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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48화 (148/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48화

148화. 잘 아는 이름

“벨파스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오오! 이제 정말 조금 남았군요! 빨리 달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합시다!”

짐수레가 가득한 일련의 행렬이 저 멀리 보이는 벨파스트를 향했다.

이 도시 저 도시 떠돌며 물건을 사고파는 행상인 무리였다.

당연히 호위하는 용병도 상당히 많았는데, 그 맨 뒤에는 황색 로브로 몸을 감싼 사내가 터벅터벅 따라가고 있었다.

루메루스에서 여러 번 말을 갈아타며 내려오다, 한 상인 무리에 끼어 오고 있는 유릭이었다.

‘저게 벨파스튼가.’

남부의 운하도시 벨파스트.

골든하트의 여섯 세력 중 하나인 벨스 가문의 영지.

위치상으론 남부에 치우쳐져 있으나 그럼에도 대륙의 중심이라 불리는 곳이다.

하루에도 엄청난 숫자의 배와 수레가 들락거리는 물류의 도시.

때문에 이곳은 남부의 땅 중에서도 비교적 아칸의 영향력이 적었다.

‘골든하트 자체가 중립을 표방하고 있으니.’

그들은 상인의 가문이고 때문에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는다.

편을 들기는커녕 오늘 아침에는 이쪽에 무기를 팔았다가 내일에는 저쪽에 팔러 가는 일이 허다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입장.

‘뭐 벨파스트는 위치 관계상 아칸 쪽에 붙는 일이 많긴 하지만.’

위치가 위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골든하트의 전체 기조가 중립이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벨파스트도 나름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편이었기에 남부 영지 중에선 그나마 안전한 곳이었다.

‘그나저나 외숙부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던가.’

이곳으로 오며 만났던 13기사단에게서 레오폴딘의 전언을 받았다.

마침 벨파스트에 발터가 가 있으니 만나서 일을 보라고.

발렌티나가 시킨 심부름도 같이하고, 유릭 자신도 따로 할 일이 있다면 발터를 마음껏 부려먹으라 하였다.

덧붙여 발렌티나의 심부름은 경매에서 특정한 재료를 구매해 오는 것이라고 한다.

재료의 이름은 아직 듣지 못했지만 말도 못 하게 귀하고, 또 대법에 반드시 필요한 재료라고.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가장 믿을 수 있는 발터를 보낸 것이었다.

‘벨파스트의 경매라……. 확실히 뭔가 터질 만한 장소긴 하군.’

벨파스트에서 무언가 사건이 터진다면 아마 그 경매의 일이겠지.

가장 돈이 많은 도시라는 칭호가 있는 만큼 벨파스트에선 각종 희귀한 물건들이 거래되었고, 그 꽃은 벨스 가가 직접 주최하는 경매에 있었다.

통칭 황금의 저울(Golden scale).

매년 치러지는 연례행사였지만 매 행사 때마다 수많은 사건과 기담(奇談)을 남겨 호사가들을 즐겁게 해주는 그런 행사였다.

‘그래도 이번엔 그냥 돕는 거니까.’

책임감을 갖고 임무에 임할 테지만, 그래도 엄밀히 임무의 책임자는 발터다.

그렇다 보니 유릭은 비교적 마음이 편했다.

지금까지는 목표를 정하고 목적지를 조사해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일까지 그가 했었는데, 그에 반해 옆에서 보조만 하는 것은 얼마나 편한가.

특히 무능력한 어른도 아니고 발터가 직접 왔다고 하니 더욱 의지가 된다.

어쩌면 레오폴딘이 굳이 연락해온 것도 이것 때문일지도.

그동안 너무 힘을 냈으니 조금은 쉬어도 괜찮다는.

‘복잡한 일은 외숙부가 알아서 할 테니 나는 마음 편히 전투만 하면 된단 말이지?’

물론 그 뜻을 유릭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쉬는 것보단 일이 먼저.

잡념 없이 순수히 전투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 휴식에 대한 욕구보다 더욱 컸다.

“아앗!!”

그때 선두에서 쿠과과광!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어, 어스웜이다!”

“어째서 이런 곳에!”

징그러운 원형의 입을 가진 거대한 마물.

예전 사막에서 물리도록 봤던 그 녀석이다.

다만 사막의 어스웜보다 훨씬 이빨이 촘촘하고 많은 데다, 몸집도 한층 더 큰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쪽의 지반이 더 단단하다 보니 더욱 강인하게 발달한 모양.

그런 어스웜이 몇 마리나 나타나 짐수레를 삼키려 했다.

“호, 호위! 빨리 어떻게 좀 해주게!”

“칫! 짐수레 아래에 숨어 있으쇼!”

이럴 때를 위해 고용되어 있는 용병들이 저마다 검과 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누구보다 먼저 선두의 마차를 밟고 뛰어오른 이가 있었으니.

소란과 동시에 즉시 검을 뽑아 달려온 유릭이었다.

“아.”

바람 같은 그의 등장에 용병들이 저마다 입을 벌렸고.

-콰과과과과광!

해가 지고 있던 노을 하늘을, 폭음이 수놓았다.

* * *

발터는 레오폴딘의 연락을 받은 후로 하루에 한 번은 성벽에 나와 유릭을 기다렸다.

어차피 골든 스케일이 개최되기까진 시간이 꽤 남아 있어 다소는 한가하다.

멀리서 오는 조카를 마중 나올 시간 정도는 충분했다.

“유릭이 이쪽에 온다라!”

“그렇게 좋으십니까?”

“좋지, 물론. 한동안 볼 기회가 없었던 귀여운 조카가 아니냐.”

부관의 말에 발터가 상쾌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살짝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단 말이지. 너도 알겠지만 로스카의 이름을 단 이들은 어릴 때 기연관이란 곳에 들어가는데 말이다.”

“예이, 예이. 그 얘기라면 벌써 스무 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스무 번이나?”

“그렇게나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하시지요.”

“그럼 한 번 더 들어라. 스무 번이나 스물한 번이나 그게 그거잖아.”

“무슨 그런…….”

어이없어하는 부관을 내버려 두고 발터는 멋대로 조잘대기 시작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부관 옆에서 그가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인연을 얻었습니다.

그때의 유릭의 대답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지금껏 누구도, 그도 그의 누이인 발렌티나도, 듣기로는 레오폴딘조차도 그런 식으로 대답하진 않았다 하였다.

모두가 어떤 대단한 기연을 얻어왔는지 자랑하기 바빴을 뿐.

그 어린 나이에 기연관의 진정한 의의를 꿰뚫은 것은 오직 유릭뿐이었다.

“그 왜, 어린애들이 의젓하면 더 귀엽고 그렇지 않더냐. 애들답게 구는 것도 나쁘단 건 아닌데 솔직히 평범하잖아.”

“뭐 그렇죠.”

“다들 바쁘고 그래서 이래저래 못 본 지 꽤 됐단 말이지. 나도 누님 심부름하느라 계속 싸돌아다녔고.”

“그러니 더 기대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도란도란 얘기하며 그가 성벽에 올라 도시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행상인 무리가 보였다.

언제나 보는 행상인이었지만 이번에도 발터는 기대를 가졌다.

혹시 저 안에 유릭이 함께하고 있진 않을까.

그때.

-쿠우우우웅!

흙먼지가 피며 어스웜이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몇 마리나 되는 거대한 마물이 행상인들을 포위했다.

발터가 눈을 번뜩이며 곧장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마물이다!”

벨파스트의 경비대도 아닌 그에게 저들을 도와줄 의무는 없었지만, 발터는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뛰고 보았다.

“단장님!”

부관이 눈을 크게 뜨더니 따라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갑옷이 아닌 편한 복장만 입고 있었기에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충격은 적었다.

발터와 부관이 고립된 행상인들을 향해 달렸다.

그곳까진 꽤 멀었지만 주법을 사용하는 그는 빠르게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콰과과과과광-!

커다란 폭발과 함께 어스웜들이 몸부림치는 것이 보였다.

폭발에 터져 나가 살점과 체액을 뿌리며 괴로워한다.

몇이나 되는 어스웜이 단 한 호흡에 모조리 전투 불능이 되어버렸다.

상처가 큰놈은 그대로 쓰러져 축 늘어졌고, 그나마 경상인 놈은 기겁하며 땅속에 들어가 줄행랑을 놓았다.

한창 달리던 발터가 눈을 크게 떴다.

몇이나 되는 어스웜을 단숨에 제압한 불꽃.

‘아칸의 마스터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인근에 출몰하는 어스웜은 크고 단단하고, 그리고 흉포하기로 유명하다.

한 마리도 아니고 몇이나 되는 어스웜 무리를 단숨에 처리할 수 있는 이는 결코 흔한 존재가 아니었다.

거기에 불꽃이라고 한다면, 이 남부 땅에선 아칸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어느새 행상인 쪽에 가까워진 발터가 점차 속도를 줄였다.

아칸의 마스터가 있다면 접근엔 조심해야 한다.

다소 긴장하며 접근하니, 어스웜의 시체 위에 서 있는 인영이 보였다.

마치 큼직한 망토라도 되는 양 타오르는 불꽃을 두르고 있는 사내의 모습.

잔뜩 경계하던 발터는 그 손에 들린 검을 보곤 흠칫했다.

눈에 익은 검.

그때 사내도 이쪽을 보더니, 머리에 쓴 후드를 넘겼다.

“외숙?”

“……유릭?”

생각보다도 훨씬 더 의젓해진 조카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 * *

상인들에게 감사 인사와 보수를 받고 유릭은 그들과 떨어져 발터와 합류했다.

벨파스트에 들어온 유릭과 발터, 그리고 그의 부관 세 사람이 거리를 걸었다.

여기저기 시끄러운 호객 행위가 들려오는 번화가는 해가 지고 있는데도 아직도 활기찼다.

“유릭! 많이 컸구나!”

“오랜만입니다, 외숙.”

발터가 크게 미소 지으며 유릭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검게 염색된 머리는 발터가 알고 있는 눈과 같은 하얀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카에게 매우 잘 어울려 보였다.

한창 머리를 헝클어뜨린 그가 유릭의 키를 재는 시늉을 하였다.

“키도 굉장히 컸구나. 몰라보겠어.”

“그야 컸죠. 외숙은 그대로군요.”

“얌마, 이 나이 됐는데도 자라면 그게 더 이상하지.”

발터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런 한편, 그의 눈에는 짙은 의문이 풍기고 있었다.

‘얘가 이렇게 컸던가?’

분명 이전에 봤을 때보다 키가 큰 것은 맞다.

하지만 발터가 의아해하는 것은 키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자세와 걸음걸이는…… 뭐 이건 예전부터 잘했었으니 크게 달라질 건 없는데. 아닌가, 좀 더 반듯해진 것 같기도.’

한눈에 보았을 때 풍겨오는 기세가 남달랐다.

단칼에 어스웜을 쓰러뜨린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근원적인, 유릭에게서 풍겨오는 존재감이 이전과는 지나치게 달랐다.

단순히 키가 자랐다는 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훗.”

발터가 픽 웃었다.

“짜식, 너도 이제 그게 붙는 모양이구나.”

“그거요?”

“그거 말야, 그거. 그 뭐냐, 관록이라고 하는 거 말이다.”

“이제 21살짜리한테 관록이 뭡니까, 관록이.”

“애는 무슨. 성인식 치른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다 컸지 이제.”

키득거리는 발터를 보며 유릭도 따라 웃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친척을 만나니 그도 꽤나 반가운 상태였다.

그 길로 두 사람은 발터가 묵고 있는 여관에 가 저녁을 먹었다.

“그럼 저는 잠시 쉬겠습니다.”

“그래. 얘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오랜 여행에 많이 피로할 테니.”

저녁 식사 후 유릭은 양해를 구하곤 방으로 올라왔다.

어스웜을 처리한 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보단 오랜 여독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발터와 함께 있다지만 남부의 땅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컨디션은 항상 최상으로 유지해야 했다.

그렇게 2시간 후.

따로 잡은 1인실에서 선잠을 자다 보니 저절로 눈이 뜨였다.

힐긋 창밖을 바라보니 이미 까맣게 변한 밤하늘이 보인다.

‘다시 잘까.’

이미 해도 졌고 할 일도 없다.

현대에서 살던 때와 달리 이 세계에선 밤에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컴퓨터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가봤자 드물게 술집 따위가 열려 있는 게 전부다.

음주 가무엔 별로 취미가 없는 유릭이 밤에 할 일이라곤 자거나 수련을 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때.

-똑똑.

-유릭. 혹시 깨어 있니? 갈 데가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발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부러 깨울 생각까진 없는지 다소 작은 소리였다.

마침 눈이 뜨여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던 유릭은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아, 깨어 있었구나. 마침 잘됐다.”

“갈 데라니 어디요? 어머니의 심부름에 관련된 겁니까?”

“뭐 약간은. 하지만 그 일 때문만은 아니고.”

갸웃거리는 유릭에게 발터가 외출 준비를 재촉했다.

“어디 가는데요?”

간단히 갈아입고 외투를 걸치며 유릭이 묻자 발터가 대답했다.

“오페라 보러.”

“오페라?”

“근처 운하에서 수상오페라가 열린단다. 최근 인기 있는 극이 공연 중이라 말야.”

“밤에 오페라라니…….”

현대의 기억으론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이 세계의 기준으론 꽤나 드문 일이다.

애초에 오락거리 자체가 적은 세계가 아니던가.

‘역시 벨파스트는 다르군.’

대륙의 중심이라 불리는 상업 도시.

전 세계의 온갖 최신 문물이 오가는 만큼 문화적인 부분 역시 상당히 발달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돈 많은 고객들이 수두룩하니 그런 것도 있을 테고.

딸랑-

이윽고 준비를 마친 유릭이 발터를 따라 여관을 나섰다.

캄캄한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지만 지상은 아직도 시끌시끌했다.

해가 지면 그대로 잠에 빠지는 다른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

“그런데 오페라가 어머니의 심부름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당연한 의문을 묻자 발터가 눈을 찡그렸다.

“거기 극단의 후원자가 이번 경매의 최대 경쟁자거든.”

“그래요? 누군데요?”

발터가 이렇게 곤란해할 정도면 꽤나 이름이 알려진 자일 텐데.

아니나 다를까 발터가 대답한 이는 유릭도 잘 아는 이름이었다.

“필리페 아칸.”

아칸의 2공자 필리페 아칸.

그가 벨파스트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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