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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64화 (64/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64화

64화. 내부 쟁투

마음 같아선 피해 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놈들의 목적이 자신들과 같은 모래폭풍의 조사라면 당연히 카람에 묵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도 같고 목적지도 같다.

심지어 카람은 가뜩이나 몇 가구 되지 않는 작은 마을.

흔치 않은 외부인이 두 무리나 들어왔다면 마주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얼굴을 가리자.”

당장 생각해 낼 수 있는 방안은 모두 사용해야 했다.

“가리는 건 나랑 데릭이면 충분할 거야. 글렌 네 얼굴은 모를 테니까.”

“알겠습니다.”

“염색까지 했는데 모르지 않을까? 먼발치서 본 정도면 염색만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그 정도가 아니었거든.”

성인식 하루에만 두 번을 만났고 두 번 다 지근거리에서 대화를 나눴다.

염색 하나로 정체를 감출 수 있을 리 없었다.

유릭이 하얀 천 두 장을 꺼내 얼굴을 감싸고 데릭에게도 건넸다.

눈만 드러낸 채 하관은 전부 가린 모습.

이것만 보면 수상한 도적들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괜찮다.

그걸 위해서 글렌은 맨얼굴을 드러내게 한 것이니까.

“글렌. 네가 앞으로 도련님 역할을 맡아라.”

“신분을 위장하라는 말씀이시군요.”

“타국에서 여행 온 귀족 도련님이라고 하고, 우리 둘은 호위 무사라고 하면 되겠지.”

마침 글렌은 외모만 보면 어디 귀공자 저리 가라 생겼다.

화사한 금발에 비취색 눈동자.

일국의 왕자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만한 외모다.

“큭큭, 그렇게 하지.”

유릭의 제안에 글렌은 한 마디 이의도 없이 냉큼 받아들였다.

키득거리고 웃으며 낙타 위에서 살짝 등을 편다.

움직인 것은 고작 그것뿐인데도 방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존재감이 느껴졌다.

일종의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는 분위기에 데릭이 살짝 놀랐다.

“대단한 연기로군. 역시 13기사단이라 그건가.”

“뭐 그렇지.”

유릭이 적당히 대꾸했다.

사실 평소 모습이 연기고 이 거들먹거리는 쪽이 진짜지만 굳이 얘기할 사안은 아니다.

‘몰락했다곤 하나 황족의 핏줄이 어딜 가는 건 아니니.’

가릴 건 충분히 가렸다.

이 정도면 마주쳐도 문제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남은 건…….

“데릭. 가능하면 이솔렛은 뽑지 않게 조심해.”

“알았다. 아칸의 직계쯤 되는 안목이라면 단박에 들킬 수 있으니.”

일전에 만난 도적 같은 놈들이야 이솔렛을 봐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나마도 모조리 죽여 입을 막아뒀고.

하지만 아칸의 직계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솔렛의 힘을 보면, 아니, 그 푸른 검신만 봐도 정체를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좋아, 다 됐으니 출발하자. 대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건 마주치지 않는 거니까 거리를 두도록 하고.”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카람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한 일행이었지만.

“어머, 여행객이신가요? 카람으로 가시는 거라면 함께 가시죠.”

거리를 둔다고 일이 쉽게 풀릴 리 없다.

클레어와 아칸의 조사단들은 대번에 유릭 일행을 포착해 접근해 왔다.

“당신들은 누구지?”

글렌이 턱을 치켜들며 얘기했다.

그 동작과 오만한 말투만으로도 귀족의 교과서 같은 모습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옆에 있던 데릭은 남몰래 한 번 더 감탄할 정도였다.

“저는 아칸에서 온 클레어 아칸이라고 해요. 이쪽은 우리 가문의 술사들이구요. 여러분들은요?”

“글렌 로아헨. 로아헨 가문의 아들이다.”

클레어의 옆에 있던 술사 하나가 클레어에게 속닥속닥 귓속말을 하였다.

대충 로아헨 가문이 어디어디 있는 가문이라고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로아헨이라면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그래도 대륙 정세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가문이다.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애매한 가문으로 가명을 댄 것이다.

“그러시군요. 사막에는 여행을 위해?”

“그래. 수련 여행을 다니고 있지.”

글렌이 허리춤의 검을 보여주며 얘기했다.

클레어가 납득한 듯 끄덕였다.

“아까도 제안했지만 카람으로 가시는 거라면 함께 가시죠. 어떠세요?”

“글쎄…….”

글렌이 말끝을 흐렸다.

그들로서는 당연히 거절하는 것이 좋은 얘기다만 문제가 있었다.

‘놔줄 것 같지가 않단 말이지.’

클레어는 둘째 치고 뒤쪽의 화염 술사들이 한껏 눈을 부라리고 있다.

그들은 이 접경지대에 수상한 이들이 있나 조사하러 온 이들이다.

정체 모를 여행객이라면 당연히 경계하겠지.

‘어떻게 할까요, 도련님?’

‘일단 받아들여. 여기서 거절하면 더 수상하게 볼 수 있다.’

유릭이 몰래 글렌에게 신호를 보냈다.

잘 알아들었다는 듯 글렌이 끄덕이며 클레어에게 말했다.

“받아들이지. 일행이라곤 재미없는 호위들뿐이었는데 마침 잘 됐어.”

“어머, 많이 적적하셨나 봐요.”

그렇게 유릭 일행은 예상치 못한 동행을 얻게 되었다.

덕분에 자유로운 행동은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칸의 조사단이라면 여러 정보가 흘러나올 수 있을 테지.

어찌 보면 상대는 제 손으로 스파이를 끌어들인 셈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유릭은 늘어난 일행의 뒤쪽에서 낙타를 몰았다.

그러던 중.

“당신…….”

클레어의 눈이 유릭에게 향했다.

최대한 글렌의 뒤에서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그들 일행은 셋밖에 되지 않았기에 시선을 피하는 것이 무리였다.

“우리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처음 뵙습니다만.”

유릭이 당연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클레어가 몇 번 갸웃거리는가 싶더니 물었다.

“얼굴의 면포 좀 잠시 벗어주실 수 있으세요?”

절대 안 될 말이다.

유릭이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저희 신께서 수행 중일 땐 항시 그 면을 가리라 하셨습니다.”

“아,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거군요. 그럼 어쩔 수 없죠.”

클레어가 다시 갸웃하면서도 떠나갔다.

다행히 뭘 눈치챈 기색은 없어 보였다.

‘대충 둘러댄 거지만 잘 통했군.’

덕분에 살았다.

앞장서는 아칸의 조사단에 뒤따르는 형식으로, 유릭 일행이 카람으로 향했다.

* * *

“이쪽으로.”

시녀의 안내를 받아 황색 로브의 사내가 복도를 걸었다.

울르 어딘가에 위치한 비밀 저택.

겉으로는 어떤 부자의 별장으로 알려져 있는 이 저택은, 사실 어떤 사내가 숨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아이작 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파로크 쉬르입니다.”

카자르에 망명 중인 아이작 로스카.

스콜피온의 간부인 파로크가 찾아온 이는 바로 그였다.

시녀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간 그가 꾸벅 고개를 숙이려다.

“헛, 라 쉬르께서도 계셨군요.”

파로크가 아이작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곤 급히 무릎을 꿇었다.

지나치게 말라 얼핏 해골처럼도 보이지만, 그 눈빛은 짙은 살기로 번뜩이고 있는 청년.

아칸의 1공자 루카스 아칸.

동시에 스콜피온의 두령인 라 쉬르인 자이기도 했다.

“웬일이냐, 파로크.”

루카스가 음침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파로크가 한층 더 고개를 숙였다.

“옛. 저자에게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협조?”

“호람 쉬르가 죽었습니다. 그 범인이 울르에 들어왔거나, 혹은 울르에 있다가 나간 것으로 보여 정보를 구하려고 합니다.”

“별일 아니었군.”

간부가 살해당했다고 하는데도 별것 아닌 것이라 치부한다.

하지만 파로크는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루카스는 스콜피온의 두령이기 전에 아칸의 1공자.

열셋이나 되는 후계들 중 가장 가주에 가깝다는 남자다.

그에게 있어 스콜피온 따위는 이용해 먹기 좋은 조직 중 하나일 뿐, 결코 아끼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때 아이작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에 끼었다.

“자, 자, 그러지 말고. 동료를 잃은 사람 앞에서 그게 뭔가 루카스.”

“흥.”

“일어나라 파로크 쉬르.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협조해 주지.”

“협력에 감사하오, 아이작 로스카.”

“뭘. 다 돕고 사는 것이지. 하하하.”

아이작이 싱긋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차의 향기를 즐기며 그가 입술을 적실 때, 루카스가 파로크에게 물었다.

“사막화 작업은 잘 진행 중이더냐?”

“물론입니다. 이미 데인 영지 인근까지 범위를 넓혔고, 조금만 더 있으면…….”

“멍청한 놈! 누가 그딴 걸 물었더냐? 모래를 얼마나 쌓았는지 따위 관심도 없다.”

루카스의 일축에 파로크가 당황스레 고개를 숙였다.

그래, 맞다. 애초에 사막화의 목적은 사막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루카스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일 터.

“착실히 증거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왕가 쪽까지 엮기 시작한 참입니다. 목표치까지 1~2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흠.”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루카스가 입가를 올렸다.

현재 카자르에서 고의로 사막을 넓히고 있는 이들은 루카스의 지원을 받는 스콜피온.

그 목적은 사막을 넓히는 것에 있지 않았다.

“좋다. 1년 안에 준비를 마치게끔 노력하도록. 8부인 그년이 설치는 꼴을 2년씩이나 더 봐줄 순 없으니.”

진짜 목적은 아칸의 내부 쟁투를 위한 것.

카자르를 뒷배로 둔 8부인을 실각시키고, 그 자식과 가신들 역시 모조리 떨어내기 위한 함정에 불과했다.

“예!”

파로크가 깊이 고개를 숙인 후 물러났다.

그가 가는 길 아이작에게 눈짓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작이 피식 웃었다.

“걱정 마라. 수상쩍은 외부인 하나 찾는 거야 일도 아니니까.”

“부탁드리오.”

그의 자신만만한 대답을 들으며 파로크가 응접실을 나왔다.

* * *

사막화를 진행 중인 범인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카자르 왕가.

본디 어떤 사건의 범인을 추측할 때, 그 사건을 이득을 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일의 경우는 사막화로 이득을 볼 이가 카자르 왕가밖에 없으니 왕가가 범인이라 생각하는 것은 타당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아칸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있어.’

아칸의 수작일 가능성.

본디 아칸은 자신들의 땅을 침범하는 사막화를 막기 위해 애쓰는 입장이다.

그렇게 보면 자작극이란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제를 조금만 다시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바로 아칸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

‘거긴 후계 싸움이 치열하니까.’

아칸은 형제자매들끼리 치열하게 경쟁을 시켜 가주를 선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대 아칸의 후계자들은 총 13명.

이들 모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파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크게 보면 셋이라고 했던가.’

1공자와 2공자, 그리고 1공녀.

그 셋을 중심으로 커다란 파벌이 형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 사건으로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이 범인이라는 논리라면…….’

회귀 전엔 이 사건으로 누가 가장 이득을 보았던가?

카자르 왕국? 아니다.

오히려 카자르는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아칸이 카자르를 강하게 추궁했었지.’

카자르는 필사적으로 부인했지만 아칸은 그걸 믿지 않았고, 결국 둘의 동맹은 그저 종이 쪼가리일 뿐인 명목상의 동맹이 되어버렸다.

가주의 8번째 부인이던 샤의 딸은 가문에서 쫓겨나 친정까지 오게 되었고, 아칸과의 수많은 협력이나 지원 등이 모두 끊기게 되었다.

사실상 8부인의 파벌은 후계 다툼에서 완전히 탈락한 셈이다.

‘결국 따져보면 왕가는 전혀 이득을 보지 못했어.’

물론 들켰기 때문이라 얘기하면 거기까지긴 하다.

하지만 만약 들키는 것 자체도 고의적인 것이라면?

들킨 게 사고가 아니라, 그것조차 사건의 일부라고 한다면?

그렇게 되면 카자르 왕가는 오히려 피해자인 셈이다.

누군가의 이간질에 제대로 걸려버린.

“언니의 부탁으로 오게 됐어요. 이쪽에서 수상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하길래요.”

“언니분이시라면?”

“제 첫째 언니요. 어릴 때부터 절 많이 돌봐주셨거든요.”

“그렇군요. 우애가 좋으신 모양입니다.”

클레어와의 잡담으로 대충 얼개는 파악되었다.

클레어를 보낸 것은 아칸의 1공녀.

듣기로 8부인 역시 1공녀의 파벌 중 하나라 하였다.

자기네 구역에서 이상한 일이 있으니 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고, 믿을만한 동생인 클레어를 파견했단 얘기다.

‘아칸 쪽이 범인이라면 용의자는 1공자나 2공자란 말이군.’

용의자가 보다 명확해졌다.

카자르 왕가이거나 혹은 아칸의 1공자나 2공자.

이 셋 중 하나.

이 정도 정보만 하더라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얼굴을 가리고 동행한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왜 도련님을 두시고 저와 계시는 겁니까, 아가씨?”

이 여자는 왜 글렌을 두고 자신의 옆에서 낙타를 타고 있단 말인가?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얻는 것은 좋지만 그건 자신이 아니라 글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왜요? 불편해요?”

“저는 일자무식인 호위일 뿐이라 아가씨의 말 상대를 해드리기에 충분한 교양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머, 겸손을. 지금 말만으로도 충분히 교육받은 티가 나는데요?”

클레어가 방긋 웃으며 얘기했다.

……남의 타는 속도 모르고.

“어찌 됐든 굳이 말 상대를 고르자면 도련님과 하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신분상으로도요.”

“말 상대에 신분이 무슨 상관이에요. 하기 편한 상대랑 하는 거지. 당신네 도련님 좀 보세요.”

유릭이 앞쪽에 있는 글렌을 보았다.

낙타를 타고 걷고 있는 그는 주변에 말 걸지 말라는 오러를 눈에 보일 정도로 뿌리고 있었다.

무슨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라도 보는 듯했다.

‘저 자식…….’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귀찮은 일을 전력으로 거부하는 모습.

빈말로도 대화하기 좋은 상대라는 인상은 들지 않았다.

데릭 역시 무슨 일인지 아칸의 술사들과 뜨거운 설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라, 결국 한가한 것은 유릭뿐이었다.

“그죠?”

“……그렇군요.”

유릭이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는 수밖에.

그렇게 신경을 잔뜩 쓰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도중.

-꺄아아아악!

공기를 찢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막에서 들릴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소리.

어린아이의 비명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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