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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43화 (143/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43화

143화. 재회

쾅! 쾅쾅!

성기사들이 계속 빛의 장벽을 두드렸으나 장벽은 금 하나 가지 않았다.

무기력한 성기사들의 모습에 뮬베인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뭣 하고 있느냐! 빨리 부숴 버리지 못해!”

“예, 예!”

성기사들로서도 갑갑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뒤에선 빨리 부수라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앞에 펼쳐진 장벽은 단단하기만 하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오러를 씌운 검으로 두드려도 튕겨 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이익!”

뮬베인이 이를 갈며 장벽을, 그리고 너머에 멀찍이 앉아 있는 유릭을 바라보았다.

대체 저놈은 뭐란 말인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 일의 핵심이었던 대마녀를 죽여 버리고, 성역에서까지 자신을 방해한단 말인가?

저놈만 없었다면 자신은 성공했을 것이다.

무사히 교황을 끌어내리고 이 성국을 정상화시킬 수 있었을 텐데.

‘성국을…… 뭐?’

그때 갑자기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교황을…… 자신은 분명히…… 악독한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성국을 구하려고…….

그런데 교황이 그 정도로 사악한 지도자였던가?

어째서 자신은…….

문득 스치는 생각들에 그의 혈색이 새하얘지기 시작했다.

그가 평소 교황의 행태에 불만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끌어내려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까진 생각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교황을 없애지 않으면 성국이 망한다는 생각에 빠져 버렸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머릿속이 조금씩 풀리려 한다.

하지만 그때, 다시금 그의 눈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놈만 없었다면!’

그의 머릿속은 다시 유릭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뒤덮여 버렸다.

뮬베인에게 걸린 주술은 세뇌나 조종 따위가 아닌 단순히 그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종류의 간단한 것.

다만 그 간단한 주술을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걸기 위해 늪에선 많은 인력과 오랜 공을 들였다.

메이브가 주도하긴 했으나 그녀 혼자 술식을 건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죽음 후에도 아직 주술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젠장!’

그가 욕설을 내뱉으며 유릭을 노려보았다.

안전한 샘 안에서 이쪽을 보며 피식 비웃는 것 같아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분노는 그의 판단력을 둔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

그러나 유릭은 뮬베인을 비웃기는커녕, 이쪽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성기사들은 글렌의 라엘라를 뚫을 수 없다.

그는 한창 손에 쥐고 있는 불도마뱀의 심장과 눈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꿀꺽.

그의 목이 울리며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폭주한 화염룡 이그네시아의 마력이 담겨 있는 심장.

반쪽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드래곤의 마력이 담긴 심장이다.

평범한 인간인 유릭이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흉포한 물건.

“후우…….”

그것은 내부에서부터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다.

찢어지고 뒤틀리는 기혈과 상처를 성역의 힘으로 틀어막으며, 최대한 억눌러 마나를 흡수한다.

그게 유릭이 할 일이었다.

‘로즈가 딱 그런 상태겠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방대한 기운이 폭주하여 그 몸을 해치고 있는 상태.

이 심장을 먹으면 유릭도 로즈와 비슷한 상태가 되는 셈이다.

거기서 무사히 기운을 억누르고 생환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성공한다면 로즈를 살리기 위한 열쇠를 얻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실패할 때는 생각하지 말자.’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것도 아니고 실패할 때를 상상하는 건 백해무익한 일이다.

오히려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터.

유릭에겐 반드시 불도마뱀의 심장을 삼켜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이걸로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지.’

이 영약을 복용하고 폭심공을 익힘으로써 자신은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마스터의 벽을 두드려 볼 수는 있을까?

조금 전 드렉키아의 잔재를 마주하고 나니 유릭의 갈망은 더욱 커져 왔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는, 강해지는 것은 단순한 수단에 불과했다.

아칸에 볼모로 팔려가는 미래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힘에 대한 갈망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 있었고, 드렉키아를 마주한 이후론 더욱 증폭되었다.

강해지고 싶다.

그 천마와 같이, 어머니와 같이, 이 세계에 찾아온 초대 로스카와 같이.

벽을 넘어 그들이 사는 세상에 발을 들이고 싶다.

이런데 그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유릭이 불도마뱀의 심장을 단숨에 입으로 털어 넣었다.

붉은 보석은 혀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목구멍을 넘어갔고.

화악―!

“큽!”

유릭이 눈을 부릅뜨며 입을 틀어막았다.

―콰앙!

바깥엔 들리지 않는 몸속의 폭음을 들으며 어떻게든 비명만은 참아낸다.

―쾅! 콰앙! 쾅쾅!

그의 몸이 몇 번이나 들썩이며 여기저기가 파르르 떨려왔다.

[“꺄악! 아, 아저씨? 이 시끄러운 소린 대체 뭐에요!?”]

문득 유화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으나 그에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그가 몸을 들썩거리며 간신히 입을 여는 것만은 막고 있다.

비급에 적히길 영약의 섭취 시 입을 열면 효율이 무척 떨어진다고 하길래, 어떻게든 이것만은 막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한계였다.

똑.

똑.

피가 방울방울 떨어져 샘을 붉게 물들인다.

눈에서 흐르고 귀에서 흐르고, 약한 모세혈관부터 터져 나가며 몸의 온갖 곳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입을 막고 있는 일뿐.

그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콰아아아―!

용의 기운이 소용돌이친다.

유릭의 정신은 파도에 휩쓸린 나뭇잎마냥 용의 기운이라는 폭류에 휩쓸려 좀처럼 바로 서지 못하고 있었다.

루메나의 샘은 제대로 일하고 있나?

그것만은 간신이 느껴진다.

샘이 빛나며 몸 외부와 내부의 상처가 빠르게 낫는다.

하지만 그게 더 고문이었다.

간신히 낫는가 싶으면 용의 기운은 다시 사냥감을 찾았다는 듯 그곳을 또 물어뜯는다.

나았다가 터졌다가, 다시 나았다가 터졌다가.

영원할 것 같은 굴레 속에서 유릭의 심신은 걸레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믿었던 성역의 힘은 간신히 유릭의 숨만을 붙여 놓는 정도였다.

‘이…… 걸, 내가 컨트롤, 해야 한다고?’

고통과는 별개로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도 막막한 이 기운을 자신이 잘 다스려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성역의 치유력으로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로즈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아닌, 드렉키아와 마주했을 때의 섬뜩함이었다.

그때의 공포, 그리고 초조함.

그것은 사명 같은 숭고한 감정보다 훨씬 강렬하고, 또 원초적인 감정이었다.

여기서 해내지 못한다면 다음은 없다.

으득.

원초의 감정을 가슴에 품은 채, 유릭이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갔다.

* * *

갑자기 대량의 피를 흘리는 유릭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꺄악!”

“……!”

붉게 물드는 샘을 보곤 자클린이 비명을 질렀고 글렌이 눈을 부릅떴다.

한창 라엘라의 벽을 두드리던 성기사들도 이때만큼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웅성거릴 뿐이었다.

“빨리 이 벽을 부숴라! 성역을 더럽히는 놈들이 있지 않으냐! 그렇게 나약해서 루메나를 모시는 기사라 칭할 수 있겠느냐!”

때는 이때라는 듯 뮬베인이 성기사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저놈이야말로 루메나께서 말씀하신 계시의 범인이다! 어서 이 벽을 부수고 저놈을 끌어내야 한다!”

뮬베인이 그렇게 소리치며 성기사들을 다독였다.

그로서는 당연한 주장이었다.

왜냐면 유릭이 범인이 아니라면 자신이 범인이 되니까.

안 그래도 계시 탓에 꺼림칙함이 남아 있던 그에게 유릭의 변고는 딱 좋은 핑계였다.

“그, 그렇지 않아요! 유안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실제로 이 성역을 더러운 피로 물들이고 있지 않으냐! 루메나께서 놈의 상처를 치유해 주지 않으시는 게 가장 큰 증거다!”

“윽……!”

자클린이 반박해 보았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뮬베인의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당장 눈앞에 루메나의 샘이 붉게 물들고 있다.

그리고 어떤 상처라도 치유해 주는 샘의 힘이 유릭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사실은 치유되는 것보다 새로운 상처가 터지는 것이 더 빨라서 그런 것이지만, 그런 내막 따위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아니에요!”

“내 말이 맞다! 그러니 어서!”

자클린과 뮬베인의 말다툼, 그 와중에 더욱 힘을 내며 라엘라의 벽을 두드리는 성기사들.

“…….”

그들 사이에서 글렌은 가늘게 뜬 눈으로 유릭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한 번의 순간순간이 영원 같았다.

폭풍우 속으로 끌고 온 낡은 범선처럼, 유릭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곳곳이 터져 나가며 기혈이 뒤틀렸다.

어떻게든 한 곳을 막아보려 부산스레 움직이면, 그사이 다른 세 곳이 터져 나간다.

심지어 그 모든 폭발이 유릭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그 고통은 말로 하지 못할 것이었다.

유릭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밀려오는 고통에 일일이 반응하다간 배의 수리는 영원히 할 수 없다.

심지어 유릭의 목표는 배를 수리하는 거로 끝이 아니다.

폭풍우 자체를 제어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목표.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의 몸을 객관화하여 고통으로부터 초연해야 했다.

‘후우우…….’

코로 내뱉는 숨이 괜스레 귓가에 밀려왔다.

유릭은 가장 먼저 고통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으려 하였다.

자연스레 몸이 들썩이고 움찔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정신만큼은 차분하게 있으려 노력했다.

―콰앙!

‘큭!’

좀처럼 성공하진 못했다.

그가 무시하면 할수록 이그네시아의 기운은 이래도 무시할 수 있냐면서 그의 기혈을 터뜨렸다.

기혈이 터지고 뒤틀리는 고통은 살이 찢어지고 손이 비틀리는 것 따위완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넘어질 수 없다.

그랬다간 안 그래도 멀리 있는 강자들과의 거리가 더더욱 멀어질 것이다.

아무리 다시 일어나 달리더라도 그 격차는 점점 따라잡을 수 없게 되겠지.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유릭은 버티고 있었다.

그것엔 사실 <외우주>의 노인이 새겨준 기억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어떤 고통의 격류가 밀려와도 노인이 새긴 기억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길잡이로 삼아 유릭은 스스로의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

그것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

어느 순간 유릭은 스스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눈의 초점이 사라지고,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퍽.

어떻게든 버텨내던 그의 몸이 힘없이 샘에 엎어졌다.

글렌이 눈을 크게 뜨며 달려왔다.

“정신 차리십시오!”

그가 당장 유릭을 뒤집어 살폈다.

멍하게 뜬 눈엔 초점이 없었고 얼굴은 피가 모두 빠져 새하얗기만 하다.

목에 손을 대보는데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 리가…….”

글렌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다만, 그의 무서운 상상과 달리 유릭은 아직 죽지 않았다.

루메나의 샘이 빛나고 있다.

샘의 신력은 아직도 발동되는 중이었다.

단지 글렌이 아는 것처럼 단순히 상처를 낫게 하는 그런 식으로 발현되진 않았다.

그 샘은, 유릭을 이것과 같으나 같지 않은 다른 샘으로 초대했다.

그것이 유릭을 치유할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으…… 으…….”

그 샘에서 유릭은 혼자였다.

바깥의 샘에서와 똑같이 그곳에서 역시 그는 엎어져 죽어가고 있었다.

저벅.

그때 낯익은 신발이 물을 밟으며 샘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느냐?”

그는 물에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 무릎을 꿇어 몸을 숙였다.

유릭의 턱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초점 잃은 유릭의 눈은 간신히 그의 실루엣만을 인식할 뿐이었다.

“건강한 모습은 아니로군.”

하지만 실루엣만으로도 유릭은 그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독특한 존재감은 잊으려야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 신이…… 왜…….”

“이거 참, 손이 많이 가는 아이로다.”

천마 설군악.

루메나의 공간에서 유릭은 그와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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