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60화
60화. 용건만 간단히
모래로 뒤덮인 사막에 황색 로브로 전신을 뒤덮은 두 인영이 서 있었다.
같은 색의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등에는 붉은 전갈의 표식이 새겨진 이들.
스콜피온의 단원과 간부였다.
“찾았습니다.”
“어때?”
단원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전멸입니다.”
“전멸? 호람도 죽었단 말이냐?”
“예. 옆에 어스웜의 사체도 파묻혀 있었습니다.”
“…….”
두 사람이 온 것은 며칠 전 행방불명이 된 동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열댓 명의 말단 단원들과 간부 중 하나인 호람의 증발.
처음에는 야반도주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조직의 돈을 들고 날랐다든지 아니면 운 좋게 상인들에게서 엄청나게 가치 있는 보물을 뺏어 독점하려 했다든지.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도적질을 나섰다가 역으로 시체가 되어 파묻힌 것이다.
“상당한 고수의 짓으로 보입니다. 호람은 단칼에 목이 베였고 어스웜 역시 발악 한번 못 해보고 죽었습니다.”
“그밖에 특이사항은?”
“두 시체 모두-”
단원이 시체의 상태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말단들의 시체는 그렇다 치고, 호암과 어스웜의 시체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었다.
“불탄 흔적이 있습니다.”
불에 타오른 듯한 흔적.
그날 유릭은 얼어붙은 호람과 어스웜의 시체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데릭에게 서리 마나를 모두 회수하라고 한 뒤 불을 질러 꽁꽁 언 시체를 모두 녹이고 간 것이다.
그 보람이 있는지, 간부가 찡그리며 입맛을 다셨다.
“별 도움은 안 되는군.”
“예. 특별한 정보는 얻지 못했습니다.”
이 땅에 불의 기운을 다루는 전사나 술사는 차고 넘친다.
시체에 타오른 흔적이 있다는 것만으로 범인을 특정하긴 힘들었다.
유릭이 일부러 시체를 녹이고 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래도 위치를 보면 울르에 출입하던 이가 분명합니다. 들어가던 길인지 나오던 길인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울르라…….”
간부가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단원이 그런 간부의 눈치를 보며 얘기했다.
“아쉽게도 이 이상 조사하는 건 무리입니다. 울르에는 정규군이 있어 접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사막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도적단이라곤 하지만 군을 건드리는 것은 무리다.
그들의 장점은 조련한 어스웜을 통한 기동성에 있기에 정규군이 주둔한 도시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 한번 알아보지.”
“쉬르께서 직접 말입니까?”
쉬르란 그들 사이에서 간부를 칭하는 말이었다.
“그래.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다.”
“알겠습니다. 라 쉬르껜 제가 보고 드리겠습니다.”
두령에겐 알아서 얘기해 놓겠다는 단원의 말에 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울르에 접근하기 힘들다는 것도 결국은 말단들 사이의 이야기.
스콜피온의 간부쯤 되는 이들이라면 울르에도 인맥은 얼마든지 있었다.
‘일단은 그 남자를 찾아가 봐야겠군.’
울르가 위치한 방향을 바라보며 쉬르가 한 사내를 떠올렸다.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흰 피부를 가진 그 남자를.
* * *
울르에 여관을 잡은 세 사람은 한동안 쉬며 식량과 여러 도구들을 준비해 갔다.
망가진 여행 물품을 새 걸로 교체하고, 밧줄이나 투척용 단검 같은 소모품을 보급한다.
그사이, 유릭은 미리 조사해 두었던 그 장소로 향했다.
‘여기다.’
카자르의 수도 울르에는 유명한 장소가 있다.
왕궁 근처에 지어진, 그 높이만은 왕궁보다 높은 위용 넘치는 건물.
사막의 신 프라나를 모시는 신전이었다.
“환영합니다. 얼마든지 들어가 기도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입구를 지키는 사제에게 유릭이 웃으며 화답했다.
신전은 도시 주민들에게 완전히 개방된 장소였다.
외부인인 여행객들도 막지 않았기에, 이 남부에선 꽤 유명한 여행지이기도 했다.
‘뭐, 그래봤자 현대의 관광지처럼 사람이 바글거리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관광 산업이란 개념이 없는 세상이다.
풍경으로 유명한 영지에서 여행객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 그런 정도의 일은 있었지만 명확한 산업으로서의 개념은 없었다.
‘후우.’
신전의 입구를 지나니 유릭의 얼굴이 가라앉았다.
확실히 기운이 강한 땅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땅이기에 신을 모시는 신전을 이곳에 세워놓은 것이겠지.
유릭이 세심하게 기운의 흐름을 살폈다.
-역시 이 도시에선 이곳이 제일이네요.
품속에 넣어놓은 메르가 꼬물거리며 얘기했다.
보급을 하며 도시 내를 얼추 돌아다녀 보긴 하였으나, 그것만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신전이 울르에서 가장 불의 기운이 강한 장소다.
‘더 시간 끌 것 없지.’
-적당한 곳을 찾아보죠.
유릭이 신전 내부를 돌아다니며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신전 안이라면 어느 곳이든 괜찮긴 했지만, 그래도 따질 건 따져봐야 했다.
일단 사람이 없는 장소.
영약의 섭취는 때에 따라 수 시간 이상 걸리는 긴 작업이다.
그 시간 동안 눈을 뜨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누가 봐도 수상하게 여기리라.
그리고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기운이 강한 장소였으면 좋겠고.’
강한 불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 신전 안에서도 특히 더 기운이 강한 장소.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 최적의 장소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발견되지는 않았다.
일단 사람이 없는 곳을 찾는 것부터 일이었다.
신전 안 어딜 가더라도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두 명씩은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신전 내를 탐색하던 중.
어느 장소에서 그의 발이 멈췄다.
“여기는…….”
“어머, 참회하러 오셨나요?”
말을 건 이는 보랏빛 천으로 머리부터 어깨까지 덮은 웬 늙은 노파였다.
신전의 사람이라기보단 도시의 주민 중 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곳은 참회실입니까?”
“그렇지요. 사막의 신인 프라나께 죄를 고백하는 곳이랍니다.”
반성하면 죄를 없애주는 그런 곳인가?
하고 물어봤더니 노파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지요. 스스로의 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법. 프라나께서는 그저 들어줄 뿐이랍니다.”
“그럼 뭐하러 죄를 고백하는 겁니까?”
“호호호, 본디 고뇌라는 건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 편해지는 일도 있으니까요.”
그건 맞는 말이다만 신의 역할이라기엔 조금 평범해 보인다.
그냥 가족이나 친구가 해줄 수도 있는 역할 아닌가?
‘그래도 참회실이라면 마침 잘됐군. 모두 개인실일 테니까.’
느껴지는 기운도 이 신전 안에서 가장 강하다.
아마 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구역이라 일부러 가장 기가 강한 곳에 배치한 모양이다.
“들어가시겠습니까?”
“예. 그냥 들어가면 되는 겁니까?”
“그럼요. 안쪽에 굴이 몇 개 있을 텐데 비어 있는 곳 아무 곳이나 들어가시면 됩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빙긋 웃는 노파에게 인사하곤 유릭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안쪽은 생각보다도 훨씬 웅장했다.
공간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토굴과 같았고, 벽엔 작은 굴들이 무수히 파여 있었다.
그리고 토굴의 중앙엔 자애로운 미소를 띤 여신상이 세워져 있었다.
벽에 있는 어느 굴에서도 보일 만큼 커다란 신상이었다.
“죄를 고백하고 편해지는 곳이라고 하더니.”
-그럴 분위기는 아닌데요?
웅장한 광경이나 압도되는 크기의 여신상은 그렇다 치고, 일단 너무 더웠다.
안 그래도 더운 사막 지역인데, 뜨거운 온실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숨이 막혀왔다.
열기 어린 공기가 피부를 따끔따끔 자극하며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참회실이 아니라 징벌방이라고 해도 믿겠네.’
혹시 정말로 그런 의미가 강할지도 모른다.
괴롭게 스스로의 죄를 참회하며 반성하라고.
어쩐지 신의 역할이 그냥 고민을 들어주기만 하는 거라니, 조금 스케일이 작다곤 생각했었다.
“후우…… 그래도 영약을 먹기엔 딱 좋겠지. 남들이 방해할 일도 없고 불의 기운도 부족하긴커녕 차고 넘칠 정도고.”
-걱정 마세요. 누가 방해할 것 같으면 빨리 알려 드릴게요!
“알았다, 알았어. 돌아가면 육포 꼭 사줄게.”
-으헤헤.
육포 얘기를 하니 칠칠치 못한 웃음소리를 흘린다.
일전에 수련을 도와주면 퀴라스 영지의 육포를 사주겠다고 얘기했더니, 그날부터 틈날 때마다 자기 어필을 해오는 메르였다.
비싼 음식이긴 하지만 믿음직한 호법을 얻는 대가라고 한다면 싼 것이다.
“그럼 좋은 자리를 한번 찾아볼까.”
셔츠 안에서 머리만 내민 메르와 함께, 유릭이 적당한 자리를 물색했다.
* * *
비어 있는 토굴은 많았다.
일단 토굴의 개수 자체가 많았고, 그리고 온도가 지나치게 높은 탓도 있다.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종교인이 아니고서야 이 사우나 속에서 몇 시간이나 앉아 있을 이는 없을 것이다.
유릭은 빈 토굴 중에서 가장 불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굴에 자리를 잡았다.
“더워…….”
당연하게도 그곳은 다른 토굴보다 한층 더 더웠다.
염화신무 덕에 열에 대한 내성이 남들 이상으로 강한 유릭인데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열기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발을 들여놓자마자 식겁하며 뛰쳐나갈 만한 온도였다.
‘거기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심지어 그 토굴은 여신상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다곤 하나 그것도 멀리서 볼 때의 이야기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면 괜스레 기분 나쁘고 불쾌한 골짜기만 느껴진다.
‘설마 갑자기 말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무슨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을 하며 유릭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품속에서 목함을 꺼내 뚜껑을 연다.
그 안에는 초대가 남긴 불의 단약이 고이 잠들어 있었다.
그걸 보니 방금까지의 잡생각이 전부 날아갔다.
‘좋아.’
빙하설월 때와는 다르다.
그건 누나인 엘린이 알아서 기운을 뽑아 유릭에게 주입했다.
그 과정에서 유릭은 기절해 있기만 했지 따로 할 일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이 불의 단약은 다르다.
‘온전히 내가 흡수해야 한다.’
나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순탄치 않은 과정이겠지만, 이걸 해내야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다.
각오를 다지며 유릭이 단약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으려 하였다.
그때.
[“아저씨!”]
정말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물론 토굴 바깥의 여신상이 갑자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유화였다.
‘어, 응. 오랜만이네. 일주일 만인가?’
마지막으로 유화의 연락을 받은 건 사막에 들어오기 직전의 일이었다.
간단한 근황 보고, 그리고 마교가 있는 신강이란 지역에 들어왔다는 얘기였었지.
[“어떡해요, 어떡해요!”]
그 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화가 다급하게 얘기했다.
유릭이 슬쩍 손에 든 단약을 보았다.
‘…….’
아주 잠시 말 못 할 고민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곤 이내 아쉽다는 듯 단약을 내려놓았다.
‘왜, 무슨 일인데. 나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말해.’
[“도착해 버렸어요! 내일 아침에 바로 보러 간대요!”]
‘보다니 누굴?’
그렇게 물었지만 누굴 말하는 것인지는 바로 눈치챘다.
[“할아버지요!”]
천마 할아버지를 보러 간단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