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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1화 (1/155)

1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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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마지막 주자, 한송이 선수가 피날레를 장식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 또 그 망할 꿈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한선고등학교 1학년의 자랑스러운 양궁 국가대표 선수죠. 앞선 예선과 본선에서 내내 만점을 쏘아 올리지 않았습니까? 우리 에이스! 믿습니다!]

아니에요, 선배님. 제발 믿지 마세요.

그나저나 내가 저렇게 뚱뚱했던가? 4년마다 보는 내 과거가 또 낯설다.

물론 쌍꺼풀 없는 눈이 제일 낯설지만. 압구정역 김 원장님 잘 계신가요? 원장님의 인생작은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긴장된 표정의 한송이 선수. 아무래도 자국에서 열리는 준결승전이다 보니 관중석의 야유가 어마어마한데요, 부디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에요, 캐스터님. 저 거만한 얼굴이 어딜 봐서 긴장했다고요. 저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당연히 텐일 줄 알고 아무 생각도 안 했을걸요.

[결승까지 단 7점입니다. 7점만 쏴도 여자양궁 단체전 은메달을 확보합니다! 긴장된 순간, 시간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경기장에 바람이 좀 부는데요, 시간은 많으니 한송이 선수 차분하게 쏘길 바랍니다.]

멈춰 한송이, 지금은 아니야! 한 번 흘려보내!

‘five.’

장내에 울려 퍼지는 안내 음성과 자기 나라가 결승에 오르자 우레와도 같은 함성을 내지르던 관중들.

29살이 된 지금까지도, 아니 어쩌면 평생 잊히지 않을,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20XX년도는 그랬다. 생애 맛보는 첫 좌절치고는 고작 열일곱 살짜리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오만과 자만으로 똘똘 뭉쳐 있던 고등학생의 멘탈은 한번 흔들리기 시작하자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져 내렸다.

이어진 3, 4위전에서 연달아 8점을 쏴 대며 동메달의 기회마저 손수 박살 낼 때까지 도미노는 멈추지 않았다.

신궁, 천재, 에이스, 한국 양궁의 미래였던 내 별명들이 한순간에 국민 역적으로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눈을 떴을 땐 익숙하고도 아담한 월 45만 원짜리 원룸 형광등이 보였다.

[20XX년 □□올림픽을 엿새 앞둔 오늘, 진천선수촌은…….]

어제저녁에 티비를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벽에 매달려 있는 원룸 옵션 티비에선 아침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침대 아래 떨어져 있던 리모컨을 주워 신경질적으로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 * *

“야, 한 주임아. 일은 너 혼자만 하니?”

간밤에 꿈자리가 사납다 싶더니 아침부터 염 부장 방으로 불려 갔다.

아무래도 어제 혼자 남아 야근하다가 사무실에 잠깐 들렀던 대표님과 마주친 게 화근인 것 같다. 괜히 불을 다 켜고 있었나 보다.

“……아니요.”

적당히 맞춰 주면 오늘은 20분 안에 끝나려나, 그나저나 저 문 좀 닫고 말하면 안 되나.

가뜩이나 좁아 터진 사무실이라 문을 닫아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다 들리는데, 닫자마자 덥다고 열어 두라고 하는 고약한 심보가 빤했다.

다행히 두 달 전에 출산 휴직을 냈던 박 차장이 깜짝 등장해서 염 부장을 데리고 나가준 덕에 잔소리는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의자 바퀴를 드르륵 굴리며 옆자리에 앉아 있던 공지욱 대리가 불필요할 만큼 가까이 온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살짝 물러났다.

“박 차장님 복직 알고 있었어요? 와, 독하다. 독해 진짜. 애 낳은 지 두 달도 안 된 거 아니야?”

공 대리의 저 튀어나온 주둥이를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한 주임은 겨우 이성을 끌어 올렸다.

“중소기업에서 그게 쉬운 일인가요. 휴직 받아 낸 것만 해도 감지덕지죠.”

“하긴. 주임님이랑 절친이었죠? 좋겠네. 아군 돌아와서.”

그가 요란스럽게도 바퀴를 끌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한 주임은 사이에 있는 파티션을 앞쪽으로 좀 더 끌어당겼다.

모니터에서는 상태 바가 아까부터 번쩍이며 쉴 새 없이 도착하는 메시지 톡 좀 보라 난리였다.

디폴 김유정 사원 : 미친 공갈 대리 왜 자꾸 주임님한테 반말한대요? 나이도 어린 XX가.

디폴 이한율 사원 : 저도 느꼈습니다. 주임님은 부처라는 걸요.

디폴 김유정 사원 : 반 존대는 존잘 연하만 허용되는 법을 모르나 봐요. 한율 씨는 해도 됨. 내가 ㅇㅈ

디폴 이한율 사원 : ㅇㅈ 이 뭐예요?

요정??? : 나

디폴 김유정 사원 : 인정이요....... 아.... 어르신들....

이한율과 한 주임이 동시에 풋 하고 웃자 공 대리가 뭐야 뭔데? 하며 또 의자를 끌었다.

다행스럽게도 공 대리보다 한 주임의 손가락이 더 빨랐다. 빛보다 빠른 반사 신경으로 메시지 창을 내린 한 주임은 켜져 있던 엑셀 창을 괜히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이질적인 기분을 느끼던 공 대리가 입맛을 쩝 다시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장님 안 계실 때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와야지. 한율 씨, 갈래?”

“저 담배 안 피운다고 한 세 번쯤 말씀드렸습니다.”

“아, 재미없는 놈. 동갑끼리 친목 좀 다지자는데. 담배도 안 피우는데 군대는… 아. 한율 씨 공익이었지.”

혼자라도 가든지 공 대리는 꼭 옥상에 갈 때면 누군갈 끌고 갔다. 이한율의 단호한 거절에 그가 끙 소리를 내며 앉았다.

조금 뒤 한 층 위에 있는 대표이사의 방에서 나온 염 부장과 박 차장이 기획운영팀 명패가 붙어 있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염 부장은 자기가 쏘는 것도 아니면서 거드름을 피우며 소리쳤다.

“오늘 박 차장 복직 기념으로 운영팀 회식하니까 다들 알고 있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김유정 사원의 키보드에 올라간 손이 재빠르게 날아다녔다. 한 주임의 모니터 상태창이 요란스럽게도 빛나고 있었다.

평범하게 흘러가던 오후, 벽에 걸린 시계가 째깍거렸다.

조용한 사무실 안에는 마우스나 키보드 소리만 달각거렸다. 시계가 오후 5시 59분을 지나고 있었다.

아까부터 시계만 보던 염 부장은 6시를 향해 가는 초침이 한없이 느려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57… 58… 59.

딱 일 초만 남겨 둔 상황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시곗바늘이 59초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틱틱 헛돈다.

‘시계가 고장이 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도 잠시, 염 부장은 서둘러 서류 가방을 들고 유리문을 열어 사무실로 나왔다.

“자, 자, 얼른 컴퓨터들 꺼. 내일부터 야근하자고.”

“부장님은 야근 안 하시면서….”

“김 사원, 나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엉? 내가 야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언제 김 사원이 본 적이 있어? 김 사원도 맨날 나랑 같이 엘리베이터 타면서, 뭘.”

염 부장은 본인이 윗사람이라는 걸 각인시키듯이 김유정이나 이한율을 꼭 김 사원, 이 사원하고 직급을 붙여 불렀다.

“한 주임, 그만하고 일어나죠? 뭘 또 그렇게 바쁜 티를 내면서 그러시나.”

공 대리가 빈정거리자 그녀는 곁눈질로 모니터에 표시된 5시 59분을 확인했다.

“아직 일 분 남았어요.”

“그거 시계가 고장 난 거야. 아까부터 59초에서 안 넘어가.”

염 부장이 여전히 멈춘 벽시계를 보며 말하자 한 주임이 다시 한번 화면 구석을 보며 59분 맞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우리 한 주임 원리원칙주의자였네? 그냥 일어나. 부장님이 가자시는데 뭘 신경 써.”

박 차장이 싱긋 웃으며 핸드백을 멨다. 어느새 김유정과 이한율도 각각 힙색과 백 팩을 들고 있었다.

한 주임은 별수 없이 파일을 저장한 후 컴퓨터를 끄고 수첩을 에코백에 넣었다. 아, 회식이 일찍 끝날 수도 있으니 집에서 확인할 서류들도 접어서 대충 넣었다.

“뭐야, 문이 왜 안 열려?”

그때 유리문을 잡고 있던 공 대리가 중얼거렸다.

“잠긴 거 아니에요?”

김유정이 물었지만, 공 대리는 어딘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문이 잠겼다면 어딘가에 은색 잠금쇠가 걸려 있어야 하는데, 유리문의 사면 그 어디에도 잠금장치는 맞물린 부분이 없었다.

게다가 손잡이를 아무리 잡고 흔들어도 덜컹거리기는커녕 단단하게 붙어 있는 것처럼 조금도 꿈쩍이질 않았다.

이한율이 다가오자 공 대리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한율은 공 대리와 마찬가지로 손잡이를 잡았다가 그와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

“문이… 이상한데요?”

안 그러던 이한율마저 얼빠진 말을 하고 있으니 염 부장이 혀를 차며 두 사람을 밀어냈다.

“뭐라는 거야, 문이 왜 안 열려. 십 분 전에 내가 화장실까지 갔다 왔는데.”

염 부장은 있는 힘껏 문을 밀었다. 처음엔 손잡이를 잡았다가 소용이 없어 몸으로 유리를 밀었는데, 꼭 시멘트벽에다 몸을 부딪치는 감각이 들었다.

염 부장이 침을 꼴깍 삼키고 발걸음을 돌려 제 사무실로 걸어갔다. 방은 전체가 통유리였고 부서 사무실 문과 같은 종류였다.

1분 전까지만 해도 잘만 열고 닫히던 문이었다. 제 방문 역시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기어이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주춤거리던 공 대리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창틀에 손을 짚었다. 그는 곧바로 창문을 위로 젖히려 했으나 창문은 비웃기라도 하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 컴퓨터는 왜….”

한 주임의 목소리에 이한율이 빠르게 그녀의 자리로 달려왔다.

분명히 종료 버튼을 눌렀는데, 윈도우를 종료한다는 문구에서 화면은 더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잡은 마우스는 꼼짝도 하지 않고 책상 위에 붙어 있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던 김유정이 탁탁 손톱 소리가 나도록 화면을 두드려 댔다.

“폰도 먹통인데요? 아직도 5시 59분이고.”

손목시계를 보던 박 차장이 혼이 나간 얼굴로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내 시계도 59분에서 멈춰 있어.”

“시간이라도 멈춘 거예요?”

한 주임이 영문을 몰라 툭 던지듯이 내뱉은 말이 마치 실행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쿠웅.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모를 지축이 울리는 굉음과 함께 사무실 사람들의 얼굴이 동시에 좌우로 흔들렸다.

발아래에서 웅웅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은 ‘지진!’ 두 글자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지, 지, 지진인가 봐요!”

김유정의 말을 신호탄으로 모든 사람이 혼비백산해서 책상 아래로 뛰쳐 들었다.

염 부장은 제 방문이 열리질 않으니 다시 돌아와 두리번거렸다. 그 와중에도 바닥은 점점 심하게 흔들렸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제일 가까이에 있는 박 차장 자리로 내달렸다. 책상 아래엔 이미 박 차장이 쪼그려 앉아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염 부장이 그녀를 구석으로 밀며 몸을 욱여넣었다.

“뭐예요, 부장님! 나가요! 좁잖아!”

박 차장이 염 부장의 접힌 옆구리 살을 손으로 드세게 밀어냈으나 그는 오히려 거의 눕듯이 안쪽으로 계속 파고들었다.

“무, 문이 안 열리는데 어떡하라고!”

한 책상 아래 두 사람이 끙끙대며 씨름하는 와중에 공 대리는 지면에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자신의 의자를 붙잡고 덜덜 떨었다.

이상한 것은 땅이 쪼개질 것처럼 대차게 흔들리는데도 물건들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접착제라도 붙인 것처럼 딱 붙어서 반동에 같이 흔들거릴 뿐이었다.

한 주임은 제가 아직 오늘 아침 꿈에서 깨지 않은 건가 싶었다.

‘무슨 꿈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렇게 구체적이고 생생하지…. 아. 그럼 오늘 추가된 업무들도 꿈인가?’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쪼그려 앉은 무릎이 점점 옅어지며 안 보여야 하는 검은색 로퍼가 비친다.

“…….”

이 기묘한 꿈속에서 한 주임은 머리 위에 올렸던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손가락 마디가 없다.

그다음에는 손등이 사라졌다.

몸이 점점 사라져 가는 꿈속에서 한 주임은 김유정이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XX, 뭐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이 온통 하얘졌다.

방금까지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리던 것이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5시 59분 59초에서 멈추어 있던 시계가 적막을 깨고 틱, 6시를 가리켰다.

그곳엔 더 이상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

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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