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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너의 그 행동이 싫어(5) (60/115)



〈 60화 〉너의 그 행동이 싫어(5)

“...좀 괜찮아?”

내 품에서 떨어진 프레이가 조심스레 묻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왜 자꾸 눈물이 나오는지는 몰라도, 조금 흘리니까 가슴이 답답한 것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같았다.

감성이 너무 풍부해진 탓일까.
예전 같았으면 그저 가슴 속으로 아파하고 넘어갔을 일이었음에도,
몸이 곧바로 반응 하는 탓에 이런 것을 참기가 조금 힘들어졌다.

제논에게 그렇게 말한 것도 감정이 격해진 탓이고.

“아무튼, 지금 당장은 얼굴 안 보는 게 낫겠다.”

내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내며, 프레이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지금 제논을 만난다고 한들 분위기만 어색하지 무언가 제대로 된 얘기가 진행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친선전을 끝낸 뒤에야 그나마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레이샤 교수님한테 가봐야 겠어.”
“친선전 때문에 그래?”
“응, 그렇지.”

투랄리온과 친선전을 치르게 되긴 했지만, 내가 투랄리온에 대해 아는 정보는 극히 적었다.
기껏해야 증강계 이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
원작에서 제논과 투랄리온의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레이 마이어에게 찾아가 그 것을 알아내야 했다.

투랄리온 쪽에서 나의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정말 쉬운 축에 속할테니까.
나도 투랄리온에 대해서 알아내는 게 맞겠지.

“...아이샤, 너무 무리하지는 마. 이제 와서 취소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괜찮아 프레이. 난 우리 학교 3학년 탑도 이겼잖아. 트라이앵글의 3학년 탑을  못 이겨.”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야. 그 투랄리온이라는 사람도 알레리아쪽 사람이잖아. 왜 아이샤는 맨날 그런 쪽에만 엮이는 건지.”

후우, 그렇게 한숨을 내뱉은 프레이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주먹을 쥐곤 내 어깨를 툭 하고 쳤다.

“아무튼, 꼭 이겨. 난 네가 그런 사람하고 사귀는 꼴 못 봐.”
“...안 사귀어. 만약 내가 지면 그냥 그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지.”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만약 정말로, 내가 그 투랄리온이라는 남자에게 진다면.
그냥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그 재수 없는 얼굴을 떠올리며 눈매를 찌푸리는 찰나, 교실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는 여자, 레이 마이어가 문을 툭툭, 하고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아이샤. 따라와라.”
“...네.”
“레이샤 교수님?”
“어, 프레이? 아이샤랑 잠시  얘기가 있어서. 잠깐 데려가도 될까?”
“아, 네. 아이샤, 갔다 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 먼저  프레이. 조금 길어질  같으니까.”

할 얘기가 많았다.

제논이 싸우면 말리겠다며 따라나선 내가 먼저 싸움을  것부터, 투랄리온과의 친선전,
그리고 그 친선전으로 헤라 카르멘이 내 이능을 얼마나 파악할지 까지.

그리고, 아직 받지 못한 물건에 대해서도.

손을 흔드는 프레이를 뒤로 하고, 그렇게 담당실에 도착하자 레이 마이어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이샤, 분명히 네가  말이 뭐였더라.”
“제논이 싸우는  말리겠다고 했죠.”
“근데 네가 싸우면 어떡하니...뭐,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예상이 되긴 하지만.”

가슴팍에서 담배를 꺼내며,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번 1학년 친선전은 신청이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정해주는 상대와 진행하려 했는데, 네가 친선전 신청을 받아들인 덕분에 대진이 꼬였어. 원래라면 내일 모레 경기겠지만,  친선전은 내일 아침 곧바로 시작될 거야.”
“...내일.”
“무언가 전력을 강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 네가 생각하기엔, 제전 이후로 네 이능이 얼마나 강해진 것 같아?”

제전 이후라, 제전 이후로 이능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마루더즈와 싸울  딱 한 번뿐이었다. 아마 한계까지 쥐어짜면 신화를 일시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아직 4번 검을 뽑아 내기엔 턱없이 모자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3번 검이야 어떻게든 사용한다고 해도, 4번 검을 사용하려면 먼저 이능의효율부터 제대로 잡아야 했으니까.
당장 태동만 해도 몇 번 휘두르면 머리가 금새 아파오지 않던가.

“아마 그렇게 크게 늘진 않았어요. 기껏해야 2할?”

니플헤임의 현현은 분명 이능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단순히 보다 높은 경지를 살짝 맛 보았을 뿐임에도, 그 경지에서 사용되는 얼음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으니.

내 말을 들은 레이 마이어는 담배 연기를 들이 마시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투랄리온을 상대하긴 아마 힘들 거다. 지금 이대로는.”
“...헤라 카르멘보다 강한 건가요?”
“아니, 상성의 문제야. 헤라 카르멘은 투랄리온을 상대로 쉽게 이길 수 있지.”
“상성...”
“헤라 카르멘의 이능은 물이야. 어쩌면 신체를 움직여야 하는 증강계가 가장 까다로워하는 이능이지. 당장 몸에 닿거나, 물을 일점으로 쏘아내면 몸이 둔해질 테니까.”

증강계 이능은 대부분이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는 이능이었다.
그렇기에 물에 빠지거나, 물에 젖는 사태가 일어나면 쉽사리 이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물을 베거나 주먹으로 쳐낼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내 이능은 그 것과 얘기가 달랐다.

얼음, 분명히 신체를 구속한다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나랑 비슷한 실력이라면 당장 얼음을 부술 수 있었다.
만약 큰 공격  개를 던져 먹히지 않게 된다면, 아마 승기가 급격히 넘어갈게 뻔할 터.

“확실히, 투랄리온이 증강계라면 힘들겠네요.”
“투랄리온의 이능은 증강계 중에서도  좋은 축에 속해. 어지간한 물리적인 공격은 거의 면역이나 다름 없지. 경도나, 녀석이 가지는 용력 자체는 이미 프로 히어로 수준이야.”
“...그러면.”

내 이능으로 상대할 방법이 전연 없는 걸까.
그렇게 질문 하려는 찰나, 레이 마이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뭐가 있죠?”
“저번 제전에서의 상품이 뭔지는 기억하지? 그게 어제 우리 학교로 왔다.”

서포트 아이템, 아직까지 받지 못했기에 얘기하려 했건만.
레이 마이어가 먼저 그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단순히 이능을 보조해주는 것을 벗어나 이능 자체를 강화시켜주는 것도 있기에, 혹여 내가 불리할 경우에 사용하는 방향도 생각해 봤는데.

설마 이걸 정말 받을 수 있을 줄이야.

레이 마이어가 꺼낸 상자를 조심스레받아들자, 그 안에는 푸른 색의 보석 하나가 있었다.

“원소계에서 얼음 쪽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물건이지.”
“...이게 뭐죠?”

서포트 아이템이 좋은 건 알았지만, 정작 그 종류에 대해 잘 몰랐기에 되묻자 그녀는  보석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여신의 눈물이라 불리는 서포트 아이템이지, 1회성이지만 한 번 사용하면 효과가 영구적으로 남아. 사용자가 사용하는 이능을 순간적으로 강화하고,  강화된 이능의 열화판을 영구히 지속되게 만들어주는 서포트 아이템이지.”
“이런  준다고요? 카르멘가에서?”
“거기서 널 적대하는 건 단순히 헤라 카르멘 뿐이야. 제논이면 모를까, 창창한 유망주인  구태여 적대할 필요는 없지. 아마  데려가려는 욕심이 커 보여. 아마 트라이앵글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면 당장  스카우트 하려 하지 않을까.”

그 말에 눈살을 찌푸리자, 레이 마이어가 킬킬대며 웃었다.

“뭐, 네가 거길 갈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여신의 눈물은 정말 위험할 때 쓰는 게 좋을 거야. 사용하고 일시적인 효과가 끝나면 몸에 반동이 온다니까.”

반동이라, 그렇다면 정말 위험할  쓰는 게 옳을 터였다.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이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몰라도, 반동이 올 정도면 꽤 효과가 강해보이니까.
게다가 레이 마이어의 얘기를 듣다보면 단순히 유명한 서포트 아이템 수준이 아닌 것 같았다.

일시적인 강화를 넘어, 영구적인 강화까지.
어쩌면 내가 계속 고민하고 있는 효율의 문제도 해결할  있지 않을까.

푸른색으로 빛나는 서포트 아이템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렇게 나는 내일 있을 친선전에 대한 상념에 잠겼다.

#

트라이앵글 행사가 실시된 이후로 1학년이 친선전을 치르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 것일까, 친선전 당일이 된 지금 내게 쏠리는 시선이란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었다.
예전에도 나를 힐끔 쳐다보는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냥 대놓고 보는 수준이라 해야할까.

단순히 지나가기만 해도 입을 가리며 놀라고, 아예 내 이름을 언급하며 대놓고 쑥덕거리는 사람도 있었으니.
별로 긴장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몸이 굳는  같았다.

“...제논은 안 오나.”

이제 10분 뒤에 시작되는 친선전, 프레이는 아까 잠깐 만나긴 했지만 제논은  번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다.
그래도 친선전 전에는  번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아쉽네.

“...후우.”

솔직히 말해서, 떨리는 게 사실이었다.
이능으로는상성, 실력 자체가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내가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서포트 아이템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어지간하면 그걸 사용하지 않고 이기고 싶기도 했고.

쩌저적-

작게 얼음을 만들어 내며 몸 상태를 점검한다.
괜찮았다, 오히려 컨디션이 최고라고 할  있을 만큼.다만 걸리는 것은,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사과하면 좀 나아질까.”

네게 밉다고 한 게, 싫다고 한  사실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댕-

하지만 시간은 그런 기다림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제논이 여기에 오는 것을, 내가 제논에게 하려는 말을 기다려주지 않겠다는 듯.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이 마침내 친선전 코앞에 당도했다.

댕-

다시금 종이 울리고, 째깍거리던 초침소리가 멎었을 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앞으로 돌을 깎아내어 만들어낸 길이 드러낸다.
트라이앵글 친선전이 열리는 무대로 향하는 길.

그 길을 바라보다가, 문득  쪽을 돌아보았다.
혹시 제논이 거기 서있을까 봐.

하지만 아무도 없는, 아직 열리지 않은 대기실의 입구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앞에 놓인 길로 향했다.

친선전이 끝나면, 사과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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