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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74화 (74/155)

74화

※ 본 소설에 등장하는 단체나 기관, 종교, 사건 등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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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야. 사람을 뭐로 보고, 큼! 내가 이 정도면 김 사원은 못 하겠는데?”

한 주임은 몇 초간 느낀 가뭄의 단비 같은 마력에 몸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했다.

처음부터 안 받았으면 모를까, 얼음장 같던 전신에 약간의 온기가 흐르자 온몸을 내던져서라도 모조리 흡수하고 싶은 욕망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정신을 지배했다.

“주임님!”

“아…….”

포라킨이 다급하게 팔을 낚아채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염 부장을 붙잡을 뻔했다.

한순간이지만 이성을 잃다니, 번쩍 정신이 든 한 주임은 충격에 휩싸여 숨을 헐떡거렸다.

“유정 님은 포기하죠. 저희는 나가 있을 테니 몸 좀 추스르세요.”

손으로 입까지 틀어막고 있는 한 주임을 본 포라킨이 빠르게 두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한다.

그 뒤에 느낀 것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마치 본능만 남은 짐승처럼 염 부장을 향해 달려드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어쩌면 포라킨이 말리지 않았거나 조금 더 고갈된 상태였다면 상상만으로 그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순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오로지 좀 더, 조금 더! 이 생각만으로 가득 차서 앞조차 보이질 않았다.

추위가 아닌 두려움에 손이 떨렸다.

아직도 한참이나 모자란다는 듯이 경련하고 있는 제 몸이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게 여겨졌다.

‘정말로 기생충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

파랬던 입술도 제 색으로 돌아오고 한기도 가셔서 존재감도 느끼지 못했던 벽난로의 열기마저 느꼈지만, 반대로 가슴 한구석이 시렸다.

“……야닉.”

그가 보고 싶었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낡은 줄에 매달려 있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사람.

하루빨리 그가 돌아와서 손을 잡아 주어야 이 불안감이 사라질 것이다.

한 주임은 그가 보고 싶다고 연신 뇌까리다가 무릎에 묻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을 필요로 하는 거라면.’

“하.”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내일모레면 서른인 여자는 아직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지, 의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다.

‘모르겠어…. 모르겠어, 야닉.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

한 주임은 절망에 가까운 자괴감에 몸서리쳤다.

* * *

염 부장에게 받았던 마력은 한나절 만에 동이 났으나 확실히 안 받았던 것보다는 몸 상태가 좋아지기는 했다.

포라킨은 염 부장이 어지럽다고 했던 것을 엄살보단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런 연유로 김유정에게 받기로 한 것은 자연히 취소되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합니다만, 한 주임님이 마력을 제대로 가지고 계셨다면 아마 현자 버금가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포라킨이 웬 금팔찌와 귀걸이들을 잔뜩 들고 와서는 테이블 위에 늘어놓으며 중얼거렸다.

“본인에게 필요한 양만큼 흡수하는 거라면, 염 부장님이 가지고 있는 수준보다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하신 거잖아요.”

“그런가요?”

몸이 한결 편안해진 한 주임은 힘없이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포라킨이 가져온 장신구들을 보니 야닉이 평소에 곧잘 하고 다니던 것들이다.

“이것들은 왜….”

“마력을 흡수하는 구속구입니다. 인간의 마나를 흡수하는 성질을 가진 언데드 마물, 리치의 두개골 뼈로 만듭니다. 물론 다위 님의 작품이고요.”

포라킨은 장갑을 착용했음에도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팔찌 하나를 들어 올렸다.

“신체에 직접 닿아야 효과가 있어서 금과 함께 녹여서 장신구로 만들었죠. 황자님 외에는 아무도 착용할 수 없는 물건이랄까요?”

“저한테는… 치명적인 것 아닌가요?”

마력을 흡수한다니, 지금도 없어서 숨넘어가기 직전이건만…….

괜히 놀라서 뒷걸음질 치자 포라킨이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가 가져온 것들은 한계치까지 황자님의 마력을 흡수해서 깨지기 바로 직전인 상태에요. 자세히 보시면 균열들이 보이실 겁니다.”

그녀의 말에 슬쩍 들여다보니 팔찌든 귀걸이든 정말로 미세한 실금들이 잔뜩 그어져 있었다.

“완전히 깨지면 다위 님이 가져가셔서 녹였다가 다시 만들어 주시는데요, 그럼 감쪽같이 텅 빈 상태로 돌아온다더군요.”

포라킨이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황자님이 직접 의견을 내신 겁니다. 깨진 것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꽉 차 있던 황자님의 마력이 사라졌다는 건데…. 그 힘들이 전부 어디로 사라지는 건지 제게 물으시더군요.”

정답을 추측할 수 있는 의문에 한 주임이 숨을 크게 들이켜자, 포라킨이 예리한 눈으로 시선을 맞춰 왔다.

“깨질 때 대기 중으로 날아갔다고 봐야겠죠.”

“그, 그럼 이걸 깨뜨리면 야닉의 마력이….”

순식간에 차오른 기대감에 가슴이 펄떡펄떡 뛰었다. 포라킨은 작게 고갤 끄덕였다.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심장이 하도 거세게 요동쳐서 눈동자마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한 주임은 흐릿하기까지 한 테이블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포라킨이 한쪽 장갑을 벗고 있었다.

“제가 팔찌를 만지면 금방 깨질 겁니다. 그때 주임님이 최대한 가까이 손을 대세요. 혹시 모르니 만지지는 마시고요.”

한 주임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동안 식욕이 없어서 제대로 먹지 못해 한층 더 가늘어진 손이 벌벌 떨렸다.

포라킨은 한 주임의 손이 아주 가까이 온 것을 확인한 후, 그녀와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팔찌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구속구는 이미 빠듯하게 채워진 공간에 새롭게 흘러들어오는 마력까지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금팔찌가 테이블 위에서 춤추듯이 덜그럭거렸다.

포라킨은 이를 악물었다. 깨지기 일보 직전이라 안일하게 생각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빼앗기는 마력이 그녀 기준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녀는 박 차장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마나를 가진 상급 마법사였다. 당연히 일반인에 비하면 큰 수준이지만, 야닉의 기준으로 제작된 구속구에 자신이 버틸 리 만무했다.

빨리 실험해 보고 싶어서 본인 정도면 괜찮겠지 판단한 것이 실수였을까, 성급했던 자신에게 자책마저 들 때쯤. 드디어 팔찌가 두 동강이 났다.

가시적인 변화는 없었다. 별다른 소리도 없었고 한 주임의 자세도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포라킨은 비틀거리며 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

“…역시 소용없었나요.”

다른 손으로 핑 도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포라킨은 의아해서 슬쩍 고개를 들었다.

“……단장님.”

“아, 저는 조금만 쉬면 괜찮….”

“…했어요.”

“네?”

한 주임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성공… 했어요.”

익숙하면서도 강력하고 따뜻한, 마음마저 간지럽히는 야닉의 마력이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느껴졌다. 직접적으로 받는 것보다는 확실히 적은 양이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몸에 도는 열감과 함께 서로 다른 성격의 마나가 부딪쳐서 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었다.

한 주임은 멀미도 잊은 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포라킨을 향해 힘차게 고갯짓을 했다.

“팔찌에서 마력이 들어왔어요, 단장님!”

포라킨은 너무 기쁘고 동시에 어지러운 나머지 그만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 * *

“뭘 달라고?”

다위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묻자 헥토르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황자님의 구속구들이요! 아직 안 고친 게 있으면 전부 받아 오랍니다!”

무슨 개소리야, 하면서 다위가 바위에서 뛰어내려 헥토르를 수레 보관소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수리나 보강이 필요한 물건들을 두는 선반에 다가서자 보이지 않던 금빛 실드가 나타나더니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토벌의 계절이라 그놈이 힘쓸 일이 많아서 아직 안 고쳐 둔 게 다행이구만.”

다위가 내민 손이 장막에 닿고, 드워프의 마력에 감응한 실드가 사르르 녹아내리며 사라졌다.

맨손으로 선반 위 장신구들을 덥석 집어 든 그가 똑같이 맨손인 헥토르에게 버럭 역정을 냈다.

“장갑 안 끼고 뭐 해! 들고 가면서 네 놈이 다 부술 생각이냐?”

“앗! 죄송합니다!”

헥토르가 얼른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 가져온 가죽 주머니 안에 조심스럽게 하나씩 받아 넣었다.

드워프와 인간의 마력은 성질이 달라서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깜빡했다. 주머니에 차곡차곡 담는 동안 헥토르는 퍼뜩 궁금증이 일었다.

“다위 님, 움리족 도제들이 이걸 만지면 어떻게 됩니까?”

“뭘 어떻게 돼. 아무리 덜떨어진 놈들이라도 드워프의 피가 섞였으니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다위는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어서 꺼지라며 훠이훠이 손짓을 했다.

저걸 왜 달라고 하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곧 최근에 들어온 여자 이방인이 떠올랐다.

“활쟁이 계집이로구만. 내가 만들어 준 건 잘 쓰고는 있는지, 쯧.”

삐딱하게 말하는 심사에는 약간의 개인적인 원한도 있었다.

도제들이 수군대던 것을 듣자 하니, 여우 같은 노란 눈 녀석이 갑자기 픽시들을 잡아 달라고 했던 것이 다 그 계집을 입단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더랬다.

픽시들만 잡아다 주면 며칠간 쉬면서 술이나 실컷 마시게 해 준다길래 거기에 혹해서 귀찮게 숲까지 들어간 건데.

모기처럼 귓가에서 ‘난쟁이 좋아, 난쟁이 좋아’ 하고 떠들어 대는 것들을 잡는 것이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런 수고를 하게 한 계집이 바로 마력도 없이 불려온 인간이었다.

충동적으로 딱한 마음이 들어 무기를 두 개나 만들어 줬더니만, 이제는 구속구까지 가져간다.

“이러다가 대장간을 통째로 털리겠어.”

다위는 혀를 크게 차고는 집무실을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정말이지 인간들이란 남을 성가시게 하는 데 도가 튼 족속들이었다.

다음 날 꼭두새벽부터 찾아온 까치집 머리의 꼬맹이 역시 줄기차게 찾아와 귀찮게 구는 놈들 중 하나였다.

다위는 눈곱도 못 떼고 무작정 쳐들어온 손님을 맞았다.

“다위 님! 헤르미네 포라킨입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망할 포라킨! 그만 좀 귀찮게 하란 말이다!”

다위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저 빌어먹을 꼬맹이가 문을 열기 전까지 계속 밖에서 야단법석을 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팡이를 도로 뺏어 버릴까보다 마음속으로만 다짐하면서 철문을 여니, 그다지 높지 않은 시선에서 저를 내려다보는 도저히 여자 같지 않은, 아니 그걸 넘어서 인간 같지도 않은 몰골의 포라킨이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사무실 사람들과 소환당했습니다

누비다 로맨스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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