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38화
138화. 삽과 곡괭이
“애옹~!”
메르가 위협의 울음소리를 내며 발버둥 쳤다.
“흐응.”
여자는 별반 개의치도 않은 모습으로 메르를 높게 치켜들어 발버둥 치는 걸 지켜보았다.
-이 여자…….
메르의 눈엔 보였다.
이 여자, 본인의 육체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여자.
그 말은 즉 수상쩍기 짝이 없는 이라는 뜻이었다.
“뭐 메시지는 없앴으니 괜찮으려나.”
여자가 흥얼거리며 메르를 땅에 내려놓으려 했다.
메르가 속으로 코웃음 쳤다.
그깟 메시지 따위 아무런 상관도 없다.
이대로 유릭에게 달려가 직접 전하면 끝인 일이니까.
그래서 얌전히 풀려나길 기다리고 있으려니.
메르를 놓기 직전, 여자가 그대로 멈췄다.
“근데 메시지가 이거 하나가 아닐지도 모르잖아?”
여자의 말에 메르가 눈을 찌푸렸다.
-다른 메시지가 어딨어.
이 녀석 눈은 제대로 달려 있는 건가?
자신의 어딜 어떻게 봐야 또 다른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옷자락이 찢어진 이상 이미 메르의 몸엔 그 어떤 인위적인 흔적도 없었다.
참고로 메르의 상처는 겉으로는 진작 아물었기에 붕대도 따로 감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어이없게 듣고 있으려니.
“나라면 이 아이 목구멍에 쑤셔서 배 속에 넣어놨을 텐데 얘도 그랬을지 모르잖아? 혹시 모르니 갈라봐야겠어.”
여자가 소름이 돋는 말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배를 가른다는 것에 별다른 혐오감도 갖지 않고 아주 자연스러웠다.
이건, 진심이다.
“샤아!”
메르가 급히 발버둥을 치며 여자의 손을 할퀴었다.
“앗!”
손등에 상처가 나며 여자가 움찔 손을 떨었다.
그건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살이 깊게 팼는데도 여자의 손등에선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본래 육신이 아닌 뒤집어쓴 껍데기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눈을 찡그리며 손등의 상처를 수리하기 시작했고.
-지금!
그 틈을 타 메르가 쏜살같이 달아났다.
여자가 잠시 메르 쪽을 보았으나.
“뭐 상관없으려나.”
이내 메르에게 흥미를 잃고 손등의 수리에 집중하였다.
* * *
유릭과 성기사들이 천신전에 도착했다.
안 그래도 도시 전체의 경비가 강화된 상황.
신전 역시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많은 병력이 상주하며 혹시라도 있을 사태를 철저히 방비하고 있었다.
그 탓에 그들은 신전의 심처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윗선에 보고를 올리는 것은 외곽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잘 알았다. 이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 너희들은 위치로 돌아가 자리를 지켜라.”
그런데, 보고를 받은 신전 수비대장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맡기고 돌아가란 지시 자체는 충분히 있을 법했지만, 그 태도에서 전혀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악명 높은 검은 늪의 고위 마녀가 침입했다고 하는데도 전혀 위기감이 없어 보였다.
“제 말을 제대로 들으신 게 맞습니까? 검은 늪의 마녀입니다! 지금 당장 색출해 내야 합니다!”
“알겠으니까 이쪽에 맡기고 너희는 돌아가라. 도시의 경비를 소홀히 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건…….”
결국 그들은 신전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비대장의 태도가 불안할 뿐이지, 지시가 딱히 틀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안한 태도는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글쎄다.”
상관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자 멜딘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자클린이 계시를 받은 이후로, 성국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계시의 탓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시는 이 사태를 알려주려 한 루메나 님의 배려였겠지.
그러나 그 사실은 멜딘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클린!’
이 사태의 중심에 자클린이 있을 것이 틀림없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한편, 유릭은 마녀들의 출현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계시는 마녀들 때문에 나온 건가?’
사실 좀도둑마냥 땅굴 좀 팠다 하여 계시가 내린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이 마녀들의 침입 탓에 성국이 큰 피해를 입을 예정이었고, 그걸 막기 위해 계시가 내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터.
다만 마녀의 침입 역시 회귀 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 문젠데…….
‘어쩌면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미래가 바뀌었다고 한다면 그건 자신의 탓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땅굴을 판 것 때문에 계시가 내렸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고, 또한 땅굴 탓에 갑자기 없던 마녀들의 침입이 생겼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나 한 가지.
유릭의 행동이 검은 늪에 변화를 줄 만한 일이 있었다.
‘알리샤.’
데릭을 꾀어내려던 알리샤를 죽였던 일.
검은 늪 출신인 그녀를 죽인 일이 수년에 걸쳐 영향을 주어, 오늘 이날 마녀들의 침입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모두 추측일 뿐이지만.’
지금으로선 이것만큼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 없었다.
-어르신!
‘메르?’
그때 구석에 잘 안 보이는 곳에서 메르가 튀어나왔다.
호다닥 달려온 메르가 한달음에 유릭의 품에 뛰어든다.
이곳이 제자리라는 듯 그곳에 웅크리고 누웠다.
‘어떻게 된 거야? 성역은 찾았어?’
-그건 아직인데요. 그보다 큰일이에요!
유릭의 눈이 가늘어졌다.
벌써 마녀가 일을 저지른 건가?
‘무슨 일인데?’
-그 사제랑 교황이랑 그리고 다른 추기경들이랑, 모두 묶여서 감금당해 있어요!
메르가 얘기한 것은 마녀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일이었다.
뮬베인이라는 이름의 추기경의 배신.
그 탓에 한 추기경이 이미 목이 떨어졌고, 교황과 자클린을 비롯한 이들이 신전 내의 회의실에 감금되었다고.
‘검은 늪을 끌어들인 것도 그 뮬베인이란 추기경인가?’
-검은 늪이요? 마녀가 나타났군요?
‘어. 대부분은 쫓아내긴 했는데 고위 마녀로 보이는 여자 하나가 사제로 변해 신전에 침입했어. 혹시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뮬베인 근처에 젊은 여사제가 있었다든가.’
-그건 아닌데 나오면서 수상쩍은 여자랑 마주치긴 했어요.
유릭과 메르가 빠르게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교환했다.
숲에서 마녀들을 목격했던 유릭과 신전 안에서 쿠데타를 보았던 메르.
둘의 정보를 모두 합하니 사건의 전모가 대강은 보여 왔다.
결국 간단한 이야기였다.
뮬베인이란 추기경이 제 욕심을 못 이기고 쿠데타를 계획했고, 본인의 힘만으론 안 될 것 같으니 외세를 끌어들인 것.
그 외세가 바로 검은 늪의 마녀였던 것이다.
검은 늪이야 대가만 충분하다면 어디든 붙어먹는 존재이니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 뮬베인이란 작자. 제정신인 건 맞아?’
-제정신이요?
‘쿠데타를 계획한 것 자체가 검은 늪의 음모가 아니냐는 거지.’
늪의 마녀들에게 교묘하게 조종당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 것이 아닐까.
그 가능성도 결코 적진 않았다.
-일단 본인은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던 것 같은데요.
‘그것만으론 모르겠군. 스스로의 의지라고 생각하게끔 주술이 걸렸을 수도 있고.’
잠시 고민을 해보았으나 생각해 보니 딱히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뮬베인이든 마녀든 모조리 제압하고 추궁해 보면 알게 될 일.
“멜딘. 자클린이 위험한 것 같다.”
“뭐!?”
멜딘을 불러 자클린의 얘기를 꺼내니, 아니나 다를까 민감하게 반응했다.
유릭이 대강의 상황을 설명했다.
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교황을 비롯해 상층부가 모조리 감금되었다는 것.
그 안에 자클린도 있다는 것.
늪의 마녀들은 그 쿠데타 세력이 끌어들인 외부 세력으로 추측된다는 것, 등등.
멜딘의 눈이 흔들리며 의심이 깃들었다.
“그거, 어디서 얻은 정보지?”
“메르가 가져왔다. 내부 상황과 구조 요청이 적힌 쪽지였어.”
“나도 보여줘. 어딨지?”
“버렸다. 휘발성 물질로 적어놓았는지 내용이 금방 사라졌거든.”
“…….”
당연히 믿기 힘든 일이다.
멜딘이 유릭을 빤히 바라보았다.
거리낄 것 하나 없는 유릭은 움츠러들지조차 않았다.
“그 고양이, 잡화점에 있던 그 고양이 아냐? 왜 신전에 있던 거지?”
“자클린을 따라간 모양이던데.”
“설마…… 네가 붙여놓았나?”
“아니?”
유릭이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고, 그를 빤히 바라보던 멜딘은.
“하아아아아…….”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진짜 잡화점 주인 맞아?”
“내 가게 맞는데. 계약서도 보여줄 수 있다.”
“그 말이 아니라! 아휴, 됐다! 알았어, 믿지. 하지만 만약 자클린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한 거라면…… 너한테 많이 실망할 것 같다.”
“아 그래.”
그러든가 말든가 하고 있으려니 멜딘이 울컥했는지 뺨을 씰룩였다.
그가 한숨을 쉬며 벅벅 머리를 긁더니, 대책을 내놓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 수비대장은 이미 뮬베인 추기경의 입김이 닿아 있단 말이군. 그래서 저런 태도인 거고.”
“그렇겠지. 그리고 아마 모든 이들이 뮬베인 측에 서 있진 않을 거다. 모든 병력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면 굳이 마녀들까지 데려올 이유가 없으니까.”
이건 쿠데타가 마녀의 조종이 아니라, 정말로 뮬베인 본인의 계획이란 전제일 때의 얘기지만.
어쨌든 당장의 설득력은 충분했다.
“교황님의 세력을 찾아 도움을 청하란 말이군.”
“짐작 가는 이라도 있나?”
“몇 사람 있긴 해. 교황님이 죽으라고 하면 정말로 목숨을 끊을 만한 이가 몇몇 있거든.”
그거면 이쪽은 충분하겠지.
멜딘은 다른 성기사들과 함께 교황의 세력과 합류하여 회의실로 향하면 된다.
“그럼 맡기지.”
대책이 있다는 걸 확인한 유릭이 미련 없이 발을 돌렸다.
“야야, 어디 가? 너도 같이 가야지.”
“내가 왜? 난 일반 시민이니까 위험한 곳에 데려가면 안 되는 거 아니었나?”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멜딘이 끄응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그런 얘기를 하긴 했지만, 숲에서의 일을 겪고 나니 유릭을 단순한 일반 시민으로만 볼 수는 없게 되었다.
신전 안에서 마녀와 부딪칠지도 모르는데 유릭이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지.
하지만 유릭은 일반 시민이고, 신전의 위험에 손을 보태야 할 것이 아니라 피신해 있어야 할 입장인 것은 사실이다.
고뇌하는 그를 보며 유릭이 피식 웃었다.
“먼저 가 있어라. 나도 나중에 합류할 테니까.”
“뭐? 어떻게?”
“알아서 잘.”
유릭이 손을 흔들곤 신전을 뒤로하고 떠났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멜딘은, 곧바로 굳은 얼굴로 상관에게 달려갔다.
* * *
유릭은 메르를 데리고 잡화점에 돌아왔다.
팻말이 걸린 문을 열고 들어가 안쪽으로 향하니, 소파 위에서 곤히 자고 있는 글렌이 보였다.
“일어나라, 글렌. 일이다.”
“으음…….”
툭툭 치며 깨우니 글렌이 눈을 찌푸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가 쩌억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하암~”
“휴식은 다 취했지?”
“뭐 많이 쉬긴 했습니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었죠?”
자클린이 성녀가 된 이후론 쉬기만 했던 그였기에 그간의 일은 알지 못했다.
유릭이 간략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걸 모두 들은 글렌은, 곧바로 일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땅굴을 쓸 때가 오긴 왔군요. 헛수고로 끝나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러게.”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이 지하로 내려가, 삽과 곡괭이를 손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