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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37화 (137/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37화

137화. 천신전으로

성기사의 검이 번뜩이고 노파 중 하나의 팔이 날아갔다.

“끄아아아아악!”

성기사가 발을 차 노파를 땅에 쓰러뜨리곤, 검을 고쳐 잡고 그대로 내리찍었다.

복부를 꿰뚫은 검에 노파가 비명도 토해내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했다.

한 사람 제압했다는 생각에 검을 뽑아 다음 타깃을 찾는 성기사.

그때.

“컥?”

목을 강타하는 강렬한 고통에 성기사가 헛숨을 토했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분명 팔이 날아가고 복부가 관통당한, 방금까지 땅에서 빌빌대던 노파가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지팡이의 끝으로 성기사의 목을 찍은 그녀는, 복부는 물론이고 팔도 멀쩡하기만 했다.

‘어떻게…….’

지팡이 끝에 마비독이라도 발라놓은 것인지, 아니면 또 이상한 주술이라도 발동한 것인지.

성기사의 몸이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노파가 히죽 웃으며 지팡이 끝을 천천히 내려 성기사의 심장 어림을 짚었다.

‘……!’

어떻게든 떨쳐내 보려 하였지만 몸은 움찔거리기만 할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팡이가 조금씩 살을 파고들어 온다.

곧 벌어질 끔찍한 상상에 성기사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할 때.

“아주 그냥 정신을 못 차리는군.”

“어…….”

시야의 모든 것이 흐릿하게 무너져 내렸다.

도수 높은 술을 통째로 들이켠 것 같이 속이 울렁거리며 그가 무릎을 꿇었다.

그 앞에는, 예의 잡화점 주인이 그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한쪽 팔에 얇은 불꽃을 두른 채로.

“너, 너는…….”

“멀미 나는 것 같은데 빨리 정신 차리고 참전해라.”

그제야 성기사가 고개를 들어 ‘진짜’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완전히 혼돈의 도가니였다.

누구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검을 내지르며 비장한 말을 외치고 있었고, 누구는 자신처럼 속이 안 좋은지 구토를 하며 쓰러져 있다.

소수의 성기사들만이 노파들이 펼친 방어 술식을 뚫으려 노력하고 있었었다.

‘화, 환각이었던 건가?’

성기사가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곧바로 휘청거리며 엎어졌다.

도저히 움직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안타까운 모습이었지만 그 하나를 부축하고 있을 순 없다.

그를 두고 유릭은 다음 환각에 걸린 성기사를 향했다.

‘직접적으로 걸린 환각은 심한 구토를 유발하는 건가.’

전투가 시작된 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

가장 처음 마녀들의 위장 술식을 걷어내는 것에 성공하여 성기사들이 단숨에 달려들었으나.

미리 준비해 둔 술식이 있는 것인지 곧바로 그들은 환각에 빠져 버렸다.

처음에는 아주 가관이 따로 없었다.

혼자서 공중제비를 도는 정도는 약과고 위험한 이들은 동료를 적이라 생각해 공격하기까지 했으니까.

덕분에 유릭은 일일이 그들을 찾아다니며 불을 질러 환각을 깨주어야 했다.

처음의 위장 마법과는 달리 이 환각을 깨는 것엔 꽤나 집중이 필요했던 탓이다.

“카아아악, 퉤! 저 꼬마 놈은 대체 뭐야! 어떻게 우리 주술을 다 깨고 다니는데!?”

“나도 모르니까 흔들지 좀 마, 이년아!”

마녀들은 당장 눈앞에서 방어막을 두드리고 있는 성기사보다 뒤쪽의 유릭이 더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퀭한 빛이 도는 찐득찐득한 눈빛이 유릭을 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릭은 성기사들의 환각을 깨는 데만 집중하여 바삐 돌아다녔다.

‘그 변신한 녀석은 없는 건가.’

그러면서도 유릭은 마녀들의 진영을 유심히 살폈다.

그 위험해 보였던 고위 마녀는 보이지 않는다.

저 노파들 역시 실력 있어 보이는 마녀들이었지만 그 사제로 변신한 녀석에 비해선 모두 몇 수 아래였다.

한 명 한 명이 잘해봐야 알리샤보다 조금 나은 수준.

“커흑! 유, 유안? 자클린은! 자클린은 무사해!?”

그사이 유릭은 두엇의 성기사를 더 해방했다.

개중엔 멜딘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자클린의 환영을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적들에게 자클린이 인질로 잡힌 광경이라도 보았던 것일까.

“자클린은 여기 없어. 신전에 있지.”

“뭐, 뭐?”

어지러워하는 녀석을 두고 유릭이 다음 성기사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무렵, 정신 차린 성기사들의 노력이 보답받았는지 마녀들의 방어 술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카아악! 안 돼! 도망간다!”

“잠깐! 같이 가!”

금이 간 이상 부서지는 것은 시간문제.

노파들이 저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

멜딘의 상관이 으득 이를 악물며 쫓으려 하였으나 금이 간 방어 술식이 아직 남아 있다.

그걸 깨면 늦고, 깨지 않고 쫓으려면 이 주변을 빙 돌아서 가야 한다.

어느 쪽이든 쫓아가기란 요원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쫓아보려 악을 쓰는 상관의 팔을 잡고, 유릭이 고개를 저었다.

“쫓는 건 위험합니다. 무슨 술식이 깔려 있을지 모르고, 어설피 쫓다간 또 환각의 먹이가 될 겁니다.”

퇴각하는 적을 쫓을 때가 가장 적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타이밍이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놈들은 진작 이 숲에 들어왔으니 이미 도주 경로를 따라 촘촘히 마법 술식을 깔아 놓았을 터.

반면 이쪽에서 놈들의 환각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유릭 하나뿐이니, 도저히 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젠장! 이렇게 놓칠 수밖에 없는 건가!”

상관을 포함해 다른 성기사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저 정도로 수상한 이들을 발견했는데 눈앞에서 놓쳐 버리다니.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잊으셨습니까? 사제로 변신한 마녀가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

유릭의 말에 상관이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실제 마녀가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으니 사제로 변한 마녀의 존재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사제로 변했다고 한다면, 녀석이 향할 곳은 한 곳뿐.

“천신전으로 간다!”

상관이 다급히 방향을 틀어 지시를 내렸다.

* * *

대회의실에서 자클린과 교황을 비롯한 추기경들이 한쪽 구석에 모여 있었다.

그들 모두 무릎을 꿇은 채로 손은 등 뒤에서 포박된 채였다.

성기사들이 흉흉히 검을 들고 그들 주위를 지키고 있었고, 일을 저지른 뮬베인 추기경은 할 일이 있는지 잠시 회의실을 나간 상태였다.

“…….”

자클린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그녀는 당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근래 일어난 모든 일이 현실성을 띠고 있지 않았다.

혹시 꿈속에서 계시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체가 모두 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허허, 잡혀 버리고 말았군요. 이를 어쩌나…….”

한편 그녀의 옆에 꿇려진 니콜라이는 이 상황에서도 태연스럽기만 했다.

이렇게 잡혀 버린 이상 가장 위험한 것은 교황인 그일 텐데도 허허롭기 짝이 없었다.

“어, 어떻게 하죠, 교황님? 누가 구해주러 올까요?”

“저희들이 나오지 않으면 누군가 의심스럽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아마 그 의심을 없애기 위해 뮬베인 추기경이 나가 있는 걸 겁니다.”

이만한 일을 저질렀다면 앞으로의 일도 모두 계획되어 있을 터.

늦지 않게 누군가 구하러 올 것이란 생각은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애초에.

“성기사 다수가 뮬베인 추기경에게 동조했습니다. 최악의 경우 성기사들 전원이 넘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저, 전원이요!?”

“물론 가능성이 있다뿐이지 실제로 전원이 배신하진 않았겠지만요.”

“으으…….”

농이라도 던지듯 얘기하는 니콜라이였으나 자클린은 전혀 웃을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떠는 그녀의 너머로 니콜라이가 조용히 회의실 내를 살핀다.

이내 그가 한층 더 작아진 목소리로 얘기했다.

“성녀님. 애완동물 아직도 데리고 있으신지요?”

“예? 메르요? 제 발목 근처에 있긴 한데요…….”

“그 아이를 이용해 구조 요청을 해보죠.”

“……!”

깜짝 놀라 큰 소리를 낼 뻔한 그녀가 간신히 그것을 참았다.

그리고 어깨를 움츠리며 니콜라이에게 물었다.

“구조 요청이라니 어떻게요?”

“이런 걸 준비해 봤습니다.”

니콜라이가 살짝 몸을 돌려 등 뒤를 보여주었다.

뒤로 매인 그의 손에 언제 찢었는지 기다랗게 찢어진 옷자락이 들려 있었다.

그곳에는 새빨간 피로 쓰인 글자가.

-도움. 대회의실.

니콜라이가 손가락에 상처를 내 적어놓은 것이었다.

“이건…….”

“이걸 그 고양이의 목에 매달아서 밖으로 내보내도록 하죠. 운이 좋아 우리 쪽 사람에게 전달된다면 구조가 올 겁니다.”

당연히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일단 이 회의실에서 들키지 않고 나가는 것부터 힘든 일이고, 메시지가 우리 쪽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될지도 알 수 없다.

뮬베인 측 사람에게 발견된다면 그 즉시 실패고, 다 떠나서 이 작은 짐승이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해줄 지부터 미지수였다.

도중에 어디 책상 밑에라도 파고들어 낮잠을 자기 시작한다면 속수무책이 아닌가?

“하, 한번 해보죠.”

하지만 이것 외에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딱히 없었다.

자클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게 메르를 불렀다.

“메르? 메르? 혹시 좀 더 뒤쪽으로 와줄 수 있니?”

사람의 말을 모르는 이 아이에게 과연 말이 통할까?

벌써부터 불안한 그녀였으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메르가 마치 전부 알아들은 것처럼 일어나 뒤쪽으로 향한 것이다.

그것도 찢어진 옷자락을 쥐고 있는 니콜라이의 손 쪽에 정확히.

“오오, 무척 영리한 아이로군요. 잘 기르신 모양입니다.”

“아뇨, 제가 기른 게 아니에요. 제 옆집에 유안이라고 잡화점 주인이 있는데, 그 잡화점에서 기르던 고양이에요.”

“그렇습니까?”

니콜라이가 신기해하면서도 재주 좋게 메르의 목에 옷자락을 묶었다.

메르의 목을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결박되는 매듭이었는데, 그 복잡한 매듭을 어찌나 빨리 묶는지 자클린은 시장통의 야바위꾼이라도 보는 듯 놀랐다.

“손재주가 되게 좋으시네요.”

“예. 옛날에 좀…… 아, 다 묶었습니다.”

모두 묶고 나니 마치 메르가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멋진 모습은 이 상황을 타개해줄 영웅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 꼬마 친구.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나요? 작전을 설명해 드리죠.”

“애옹~”

“뭐 간단합니다. 제가 성기사들의 시선을 끌 테니 그사이에 몰래 빠져나가 구조를 불러주십시오.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대답 대신 메르는 숨듯이 벽 쪽에 바짝 붙었다.

보통 영리한 동물이 아니라며 니콜라이가 혀를 내둘렀다.

-계시 내용이랑 성역의 위치를 알아야 되는데…….

사실 메르는 이 일이 크게 내키지는 않았다.

계시는 어찌 됐든 성역의 위치라도 알려면 이 소동에 말려들 것이 아니라, 이대로 빠져나가 혼자서라도 성역을 찾아보는 것이 확실한 방법일 터.

하지만.

-만약 자클린에게 뭔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지켜줘.

유릭에게 들은 말이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메르가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파고든 것을 확인한 니콜라이가 잠시 눈을 감더니.

번쩍, 부릅뜨며 소리쳤다.

“네놈드으으으을! 감히 이 신성한 신전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그의 고함은 회의실 내에 쩌렁쩌렁 울려 퍼져 온 성기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일이 용납될 것 같으냐! 거기다 루메나 님의 계시를 받은 성녀님까지 이리 핍박하다니! 루메나께서 노하실 것이다!”

“큭…….”

“그, 그건…….”

성기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퍼지기 시작했다.

뮬베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적당히 대꾸하며 동요를 막을 수 있었겠으나, 그는 지금 자리를 뜨고 없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빨리 가, 메르!’

자클린이 질끈 눈을 감으며 속으로 기도했다.

눈을 뜨고 있다간 자기도 모르게 메르 쪽으로 시선이 돌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겐 다행히도, 기도와 별개로 메르는 영리하게 회의실 내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휴우. 나까지 깜짝 놀랐네.

조곤조곤하던 니콜라이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니 메르까지 깜짝 놀랐다.

어찌나 큰 소린지 무슨 화산이라도 폭발하는 듯 들려왔다.

어지간하면 대화를 피하고 살아왔던 메르에게 그런 큰 목소리는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젠 들키지 않고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단 말이지?

이 메시지를 누구에게 전할까 생각해 보다가, 신전 사람은 안 되겠단 결론을 내렸다.

메르에겐 지나치다 만나는 신전 사람이 니콜라이의 편인지 뮬베인의 편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 유릭에게 전하는 것이 오히려 확실할 것이다.

-그 정도야 일도 아니지.

메르가 자신 있게 인적이 없는 장소를 골라 다니며 신전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어머, 귀여운 고양이네. 이 목도리는 뭐니?”

“애, 애옹~!”

머지않아 느긋한 인상의 사제에게 목덜미를 붙들려 버렸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묶인 옷자락을 풀어헤쳤고.

“후후. 발칙한 아이구나.”

안의 내용을 본 그녀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옷자락은 어느새 검은 재로 변해 공기 중에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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