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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26화 (126/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26화

126화. 스카디 때처럼은

마야와 유릭을 내보낸 후 연무장엔 베르트랑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베르트랑.

잠시 후 그가 눈을 뜨니.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그의 앞에 부복하고 있는 흑색 복장의 남자가 있었다.

“들었느냐, 카자크.”

카자크라 불린 그 중년의 사내는, 과거 제국의 특암부에 속했던 사내였다.

황가의 적을 암살, 납치하는 것을 주 임무로 삼았던 그 비밀부대는 지금은 주인을 잃고 베르트랑에게 거둬졌다.

그들이 베르트랑에게 몸을 의탁한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이 건재하고 특암부가 건재하던 시절, 그들의 마지막 대장이었던 이가 바로 베르트랑이었으니까.

베르트랑이 최연소로 황실 기사단장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특암부로서 쌓아온 공 역시 작지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은 세간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애초에 특암부의 존재 자체를 알고 있는 이조차 많지 않았기에.

지금은 사내, 카자크가 계보를 이어 대장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 역시 과거엔 베르트랑의 밑에서 활동하던 부대원 중 하나였다.

말하자면 그에게 베르트랑은 전 상관이자, 현 고용주인 셈이다.

“말씀대로 모두 들었습니다만, 저 유진이란 자의 생각은 이해하기가 힘들군요. 복용하기도 힘든 불도마뱀의 심장이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거라. 우리도 더 귀한 영약을 내주면서까지 그걸 되찾아오려 하고 있지 않더냐.”

“그건 불도마뱀의 심장이 황가의 보물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다. 우리가 황가의 보물이란 것을 크게 보고 있듯이 그에게도 무언가 다른 가치가 있는 거겠지.”

객관적인 시선에서 불도마뱀의 심장은 영약으로선 심하게 하자가 있는 물건이다.

아무리 방대한 기운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모두 흡수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이른바 영약의 흡수율이란 것인데, 불도마뱀의 심장은 그런 쪽에선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세상엔 눈에 보이는 값어치만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지표가 세상의 모든 것을 정하는 것은 아니다.

본디 어떤 동물보다도 비합리적인 것이 인간이란 생물이었으니.

“……그렇군요. 당신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갑니다. 그에게도 불도마뱀의 심장이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단 말씀이죠?”

“그런 셈이지. 하지만-”

“뒷얘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압니다.”

카자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베르트랑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삼이 든 목함을 들어 그에게 던졌다.

그것을 캐치한 카자크가 함을 품속에 잘 갈무리했다.

“이해는 하지만, 모든 이의 사정을 봐주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그리 말씀하시고 싶은 거겠죠?”

“가능한 한 원만히.”

“알겠습니다.”

카자크의 대답을 듣고 베르트랑이 다시 팔짱을 끼며 눈을 감았고.

잠시 후 눈을 떴을 땐 카자크가 찾아왔던 흔적은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 * *

카자크는 곧바로 부하를 소집해 유릭의 방으로 향했다.

평소대로 부하는 인근에 배치하곤 방에는 그 혼자 향한다.

시종의 복장을 한 채 마치 새벽 순찰이라도 하듯 꾸미며 복도를 걷는다.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걷던 그가 유릭의 방에 도착했다.

미리 마나를 일으켜 전신을 촘촘히 긴장시킨 그가 방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그러길 잠시.

‘……?’

기묘했다.

방에선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불을 뒤척이는 소리도 코를 고는 소리도, 심지어 숨소리 하나조차 나지 않았다.

청력엔 특히 자신이 있는 카자크다. 방 너머에 있더라도 심장 박동 소리조차 잡아낼 자신이 있다고 하는데.

이럴 경우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일런스 마법이 걸렸을 경우.

그러나 이건 말이 안 되고, 다른 하나는…….

“젠장.”

그가 혀를 차며 쾅! 문을 걷어찼다.

그러나 그를 맞은 것은 텅 빈 방, 열려 있는 창문과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뿐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이 들켰을 리도 없고, 애초에 자신들이 오는 걸 알고 도망쳤다고 하기엔 방 안이 너무 차다.

이미 도망친 지 꽤 시간이 흘렀단 소리다.

그 말은 즉.

‘베르트랑과 얘기를 끝낸 직후 곧바로 튀었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라 카자크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 빠른 눈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눈치에 경지가 있다면 10성쯤 되는 녀석인가?

어찌 됐든, 카자크가 얼굴을 구기며 낮게 소리쳤다.

“찾아라! 아직 영지를 나가진 못했을 거다!”

그의 지시는 그 즉시 부하들에게 빠르게 전달되었고.

몇이나 되는지 모를 그림자가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유릭과 글렌은 이미 베르넘의 본가를 둘러싼 내성벽을 넘어 중앙광장에 도착해 있었다.

낮엔 미어터질 정도로 활기찬 광장도 지금은 고요하기만 하다.

모두가 잠에 빠진 영지를 가로지르며 그들이 영지를 둘러싼 외성벽으로 향했다.

“말이 없는 게 아쉽군.”

이 야밤에 다짜고짜 성문을 열라고 난리 칠 수도 없는 노릇.

성벽을 넘어야 하는 입장상 말을 데려갈 순 없었다.

근처 마을까지는 두 다리로 뛰어야 한단 뜻이었다.

“주법을 적절히 사용하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아직 주법 안 익혔는데.”

“뭐? 너 그때 사막에서 주법 익혀놓는다 했었잖아?”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분명 필요성을 실감하긴 하였으나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계속 미뤄두고 있었다.

보법이면 모를까 직접적인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주법은 이래저래 우선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시간을 내어 익혀두는 것이 옳다는 건 알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게 딱딱 맞춰 돌아가던가.

한창 강해지는 것에 맛 들였던 유릭은 전투력만을 우선하는 바람에 아직도 주법을 익히지 않고 있었다.

“어휴, 이딴 걸 주인이라고…….”

“말이 심한데.”

“그럼 진작 좀 얘기하든가! 당장 도망칠 상황 되니까 얘기하는데 안 갑갑하고 배겨?”

그렇게 소리친 글렌이 짙은 한숨을 토했다.

“후우…… 일단 핵심만 대강 가르쳐 줄 테니까 따라와라.”

글렌이 그가 익힌 주법의 요지를 빠르게 전수했고 유릭이 그대로 흉내 냈다.

“그래도 익히는 건 빠르군.”

한 번 알려준 것만으로 곧잘 흉내 내는 유릭을 보며 글렌이 틱틱댔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냐?”

“얼추는. 당장은 그걸로 충분할 거다.”

확실히 속도도 빨라지고 호흡도 훨씬 안정되었다.

다만 글렌의 주법은 유릭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 마치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기분이었다.

‘베르넘을 벗어나면 제대로 된 걸로 익혀야겠어.’

염화신무의 비급 속엔 경신법에 대한 것도 기술되어 있다.

다음에 익힐 무공은 그것으로 확정이다.

이윽고 도심지를 가로지른 그들의 눈앞에 외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굳게 닫힌 성문과 함께 그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성문 경비가 보인다.

그들을 깨울 생각도 없고 성문을 뚫고 갈 생각도 당연히 없었기에, 두 사람은 살짝 방향을 틀어 성문에서 떨어진 지점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성벽 아래에 도착했을 때.

“멈춰라!”

날카로운 울림과 함께 그들의 뒤로 복면의 사내가 나타났다.

막 성벽을 오를 준비를 하려던 유릭이 얼굴을 구기며 돌아보았다.

‘벌써 따라오다니…….’

설마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시간상 생각해 보면 검성은 자신과 헤어진 직후 곧바로 부하를 소집했다는 것이 된다.

처음부터 검성은 이 거래를 무슨 수를 쓰든 성사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역시 검성이시군. 손이 빨라, 아주.”

“아무렴 네놈 눈치만 할까.”

유릭이 비꼬는 것에 카자크가 헛웃음을 뱉으며 대꾸했다.

그가 팔뚝 길이의 소검을 빼 든다.

소음 하나 나지 않는 발검에 순식간에 자리에 살기가 더해졌다.

그러나 살기의 진원지는 카자크 한 명뿐이 아니었다.

“글렌, 몇 명이나 있는지 알겠냐?”

“글쎄…… 조금만 시간을 주면 알아 올 수 있는데.”

“시간이 있어 보여?”

“그럼 몰라.”

글렌의 즉답에 유릭이 혀를 차며 몸을 긴장시켰다.

상대는 척 봐도 상당한 강자들이다.

홀로 몸을 드러낸 눈앞의 사내만 하더라도 검성이나 엘가이아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기세가 느껴졌다.

기척이 워낙 불분명해 확신할 순 없지만 이미 마스터에 오른 이로 보인다.

주변에 포진한 이들도 -그야 모두 마스터는 아니겠지만- 상당한 실력자들이겠지.

“특암부의 대장인 카자크다. 들어본 적 있나?”

“……과연. 아직도 남아 있었던 건가.”

제국 특암부의 악명은 유릭 역시 익히 들었다.

그들이 활동했던 시대와는 세대가 다른 유릭의 귀에도 들려왔을 정도니, 실제론 어느 정도였을지 훤하다.

로스카가 파악하기로, 과거 그들이 암살했던 목록엔 마스터까지 여럿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역시 일개 용병은 아니었군. 뭐 어땠든 말이 빨라 다행이다. 우리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저항은 그만두길 바란다.”

“불도마뱀의 심장을 강탈하러 온 건가?”

“오해할 소리 말거라. 나는 중단된 거래를 재개하러 왔을 뿐이야.”

카자크가 품에서 목함을 꺼내 보였다.

베르트랑이 보여주었던 3천 년 묵은 삼이 들어 있던 함이었다.

“거래라면 그거 말인가? 한쪽 저울에 내 목이 올라가 있다던?”

“가능한 한 원만히 마무리하란 명이다. 하나도 어려울 것 없어. 네가 가진 불도마뱀의 심장, 그것만 내려놓으면 모든 걸 가질 수 있지.”

훨씬 영약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물건과 적지 않은 양의 금은보화, 원한다면 베르넘의 비전 일부까지.

이 모든 것에 더해 심지어 목숨까지.

누구라도 거부하기 힘든 제안일 것이었다.

‘메르. 혹시 모르니까 준비해.’

물론 유릭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네.

메르의 대답을 듣곤 그가 녹시아를 뽑았다.

그 검 끝을 거절의 뜻으로 알아들은 카자크가 목함을 다시 품에 넣었다.

자의적으로 거래를 받아주는 게 가장 좋았지만, 아니더라도 크게 상관없다.

다소 강압적으로라도 거래를 받게 하면 그만.

그건 그들이 지금껏 수행해온 임무 중에서 가장 간단한 축에 속하는 임무였다.

‘역시 스카디 때처럼은 잘 안 되나.’

유릭이 작게 혀를 찼다.

그때도 유릭은 크라우 공작의 부하들에게 둘러싸이고 마지막에 가선 엘가이아와 대치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거기서 도망칠 수 있던 것은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였다.

크라우 공작이 딱히 절실한 목적으로 그들을 불러 세운 게 아니라는 점, 성문이 열려 있었고 이쪽은 마차를 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엘가이아는 살기를 전혀 피우지 않았다는 점.

특암부와 마주한 지금 상황은 그 모든 것의 반대였다.

검성은 절실하고 성문은 닫혀 있고 카자크는 대놓고 살기를 줄기줄기 피어 올리고 있다.

‘역시 메르를 타고 도망칠 수밖에 없나?’

도망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여기서 메르가 다시 모습을 보이는 건 그다지 득책이 아니다.

그의 가문인 로스카는 둘째 치고 스카디의 미레유 왕비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

베르넘 역시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자신이 유릭 로스카란 사실을 알아낼 터.

그 말은 즉 유릭 로스카의 옆에 자색의 수정룡이 함께 있다는 사실 역시 알려진다는 뜻이었다.

그것만 해도 골치인데, 메르를 베고 이그네시아를 반시룡으로 만든 정체 모를 적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도 지금 당장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쩔 수 없다.

아쉬움을 곱씹으며 유릭이 메르에게 약속된 신호를 보내려 할 때.

“이 밤중에 다들 바쁘군그래.”

저벅, 소리와 함께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타났다.

유릭이 놀랐고, 카자크는 그 배는 더 뛸 듯이 놀랐다.

“결투하고 있는 거라면 나도 끼워주지 않겠나?”

왜인지 빛의 신검을 빼 든 채 찾아온 카를 클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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