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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너의 그 행동이 싫어(4) (59/115)



〈 59화 〉너의 그 행동이 싫어(4)

“...아, 부었네.”

한참을 울고, 화장실에 가자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수치심이 살짝 몰려오는  같아 얼굴을 마른 손으로 닦기도 잠시, 아직까지도 가슴이 답답한 것을 느끼며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감정을 다 털어내면, 조금 후련해질  같았는데. 오히려 더 답답해진 것만 같아서.
아까 그렇게 무어라 소리쳤던 게 조금 후회되는  같기도 했다.

-나는, 네가 그러는 게 정말...싫어. 미워, 제논.

사실 밉지는 않았다. 단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단지 너의그런 행동이 싫다고, 그렇게 전하면 됐을 뿐이었는데.

내가 표현을 잘못 한 걸까. 혹여라도, 이제 나를 영영 싫어하게 된다면.

...아니, 싫어해도 상관없잖아. 애초에 나는 히로인 같은 거 별로 하고 싶지 않았고.
처음엔 제논이랑 상종조차 안하려고 했는데.

차라리 잘된 게 아닐까.

그래, 차라리...잘 됐지.

 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가슴  구석이 답답한 건지. 왜 자꾸만 눈이 시큰거리는지.

...모르겠다.

#


아까 들었던 그 말이, 계속해서 귀에 맴돌았다. 네가 싫다. 네가 밉다.
분명 정말로 그렇기에 내게 그런 말을 한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인지 심장을 파고들어 찌르는 그 말이 끊임없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너를 위해서 였는데.  이상 네가  때문에 이상한 곳과 엮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뿐이었는데.

그 것이 곡해되었다는 것이 아픈  아니었다. 다만 네가 한 그 말이 정말 진심이라면.
그 말을 듣고도 너를 좋아한다는 이 마음이 가장 아팠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너를 지키고자 뱉은말이, 너를 조금이나마 위험에서 빗겨나게 하고자  말이 너를 울린 거라면.
애초에 내가 해왔던 모든 것들이 사실 부질없는 것이라면.

아까 맞았던 부분보다 가슴이 더 쓰라렸다. 울고 있던 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그 눈물이라도 닦아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있던 내가 한심했다.

투랄리온과의 친선전을 말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애초에 그 때 맞은 것을 아이샤에게 보여지게 만든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이샤와 함께 아카데미에 다니기 위해서, 그 어떤 시비라도 참겠다 다짐하지 않았던가.
차라리 그냥 빨리 지나갔으면, 내가 들었던 모욕에 걸음을 멈춰 세우지 않았더라면.

전부, 내 잘못이었다.

“투랄리온...”

아이샤의 앞에서 새끼손가락을 흔들던 그 거만한 얼굴을 떠올리며,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그런 표현을 보고도 묵묵히 넘어가고, 친선전을 받아들인 아이샤의 기분은 어땠을까.

“...하아.”

어떻게든, 아이샤가 투랄리온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야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직도 아이샤가 나를 쏘아보며, 잔뜩 충혈된 눈으로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눈에서 읽혀지던 감정이, 분노가, 원망이, 슬픔이. 아직까지도 마음 한켠에 내려 앉아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슨 염치로, 내가 말을 걸 수 있겠는가.

하지만 투랄리온은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애초에 아카데미와 트라이앵글 간의 실력차가 그리 나지 않는데다, 3학년 탑 급이 되면 오히려 트라이앵글 쪽이 우세한 적도 있었기 때문.

특히나 알레리아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투랄리온은, 그 이능 자체가 괴랄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전차가 쏘는 철갑탄을 맨몸으로 맞아도 멀쩡할 정도의 내구력. 그 내구력 만큼이나 강력한 용력.
그야말로 신화에 나올법한 헤라클레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력한 증강계 이능을 지녔기 때문에.
설령 아이샤가 2번 검을 전력으로 휘두른다 하더라도 피해를 입히지못할 수 있었다.

아이샤의 이능은 그 파괴력보다도, 범용성과 범위가 장점이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상성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친선전에서 패배하면 아이샤에게 따르는 대가가 워낙 크지 않은가.
그런 걸 생각해봤을 때, 아이샤에게 투랄리온에 대한 것을 조금이나마 알려주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레이 마이어에게 언질을 주는 것도.

지금 내가 믿을 어른이라고 해봐야 레이 마이어 밖에 없긴 했지만, 그래도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설령 아이샤가 지더라도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려면...역시 그뿐이겠지.

아무튼, 확실한 건 아이샤에게 투랄리온에 대한 정보를 알려줘야 했다.
설령 염치없이 나타난 나를 아이샤가 영영 싫어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 아이샤를, 앞으로 내가 평생 좋아할지라도.

한숨을 내쉬며, 어둑해진 교실에서 일어났다.


#

“아이샤!”
“...프레이.”

 멀리서 나를 알아본 프레이가 달려왔다.

엄청 놀란 듯, 더듬이가 시종일관 흔들리며 다가오는 모습에 웃자 프레이가 심각한 얼굴로 내 얼굴을 매만졌다.

나보다 키가 작아서 뒷꿈치를 한껏 올린 그 모습을 바라보자, 프레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이샤, 누구야.”
“...풋, 그게 뭐야.”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하는 프레이가 웃긴 나머지 웃음이 터져나오자, 프레이가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아이샤, 지금 장난치는 게 아니라니까. 누가 울렸어!”
“...제논하고 얘기 하고 왔어. 운 건 제논 때문이 아니고.”
“걔가 뭐라 했는데 울어! 나 네가 우는 건 처음 본단 말야.”
“신경 쓰지 말래. 자기가 처한 입장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심할 수 있다고. 더 알면 내가 또 이상한 곳하고 엮일 수도 있으니까.”

이해는 했다. 만약 내가 원작의 아이샤였다면 제논이 어떤 말을 들으며 살았는지 전혀 몰랐겠지.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제논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어떤 말을 들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울컥한 건, 그런 부분이 아닐까.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그런 유치한 이유.

“...괜찮아?”
“괜찮아, 맞는 말이잖아. 내가 한 말이 심하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쌤쌤이지.”
“넌 뭐라고 말했는데.”
“맨날 나만 생각하는 그게 싫다고 했어. 항상 자기 몸은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나만 신경 쓰고. 이번 일도 그렇잖아, 결국 내가 다치는  싫으니까. 그렇게 혼자 짊어지려고  거고. 그래서 네가 밉다고 했어.”
“제논한테 네가 밉다고 했다고?”

어머, 그렇게 말하며 손으로 입을 가린 프레이는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좀 걔한테 충격이었겠는데.”
“...그렇겠지.”

걔가 내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 말이 제논에게 어떤 상처를 줬을지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내 잘못이야. 내가 그렇게 화내면 안되는 건데. 제논이 어떤 마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마 제일 화난  걔일 텐데도.”
“아니야, 제논이 그렇게 말한  잘못했지. 네가 걔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 걔도 잘  거 아냐.”
“...그럴까.”

하지만 이제 제논이 나를 미워한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실제로 밉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홀로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되뇌이더라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다만 그 점이 걸릴 뿐이었다.

“아이샤, 너는 제논을 어떻게 생각해?”
“...나?”
“그냥, 네가 제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말로는 그냥 친구라는데, 지금 네가 행동하는 걸 보면 제논이 너한테 단순히 친구 같지는 않아.”
“...모르겠어.”

정말로, 아무것도  수가 없었다. 내가 제논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그토록 멀어지려 했는데, 일부러 툴툴대며 비호감을 쌓으려고 했는데.

어느덧 그렇게 내게 다가와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제논을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을 보면  걱정되고, 가슴이 아프고, 가끔은 숨을 쉬기 힘들 만큼이나 답답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심한 말을 내뱉은 걸지도 모르겠다.
걔가 그러는 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보다 훨씬 신경 쓰이고 가슴이 아파서.
걔가 다칠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혼자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싫어서.

이제는 후회해도 늦지 않았을까.

아마 다시 찾아가 사과한다고 한들, 다시 받아주기엔 한참 늦은 게 아닐까.

이 마음을 진정시키려면, 제논과 얼굴을 마주보고 다시 얘기하려면아마도 친선전이 끝난 뒤에나  것 같았다.

“...모르겠어 프레이.”

나를 안쓰러운표정으로 바라보는 프레이를 꼬옥 끌어 안으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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