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경쟁자는 싫어(2) (85/115)



〈 85화 〉경쟁자는 싫어(2)

주술식이란, 효율만 따졌을  서포트 아이템을 아득히 넘어가는 그런 방식의 아이템이었다.
체내에 있는 이능을 문신으로 새겨 극도로 활성화 시키는 방식.
하지만 그로 인해 따르는 대가는, 서포트 아이템과는 전혀 달랐다.

일시적인 반동, 일시적인 기절. 서포트 아이템을 사용했을 때 찾아오는 고통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끈기와 참을성을 지닌 이라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는 그런 고통.
허나 주술식은 단순히 한 번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았다.

영원.

평생 동안 고통을 짊어져야 했다.
이능의 절대총량을 뛰어넘는 힘을 안겨주었기에, 자신의 수명마저 불태워야 했다.
그렇기에 정말 힘이 간절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택하지 않는 길이었다.

마이어씨가 이렇게 말리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겠지.

아이샤를 좋아했다. 함께 오래 있고 싶은 마음 또한 사실이었다.
평생을 책임질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놓인 현실이란 그렇게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에드윈 카르멘을 향한 증오는, 그 무엇을 보더라도 사라지지 않았다.
되려 소중한 사람이 하나둘 생겨날수록 그 증오심만 더욱 커질 뿐, 언젠가는 반드시 맞붙을 터였다.
그런 위험에서 아이샤를 벗어나게 하려면, 오로지  힘으로만 싸운다는 길 뿐이었다.

좋아해서, 너무도 좋아해서.

그래서 포기한 것은  수명이었다.

나를 노려보는 마이어씨를 향해 옅게 미소지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선택을 바꿀 일은 없으리라.
그러니까 그렇게 슬퍼하지 말았으면. 그런 마음에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
“새겨주실 겁니까?”

그렇게 묻자, 그녀는 오히려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까 그렇게 화를 내던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그녀가 내뱉은 말에 내 눈이 놀람으로 커져갔다.

“주술식보다, 더 좋은  새겨줄게.”

#

눈을 떴을 때,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얘는 또 어디 간 거야. 무거운 눈꺼풀을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주위에는 수업을 준비하는 아이들만 있을 뿐 제논은 보이지 않았다.

잘 때 머리를 쓰다듬는 걸 느꼈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괜히 간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시간표를 확인하자 이번 수업이 대련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의 이능을 확인하고, 그것을 통해 보완할 점을 찾는 수업.

“...나한테 의미가 없긴 하지만.”

이미 이능을 다루는 실력이 3학년 톱에 닿았기 때문에, 이런 대련같은 것으로 무언가 성취를 얻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실력을 다듬어주면서, 나중에 혹시 학교 습격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죽지 않도록 도와줄  있었기 때문에 나름 성실히 참여하고 있긴 했다.

마루더즈가 습격했던 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제논과 함께 카르멘과 맞서다보면 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투랄리온의 가문인 알레리아와도 싸우겠고, 그 외에도 히어로 총연이라던가, 어쩌면 성국이랑도 맞설 수 있겠지.

만약 그런 싸움에 아카데미가 엮여 또다시 습격이 벌어진다면, 학생들이 다치는 것은 내 책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이 학생들이 그런 습격에 휘말려 죽지 않도록 최대한 도와주는 것.
교수님도 이해해주셨으니, 나는 대련때마다 다른 학생들이 이능을 다루는 것을 도와주었다.
원작의 지식 덕에이능에 관련된 지식은 꽤 빠삭했으니, 그만큼성과도 있었고.

“아이샤, 가자.”
“알았어. 근데 제논은 봤어?”

팔짱을 끼며 다가온 프레이에게 물어봤지만, 프레이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마이어씨한테 찾아가기라도  걸까. 뭐, 알아서 어련히  하겠지. 제논은 지금 내가 딱히 가르칠 것이 없었다.
내 성장이 조금 과하게빠른 거지, 제논의 성장도 이미 엄청났으니까.

나는 원작의 지식을 알고 있었다.
아예 정보를 모르던 아이샤와 다르게, 이후의 경지를 알고 있었기에 훨씬 빠르게 다다를 수 있던 것이었다.
답을 알고 푸는 거랑, 모르는 상태에서 풀이과정을 늘어놓는 거랑  속도가 확연히 다른 것처럼.

제논이 이렇게 강해진 것 자체가 원작의 속도를 훨씬 뛰어넘었으니. 내가 가르칠 것이 아예 없다고 해야 할까.

“아이샤, 오늘 내가 이능 다루는  좀 도와줘. 그래도 괜찮지?”
“좋아, 어차피 오늘은 나한테 미리 약속 잡아둔 사람도 없거든.”

그래서 요즘에는 프레이의 이능을 직접 훈련시켜주고 있었다.
달팽이라는 이능이 어떻게 전투에서 활용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프레이의 껍질이 생각보다 엄청 단단해서 방패술을 활용하는 방식이 어떨까. 하는 마음에 그 방향으로 결정했다.

프레이도 그런 쪽이 좋을 것 같다 했으니, 어쩌면 나중에는 히어로 영화에 나오던 그 미국 사람처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몸이 우락부락해지는 건 별로였지만.

그렇게 대련실에 도착하자, 나를 발견한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늘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항상 고마울 따름이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을 시작하겠다. 아이샤한테 도움 받을 사람은 프레이 하나인가? 그럼  둘은 알아서 빠지고...”
“교수님?”
“...리디아 학생인가. 왜지?”

교수의 말을 끊은 사람을 바라보자, 그 흑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저에게 쏠렸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리디아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저는 아이샤랑 대련해보고 싶은데요.”
“...뭐?”
“아이샤가 왜 따로 빠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샤랑 대련해보고 싶어요. 그러면 안되는 건가요?”

순수한 표정으로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이렇게 말하는 리디아를 보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속내가 훤히 비쳐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맘에 안 들어서 콕 집어 밟아주겠다는 말이 아닌가.

“아이샤는 이미 1학년 수준을 벗어났다. 이번 친선전에서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지. 그런 이유에서 빠져있는데, 정말 괜찮겠나.”
“괜찮아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디아를 난처한  바라보던 교수는, 이내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냐며 눈빛으로 내게 질문하는 교수에게,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줬다.

오는 싸움, 굳이 피할 이유가 없지.

개인적인 원한도 있고, 이쯤에서 슬슬 격차를 보여줄 때가 되긴 했다.
아마 성국에서 성녀라 불리며 자신의 실력에 대해 과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을 게 분명할 터,
 번쯤은 꺾어야할 자신감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올 줄이야.

교수들은 내가 친선전에서 싸운 것만 알고 있다.
여신의 눈물을 복용하고, 어째서인지 상승한 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겠지.
지금 내 실력을 감히 3학년 탑과 비견할 수 있을까. 리디아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앞에 그려진 미래는 어떨까. 휘황찬란하겠지.
나를 보란 듯이 꺾고, 제논을 뺏을거란 생각에 그야말로 머릿속이 어지러울 게 분명했다.

뚜두둑-

손가락을 푸는 나를 보며, 프레이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이샤, 살살해.”
“당연하지.”

그냥 딱, 앞으로 내 눈도 못 마주칠 정도만 손  생각이었다.
어쩐지 프레이가 흠칫 놀라는 것 같았지만, 지금 내 눈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은 오로지 리디아 뿐이었다.

#


“대련 종료 조건은 한쪽이 기절하거나 항복의사를 내뱉을 때까지, 과한 상처는 입히지 않도록 한다.”
“네.”
“알겠어요.”

짧게 대답한 나와는 달리 리디아는 목소리를 길게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이 상황이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걸까. 리디아는 자신의 이능을 전부 사용할 수 있었다.
어차피 그녀의 이능인 가호는 여러 형태가 있었고, 그 형태는 외부에 알려진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성국의 고위 인사가 아닌 이상 그녀의 이능은 치유만 겨우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것도 단지 광역 치유라는 이능이다- 라고 알려졌을 뿐, 이능을 발동할  나오는 형태는  자리에선 오직 나만 알고 있을 터.

그러니까, 그녀는 아마 전력으로 나설 게 분명했다.
교수에게 들은 것도 있을 거고, 아마 나를 찍어누른다는 생각이 다분해보였으니까.

리디아가 대련장 한 쪽에 자리를 잡자, 그녀의 몸에서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호를 모르는 학생들은 허공을 수놓는 그 광휘에 감탄하며 눈을 크게 떴다.

“아이샤, 그거 알아?”
“뭐를?”

갑자기 친근하게 말을 거는 리디아를 보며 되묻자, 녀석은 아주 상큼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네가 싫어.”
“풋.”

웃음이 터져나왔다. 겉으로는 어른 인척, 마치 자기가 무슨 일이던 전부 할  있는 것처럼 행동했으면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 ‘나는 너 싫어.’라니.

마치 유치원에 다닐 법한 어린아이가 하는 투정 같아서, 입을 가린 채 큭큭하고 웃었다.

“...왜 웃어?”
“웃기니까. 그리고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말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리디아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솟구치는 빛기둥. 그녀가 가진 이능 중 유일하게 공격 기능이 있는 복수의 가호였다.
찬란히 빛나는  기둥들은 보기만 해도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콰아앙-

주변을 부수고, 거칠게 삼켜나가는 그 빛들은 그녀의 감정 상태를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있던 자리를 향해 몇 차례 꽂히는 기둥들은 과연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벤젼스.”

리디아가 낮게 읊조린 시동어와 함께 빛들은 점차 그 기세를 불려나갔다.
처음엔 두 개만 있었던 빛들은, 이내 대련장 전체를 삼킬 만큼 그 수가 많아졌고, 어느덧 내가 움직일 공간은 전부 그 빛들에 의해 차단된 상태였다.

촤아악-

빛으로 만들어진 날개가 그녀의 등에 자리 잡자, 리디아는 마치 한 명의 천사처럼 보였다.
아마도 내게 짓는  비틀어진 미소만 아니었더라면, 정말 그녀는 한 명의 고고한 천사처럼 보였을 게 분명했다.

내가 더 이상 피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확신하듯, 그녀는 씨익 웃은 채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걸음, 두 걸음.

나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조금 더 다가오도록, 오히려 그녀의 힘에 놀란  일부러 눈을 크게 떴다. 더 다가와, 그렇지.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사냥꾼은 쫓지 않는다.

다만 기다릴 뿐.

지금 내게 놓인 상황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아닐까.

애초에 그녀는 이제 나랑 동갑일 뿐이었다.
제 아무리 성녀, 역대급 이능이라 칭송받을 지언정.
나랑 같은 나이를 지닌 사람 중에서 나를 꺾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까불다니, 그녀와 나의 차이는 극심했다. 어쩌면 나와 마이어씨의 차이처럼.
제논도 그녀를 손 쉽게 제압할  있을  뻔했다.
그녀는 가진 힘을 다루는 것이 너무도 미숙했고, 자만에 빠져있었으니까.

그녀가 그렇게 몇걸음을 걸어, 마침내 내가 원하는 거리에 다가왔을 때.

서걱-

그녀의 몸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어?”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뜬 그녀에게 보인 것은 하나의 검이었다.
마치 채찍처럼, 도저히 검이라 볼 수 없을 만큼이나 부드럽게 휘어지는 검.

걸음을 멈춘 채 멍하니 서있는 그녀를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아까 말 못한 게 있는데.”

주변의 빛들이 수라에 베어져 사라진다.
원래라면 베어지지 않았어야 했지만, 그녀와 나 사이의 격차는 그 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그 것을 알아챈 걸까. 리디아는 멍하니 자신의 가슴팍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너 싫어.”

그렇게 말하는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 상황이 아주 맘에 들어서,  어느 때보다 흡족한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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