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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42화 (142/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42화

142화. 라엘라의 빛

유릭은 추기경에게 안내를 받아 신전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성역에 들여보내 달라는 부탁은 어렵지 않게 수락되었다.

사악한 대마녀에게서 신전을 구해준 은인이 다쳤다고 하는데도 고지식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니콜라이가 아니었다.

니콜라이 본인은 뮬베인의 수색과 반란군의 진압을 지휘하기 위해 현장에 남았고, 대신하여 추기경 중 한 명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자클린이 물었다.

“아직 조금…….”

유릭이 가슴께에 손을 갖다 대며 적당히 대답했다.

사실 성역의 힘까지 필요할 정도로 다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다른 의미로 성역의 힘이 필요했다.

가슴팍 너머로 안주머니에 넣어둔 목함의 감촉이 느껴진다.

불도마뱀의 심장.

정확히는 화룡 이그네시아의 심장 반쪽.

이걸 복용할 순간이 머지않았다.

‘폭탄을 집어삼키다니. 나도 어떻게 되었군.’

유릭이 쓰게 웃었다.

새삼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지가 느껴졌다.

정우였을 때의 그였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스스로 자진하여 폭약을 삼키려 하다니.

아무리 가족을 위해서라곤 하지만 현대에 살던 권정우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글쎄.’

아마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정우가 맞지만, 이미 그때의 정우와는 달라졌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걸어온 인생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8년 전 회귀를 하였을 때 이미 자신은 유릭 로스카의 삶에 녹아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출근을 하던 회귀 전의 정우와, 세상의 비밀 일부와 유릭 로스카의 기억을 가지고 새로 태어난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 보아도 좋았다.

불도마뱀의 심장을 복용하기로 한 것은 지금의 자신이 내린 결정.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때, 아무런 기척도 없이 한 사람이 그의 곁에 따라붙었다.

글렌이었다.

“왔냐.”

“마녀를 처리하셨군요.”

“알리샤의 엄마라고 하더라.”

“……과연.”

그 하나의 정보로 글렌은 유릭이 어떻게 대마녀씩이나 되는 존재를 이길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선배인 아니스에게 듣기로 유릭은 알리샤의 정체를 애초부터 눈치채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환각을 깨뜨릴 모종의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검은 늪>의 대마녀라고 하면 마스터들도 상대하길 꺼리는 존재들.

물론 마스터보다 힘이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온갖 까다로운 주술을 부려 그런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위험한 인물인 건 사실이다.

그런 대마녀 중 하나를 고작 7성의 경지로 물리친 것이 아닌가?

‘강해졌군. 생각보다도 더.’

유릭을 곁눈질하는 글렌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유릭이 강해지는 것은 그도 바라는 바였다.

그가 유릭을 따라다니는 것은 레오폴딘의 명령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설욕을 하고 싶은 개인의 욕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어설프게 추락한 천재를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 높이 비상하여 한계 이상의 경지를 이룩한 이를 상대하여, 이견의 여지 없는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그것이 글레이 생각하는 진정한 승리였다.

그걸 위해 그는 베르넘의 충성과 제국의 부활까지 모두 포기하고 유릭의 곁에 있는 것이다.

“흠? 옆의 분은…….”

“제 종자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안내하던 추기경이 문득 추가된 일행에 의문을 표했지만 금방 시선을 거두었다.

은인의 종자라고 하면 그것이 곧 신분을 보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성역의 입구입니다.”

이윽고 그들이 하얀 석재로 된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의 표면에는 자애로운 모습의 여신과 납작 엎드려 구원을 얻는 인간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아마 교리에 묘사되는 장면 중 한 장면으로 보였다.

추기경이 문 앞에서 손을 모아 짧게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두 손에 환한 신력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고.

그 손으로 문을 밀자 두꺼운 문이 저항 없이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오시지요.”

유릭과 글렌, 그리고 자클린이 처음으로 성역을 밟았다.

치유와 재생의 신 루메나의 성역.

이곳을 중심으로 신전이 지어져 천신전이라 불리었고, 그 천신전을 중심으로 도시가 생겨 루메루스라 불리었다.

이윽고 교단은 건국을 선포하여 루메루스는 도시의 이름이자 성국의 이름이 되었으니.

즉 성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 하나의 성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와아…….”

“아름다운 곳이군요.”

루메나의 성역은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분명 건물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어난다.

조용히 흔들리는 풀밭, 중앙에 있는 물이 샘솟는 샘이 그들을 맞이했다.

심지어 하늘에는 천장이 아닌 푸른 하늘과 태양까지.

문 하나를 넘어왔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마경과 비슷한 원리인가 보군요. 아, 죄송합니다. 실례되는 소리였나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런 거로 루메나께선 화내지 않으십니다.”

유릭이 사과하니 추기경이 괜찮다는 듯 얘기했다.

이윽고 그의 안내를 받아 일행은 성역의 중앙에 있는 샘으로 향했다.

꼴꼴꼴 물이 샘솟고 있는 아리따운 샘이었다.

“잠시 기다려주시길. 성녀님.”

“아, 예!”

추기경의 신호에 자클린이 바짝 긴장하더니 양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추기경 역시 함께했다.

두 사람이 기도를 올리는 사이, 유릭은 글렌과 함께 성역 내부를 눈으로 훑었다.

“주인님. 만약 계시의 내용이 저희를 말하는 거면 어쩔 겁니까?”

“…….”

글렌의 지적에 유릭이 눈을 찡그렸다.

이곳까지 오면서 자클린에게 계시에 대해 들었다.

대충 괘씸한 자가 접근하고 있으니 막아내라는 내용이었다고.

얼핏 생각하면 당연히 늪의 마녀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있긴 한데.’

혹여나 그 대상이 마녀들이 아닌 자신들일 가능성도 0은 아니었다.

만약 그 경우에 자신들은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교황이 허락하고 추기경이 안내했다곤 하지만 그런 것은 신의 입장에선 아무런 관계도 없을 터.

“……잘하면 성역이 효과가 없을 수도 있겠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랬다간 타격이 큰데요. 시간 낭비도 심했고.”

“끙.”

이것만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유릭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어떻게 잘해서 성역에 들어오는 것은 성공했다만, 이 최후의 순간에는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도 없는 일.

“기도가 끝났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은인. 이 샘이 바로 루메나의 힘이 깃든 샘이랍니다.”

성역이라 하여 이 공간 전체에 치유의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체는 바로 이 샘.

이 샘이야말로 치유의 신 루메나의 신력이 깃든 성스러운 샘이며, 주변의 꽃과 들판은 샘의 물을 받아 쑥쑥 성장한 것에 불과했다.

“후우…….”

유릭이 작게 긴장하며 조심스레 샘에 발을 들였다.

아주 얕은 샘이었기에 물은 발목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샘 중앙까지 걸어간 그는 이윽고 물이 샘솟고 있는 바로 앞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분수처럼 솟은 물이 빗방울이 되어 떨어지며 순식간에 유릭의 전신을 적셨다.

그리고.

‘치유가 된다.’

유릭은 메이브와의 전투에서 자잘하게 입은 부상들이 모두 낫는 것을 확인했다.

긁힌 상처나 그런 것들이 모조리 치료된다.

심지어 꽤 오래 묵어 흉터가 남은 상처들도 빠르게 나으며, 매끈한 피부로 돌아오고 있었다.

‘역시 계시에서 말하는 건 마녀들이었던 모양이군.’

유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품에 손을 넣었다.

“어떻습니까, 은인. 상처가 잘 낫고 있나요?”

“예. 과연 루메나 님의 신력은 대단하군요.”

“허허허, 거 다행입니다.”

추기경이 사람 좋게 웃으며 옆에 있던 자클린도 따라 웃었다.

유릭이 품에서 불도마뱀의 심장이 든 목함을 꺼냈다.

그때.

―진입해라! 이곳을 거점 삼아 농성에 들어간다!

바깥에서 쇳소리와 함께 소란이 들려왔다.

추기경과 자클린의 표정이 굳었다.

도망쳤던 뮬베인 추기경의 목소리였다.

* * *

당초 뮬베인은 자신과 뜻을 함께한 성기사들과 함께 천신전을 탈출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신전 전역에 교황 측의 성기사가 가득했고, 나가는 길 역시 진작 틀어 막혀 있었다.

결국 갈 곳을 잃은 그들은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구역이며, 동시에 가장 농성에 좋은 장소.

성역을 점거하는 것.

“뮬베인!”

유릭을 이곳까지 안내한 디안 추기경이 당혹스럽게 소리쳤다.

성역의 입구엔 충분한 숫자의 성기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호오? 디안 추기경이 아니시오? 이런 곳에서 무슨…… 흐음…….”

뮬베인이 이쪽을 발견하곤 눈을 반짝였다.

성역을 점거하여 농성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생각지 못한 선물이 와 있던 것이다.

“성녀님도 계셨구려. 흐흐흐…….”

성녀 자클린.

그녀를 보는 뮬베인의 눈이 뱀처럼 빛났다.

성역을 점거하고 성녀를 붙잡는다.

이 정도 인질이 있다면 무사히 신전을 탈출하는 것도 일은 아닐 터.

뮬베인이 성기사들을 이끌고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를 따르는 성기사는 물경 스물이나 되어 나이 먹은 추기경과 연약한 성녀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었다.

다 잡은 개구리를 보는 뱀과 같은 눈길로 뮬베인이 그들을 훑었다.

그러던 중 그는 똑바로 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한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네, 네놈은!”

“네가 뮬베인인가. 마녀들에게 홀랑 놀아나 반란을 일으켰다는?”

유릭.

대마녀를 죽여 자신의 계획을 어그러뜨린 그 녀석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대체 왜! 아니, 아니, 그렇군. 대마녀와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어 치료를 하러 왔군?”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던 뮬베인이 자초지종을 깨닫곤 다시 능글맞게 웃었다.

대마녀를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자라면 매우 위험하지만, 상처를 입고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심지어 성역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큰 부상이라면.

이 스물의 성기사들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다.

“자아, 얌전히 내려오시오, 다들. 그쪽 남자도 샘에서 나오고. 말을 듣지 않으면…… 다들 알고 있을 테지?”

“뮬베인 네 이놈! 감히 누구 앞에서 그런 망발을!”

“혓바닥이 길구려 디안 추기경. 그 혀부터 잘라 버려야 말을 듣겠소? 아니면 대신 성녀님의 혀뿌리를 잘라내 볼까?”

“이, 이런 불경한……!”

디안 추기경이 분노로 새빨개진 얼굴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있을 리 없다.

“성녀님. 제가 내려가 시간을 끌 테니 절대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마십시오.”

“하, 하지만…….”

“괜찮습니다. 곧 교황님께서 구하러 오실 겁니다.”

디안이 자클린에게 작게 얘기하고 있으려니 뮬베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손짓하니 성기사 몇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꺄악!”

그중 한 명은 자클린의 팔뚝을 덥썩 잡고는 강제로 끌고 가려 하였다.

“무례하게 무슨 짓이냐! 계시를 받은 성녀님이시다!”

“…….”

성기사는 디안의 말에 답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행동했다.

이런 때는 묵묵히 행동하는 것이 더욱 위협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에 자클린이 잔뜩 겁을 먹고 디안은 분노로 떨었다.

그때.

―서걱.

“끄아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빛이 번뜩이더니, 자클린을 붙잡은 기사의 손이 툭 떨어져 나갔다.

“이 정도 부상은 별것 아니겠군. 여긴 성역이니까 잘하면 금방 붙겠어.”

목소리는 샘 안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검을 휘두른 이는 샘 바깥에 있는 이였다.

종자라고 하며 중간에 합류했던 남자.

유릭의 지시로 글렌이 검을 뽑아 휘두른 것이다.

“이쪽은 제게 맡기고 할 일이나 하시지요.”

글렌이 그리 얘기하며 샘 앞의 땅을 크게 그었다.

땅에 그들과 성기사를 가르는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파앗!

빛의 장벽이 솟아올랐다.

루메나의 신력이 피는 빛과는 다른 종류의 빛.

글렌의 손에서 빛나고 있는 신검 라엘라의 빛이었다.

“이건…….”

“으, 은인들은 대체…….”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빛의 장벽에 자클린과 디안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놀라는 것은 뮬베인과 성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이를 갈며 소리쳤다.

“제길! 뚫어!”

“예!”

뮬베인의 명령으로 스물이나 되는 성기사들이 단숨에 짓쳐들어왔다.

전신 갑옷을 입은 스물의 기사라고 한다면, 적의 입장에선 지옥과 같은 전력이다.

작은 영지 정도라고 한다면 그들만으로 모조리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캉!

“큭!”

“뭐 이렇게 단단해!”

그들이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빛의 장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한 줄기 빛 너머에서 글렌이 차가운 표정으로 성기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익!”

발을 동동 구르는 뮬베인을 일별하곤.

샘 안쪽의 유릭이 목함을 열었다.

화아―

이그네시아의 심장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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