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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02화 (102/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02화

102화. 첫째 아이

조금 전.

별궁의 야외 수련장에서 데릭은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날렵한 검이 바람을 가르고 쏘아진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한 검이었지만,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조금씩 빨라져 지금은 눈으로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휘두르곤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느릿하게 휘두르기를 반복.

지루하리만치 반복해서 하는 수련이었지만 데릭의 표정은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

중간 정도의 속도로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데릭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얼마간 흘러간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하늘이었으나, 데릭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 직후, 하늘에 묘한 점이 보이더니.

“!”

솜털이 쭈뼛 서는 감각과 함께 그가 전력으로 뒤로 뛰었다.

콰아아아앙!

점이 떨어져 내리며 수련장 바닥에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그 사이에서 일어서는 이는, 검은 망토로 몸을 감싼 한 사내였다.

“감이 좋구나, 데릭.”

드러난 얼굴의 절반은 하얬고, 절반은 까맸다.

밤하늘 같은 청량한 느낌이 아닌 심연의 그림자 같은 시커먼 암흑.

사내의 반신을 그런 거뭇한 문양이 뒤덮고 있었고, 검은 눈 속에 박혀 있는 금빛 눈동자가 고양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시커먼 절반은 처음 보지만, 반대쪽의 새하얀 절반은 눈에 익은 이였다.

“……형님?”

그의 형인 아이작 로스카.

마왕의 힘에 손을 대 가문에서 쫓겨난 그가, 가문의 심처 중 하나인 이 별궁에 나타난 것이다.

“오랜만이구나, 데릭. 그간 건강했느냐?”

정말로 반가운 동생을 보는 것처럼 친밀하게 인사하며, 그가 망토 속에서 한쪽 손을 꺼냈다.

검은 문양이 가득 새겨진 쪽의 손이었다.

그 손을 딱, 하고 튕기자.

피잉!

별궁 주위를, 검은빛의 얼음 결정이 채우며 촘촘히 감쌌다.

흑색의 얼음으로 만들어진 새장이 별궁을 완전히 덮은 것이다.

“……제 얼굴이나 보러 오신 건 아닌 것 같군요.”

데릭이 얼굴을 굳히며 수련용 검을 내던지고, 이솔렛을 뽑아 들었다.

그걸 보고는 순간 아이작의 눈이 빛났다.

“겸사겸사 온 게지. 앞으로 다신 네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작별인사도 하러 왔고 그 김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데릭이 뛰었다.

크레이터 중앙에 서 있는 아이작을 보며 강하게 검을 쥔다.

그는 옛날부터 아이작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해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잘도 내 앞에.’

좌우지간 칼침을 한번 먹여주는 일.

알리샤라는 마녀를 보내 자신을 현혹하려 했던 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뭔 말을 못 하겠군.”

이솔렛이 쇄도하며 그 냉기가 살을 에며 덮쳐오고 있었으나 아이작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윽고.

캉!

데릭의 검이 멎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져 왔다.

결코 봐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곤 하나 마검의 힘은 절대적.

이솔렛의 힘을 한껏 개방하여, 최소한 아이작이 몸을 피하게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휘두른 것이다.

그런데 그 일격을 아이작의 검게 물든 손가락이 너무나 가볍게 붙잡았다.

고작 두 손가락으로.

본인이 붙잡은 검신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며 아이작이 말을 이었다.

“그 김에 초대의 검을 받아갈까 해서 왔단다. 뭐 사실 이쪽이 본제긴 하지만. 핫하하!”

농이라도 던지듯 웃는 아이작의 앞에서 데릭은 웃을 수 없었다.

* * *

-콰앙!

“크헉!”

내동댕이쳐진 데릭이 별궁의 담벼락에 강하게 등을 부딪쳤다.

단단하게 지어진 담벼락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지며 데릭의 몸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충격이었으나, 데릭은 기절할 여유도 없이 당장 그 자리에서 도망쳐야 했다.

쌔애애애액!

곧바로 날아온 다섯 줄기의 참격이 데릭이 묻혔던 자리를 가르고 지나간다.

담벼락의 잔해가 다섯 줄기로 아주 매끄럽게 잘렸다.

간신히 피할 수 있었던 데릭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껴야 했다.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하긴 당연한가? 예전엔 이만한 꼬마 아이에 불과했으니.”

아이작이 오랜만에 보는 동생을 반가워하는 그런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러나 그가 들어 올린 손에는 방금 데릭을 조각내려 했던 다섯 줄기에 손톱이 흉험한 빛을 띠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손으로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

데릭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매섭게 눈을 떴다.

‘유릭이었으면 손 좀 씻고 다니라든가 그런 농담이라도 던졌으려나.’

어쩐지 녀석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랬을 것 같다.

물론 데릭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건 그의 성향이 아니다.

그는 아주 진지한 눈빛으로 눈앞의 적에게 검을 겨눴다.

이솔렛이 쏟아내는 냉기가 사위를 덮으며 반짝이는 눈의 결정을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푸른 꽃처럼 보였으나, 꽃잎 한 장 한 장이 살을 에는 살기를 띠고 있다.

평범한 이라면 가까이 다가서는 것만으로 전신의 살갗이 찢어져 내리리라.

“과연 대단하군. 그게 별의 신전 깊숙이 틀어박혀 있던 초대의 검이란 말이지? 네가 가지고 나왔단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쭉 생각했단다.”

“……뭘 말입니까.”

“언젠가 내가 가져야겠다고 말야.”

아이작이 검은 손으로 허공을 꽉 틀어쥐었다.

데릭의 주위에서 수십의 검은 입자가 명멸하더니 데릭에게 수십의 광선을 쏘았다.

눈을 크게 뜬 데릭이 간신히 그것을 피해냈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광선이 그의 어깨의 살을 패며 지나갔다.

“큭……!”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애써 참으며 데릭이 다시 자세를 취했다.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의 자세는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솔렛은 제 검입니다. 누구에게도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그 검의 생각은 어떨까? 검도 필시 더 강하고 재능 넘치는 주인의 손에 들리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

“…….”

아이작이 비웃음을 보내며 도발을 하였지만 데릭의 표정은 침착하기만 했다.

‘재미없는 녀석.’

생각보다도 반응이 없는 데릭을 보며 아이작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데릭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만약 이솔렛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형님에게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뭐?”

“차라리 유릭을 택하면 택했지 당신 같은 사람을 고를 리가 없죠.”

만약 유릭에게 화염 마나가 아닌 서리 마나의 재능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이솔렛은 망설임 없이 유릭을 선택했겠지.

한때는 그런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밤새 검을 휘두른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만약’같은 생각을 하며 열등감에만 찌들어 있는 건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일이라고.

유릭은 유릭, 자신은 자신.

우열을 가리며 비교할 것이 아니라 묵묵히 각자의 길을 걸으면 그만인 일이다.

“……또 유릭 그놈인가.”

역으로 돌아온 도발에 아이작의 표정에 금이 갔다.

평범한 도발엔 전혀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수행을 해온 아이작이었으나 지금의 말은 그냥 넘기지 못했다.

정식으로 가문에 돌아와 이윽고 가주의 자리를 꿰차려던 그의 계획을 시작도 전에 완전히 박살 낸 것이 그 유릭이 아닌가?

미소를 지운 아이작이 콧잔등을 씰룩거리며 얘기했다.

“참으로 우애가 좋아 보기 좋구나, 데릭.”

“…….”

“그러고 보니 사막에서 내가 했던 얘기 기억하느냐?”

갑작스러운 얘기에 데릭이 눈을 찌푸렸다.

사막에서의 얘기라면 어머니의 비밀이 어쩌고 하던 그 얘기 말인가?

“평생을 안고 살다가 무덤에까지 가져가려 했으나, 너희 형제의 우애를 보니 얘기해 주지 않을 수가 없구나. 잘 듣거라, 데릭.”

잔뜩 비꼬는 말투로 아이작이 쏘아붙였다.

비밀이니 뭐니 더 이상 관심도 없는 데릭이었지만, 아이작의 눈에 올라오는 검은 증오의 그림자를 그는 무시할 수 없었다.

강자의 여유를 부리며 차분하기만 했던 아이작이 지금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흐트러져 있군.’

그만큼 감정이 흐트러져 있다는 뜻.

상대적으로 약자인 데릭에겐 절호의 찬스나 다름없었다.

그가 더욱 차갑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아이작의 빈틈을 살폈다.

“후.”

그런 데릭의 마음 따위 뻔히 보인다는 듯, 아이작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네놈이 아무리 냉정하게 있으려 해봤자 소용없다는 듯.

“네게 누이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아이작의 말이 데릭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 * *

사람은 몇 살까지의 기억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론 다섯 살 때의 기억도 채 떠올리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간혹 떠올린다 하더라도 아주 짧은, 단편적인 순간만을 떠올리게 마련.

그러나 아이작은 1살 이전의 기억조차 어제의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그가 가진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였으니.

“나는 장남이었지. 하지만 첫째 아이는 아니었어. 누이가 하나 있었거든.”

“뭐……라고?”

아이작이 꺼낸 이야기가 너무나 현실성 없는 얘기였기에 데릭은 멍청하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데릭의 그 모습을 아이작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역시 모를 거라 생각했다. 그 여자가 이 얘기를 너희들에게 했을 리 없지.”

그 여자라니 누구?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데릭은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라 칭하는 존재를 향한 아이작의 증오와 혐오.

그리고 공포.

“내가 왜 봉인된 마왕의 힘을 가지고 가문을 떠난 줄 아느냐?”

“그야 강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까?”

“강해져?”

아이작이 피식거리며 데릭의 답을 비웃었다.

“그야 강해지긴 하지. 지금 이 순간도 이 힘에 취해버릴 것 같을 정도야. 역시 빨리 마경을 회수하러 왔어야 했는데.”

마왕이란 마경을 지배하는 왕.

마신이 불러온 마계의 땅을 지배했던 그 땅의 패자(霸者)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때문에 마경은 그 자체로 마왕의 힘의 근원이며, 마신이 남겨놓은 잔재.

아이작은 칠색의 마경을 집어삼킴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칠색의 마왕의 힘을 일깨운 것이다.

아직 잘 다루지는 못하고 있다곤 하나, 그 강대한 힘은 확실히 매혹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 힘은 얻는 즉시 대륙의 공적이 되는 힘이다. 평생을 도망 다니며 쫓겨 살아야 하지. 그런 힘에 생각 없이 손을 댈 멍청이가 있을까.”

“…….”

그런 멍청이라고, 데릭은 바로 조금 전까지 아이작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아니라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고.

“이 가문에 계속 남아 있다간 잡아먹힐 것 같았거든. 내 누이 로즈처럼.”

“……잡아먹다니 대체 누가 말입니까?”

“그야 너도 잘 아는 그 여자 말이다.”

이야기의 결말이 예상되었으나 데릭의 머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러나 데릭이 거부하든 말든 아이작의 목소리는 자비 없이 그의 귀에 파고들었다.

“네가 존경하는 가주 발렌티나 로스카. 그녀가 벽을 깨고 10성에 오를 수 있던 이야기를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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