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65화
65화. 사선의 칼바람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클레어였다.
그녀가 앞으로 박차고 나섰고 화염 술사들이 다급히 그 뒤를 따랐다.
유릭과 일행들 역시 낙타의 속도를 높였다.
클레어 일행들과 함께 행동할 의리는 없지만 무슨 사건이 터진 것은 분명했으니까.
달려가 보니 열 서넛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땅에 엎어져 울먹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어스웜!”
어스웜이 꿈틀거리며 덮쳐오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세 마리나.
“요격해!”
“예!”
클레어의 명령에 아칸의 술사들이 불을 일으켜 어스웜에게 쏘았다.
다들 실력 있는 술사들인지 세 마리의 어스웜이 모조리 머리에 불이 붙어 고통스레 꿈틀거렸다.
그사이 세 어스웜의 틈새로 파고든 클레어가 아이를 낚아채 자신의 앞에 태웠다.
“괜찮습니까?”
돌아온 클레어에게 유릭이 다가가며 물었다.
물론 아이가 괜찮냐는 말이었다.
클레어가 품에 안은 아이에게 물었다.
“괜찮니?”
“아, 으…….”
“저놈들은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우리들 앞에선 한주먹거리도 안 되니까.”
그녀의 당찬 목소리, 그리고 어스웜 세 마리가 술사들에게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렸는지, 그제야 아이가 어눌어눌 얘기했다.
“괘,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가 클레어에게 고개를 숙이려 했으나 그녀는 아이의 등 뒤에 있었기에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그 뜻은 전해졌는지 클레어가 웃었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보다 무슨 일이야? 왜 마물들한테 쫓기고 있던 거야?”
“아…….”
살아남았단 생각에 다소 밝아졌던 아이의 얼굴이 다시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시, 실은! 저희-”
아이가 다급히 무언가를 전하려 할 때.
캉!
유릭이 뻗은 검이 아이에게 날아온 나이프를 튕겨냈다.
“히익!”
“나이프!?”
클레어가 깜짝 놀라는 사이 유릭이 낙타의 등을 밟고 뛰었다.
저 앞쪽에 모래밭에 위장해 숨어 있던 암살자가 급히 땅을 굴렀다.
파삭!
놈을 노린 유릭의 검은 아쉽게 빗나가 모래밭을 찔렀다.
탓!
암살자가 땅을 박차고 일어나며 그 힘으로 유릭을 찔러 들어갔다.
결코 어영부영 찌르는 것이 아니다.
나름 매서운, 훈련받은 자의 일격이었다.
‘아마추어는 아니군.’
그렇게 생각하며 유릭이 단검을 든 놈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비틀어 힘껏 당겼다.
“……!”
암살자의 자세가 급속도로 무너진다.
그가 급히 몸을 바로 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유릭이 놈의 등을 짚곤 그대로 땅에 처박았다.
푸슉!
그리고 그곳엔 놈의 손에 들려 있던 단검이 하늘을 향한 채 들려 있었다.
“컥……!”
암살자의 몸이 부르르 떨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놈의 시체와 모래밭 사이로 새빨간 피가 빼꼼 흘러나왔다.
놈이 덮은 로브 속, 모래와 똑같은 색과 재질을 가진 그 천 안쪽에서 유릭이 목격했다.
‘붉은 전갈.’
사막의 도적단 스콜피온의 표식.
그 말은 저 세 마리의 어스웜 역시 일반적인 마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스콜피온이 조련한 어스웜들.
그가 몸에 묻은 모래 먼지를 털며 클레어와 아이에게 돌아왔다.
“수, 수고하셨어요. 굉장히 강하시네요.”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놀란 듯 눈을 깜빡이는 클레어를 일별하곤 유릭이 아이를 보았다.
아이가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유릭의 얼굴을 덮고 있는 수상쩍은 천, 그리고 암살자를 순식간에 매장한 실력.
그것들에 위압 받은 모습이었지만, 이내 다급한 표정으로 유릭의 소매를 붙잡았다.
“저, 저희 마을을 구해주세요!”
* * *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운 불행한 일이었다.
조용히 잘살고 있는 작은 마을을 기세 좋은 도적 떼가 침공한 것이다.
보통이라면 정기적으로 공물을 바치는 정도로 하고 돌아갔을 테지만.
“아예 눌러앉았다고?”
“네…….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목줄을 채워서 노예로 부리면서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어요.”
“울르에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나? 왕가의 귀에 들어가면 토벌대를 보내줄 텐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어요.”
아이가 울먹거리며 얘기했다.
당연히 어른들은 바깥에 이 사실을 알려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적들이 그걸 막았다.
마을 사람을 모조리 족쇄를 채워 부리며, 마을 바깥으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탈출하는 이가 있더라도.
“어스웜이랑 사람을 보내 처리한단 말이구나.”
“네. 네…….”
아이가 울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몇 명이나 마을을 탈출하려다 소식이 없어졌을까.
두 명? 세 명?
설령 단 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어린아이에겐 큰 충격이 되었을 터였다.
작은 마을이니 모두 가족처럼 알고 지내는 이들일 테니까.
가만히 얘기를 듣던 클레어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언제부터 그랬던 거니?”
“벌써 3년 가까이 되었어요…….”
“3년이나?”
그 기간에 놀라던 그녀는 이내 3년이란 시간에 담긴 다른 의미를 깨달았다.
그 사실은 유릭 역시 눈치챌 수 있었다.
‘3년이면 지진이랑 모래폭풍이 다발로 일어나기 시작하던 무렵.’
두 사람이 조사하러 온 그 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무렵의 일이다.
우연으로 치부하려 해도 치부할 수가 없다.
범인은, 아니, 사주한 이는 따로 있겠지만, 적어도 실행범은 스콜피온이라는 소리다.
“흑…… 제일 몸집이 작은 저라면 몰래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촌장님이 겨우 보내주셨는데…… 그런데 들켜버렸어요.”
말을 하면서도 아이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내보낸 것을 알게 되면 도적들이 촌장님이나 다른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어떻게 할까.
아이일 뿐인 그녀에겐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두려운 일이었다.
“카람으로 가자.”
“언니…….”
“괜찮아. 이래 봬도 난 아칸의 공녀거든. 여기 이 오빠도 얼마나 센지 봤지?”
“아, 아칸!”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 할지라도 아칸의 명성을 모를 리가 없다.
자신이 까마득한 귀족에게 안겨 있단 사실을 깨달은 아이가 파랗게 질려 낙타에서 뛰어내리려 하였다.
바닥에 넙죽 엎드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클레어가 아이의 허리에 두른 손에 꽉 힘을 주어 그것을 막았다.
“넌 나와 같이 타고 가자. 마을까지 안내 부탁해.”
“아, 네, 네!”
이런 대단한 귀족이 간다면 반드시 구해낼 수 있다.
희망찬 얼굴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보며 클레어가 든든하게 미소 지어주었다.
‘…….’
그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유릭은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점점 일이 커지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 왔기에.
* * *
사막의 한가운데.
아이작은 직접 두 발로 나와 호람의 시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떻소? 뭐 새로운 정보라도?”
그를 안내한 파로크가 물었다.
아이작이 5분가량 말없이 시체를 살피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그냥 불에 탄 시체가 아니군.”
“아니면?”
“보고도 모르겠나, 쉬르?”
“모르니까 물어보는 것 아니오.”
파로크가 답답한 듯 찌푸리자 아이작이 얘기했다.
“이건 한 번 얼었다 녹은 거다.”
“얼었다 녹아? 이 사막에서 말이오?”
“그래.”
이 땅에서 서리 마나를 쓰는 이는 정말 귀하다.
특히 사람 하나를 통째로 얼려 죽일 수 있을 만큼 경지가 뛰어난 이는 더더욱.
파로크가 알기로 그 정도의 서리 마나를 다루는 이는 눈앞의 아이작뿐이었다.
“나는 당연히 아니고.”
“알고 있소.”
물론 그렇다고 아이작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서리 마나를 쓰는 다른 외부인이 범인일 터.
“범인의 몇 가지 특징이 더 있다.”
“정말이오?”
아이작의 말에 파로크가 눈을 크게 떴다.
한 번 얼었었던 시체라는 정보만 해도 놀라운데 그것 말고 또 있다니?
아이작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기쁘고 재밌을 때 짓는 그런 웃음이 아닌, 뒤틀린 집착이 보이는 그런 웃음.
“범인은 쌍둥이야.”
최근, 로스카 쪽에 심어놓은 부하들에게서 모조리 연락이 끊어졌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보내온 연락에는, 로스카의 쌍둥이가 임무를 받아 함께 나갔다는 소식이 있었다.
“어떻게 확신하오?”
파로크의 물음에 아이작이 피식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 든 사악한 뱀이 속삭였다.
지금 이 나라에 그의 사랑스러운 동생들이 와 있다고.
그 뱀을 그는 이렇게 불렀다.
“감이다.”
직감.
태어날 때부터 그가 가지고 있던, 남들에겐 없는 우월한 재능.
그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이러한 종류의 직감을 경시한 적이 없었고, 그 결과 모조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었다.
그 감이 이번에도 속삭이고 있다.
두 동생이 임무를 위해 이곳으로 와 있다고.
“그러고 보니…….”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파로크가 굳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최근 울르에 출입한 명단을 조사했었는데, 그중에 쌍둥이를 포함한 3인 일행이 있었소. 머리 색은 까맸고-”
“머리 색은 됐어. 염색하면 그만이니까. 그보다 눈동자 색은 어땠지?”
“……푸른빛이었다고 하더군.”
“정확하군.”
그가 웃었다.
이제는 호람의 복수나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아졌다.
유릭, 그리고 데릭. 이 형님의 품 안에 제 발로 들어 와주다니.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놈들은 어디로 갔다고 하지?”
“듣기로 서쪽 방향으로 떠났다던데.”
“서쪽이라…….”
울르의 서쪽 방향에 있는 것.
그중에서 가문이 두 형제에게 임무로 내릴 법한 사건.
“하.”
아이작이 헛웃음을 지었다.
“카람이로군.”
아칸의 1공자가 스콜피온을 부려 수작질을 하고 있는 그 장소.
둘은 그곳에 간 게 분명했다.
* * *
일행이 카람에 도착했다.
무슨 어스웜이 날뛰고 도적단이 파티를 벌이고 있을 거란 선입견과는 달리, 마을은 기이하리만치 조용했다.
바깥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집들도 모두 창이 굳게 닫혀 안쪽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으으…….”
도적 떼의 소굴에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에 아이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안심하라는 듯 그런 아이를 보듬어 주곤, 클레어가 근처의 집 하나에 다가갔다.
똑똑.
“누구쇼?”
문이 살짝 열리며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클레어 아칸이라고 합니다. 지나가던 길에 잠시 쉬려고 들렀는데, 혹시 촌장님 댁이 어디죠?”
“난 모르오.”
탁.
곧바로 문이 닫혔다.
클레어가 살짝 벙쪘다.
예상하고 있었다곤 하나 상상 이상의 반응이었다.
모른다는 말은 둘째 치고, 아칸이라는 이름을 밝혔음에도 저런 태도라니.
똑똑.
“이곳에 오다가 아이 하나를 찾아 데려왔는데, 그 아이가 재밌는 말을 하던데요?”
클레어가 다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린진 모르겠지만 귀 기울여 듣진 마시오. 아이들이야 워낙 허황된 말만 지껄이고 그러지 않소?”
“하지만-”
“설마 꼴에 아칸이라는 작자가 애들 꿈같은 얘기만 듣고 제멋대로 행동하진 않을 테지? 그 정도 분별력은 있어야 할 신분 아니오?”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마을 사람의 말투가 아니다.
강제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 봐야 하나?
그녀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헬렌! 왜 돌아온 거냐! 빨리 도망가!
-이 새끼가!
-누군진 모르지만 그 사람들이랑 빨리- 아악!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클레어의 표정이 변했다.
당장 부수고 들어가기 위해 그녀가 발을 떼었다.
그때.
쌔애애애애액-!
등골이 오싹하며 그녀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녀의 옆을 스치듯, 사선의 칼바람이 쏘아졌다.
집을 통째로 베어낼 듯한 거대한 칼바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