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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49화 (149/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49화

149화. 미인계

벨파스트에는 몇 줄기나 되는 크고 작은 운하가 있고, 그 운하는 무역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짐수레나 마차 따위로 하는 육로를 통한 무역보다 물길을 통한 무역이 훨씬 경제적이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운하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벨린트 대운하.

벨파스트를 중심으로 하여 2개의 대도시와 3개의 소도시를 연결하는 굉장히 길고 거대한 운하이다.

오페라의 무대라며 발터가 유릭을 데려간 곳은 바로 그 벨린트 운하였다.

“저거군요.”

“그래. 굉장하지?”

발터가 기세등등하게 얘기했다.

아끼던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와 같은 얼굴이었다.

벨파스트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커다란 운하.

그곳에 세워져 있는 물 위의 무대를 유릭이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큰데.’

세트장과 같이 설치된 무대는 굉장히 크고 화려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강렬한 무대에 화사한 조명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저 빛을 내는 아티팩트에 들어간 가격만 해도 상당할 것처럼 보였다.

-오…… 물 위에서 연극을 본다니 신기하네요.

‘300년 전엔 없었어?’

메르의 나이는 1,000살이 넘었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인간 세상에 나왔던 것은 300년 전의 일이다.

-그땐 없었죠. 기껏해야 어디 돌로 된 무대 같은 게 전부였는데.

‘하긴.’

수상 오페라는 벨파스트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문화라고 한다.

대륙 문화의 최선봉에 서 있는 이곳에서도 한층 최신 문화일 정도니 300년 전에는 당연히 없었겠지.

“이쪽이다, 유릭.”

발터가 유릭을 끌고 데려간 곳은 관객석으로, 관객석은 땅 위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2층으로 된 테라스 같은 곳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고위 귀족이나 대부호를 위해 마련된 곳으로 보였다.

딱 두 사람이 여유롭게 머물기 좋아 보이는 사이즈였다.

“이거 미안하네. 원래는 여성을 에스코트하면서 와야 되는 곳인데.”

“뭐 어때요. 아이랑 같이 온 가족들도 많아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 쪽은 어때?”

“네?”

“연인 말이다.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어?”

유릭이 쓴웃음을 지었다.

발터는 다 좋은데 시도 때도 없이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게 좀 그렇다.

“아니스랑도 가까워 보이던데. 아 맞다, 티르옌에서 클레어 아칸이랑 혼약 얘기가 오고 갔다고 그랬나? 근데 그건 취소됐지?”

“잘 아시네요. 그건 취소됐고 아니스랑은 그냥 주종관계일 뿐입니다.”

“그래? 정말로?”

“정말로요.”

“마음에 두고 있는 여성은…….”

“없어요.”

“흐음…….”

발터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유릭을 보았고, 유릭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쪽 세계나 이쪽 세계나 친척 아저씨란 사람들은 원래 다 이런 건가?

“뭐 알겠다. 그렇다 치자.”

그렇다 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건데.

싱글벙글 웃고 있는 발터의 옆에서 유릭이 고개를 돌려 물 위의 무대를 바라보았다.

아직 무대는 준비 중이었다. 시작될 때까진 조금 시간이 있어 보였다.

‘영화관 생각나네.’

유릭의 눈이 조금 아련해졌다.

회귀 전 정우의 삶에서 종종 영화를 보러 가던 때가 생각난다.

영화관에서도 항상 시작하기 전에 한 10분인가는 광고만 나오고 그랬었지.

팝콘이나 먹으면서 히어로 영화를 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다른 세계에서 나 자신이 그런 초인적인 존재가 되어 있다니.

인생이란 게 참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유릭이 잡념을 털어내듯 입을 열었다.

“응? 왜 그러니, 유릭?”

“슬슬 이야기해 주시죠.”

“이번 오페라에 대해 말이냐? 뭔 내용이냐면 사막 왕국을 배경으로…….”

“그거 말고, 필리페 아칸이요.”

“…….”

발터의 미소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기질이 달라졌다.

가벼웠던 방금까지와 달리 조금 태도가 진중해진 것이 느껴진다.

“골든 스케일에 넥타르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

“넥타르!”

유릭의 눈이 토끼 눈처럼 크게 뜨였다.

넥타르는 옛 요정들이 마셨다던 향기로운 꿀과 같은 음료수다.

인간이 먹으면 못해도 5년은 젊어지고 장생에 크게 도움이 되며, 잔병치레가 사라진다는 신비한 꿀.

그러나 천 년 전 이후론 요정족 자체가 이미 신비의 종족이 되어버렸다.

그전에도 개체 수가 적긴 했지만 종종 인간 세계에서 발견되곤 했었는데, 마신의 침공 이후론 거의 명맥이 끊겨버린 것이다.

학계의 일부 학파에선 요정족은 이미 멸종했다는 설을 밀고 있을 정도로, 지금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 요정족의 영약이 천 년이 지난 지금에서 다시 등장하다니.

‘회귀 전엔 왜 소문이 안 돌았지? 아니…… 혹시 너무 급이 달라서 그랬나?’

그저 그런 수준의 영약이었다면 갖은 소문이 돌며 어중이떠중이들이 모두 몰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회귀 전의 유릭이 듣지 못했을 리 없다.

하지만 넥타르는 그 정도 수준의 물건이 아니다.

단순히 영약으로서의 효과를 넘어 요정족의 역사와 전설, 나아가 지금도 현존할지 모른다는 혹시 모를 단서로서의 가치.

값으로 잴 수 없는 수많은 가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용보다도 요정족의 흔적이 더 적게 남아 있을 정도니.’

드래곤은 마신의 침공에도 딱히 큰 영향이 없었기에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요정족은 천 년 전을 기점으로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럴 때 나타난 넥타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눈독 들이고 있을지.

“아칸의 2공자가 직접 나설 만한 물건이네요.”

“로스카 가주의 친동생도 여기 있고 말야.”

발터가 어깨를 으쓱이며 동의했다.

필리페가 최대 경쟁자라고 하는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갔다.

아니, 필리페뿐만 아니라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아마 수두룩하겠지.

그 무렵, 막이 오르고 무대가 시작되었다.

배우들이 하나둘 노래를 부르며 극중 긴장감을 고조시켜 간다.

하지만 유릭의 정신은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회귀 전엔 혹시 넥타르의 입수에 실패했던 건가?’

외숙이 직접 와 있는 이상 실패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물건이 물건이다 보니 아무리 그라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았다.

물건의 입수 실패의 가능성.

그 물건은 어머니가 ‘반드시’ 필요한 재료라고 얘기한 것이다.

‘어쩌면…….’

회귀 전 어머니가 실패한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에 다다르자 유릭이 의자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마음 편히 시키는 일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렇게만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발터만으론 실패의 가능성이 있는 이상, 자신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반드시’ 성공하기 위해선.

“이 극은 모래황후라는 제목으로 사막 왕국인 카자르의 역사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란다. 이국적인 배경과 웅장한 곡소리로 최근 극 중에 가장 인기 있는 극이지.”

“아, 예.”

“저 여배우 보이니? 재스민이라고 해서 이 극의 주연을 맡고 있는 배우야. 최근 가장 뜨고 있는 배우지.”

듣고 보니 확실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여성이었다.

눈에 띄는 갈색 피부에 노출이 많은 복장이었는데, 잘 보니 그것은 카자르의 전통복을 고급스럽게 어레인지한 모습이었다.

가녀린 미모에 비해 강렬하고 웅장한 노랫소리는 남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웅혼한 것이었다.

“확실히 인기가 많을 법하네요.”

때마침 극의 내용은 그녀가 습격자들에 맞서 환도를 뽑아 드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발터가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최근 필리페 그놈이 가장 애쓰며 구애하고 있는 배우라고 하더구나.”

“…….”

유릭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발터가 왜 자신을 이 오페라에 데려왔는지, 그리고 왜 갑자기 배우의 이야기를 꺼냈는지 감이 온 것이다.

발터가 싱글벙글 얘기했다.

“정보전은 전쟁의 기본이지. 안 그러냐?”

“그리고 장수가 아닌 말부터 쏘는 것 역시 훌륭한 전략이란 말씀이겠죠?”

“역시 똑똑해, 우리 조카.”

발터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훌륭한 작전이면 직접 하시는 게…….”

“될 리가 없잖아. 와이프 얼굴은 어떻게 보라고 응? 숙모 얼굴에서 피눈물 흘리는 거 보고 싶어?”

“그건 아닌데…….”

발터의 아내, 즉 유릭의 숙모는 선이 가는 인상에 매우 상냥한 여인으로, 유릭에게도 몇 번이나 빵이나 과자를 구워 대접해 준 적이 있었다.

그분이 슬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너도 마침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니 잘됐지 않니. 거리낄 것 하나 없잖아.”

“그 얘기가 그럼…….”

“거기다 나랑 저 배우랑 나이 차가 얼마냐. 나 같은 아저씨가 젊은 처자한테 집적거리면 손가락질받아요.”

“……젠장.”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가장 문제는 유릭 본인조차도 한 번쯤은 시도해 봄 직한 전략이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넥타르를 얻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한번 해보긴 해보죠. 성공률은 장담할 수 없지만.”

“괜찮아, 괜찮아. 난 믿는다. 우리 조카가 진심을 내면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없을 거라고.”

“뭔 자신감이…….”

하아, 한숨을 쉬며 유릭이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본의는 아니다만 이렇게 된 이상 해볼 수밖에 없다.

뭐를?

미인계를.

* * *

본디 미인계라 함은 고금동서 어느 시대에나 유용하게 사용되는 전략 중 하나다.

과학이 발달해 우주로 로켓을 쏘아 보내는 현대에서조차 아직도 빈번히 사용되는 계략이었으니 그 효용을 알만했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실패해도 별반 손해가 없는 데 반해 성공했을 때의 리턴은 막대하다는 점.

그만큼 뛰어난 가성비를 가지고 있으니 사랑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유명한 작전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입장이 될 줄이야…….

그로부터 며칠 후.

오페라 모래황후의 예정되어 있던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축하를 위한 무도회가 열렸다.

“훌륭한 극이었습니다.”

“몇 번을 봐도 참으로 감동스럽군요.”

주역은 물론 멋진 극을 보여준 배우들과 극단의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이 무도회의 진정한 주역은 배우나 극단을 후원하는 귀족과 부호들.

벨파스트에서는 예술가들에게 후원하는 것이 일종의 사치나 과시로 작용하고 있었는데, 최근 부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종목이 바로 오페라였다.

“재스민! 마지막까지 정말 멋졌습니다. 당신과 같은 배우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한 신사가 요란스러운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재스민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

정열을 의미하는 붉은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 있는 꽃다발이었다.

“어머, 고마워요, 필리페 공자님.”

재스민이 살포시 웃으며 그의 꽃을 받았다.

무대 위에서 병사를 호령하는 장군과 같았던 모습과 달리, 무대 아래의 그녀는 보이는 그대로 가녀린 여인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 갭 때문인지 보통 여인보다도 더 심약해 보이기도 했다.

‘필리페가 재스민이 속한 극단을 후원하고 있다고 해.’

-투자 목적인가요?

‘그것도 있을 거고 과시의 목적도 있을 거고.’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을 거고.

그 다른 이유는 두 사람을 조금만 관찰해 봐도 일목요연했다.

필리페는 마치 자신이 재스민을 초빙해 데리고 온 마냥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켜주고 있다.

재스민도 딱히 거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하 호호 즐겁게 얘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

-꽤 신사 같은 모습이네요. 쟤네 형이랑은 완전 다른데요?

‘그러게. 루카스는 삐쩍 마른 해골 같은 모습인데 저놈은 말쑥하네.’

굳이 비유하자면 발터와 비슷해 보인다.

발터에게서 친근한 아저씨라는 이미지를 덜어내고 거기에 느끼함을 더하면 저런 느낌일까.

무도회장의 구석 그늘에서 유릭은 샴페인을 마시며 조용히 그들을 관찰했다.

참고로 머리의 염색은 씻어내어 백발로 돌아온 그였다.

어차피 발터의 신분이 노출되어 있는 데다, 골든 스케일에 참가하려면 위장 신분을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필리페는 일 얘기가 있는지 떠나갔고, 혼자 남은 재스민은 많은 남자들에게 춤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주었다.

팬 서비스 같은 느낌인 걸까.

다른 남자와 춤을 추는 모습을 필리페가 힐긋 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춤 하나 추는 걸로 소란을 피울 만한 관계는 아닌 듯하군.’

-구애 단계라는 말일까요?

‘아마도.’

지나가던 시종에게 빈 잔을 넘기고 유릭이 조용히 계획을 가다듬었다.

계획이라고 해봐야 별건 없다.

춤 신청을 하여 한 곡 추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본다.

거기서 뭔가 정보를 얻어볼 만한 것 같으면 더 나아가는 거고, 아니면 깔끔히 포기하고.

‘외숙도 플랜F 정도니 부담 갖지 말라고 했으니까.’

당연하지만 발터가 이 미인계를 경매전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별개로 따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이번 일은 그냥 해보기나 하자는 정도.

‘솔직히 그냥 자기가 재밌으니까 시키는 것 같아.’

-아하하. 그 아저씨라면 그럴 법해요.

뭐 확실히 성공은 둘째 치고 시도하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팬이라고 하면서 한 곡 부탁하면 춤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때, 마침 한 곡을 추고 돌아온 그녀와 유릭의 눈이 마주쳤다.

그냥 고개를 돌리다 스친 것이라 생각해 유릭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녀에게 춤 신청을 하는 남자들은 아직 발에 챌 듯 많았기에 그는 좀 더 나중에 신청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 뵙겠어요. 그 눈과 같이 새하얀 백발과 청아한 눈동자. 로스카의 공자님 맞으신가요?”

예상치 못하게 저쪽에서 먼저 접근을 해왔다.

막 춤 신청을 하려던 사내들이 눈을 부릅뜨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지금껏 재스민은 남자들의 말을 받았을 뿐이고 먼저 다가간 적은 없었다.

다른 남자들은 물론 그 필리페조차 예외가 아니었는데, 어째서 저 남자만?

여러 의문과 질투가 섞인 시선이 유릭에게 쏟아졌지만.

‘이 여자…… 뭐지?’

정작 장본인인 유릭은 경계심을 최고조로 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쪽에서 먼저 접근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필리페의 후원을 받고 있다면 로스카인 자신은 피해야 정상 아닌가?

혹시 자신과 똑같이 저쪽도 재스민을 이용해서 이쪽의 정보를 캐내려 하는 건…….

갖가지 가설들이 떠오르고 사라졌으나, 알고 봤더니 전혀 다른 이유였다.

“클레어 아가씨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쪽 루트였냐.

유릭이 이마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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