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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13화 (113/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13화

113화. 육포값은 해야지

아무리 봐도 평범한 숲의 허공.

그곳에 기묘하게 일렁이는 기분 나쁜 형상이 있었다.

마경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적색 지대 이후로 오랜만이네.’

지금은 사라진 칠색의 마경 이후로 오랜만에 들어가는 마경이었다.

마경이 대륙 곳곳에 수십 곳이나 되긴 하지만, 반대로 말해 겨우 수십 곳밖에 없는 장소다.

그렇게 흔하게 들락날락할 장소는 아니었다.

“대전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저 안에서 나눠 드린 인식표를 지키십시오. 마지막까지 지켜내신 분의 승리입니다.”

잘 차려입은 베르넘의 기사가 룰을 설명하고 있었다.

경장이긴 했으나 몸의 주요 부위를 덮은 흑색의 갑주, 그리고 같은 흑색의 장검.

베르넘의 기사 중에서도 정예라 칭해지는 흑혈기사단이 틀림없었다.

흑기사가 작고 붉은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얘기했다.

“이 인식표에는 여러분 각자의 생체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참가 신청을 하실 때 등록하신 것 기억하실 겁니다. 본인의 인식표가 부서지면 그 즉시 탈락이니 주의하십시오. 덧붙여 남의 인식표를 뺏어와 본인의 것처럼 꾸며도 소용없습니다.”

굵직한 계약 같은 것을 맺을 때도 사용되곤 하는 마법을 응용한 목걸이였다.

참고로 로스카와 아칸의 휴전 협정서에도 저 마법을 응용한 두 가주의 서명이 쓰였었다.

“들어가시면 안쪽은 동이 트기 직전일 겁니다. 해가 떠오르면 그때부터 시작이니 미리 자리를 잡아 놓으십시오. 그럼 입장해 주시길.”

기사의 말이 끝나고 인식표를 찬 검사들이 우르르 마경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유릭과 글렌도 그 뒤를 따랐다.

“대충 300 정돈가?”

“많기도 하군.”

참가자는 얼추 300명 정도.

이들을 물리치고 둘 중 하나가 우승을 해야 하니, 경쟁률만 150 대 1인 셈이다.

팟!

일렁이는 입구로 들어가니 눈에 비치는 광경 전체가 돌변했다.

동이 트기 직전이라는 말답게 아직은 어둑한 새벽 느낌.

그 밖에 보이는 광경은.

‘크군.’

거대한 밀림이었다.

마경 거목림(巨木林).

어딜 봐도 녹빛밖에 보이지 않는 짙은 녹색의 바다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펼쳐져 있었다.

평범한 숲이 아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나뭇잎 하나만 해도 유릭보다 크다.

그런 나뭇잎을 몇 개나 지탱하는 가지 역시 굵고 두꺼웠고, 그런 가지가 달린 줄기는 한층 더 거대했다.

혹시 베르넘의 영지민들이 평균적으로 거대한 이유가 이 거목림의 영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압도되는 풍경이었다.

‘약간 고생대 같은 모습인데.’

하나같이 크고 굵은 식물들도 그렇고, 간간이 보이는 곤충 형태의 마물들 역시 사람보다 훨씬 크다.

저 멀리선 집채만 한 매머드가 엉기적엉기적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평범한 사람이 들어왔다간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죽어버리리라.

서걱-

“키에에엑!”

물론 이 마경에 들어온 300명 중 평범한 사람 따윈 없었지만.

“숲은 벌레가 많아 싫다니까.”

양단된 거대 잠자리가 발버둥도 못 치고 떨어진다.

검을 휘둘러 벌레의 체액을 털어낸 글렌이 벌레는 싫다며 투덜거렸다.

“일단 들어가자. 식수부터 확보해야지.”

달려드는 벌레들을 처리하며 유릭과 글렌이 점점 숲 안쪽으로 향했다.

300명이나 되는 이들이 사활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기에 일단은 식수와 식량부터 확보해야 했다.

“지도는 만들어왔지?”

“문제없다. 식수를 얻을 곳도 식량이 있는 곳도 잠잘 곳도 완벽해.”

대륙 구석에 박힌 한적한 마경과 다르게 거목림은 베르넘의 인근에 있는 마경이다.

당연히 그 내부는 대부분 탐사된 후였다.

지난 며칠간 두 사람이 바삐 돌아다닌 것은 이 지도를 만들기 위함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는 만들었겠지.’

다른 이들 역시 이 정도 준비는 당연히 해왔을 터.

즉 지도에 표시해 놓은 냇가나 식용버섯의 군락지, 이슬을 피하기 좋은 동굴 등은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장소인 것이다.

다른 참가자들과의 조우를 피하긴 힘들겠지.

하지만.

‘아마 당분간은 괜찮을 거 같은데.’

만난다고 무조건 전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경기가 막 시작된 초반에는 더욱더.

* * *

냇가에서 식수를 확보하고 식용버섯을 따러 간다.

과일나무가 열리는 곳을 찾아 당분간 먹을 만큼 잔뜩 챙겼다.

버섯도 과일도 모두 큼직했기에 양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떠올랐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는 신호.

그 직후.

-사람이다!

이쪽을 발견한 네 명의 검사들이 급습을 가해왔다.

챙!

날아오는 검을 걷어내며 유릭이 선두의 가슴팍을 발로 찼다.

그사이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글렌의 셰이드 소드가 남은 세 놈의 발목을 노리고 사악 그어졌다.

“큭!”

채채채챙!

상대도 어설픈 이들은 아니었기에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걷어냈다.

그 시점에서 이미 기습의 효과는 사라졌다.

여섯 검사의 어지러운 난투가 시작됐다.

맹공을 가하는 습격자들과 여유로이 막아내는 유릭과 글렌.

섬뜩한 날붙이가 오가는 실전이었지만 그들 모두가 깨닫고 있었다.

‘제대로 안 하고 있군.’

유릭은 물론 글렌과 상대 검사들 전부가 충분히 여력을 남기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양측이 힘을 소진했을 때를 노려 덮쳐올 하이에나들을 대비하기 위한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만.”

상대측 대장의 명령에 검사들이 모두 천천히 물러난다.

“베르넘의 흑기사인 줄 알았는데 검의 움직임을 보니 아니군.”

베르넘의 기사가 아니라면 당장 싸울 필요는 없다.

그런 암묵적인 인식이 참가자 대다수에게 퍼져 있었기 때문.

습격해 온 건 아마 유릭이 가진 녹시아가 흑색의 검신을 가진 검이기 때문일 것이다.

베르넘이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흑철은 그들의 검술만큼이나 유명한 물건이었으니까.

흑철로 만든 검과 갑주는 흑혈기사단의 트레이드마크였고, 그들은 흑기사라는 명칭으로 불리곤 했다.

물론 유릭의 녹시아는 색만 검을 뿐 베르넘의 흑철로 만든 물건은 아니다.

“기습한 건 사과하지. 하인켈 가의 에른이라 한다.”

무슨 악수라도 나누자는 분위기로 상대편의 대장이 자기소개를 했다.

하인켈.

베르넘같이 대륙 단위로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나름 한 왕국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유릭이 경계하며 검을 내리지 않자 그가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너도 눈치가 있다면 돌아가는 상황은 알겠지? 손을 잡지 않겠나?”

“손을?”

“우리끼리 싸워봤자 기뻐하는 건 베르넘뿐이다. 일단은 놈들한테서 영약을 뽑아내는 게 먼저 아니겠나.”

이번 대전이 카를을 조명하기 위한 베르넘의 술책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승 상품으로 내건 영약은 처음부터 내줄 생각이 없었다는 것도.

그러니 참가자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공통의 인식을 가진 것이다.

우선 베르넘을 집중 공격해, 놈들의 품에서 영약을 끌어내는 것이 먼저라고.

“우리끼리 싸우는 건 그다음에 하면 돼. 어때, 좋은 제안이지? 이미 너 말고도 여러 명에게 제안했고 모두 받아들였다.”

“임시 동맹을 맺자는 말이군.”

“그래.”

그것은 매우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거절하지.”

하지만 유릭은 굳이 받을 생각이 없었다.

에른 하인켈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왜지?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인데.”

“나는 내 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다. 영약이 탐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비겁한 술수를 부리고 싶진 않군.”

-우우~

침도 안 바른 거짓말에 메르가 야유를 보내왔지만 무시했다.

“그렇다고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 할 거면 너희끼리 해라. 나는 내 길을 걷겠으니.”

“……알겠다. 거 참 대단한 성인군자 납셨군.”

에른 하인켈이 크게 혀를 차더니 동료 검사들과 함께 떠나갔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가 떠나자 글렌이 툭 물었다.

“방금 말했잖아? 내 검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시험해 보고 싶다고.”

“개소리 말고 무슨 꿍꿍인지 빨리 말해라. 그래야 맞춰주지.”

메르와 마찬가지로 글렌 역시 유릭의 말은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래도 일행의 리더 격인데, 리더의 말을 이렇게 안 믿어줄 줄이야.

유릭이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일단은 하이에나의 숫자가 줄어들 때까지 기다린다.”

유릭은 남들에게 없는 정보가 있는 만큼 더욱 신중했다.

방금 하인켈의 말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참가자가 베르넘을 노리고 있다.

임시 동맹까지 맺어가며 싸우지 않기로 협의하고, 오로지 베르넘의 흑기사만을 노린다.

이 정도 머릿수에 차이가 난다면 당연히 베르넘은 탈락하리라고 그들은 생각하겠지만.

‘결국 우승은 카를이 했단 말이지.’

회귀 전 우승자는 카를이었다.

그때도 당연히 지금처럼 임시 동맹이 돌아가고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카를은 유유히 그들을 물리쳤고, 베르넘이 기꺼이 바치는 영약을 받아먹었다.

그 뒤로도 대륙을 주유하며 명성을 쌓아 나갔지.

카를을 지키는 베르넘의 검은 생각보다 더욱 견고하다.

“그리고 당장은 베르넘의 상황을 살펴야 돼.”

그러니 할 일은 명확하다.

생각 이상의 전력을 가진 베르넘을 찾아 정찰하는 것.

그러자 글렌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이에나가 줄어들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 않았나? 베르넘 근처에 갔다간 교전을 피할 수 없을 텐데.”

“괜찮아. 적당한 정찰이 있으니까.”

유릭이 이제 활약할 때라는 듯 피식 웃으며 앞섬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곳에서 움찔움찔 새끼 호랑이가 기어 나왔다.

-정말 제가 해요?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곳에 저 혼자?

‘그냥 보고만 오는 거니까 상관없잖아.’

유릭이 작은 손수건을 꺼내 메르의 몸에 묶었다.

미리 국방색으로 칠해 놓은 손수건으로 크게 의미는 없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너…… 제정신이냐?”

글렌이 황당한 어조로 물었다.

잔뜩 찌푸린 눈엔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당연히 제정신이지.”

“볼 때마다 쿠션에서 육포나 처먹던 저 돼지고양이를 정찰로 보내겠다고?”

-돼지고양이라니! 이 하인 놈이!

메르가 앞발을 들어 흔들며 분개했지만 당연히 글렌에겐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위장 망토 탓에 모습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다 생각이 있으니까 믿어라. 메르 너도 출발할 준비나 해.”

‘기척 정돈 숨길 수 있지?’

글렌에겐 대충 대답하며 메르에게 지시를 내렸다.

메르가 어물쩍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랑, 여기랑, 음…… 이곳도 한번 가봐. 소수로 다수를 막기 쉬운 지형이니까 놈들이 있을 가능성이 커.”

“애옹-”

“망했군. 이딴 괭이 새끼한테 우리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니.”

“샤아!”

-누가 괭이 새끼야!

피로가 느껴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 글렌에게 메르가 위협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유릭이 피식 웃으며 메르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가봐. 육포값은 해야지.”

-네, 네에…….

시무룩하게 꼬리를 내린 메르가 터벅터벅 걸어간다.

도중에 혹시…… 라는 생각으로 뒤를 돌아보았으나, 유릭의 웃는 얼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메르가 한숨을 쉬더니 각오를 다지곤, 냉큼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 * *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

들어오는 입구가 제한적인 그곳은 소수로 다수를 막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물론 궁지에 몰릴 경우 배수의 진이 될 수 있지만, 어떤 공격에도 뚫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이보다 좋은 요새가 없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베르넘의 검은 결코 뚫리지 않습니다.”

“음.”

카를과 마야는 그곳에 있었다.

당장 이 자리에는 둘뿐이었지만 협곡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흑기사들이 몇이나 포진해 지키고 있었다.

이중 삼중으로 포진한 그들을 뚫지 않고서는 결코 카를에게 다가올 수 없으리라.

“분명 작당 모의를 하고 저희만 치러 올 겁니다. 영약을 먼저 확보할 생각이겠죠.”

“그런가.”

“그러니 저희는 가만히 앉아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지키다 적당히 숫자가 줄어들면 그때 본격적으로 치고 나가도록 하죠.”

“어, 그래.”

마야의 말대로 입구 쪽에선 벌써부터 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쪽을 발견한 참가자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단 뜻이다.

아직은 한 팀이지만 곧 소란을 듣고 다른 참가자들도 모여들겠지.

아니나 다를까 소리는 점점 격해지기 시작했고.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마야는 잠시 상황을 보러 떠났다.

혼자 남은 카를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참을 있던 그가 불현듯 눈을 떴다.

“심심한데.”

불만 가득한 샐쭉한 표정.

이상했다. 분명 검술 대전이 시작되면 질릴 정도로 결투를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본래는 뭐가 열리는지도 몰랐는데 그 말을 듣고 참가한 것이다.

실제로 시작할 때 300여 명이나 되는 실력자들이 모인 것을 보곤 그의 가슴은 크게 두근거렸다.

그런데 정작 본 경기가 시작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닌가?

저 바깥에는 300명이서 치고받고 파티를 벌이고 있는데 그냥 앉아만 있으라고?

쩔그럭.

그가 차려입은 갑옷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후.

“많이 기다리셨…… 카를 님……?”

돌아온 마야는 아무도 없는 빈자리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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