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03화
103화. 로즈 로스카
로즈 로스카.
아이작이 태어났을 때 그녀는 4살에 불과했다.
어린 아기였던 자신을 보며 신기해하던 그 천진한 얼굴은 선명한 초상화처럼 아이작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아직 아기였던 때의 기억인 만큼 뚜렷한 체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광경을 기억하는 것만은 가능했다.
잊어버리지 않는 축복, 혹은 잊지 못하는 저주.
그는 자신의 이 능력을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이날 이때까지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하튼.
그가 아직 1살이 채 못 되던 시기 4살인 로즈는 가문의 깊은 심처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유는 한참이나 나중에야 알게 된다.
그녀는 월하무녀(月下巫女)의 체질을 타고났던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월하무녀의 체질일 경우 5살이 될 때까지 아이는 가문의 심처에서 자라게 된다.”
아주 드물게 태어나는, 타고날 때부터 막대한 서리 마나를 가지고 태어나는 축복받은 체질.
그러나 그 방대한 기운은 아이의 몸에는 지나친 부담이기에, 제대로 기운이 안정될 때까지 가문의 심처에서 길러진다.
그리고 5살을 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기에 무사히 5살 생일을 맞이할 때까지는 가문의 족보에도 올리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감금하듯이 홀로 가둬둔 것은 아니다.
시중을 드는 이도 있고 가족들도 만날 수 있다.
이따금 발렌티나가 아이작을 안고 올 때면 로즈는 눈을 빛내며 하루 종일 아이작 옆에서 떨어지지 않곤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고난도 역경도 없던 평화로운 시기.
일이 터진 것은 아이작이 1살 생일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로즈는 내 생일 선물을 만들어 주겠다며 꽃을 따러 갔다. 화환이라도 만들 생각이었겠지.”
그러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단지 그것뿐.
“아이가 행방불명됐다. 보통은 미친 듯이 찾아다니겠지? 하물며 심처에서 애지중지 기르던 월하무녀의 아이야. 가문 전체가 들고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사라진 날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가문은 조용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아기였던 난 당연히 아무것도 몰랐지. 그냥 가끔 만나던 아이를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을 뿐. 그걸로 슬퍼하지도 투정 부리지도 않았어. 먹고 자고 싸고, 그냥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아기였으니까.”
하지만 아이작이 평범하지 않았던 것은 그 모든 날의 광경이 뇌리에 새겨지고 있었다는 것.
아이작이 그 기억을 떠올리고,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은 몇 년 후의 일이었다.
“그땐 이미 로즈의 모든 흔적이 말소된 후였다. 그녀가 쓰던 물건도, 젖을 줬던 유모도, 시중을 들던 시녀도. 로즈의 존재를 아는 몇 안 되는 고용인들은 모조리 추방당한 후였다.”
가문에서 로즈를 아는 이는 단둘밖에 남지 않았다.
어머니인 발렌티나, 그리고 당시엔 아직 살아 있었던 아버지.
보통의 아이라면 쫄래쫄래 달려가 부모에게 물었을 것이다.
아이작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다.
새벽 밤, 경비를 서고 있던 경비원의 잡담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요새 가문의 위세가 아주 좋은 것 같지 않나? 아칸 놈들도 벌벌 기고 있고 말이야.
-그렇다니까! 물론 원래도 우리 가문이 대단한 가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주님 덕이 크지.
-설마 초월의 경지에 오르실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이 젊은 나이에 10성을 달성하실 줄은! 그야말로 전설에나 나올 경지가 아닌가?
-그럼 우린 전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건가? 으하하하!
어머니가 10성의 경지에 도달했단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린 그는 잘 몰랐지만, 수년이나 주변에서 계속 시끄러운 것을 보면 자신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대단한 업적이란 뜻이리라.
‘어? 몇 년?’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어머니가 초월에 오른 사건은 수년 내내 회자될 정도로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그게 정확히 몇 년 전이었지?
가만히 그걸 생각해 보던 아이작은 발렌티나에게 향하던 걸음을 그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1살 생일을 맞았던 시기. 다시 말해…… 로즈가 사라졌던 시기였지.”
“……!”
아이작이 이죽거리는 어조로 얘기했으나 데릭은 그 표정에 기분 나빠할 겨를도 없었다.
아이작이 한 얘기는,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로 가문을 뒤흔들 만한 비밀이었으니까.
“알고 있나? 어머니는 월하무녀의 체질이 아니다.”
“…….”
“그리고 역사상 어떤 월하무녀도 어머니만큼이나 빠르게 초월을 이룩한 이는 없었어. 아니, 애초에 초월에 다다른 이조차 거의 없지.”
“그러니까…… 형님의 말은…….”
“월하무녀의 아이가 타고나는 기운은 인간이 쌓은 기운이 아닌 하늘이 내린 달빛의 기운. 그것이 얼마나 탐스럽게 보였을까. 큭큭큭.”
“!”
킬킬거리는 아이작을 보며 데릭이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그러나 이솔렛의 검은 처음보다도 더욱 쉽게 제압당했다.
아이작이 갑자기 본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데릭의 검이 무뎌진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 그리 핼쑥한 얼굴로.”
“그, 아아아아!”
믿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
그 일념을 되뇌며 데릭이 몇 번이나 이솔렛을 휘둘렀다.
그것이 눈앞의 존재를 쓰러뜨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방금 들은 이야기를 부정하려는 발버둥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흥.”
그러나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을 아이작이 맞아줄 리도 없고.
휙!
“컥……!”
반대로 아이작이 가볍게 휘두른 팔은 일순간에 데릭의 가슴을 길게 그어냈다.
“미리 말해두는데 난 딱히 복수하겠다거나 그러려는 게 아냐.”
“큭!”
중상을 입고 몸이 흔들리는 데릭을 아이작이 가뿐히 제압했다.
땅에 패대기친 채 이솔렛을 든 쪽의 손목을 아이작이 콱, 짓밟았다.
“난 그냥 도망치고 싶을 뿐이야. 그 인간의 탈을 쓴 괴물한테서.”
“어머니를 모욕하지 마라!”
데릭이 분개하며 일어나려 해보지만 도저히 아이작의 발을 치울 수 없었다.
마치 철로 된 기둥처럼 그 발은 데릭의 팔을 완전히 땅에 처박고 있었다.
“눈물겹구나, 눈물겨워. 그렇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느냐?”
“당연한 소릴!”
“하나 묻겠는데, 어머니가 널 안아준 적은 있나?”
“당연-”
당연히 있다고 대답하려던 데릭은 말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네가 기뻐할 때 머리를 쓰다듬어준 적은? 슬퍼할 때 등을 토닥여 준 적은 있나?”
없다.
그러기는커녕 그는 어머니의 맨손을 본 기억조차 아득했다.
발렌티나는 정말로 중요한 행사 같은 것이 아니라면 항상 하얀 장갑을 끼고 다니곤 했다.
데릭은 그것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야 어릴 때는 섭섭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철이 들고 로스카란 이름이 가진 무게를 알게 된 이후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머니의 행동도 그저 자연스럽게만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엄한 부모라 할지라도, 설령 자식을 미워하는 부모라 할지라도, 단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다는 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그럴 줄 알았다.”
아이작이 쓴웃음을 짓더니 데릭의 손목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콰득!
“아악!”
손목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데릭이 비명을 질렀다.
손아귀의 힘이 풀리며 이솔렛을 놓칠 것만 같았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주먹을 쥐고 팔을 빼려 해보지만 아이작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쓰러운 녀석.”
데릭의 필사적인 발버둥도 마왕의 힘을 일깨운 그의 앞에선 버둥거리는 벌레와 다를 바 없었다.
아이작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이솔렛에 손을 뻗었다.
이미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때.
-파앗!
이솔렛이 밝은 빛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아이작도, 그리고 주인인 데릭조차 그 빛을 보곤 놀라 움찔했다.
이 자리에서, 아이작과 데릭과 이솔렛밖에 없는 이곳에서 결코 피어날 수 없는 빛.
화르륵!
밝은 태양과 같은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 * *
드륵.
검이 달그락거린다. 하지만 뽑히지는 않았다.
동시에 이솔렛이 흩뿌리는 냉기가 더욱더 강해졌다.
‘……이런 뜻인가?’
유릭이 그 뜻을 헤아려 염화신무의 내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이솔렛이 냉기를 끌어올리는 만큼 유릭도 발맞추어 불꽃을 뿜어내었다.
<화룡검화 5중첩>.
그렇게 상승한 불꽃은 어느새 5중첩에 달해 있었다.
지금의 유릭이 끌어올릴 수 있는 한계선.
하지만 이솔렛에선 그 정도는 어림도 없다는 듯 더욱더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미 사위를 뒤덮던 수증기는 결로가 되어 떨어지고 공간 전체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큭…….’
기운이 밀리니 유릭이 이를 악물었다.
이솔렛이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 건 이미 확실하다.
하지만 자신의 경지론 아직 그걸 받을 자격이 없다는 얘긴가?
‘……6중첩은 아직 안 된다.’
이렇게 된 이상 이를 악물고 6번째 화룡을 불러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아직은 안 된다.
그간 수련을 하며 6중첩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수련 중에 아주 잠시 엿본 6중첩 이상의 경지는 단순히 화력이 강해지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8성의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시도해 볼 만한 영역.
세상엔 근성 가지곤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그 밖에 방법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
‘<프로미넌스>.’
순간적으로 불꽃의 화력을 증강하는 적염의 마법.
쓰고 나면 한동안 불꽃을 일으키지 못하게 되긴 하지만 딱히 지금 전투 중인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유릭이 심호흡을 마치곤 술식을 새기자 5겹의 검화가 하나씩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큭…….”
고고하게 타오르는 평소의 화룡과 달리 붉게 물든 적룡은 유릭의 손에서 악귀처럼 날뛰었다.
전신의 체액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만 같은 고통이 덮치는 와중에도 유릭은 이솔렛을 놓지 않았다.
그 보람이 있는지 <프로미넌스>를 결합한 검화는 이솔렛의 결로를 녹여내고 있었다.
이솔렛이 이 이상 냉기를 끌어 올리는 것을 멈춘다.
온 힘을 끌어내며 몸이 터져 나갈 듯한 고통을 참고 있는 유릭에 비해 이솔렛은 도도하기만 했다.
이 정도면 뭐 합격점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뭐 어쨌는데!’
뭔가 할 거면 빨리하라며 유릭이 이를 악물었고.
그 순간 이솔렛의 서리 마나와 유릭의 화염 마나가 얽혀 들어가며 섞이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유릭의 눈이 크게 뜨였다.
분명 극상성일 터인 두 마나가 섞여드는 광경은 마치 물과 기름이 섞이는 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이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그 광경에서 유릭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아…….”
어느새 유릭은 흔들리는 마차로 돌아와 있었다.
그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조금만 더, 잠깐이라도 좋으니 좀 더 눈에 담고 싶었는데.
“유릭? 왜 그러느냐?”
발렌티나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릭이 알고 있는 한 대륙 제일의 술사인 그녀조차도 방금 유릭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이 정도는 돼야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다는 건가.’
초대의 안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유릭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손은 어떻게 된 일이냐?”
“손이요?”
그때 발렌티나의 말에 유릭은 비로소 손의 이상을 알아차렸다.
그의 손이 이솔렛이 뿌리던 것과 비슷한 빛을 흩뿌리고 있던 것이다.
‘뭐야 이게?’
초대의 힘이니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정체 모를 빛이 나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긴 했다.
발렌티나는 더욱 걱정인지 유릭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쿠르르릉!
빛이 마차의 천장을 뚫고 올라 하늘에 닿았다.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리며 허공에 균열이 생긴다.
그 조화에 유릭도 발렌티나도 눈을 크게 뜨고 있으려니.
쩌적, 쿵-!
“컥!”
균열이 열리며 온몸이 만신창이인 사내가 떨어졌다.
녀석은 떨어지자마자 멍이 든 팔뚝으로 단단히 검을 쥐며 주변을 잔뜩 경계했다.
이윽고 그와 유릭의 눈이 마주치며 두 사람이 눈을 깜빡였다.
“……유릭?”
“너 왜 여깄냐?”
하늘이 열리며 떨어진 것은, 이솔렛을 들고 있는 데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