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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14화 (114/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14화

114화. 밸런스 맞추러

메르를 보내고 유릭과 글렌은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경기가 아닌 만큼 컨디션 관리는 중요했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주는 것도 훌륭한 생존법 중 하나다.

그렇게 두어 시간 기다리고 있으려니.

“왔다.”

유릭이 눈을 빛내며 지도를 활짝 폈다.

“뭐가 왔다는 거지?”

글렌이 눈을 찡그리며 유릭이 가리키는 지도를 보았다.

그러곤 지도의 변화를 보더니 놀란 듯 눈이 커졌다.

분명 평범한 종이에 평범한 잉크로 그려놓은 지도에, 웬 빨간 점이 하나 생긴 것이다.

그가 지켜보는 사이 빨간 점은 하나, 둘, 셋,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사람들 위치.”

“위치라고? 그게 왜 지도에 나타나는데?”

“메르한테 아티팩트 하나 들려 보냈거든.”

물론 거짓말이고 사실 메르가 쓰는 마법이다.

사람이 보이면 이쪽으로 신호를 보내라고 미리 얘기를 해두었다.

보이는 위치에 따라 특정 신호를 보내고, 지도에 걸어놓은 마법이 그 신호를 수신해 빨간 점으로 표시하는 식의 구조였다.

비록 점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변하는 정도는 되지 못했지만, 메르가 확인할 때마다 조금씩 갱신된다.

그 정도만 되어도 이 숲에선 더할 나위 없는 고급정보였다.

“고양이를 정찰로 쓴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어처구니가 없군. 대체 그런 아티팩트는 언제 준비한 거지?”

“내가 준비성이 좀 좋아.”

“근데 어떻게 입구를 통과했지? 분명 베르넘에서 싹 검사를 했는데.”

마경에 들어오기 전 베르넘에선 대대적인 검사를 하였다.

나눠준 인식표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아티팩트를 쓰지 못하게 점검했던 것이다.

참고로 엑셀레아에 매어둔 풍령까지 아티팩트 취급을 받아 맡겨두고 들어온 상태였다.

“비밀이다.”

“……어지간히 비밀이 많은 녀석이군.”

글렌이 쳇, 혀를 찼다.

그사이 유릭은 지도의 또 다른 변화를 눈치챘다.

“아, 검은 점이다.”

“검은 점은 또 뭐냐?”

빨간 점이 뜻하는 건 일반 참가자들의 위치.

검은 점이 뜻하는 건 하나였다.

“베르넘의 흑기사들.”

카를과 마야를 위시한 베르넘의 무리.

흑기사를 발견한 메르는 한동안 그 주위를 중점적으로 정찰했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몇 바퀴나 돌고 나니 그 부근의 정보가 비교적 정확하게 표시되었다.

“역시 방어하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군. 벌써 싸우고 있는 모양인데?”

입구가 몇 없는 협곡에 자리한 흑기사들.

그리고 그 주위를 빨간 점의 무리가 포위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몇몇 팀이 합심하여 베르넘을 뚫기 위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빨간 점이 대략 반쯤 되었고, 남은 반은 멀리서 관망하거나, 아니면 아예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거나 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아무리 글렌이라도 이것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아티팩트인지는 몰라도 그걸 애완동물에 들려 보내서 이 정도 정확한 정보를 물어오다니.

전쟁에서 새나 매 같은 것을 정찰로 활용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굉장히 전문적인 훈련을 오랫동안 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그 새끼 호랑이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짐승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그걸 데리고 있는 유릭도 놀라웠다.

‘역시 따로 부리는 정보 조직이 있어.’

아마 그 집단이 훈련시켜 유릭에게 보낸 걸 테지.

그게 아니면 결코 말이 되지 않는다.

스카디 때부터 시작된 글렌의 오해는 사그라지긴커녕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흐음.”

글렌이 감탄하는 사이 유릭은 턱을 쓰다듬으며 형세를 살폈다.

검은 점이 무리 지은 위치. 그곳을 주기적으로 두드리고 있는 빨간 점의 무리.

“빨간 점만 죽어 나가고 있군.”

당분간 지켜본 바로는 탈락자는 빨간 점에서만 나왔다.

검은 점은 조금도 밀리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중.

아직 초반이라 일반 참가자들이 모두 뭉치지 않은 만큼 흑기사들이 많이 유리한 모양이었다.

‘그냥 둘 수 없겠는데.’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유릭이 지도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

“어쩔 생각이지?”

해야 할 일이야 뻔했다.

“밸런스 맞추러 가야지.”

유릭은 이 밀림의 균형의 수호자가 될 생각이었다.

* * *

릭 베이커는 베르넘의 흑기사 중 하나였다.

흑철로 만든 검을 하사받아 흑혈기사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 7성의 경지를 달성해야 한다.

즉 그 역시 7성 이상의 뛰어난 검사임을 뜻했다.

이번 검술 대전의 참가 조건 중 하나가 ‘아직 마스터가 아닐 것’임을 생각하면 이 거목림에서 최상위 실력자라 해도 좋으리라.

흑기사들이 일반 참가자들의 공세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6성이 꽤 섞여 있는 일반 참가자에 비해 흑기사는 모두 7성이었으니까.

“하, 한 번만 봐줘! 제발!”

“흥.”

그 릭이 방금 빼앗은 남자의 인식표를 콰직, 손으로 뭉갰다.

남자의 표정에 허탈함이 자리한다.

그가 푹 고개를 숙이더니 거목림의 입구 쪽으로 절뚝절뚝 걸어 나갔다.

‘쉽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릭이 손을 털었다.

자신은 올해 막 7성으로 올라와 흑기사가 되었다.

그전까진 침식을 잊고 수련에만 몰두했기에 본격적으로 검술 대전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때와 다르게 서바이벌이라는 특수한 형식인 데다 카를의 우승이라는 특별 임무도 있었기에 많이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별것 아니었다.

‘다들 이 수준이면 별거 없겠어.’

가문에서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길래 제법 쫄았었는데 참가자들의 수준이 생각 이하다.

아니, 참가자들이 약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강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가 히죽히죽 웃었다.

그동안 열심히 수행한 보답을 받는 것 같아 뿌듯했다.

이내 그가 정신을 차리곤 본진으로 복귀하려 발을 돌렸다.

한창 여유로운 마음으로 돌아가던 중.

휘익!

“!”

갑작스러운 기습에 그가 대번에 검을 휘둘렀다.

카앙!

부딪친 것은 그의 흑철 장검과 비슷한 검은 색의 검. 그러나 결코 같은 재질은 아니다.

적이란 뜻이었다.

‘제법.’

릭이 눈을 빛내며 상대의 검을 보았다.

그 검신에선 선명한 불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불의 기운을 쓰는 검사.

‘남부 사람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가 흑철 장검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우웅- 우웅-

그의 오러에 반응해 흑철 장검이 울리며 파장이 뻗어 나갔다.

이 파장이 베르넘이 최소 7성 이상에게만 흑철 장검을 하사하는 이유다.

주변의 마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성질.

그것은 적뿐만 아니라 검을 들고 있는 본인 역시 가리지 않는다.

때문에 흑철을 제대로 다룰 수 있으려면 오랜 훈련이 필요했다.

그런 훈련을 거쳐 흑철 장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어야만 진정한 베르넘의 흑기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후.’

흔들리는 상대의 불꽃에 비해 릭의 검은 오러는 굳건했다.

흑철의 성질은 그의 오러에도 간섭하여 뒤흔들고 있었지만 릭은 그런 흑철 장검을 들고 수없이 단련해온 흑기사다.

흑철의 파장을 단단히 제어하며 그가 폭발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상대는 스스로의 불꽃을 수습하느라 릭의 움직임에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다.

‘잡았다!’

그의 검이 상대의 인식표를 노리고 폭사되었고.

콰지직!

경쾌하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릭이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노렸던 상대의 인식표는 멀쩡하다.

부서져 파편을 흩날리고 있는 것은, 그가 자랑으로 삼던 베르넘의 흑철 장검이었다.

“검은 좋은데 너무 대책 없이 휘두른다.”

걸렸다는 듯 유릭이 히죽 웃으며 가볍게 검을 그었다.

슥.

별다른 화려한 기교도 없다.

간결하게 그은 검이 릭의 인식표를 가르고 지나갔다.

툭.

바닥에 떨어진 반쪽짜리 인식표를 보며 릭이 아연실색했다.

“흑철이 다루기 어려운 건 알겠는데 그렇게 억지로 눌러가며 쓰는 물건이 맞아? 아저씨?”

“네, 네 녀석…….”

유릭의 말이 그의 가슴 깊숙이 박혀 들었다.

방금 전.

자신 있게 휘두른 자신의 검을 상대는 일순간에 간파했다.

아무리 훈련을 통해 안정시켰다곤 하나 틈이 아예 없을 순 없었고, 그 약한 빈틈을 상대는 정확히 가격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흔들리고 있는 저 불안정한 불꽃으로!

‘흔들림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용했다?’

말은 쉽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센 풍랑 속에서 조각배를 조종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가문의 장로급 검사 외에 그런 기교를 가진 상대를 그는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상대는 이제 막 약관이나 되었을 법한 젊은 검사였다.

“그럼 이만.”

망연자실한 남자를 두고 유릭이 떠났다.

이걸로 자괴감에 휩싸여 스스로 몰락하든, 아니면 깨달음의 기회로 삼아 다시금 위로 도약하든.

유릭과는 하등 상관없는 남의 얘기였다.

“보자…… 한 놈 정도만 더 처리할까?”

유릭이 지도를 보며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

글렌에게 딱 한 놈만 탈락시키라고 보냈으니 자신이 한 명 더 잡으면 총 3명의 흑기사가 탈락하는 셈이다.

그 정도면 빨간 점도 충분히 분전할 만할 테지.

‘그러다가 빨간 점이 너무 세지게 되면 이번엔 그쪽을 처리하면 되니까.’

최대한 황금의 밸런스를 만든다.

그리고 그걸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한다.

그럴수록 검은 점도 빨간 점도 지속적으로 전력이 깎여 나갈 터.

이보다 더욱 손쉽게 우승할 방법은 없으리라.

‘그럼 남은 건.’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기만 하면 된다.

가령 갑작스레 카를이나 마야 같은 강적과 조우하게 될 경우라든가.

* * *

카를이 사라진 것을 알곤 마야는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어디 갔는지 아느냐!”

“모,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모르게 나가신지라…….”

“큭!”

가문의 자랑이라는 흑혈기사단이 그거 하나 눈치 못 채?

하고 타박하기엔 그녀 역시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방금 막 나갔으니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찾아서 다시 데려와야 한다.

“아가씨! 릭이 당했다고 합니다!”

“뭐? 릭이 당해?”

그때 찾아온 급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해가 뜬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탈락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가씨!”

곧이어 연달아 들려온 소식.

릭과 더불어 피노도 크라이브도 탈락했다고 한다.

셋 모두 뛰어난 실력을 지닌 흑기사들이었다.

‘이렇게 빨리 탈락할 이들이 아닌데.’

예정과 너무나 어긋난 상황에 마야는 아주 잠시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러나 그녀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곧바로 고개를 저어 정신을 다잡고는 하나씩 지시를 내렸다.

“나는 카를 님을 찾으러 나가보겠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협곡을 사수하도록.”

“예!”

“벌써 세 명이 당한 걸 보면 일반 참가자 중에 상당한 강자가 섞여 있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만약 과한 희생이 날 것 같으면 깔끔히 포기하고 제2 거점으로 향한다. 그 판단은 텔른, 당신에게 맡기지.”

“맡겨주십시오!”

“그럼 다녀오마.”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그녀가 협곡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만약 그녀가 계속 전선에 남아 있었다면 전장에 흐르는 수상쩍은 흐름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의도가 섞여 있는, 자연스럽지 않은 흐름을.

‘카를 님. 어디 가신 겁니까!’

하지만 그녀는 카를의 실종이라는 중대 사안에 정신이 팔려 전선을 이탈했고.

덕분에 협곡은 유릭의 놀이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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