도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검이 닿지 않을 거리가 되었다.

그 한 번.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에.

-휘익!

이솔렛을 휘둘렀다.

얼음의 꽃이란 이름을 가진 그 마검은 주인인 데릭의 마력을 거칠게 뽑아 먹었다.

아직은 한참이나 모자란, 전혀 성에 차지 않는 마나.

그에 불만이라도 토하듯 검의 마력이 거칠게 어스웜을 덮쳤다.

-쿠우……?

어스웜이 갸웃했다. 뭔가 꼬리 끝이 살짝 뻐근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녀석이 그렇게 느꼈을 때.

쩌적! 쩌저저저적!

꼬리에서 피어오른 얼음의 장미는 이미 놈의 전신을 뒤덮은 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신이 꽁꽁 얼어붙은 어스웜.

흘리던 보랏빛 체액 채로 하얗게 동사한 사체가 관성에 의해 쭈욱 미끄러지다 그대로 멈췄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뭐야 이게 대체!”

호람은 지금 본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주 조금, 꼬리 끝을 베인 게 전부인데 일순간에 어스웜이 전부 얼어붙어 버리다니?

고작 5성밖에 안 되는 검사에게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드디어 멈춰 섰구나.”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행한 장본인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푸른 꽃잎이 흩날리는 검을 들고선.

* * *

쿠웅-

사막전갈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놈의 꼬리가 힘없이 떨어지며 짙은 모래 먼지를 피워 올렸다.

“후우.”

아주 잠시 호흡을 고른 유릭은 녹시아를 수납하곤 곧바로 땅을 박찼다.

아직 주법도 경신법도 아무것도 익히지 않은 그는 그냥 맨발로 뛰어야만 했다.

그나마 발과 다리에 마나를 두른 덕에 일반인보다는 훨씬 빨랐지만.

‘경신법 쪽은 급하지 않아 보여서 미뤄뒀는데, 간단한 거라도 하나 익히는 게 좋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유릭이 데릭의 뒤를 쫓았다.

어스웜이 지나간 흔적이 확연히 있었기에 추적은 어렵지 않았다.

“처리하고 왔습니다.”

중간에 글렌이 합류하여 조장의 잘린 목을 보여주었다.

유릭이 끄덕이자 글렌은 그 목을 아무렇게나 대충 던져 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달리다 보니.

-쿠웅!

-콰과과과과광!

-쿠구구궁!

폭음이 몇 차례나 들려왔다.

폭약을 터뜨릴 때의 소리가 아닌, 기운과 기운이 부딪쳤을 때 나는 특유의 파열음.

급히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가 보니 데릭과 호람이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데릭이었다.

“호오…….”

“6성의 모래술사라면 쉽지 않을 텐데 잘 싸우고 있군요.”

사막에서의 모래술사는 물을 만난 물고기와도 같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면 동급의 경지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동급은커녕 경지가 밀리는 데릭 쪽이 이기고 있다니?

“역시 어려도 로스카는 로스카란 건가…….”

글렌이 의외로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그걸 보고 있었다.

데릭이 호람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이유.

그것은 그가 평범한 5성이 아닌 로스카의 비전을 익힌 5성이기 때문이다.

로스카의 아이들은 타고나길 서리 마나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가진 근골과 마나에 대한 적성이 월등히 뛰어나다.

그런 혈통을 타고났기에 대륙 최고의 가문으로 오랫동안 군림해온 것이다.

그렇기에 5성과 6성이라는 경지 차이가 있어도, 설령 상대가 사막의 모래술사라 하더라도 밀리지 않을 저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검까지 들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지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래그래. 마검 같은 위험한 무기를 든 녀석을 손쉽게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인데 어떻게 이겨?’

유릭이 납득하듯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배낭 속에 있는 메르가 한마디 툭 던졌다.

-뭐예요? 자기 과시?

메르의 일침에 유릭이 피식 웃었다.

어찌 됐든 분위기는 이미 완전히 넘어왔다.

호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데릭의 맹공을 받아치고 있었고, 데릭은 여유롭게 놈을 압박하고 있다.

무난하게 데릭이 이기는 그림.

‘…….’

하지만 유릭은 웃음을 멈추곤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회귀 전 용병 생활을 할 때, 처음으로 전쟁을 겪고 PTSD로 괴로워하는 신병을 수도 없이 봐왔다.

개중에는 바로 다음 전투에서 적병을 죽이지 못해 죽는 경우도 많았다.

데릭도 어쩌면 그런 상태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되면 당장 돌려보내야겠지.’

아무리 녀석의 실력이 아깝다 하더라도 절대 데려갈 수 없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유릭이 둘의 전투를 살폈다.

언제라도 끼어들 수 있게 틈을 엿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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