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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29화 (129/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29화

129화. 불법 침입

세상엔 수많은 신앙의 대상이 존재한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나 옛 존재들, 심지어 마신이나 테메레르 대왕 역시 누군가에겐 신앙의 대상이었다.

두 손으론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온갖 종교 사이에서, 루메나 교는 상당히 큰 교세를 가진 곳 중 하나였다.

치유의 재생의 신 루메나.

그녀가 관장하는 것은 치유와 재생, 탄생과 생명, 봄과 아침 등등 숱하게 많았다.

단어만 봐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이 종교는 그 덕택인지 대륙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종교 중 하나였다.

웬만큼 큰 도시는 물론 작은 마을에 가보더라도 루메나를 믿는 치유사가 한 명씩은 꼭 발견될 정도로.

‘그야 실제로 치료까지 해준다면 교세가 클 만도 하지.’

수백의 종교들 중 실제로 눈에 보이는 영향력을 주는 종교는 손에 꼽는다.

대부분은 그저 정신적 위안을 얻는 정도로 그치고, 극히 일부만이 신력(神力)이라 불리는 힘을 실제로 행사한다.

루메나 교는 신력을 가진 대표적인 종교 중 하나로, 그 속성 역시 치유와 재생이었기에 더더욱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종교였다.

단일 종교로 성국이라 불리는 국가를 세웠을 정도니 그 영향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단지, 국가라곤 해도 루메루스는 아주 작은 나라다.

본단이 있는 도시를 포함해 그 근처 마을 몇 개가 영토의 전부.

사실상 소왕국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일개 영지와 크게 다를 게 없는 크기였다.

다만 땅덩이만 작을 뿐 그들의 교세는 전 대륙에 퍼져 있으니, 대륙의 그 누구도 성국을 우습게 보지 못하였다.

유릭의 목표는 그 성국의 본단인 천신전(天神殿).

보다 정확히는 천신전 내부에 있는 루메나의 성역에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모든 상처를 치유해 준다고 하니.’

알려지기를 죽은 사람만 아니라면 누구든 살려내는 곳이라 하였다.

그곳이라면 보다 안전하게 불도마뱀의 심장을 복용할 수 있으리라.

잘못해서 기혈 몇 군데 터져 나간다 하더라도 다시 치유될 테니까.

‘……아프긴 하겠는데.’

상상해 보면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몸 여기저기가 터져 나가도 성역의 치유력에 기대어 강제로 영약을 소화하겠단 것이었으니까.

물론 아무리 아파도 죽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유릭의 발걸음엔 망설임 따윈 없었다.

동부 땅을 향한 여정.

몇 개의 도시를 지나 유릭과 글렌은 여러 차례 변장을 하고, 신분을 새로 얻었다.

“유안 아드레이. 서부 소르닐 왕국의 자작가로, 지금은 몰락해 이름만 남은 가문입니다.”

한 도시에서 첩보 활동 중이던 13기사단의 일원을 만나 새 신분패를 받았다.

유릭은 몰락한 귀족으로, 글렌은 그 종자로.

“요새 가문은 어때? 새로 전달받은 거 있어?”

그 김에 유릭은 가문에 대해 물었다.

로즈의 일은 가문 내에서도 비밀이니 이 기사는 모르겠지만, 그것 말고도 굵직한 사건 같은 건 없나 궁금했던 탓이다.

“별일은 없습니다만…… 아. 아니스 선배님이 폐관을 깨고 나왔습니다.”

“아니스가?”

한동안 소식이 없던 그녀였기에 유릭은 살짝 놀랐다.

“소문으로는 마스터가 되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정말 마스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군요. 아직 정식 발표는 없어서요.”

“진짜라고 해도 당분간은 숨기겠지.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마스터는 상당히 쓸 만한 카드니까.”

“아마 말씀대로일 겁니다. 그래도 도련님에게까지 숨기진 않을 테니 나중에 물어보시죠.”

“그래. 돌아가면 만나봐야겠군.”

그래도 한동안 귀가할 예정은 없으니 만나는 건 훨씬 나중의 일이 되리라.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그래.”

기사와 헤어져 유릭과 글렌은 다시금 여정을 떠났다.

계속해서 동쪽으로.

얼마가 지난 후, 두 사람은 성국 루메루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루메루스는 중앙에 있는 거대한 천신전을 둘러싸듯 지어진 도시였다.

천신전을 지키기 위한 요새와 같은 형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확장되고 발전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철저한 계획에 따라 세워진 모양새였다.

“성역을 지키는 요새라 이건가…….”

루메나 교의 성기사단이라 하면 대륙에서도 꽤나 유명한 집단이다.

검술 자체는 베르넘이나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떨어진다.

대신 그들은 특유의 방어 능력과 어지간한 상처 따윈 빠르게 치유해 버리는 신력 탓에 상대하기 까다롭기론 제일로 꼽히는 이들이었다.

그 말은 즉.

‘무력으로 뚫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단 건데.’

성역에 들어가는 길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하실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글렌이 종자에 걸맞은 말투로 유릭에게 물었다.

말을 타고 관도를 걷던 유릭이 차분히 도시를 살피며 대답했다.

“가장 처음 떠올린 건 힘으로 뚫을 수 있는지였는데.”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글렌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뭐 그렇겠지. 두 번째로 떠올린 건 루메나 교의 사제가 되는 거야.”

“루메나에 귀의하겠단 말씀이십니까?”

“지금 나는 가문이 몰락하여 떠돌아다니는 몸이니 충분히 종교에 귀의할 만해. 남은 재산이라고 하면서 얼마간 헌납까지 하면 더 쉽겠지.”

“흐음…….”

글렌이 턱을 쓰다듬었다.

루메나 교에 귀의하여 정면에서 성역에 들어간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하다.

엘린이 챙겨준 보석이 아직 충분히 있으니 그중 일부를 헌납하며 귀의의 뜻을 표한다면 환영받으며 천신전에 입성할 수 있으리라.

가문이 몰락하여 떠도는 떠돌이 귀족이란 것도 설득력을 올려주는 요소였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습니까?”

“역시 그런가?”

“사제가 되어 천신전에 입성하는 것 자체는 수월하겠지만, 성역에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 아닙니까. 성역은 어지간한 고위 사제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 들었습니다. 아무리 돈을 갖다 바쳐도 단기간에 성역에 들여보내 줄 것 같진 않군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돈이 모자란 건 아닌지 확인해 보라고 하던데.”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겁니까?”

“책에서.”

유릭의 말에 글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하더니,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설득력 있는 문장입니다만 안타깝게도 그 정도로 큰돈은 없습니다. 마련할 방법도 없구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가문에 연락하여 사정을 설명한다면 엘린은 돈을 보내주겠지.

아무리 루메나 교가 이름 있는 종교라 하더라도 로스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천신전 내부를 매수할 만한 돈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현실성이 없어. 일단 거리가 너무 멀다.’

문제는 로스카와 성국이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천신전을 매수하려면 상당한 거금이 필요한데, 그 정도 거금을 이 먼 거리로 보낸다?

계좌이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위험이 크다.

‘위험을 줄이려면 그만한 규모의 호위를 붙여야 할 테고.’

그럴 경우 도저히 비밀리에 움직일 수는 없어진다.

로스카에서 상당한 거금과 함께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단 소문이 퍼지면 로스카를 견제하는 수많은 세력들이 비상을 걸겠지.

이윽고 그 목적지가 성국이란 사실이 알려지면, 성국 역시 꽁꽁 문을 틀어 잠글 것이다.

욕심 많은 고위 사제를 찾아 매수하는 것도 빈틈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머리를 집어넣은 거북이를 매수해 끄집어내는 것은 현실성 있는 작전이 아니다.

“그럼 남은 건 귀의한 후에 정식으로 커리어를 쌓아서 성역에 들어가는 것뿐인데.”

“그래서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말씀드린 겁니다.”

당연히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에 몇 년이나 투자할 시간은 없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글렌의 질문에 유릭이 팔짱을 꼈다.

“정공법도 안 되고 매수도 안 되면 하나뿐이지.”

그의 눈이 저 앞에 있는 새하얀 건물로 향했다.

웅장한 장식과 조각이 가득한 천신전.

루메나 교의 성역을 지키고 감싸기 위한 건물.

“월담하는 수밖에.”

월담.

즉 불법 침입.

그 말을 듣자마자, 글렌이 예상했다는 듯 한숨부터 내뱉었다.

“하아. 이번에도 정상적으로 여길 뜨긴 글렀군요.”

이번엔 또 어딜 어떻게 헤집어서 쫓겨 달아나게 될지.

글렌은 더 이상 추측하기를 포기했다.

* * *

루메루스가 작은 나라라곤 하지만 일개 도시로 보면 상당히 큰 곳이다.

전 대륙에 퍼져 있는 루메나 교의 영향력이 한곳으로 집약되는 본단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신을 믿는 도시라 해도 허름한 빈민가가 없을 수는 없었다.

그 빈민가의 구석에 위치한 간판 없는 술집.

대낮부터 취해 해롱거리는 손님이 가득한 떠들썩한 술집의 문이 열리고, 남자가 한 명 들어왔다.

“…….”

“…….”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던 손님들도, 카운터를 보던 가게의 주인도 모두 날카로워진다.

빈민가에 어울리지 않는 말쑥한 차림에 훤칠한 키.

그 이질적인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주인과 손님들을 긴장시키는 요소는 따로 있었다.

“아야야야야야! 힘 좀 빼 제발!”

남자가 웬 부랑자 하나의 팔을 꺾으며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부랑자는 그들이 아주 잘 아는 이로, 쉽게 말하면 직장 동료라 부를 수 있는 이였다.

“여기 맞아?”

“맞다고, 맞다고! 그러니까 팔 좀 풀어주고…… 어, 어어어? 하지 마! 그 손가락 좀 집어넣어 제발!”

남자, 유릭이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인과 손님들의 반응이 보인다.

그걸 보니 부랑자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가봐.”

“큭!”

그가 팔을 풀어주자 부랑자가 앞으로 넘어지며 아픈 팔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면목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히익!”

그를 빤히 응시하는 유릭의 시선을 보더니, 몸을 크게 떨며 후다닥 달아났다.

부랑자를 보내곤 유릭이 카운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시선의 밀도가 짙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에 개의치 않고 유릭이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가 도둑 길드인가?”

도둑 길드.

정식 명칭은 아니고 이런 조직을 통칭하여 부르는 공용 단어 같은 것이다.

어느 도시에나 넘쳐나는 부랑자나 고아들, 그리고 소매치기나 잡도둑 등의 범죄자를 관리하여 수익을 내는 조직.

그 조직들의 명칭은 도시마다 달랐지만, 대충 통칭하여 도둑 길드라고 하면 어디서든 통했다.

“저놈이 다 분 모양이군.”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는 험악한 인상의 주인이 볼을 씰룩이더니, 나이프를 꺼내 콰직! 테이블에 박았다.

수직으로 꽂힌 나이프가 부르르 떨리며 진동 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신가, 손님.”

아무래도 나이프가 무슨 신호라도 되는 듯,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에 살의가 섞이기 시작했다.

“…….”

잠시 나이프를 바라본 유릭이 그걸 잡더니.

쑥.

단숨에 뽑았다.

힘 있게 박아 넣은 나이프를 간단히 뽑는 것에 주인의 얼굴에 살짝 놀라움이 퍼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득, 우드드득.

나이프의 칼끝을 손바닥으로 덮더니, 그대로 우그러뜨리는 유릭을 보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툭.

유릭이 나이프를 떨구니 칼날이 무슨 종잇장처럼 우그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눈앞의 주인은 물론이고 뒤통수에서 쏟아지던 살의도 순식간에 한풀 꺾였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상대는 최소한 오러를 발출할 수 있는 자.

그걸 인식한 주인의 말투가 방금 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졌고.

“간단히 구하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그제야 유릭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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