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몽환은 싫어(3)
“그래,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군복을 입은 마이어씨의 분위기는 교수로써 보던 마이어씨와는 사뭇 달랐다.
가볍게 꺼낸 질문이었으나, 그 말에 담긴 무게가 꽤나 육중하다고 해야 할까.
그녀의 입이 열릴 때마다 내 몸이 압력에 짓눌리는 것만 같아서, 나는 그저 입술을 짓씹으며 변명을 떠올렸다.
“...흠, 심부름인 건가?”
“네, 심부름입니다!”
품속에서 살짝 삐져나온 신문을 본 그녀가 묻자, 나는 다급히 대답했다.
신문도 제대로 못 넣은 건가, 그저 꿈이라는 생각에 허술하게 행동했는데.
거의 현실이나 다름없는 이 분위기에 그 행동을 사무칠 만큼이나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가, 심부름...”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시선에 움찔거리자 그녀는 다시 피식 웃으며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전투가 곧 인데 이렇게 빠져있으면 어떡하나, 아무튼 심부름 도중이었다니. 이걸 대신 전해주겠나?”
“...이건?”
그녀가 건넨 서신을 조심스레 받아들자, 그녀가 이어 입을 열었다.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에게 전해주면 된다.”
“알겠습니다.”
“근데 이름이 어떻게 되지? 명찰이 없군, 떼어지기라도 했나.”
“아, 제 이름 말입니까.”
순간 아이샤, 라고 답하려다 이내 이 곳에 아이크와 샤론이 있다는 것을 깨닫곤 황급히 다른 이름을 대었다.
“앤입니다. 끝에 e가 들어간앤이요.”
“...그런가. 알겠다. 그럼 전해주도록.”
그렇게 그녀가 발걸음을 돌려 복도 너머로 사라지자,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아.”
하마터면 이상한 사람으로 찍혀 감금당할 뻔 했네.
어쩐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상황이 술술 넘어가는 것 같긴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겠는가.
일단 이렇게 사람에 눈에 띈 이상 몰래 행동하기는 글렀고, 그냥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행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흠.”
그나저나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이라니, 언뜻 들어도 꽤나 높은 계급인 사람인데.
그런 사람한테 가는 심부름을 내게 맡기다니.
현대의 체제와는 꽤 다를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뭐, 나한테는 오히려 다행이지만.
그렇게 제2작전사령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쩐지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움찔거리며 경례를 하려 했다.
마치 내가 높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다가 내가 입은 옷을 보곤 다시 손을 내렸는데, 나한테 어떤 사람을 비춰보는 듯 했다.
“나랑 닮은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닮은 사람이라, 그 생각에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여자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 여자가 샤론 이리안이라는 확증도 없지 않은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발걸음 속도를 높이자 금세 제2작전사령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레이 마이어가 가진 계급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이어씨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하고 말하면 문을 열어주려나?
그럴 리가 없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내가 아는 유일한 명칭을 떠올리며 문을 두드렸다.
“탑히어로가 보내서 왔습니다.”
“...풋.”
그러자 안 쪽에서는 잠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문을 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서 보인 얼굴에 나도 모르게 흠칫, 하고 굳고 말았다.
나와 완전히 닮은 얼굴을 지닌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흐드러지는 백금발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꼬며, 마치 보석을 세공한 것만 같은 붉은 색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반짝였다.
순백의 실크를 이어 피부를 만든 인형처럼 부드러운 살결을 지닌 그녀의 피부가,
오똑히 솟은 날카로운 코가, 심지어 목에 아주 작게 찍혀 있는 점마저 나와 완전히 같아서.
순간 숨이 멎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
그렇게 멍하니 입을 벌리자, 앞에 서있는 여자가 키득거리며 입을 손으로 가렸다.
꼭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다.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살짝 섬뜩한 기분도 들었다.
“신기하네,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이렇게 놀라는 모습을 보니까. 아이크, 너도 그렇게 생각해?”
“...어, 뭐. 신기하긴 하네. 설마 나 몰래 낳은 자식은 아니지?”
“뭐, 뭔소리야! 난 네가 처음이라고 했잖아!”
아이크, 라는 말에 시선을 돌리자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의 옆에 어떤 남자가 서있었다.
설마 제논을 닮진 않았겠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완전히 다르게 생긴 터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장난스런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다.
척봐도 젊은 나이에, 훤칠하게 생긴 그는 여자를 향해 밝게 웃으며 뒤에서 그녀를 끌어 안았다.
연인 사이라도 되는 걸까, 연인 사이라,
그제서야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에 여자를 바라보는 내 표정이 딱딱히 굳어갔다.
아이크, 그리고 연인 사이인 나랑 똑같이 생긴 여자.
꿈에서 보았던 그녀보다 살짝 더 젊긴 했지만,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그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사령관을 찾아온거지? 그렇다면 나한테 주면 돼. 내가 부사령관이니까.”
그렇게 웃으면서 내 손에 있던 서신을 받은 그녀의 책상위에 놓인 명찰을 본 내 눈이 일순간 놀람으로 파르르, 떨렸다.
[샤론 이리안]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나랑 너무나도 닮은 그녀의 외모였기에,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내 모습보다 살짝 나이든 모습이라는 점이겠지만,
한껏 부풀어오른 그녀의 배를 본 순간에 그 생각은 점점 존재감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흠, 내일부터 작전 시작이라는 건가.”
“출전은 안 돼. 애한테 안 좋잖아.”
“알았어, 도대체 그 말만 몇 번 하는 거야.”
아이크가 짐짓 엄한 얼굴로 말하자, 샤론은 알겠다고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 거렸다.
입술을 삐죽이는 모습마저 나와 닮은 나머지 소름이 돋긴 했지만, 나는 이내 자리를 비키기 위해 등을 돌렸다.
서신은 전달했고, 샤론과 아이크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생각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니.
여명 전투의 주역이라 불리는 레이 마이어가 여기 있는 이상 전투지는 여기가 확실했다.
그러면 어디 구석에서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 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가려 하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그냥 가려고?”
“...네?”
“나랑 닮은 사람 봐서 신기한데, 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지 그래.”
사뭇 친절한 태도에 의아해하기도 잠시, 고개를 숙이며 거절하자 그녀는 성큼 거리는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잔뜩 부풀어 오른 배가 출렁이는 걸 본 아이크의 눈이 일순간 사나워졌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내게 입을 열었다.
“그냥 이리로 와라, 여차하면 상관 명령으로라도 너를 붙잡을 생각인 것 같으니.”
“맞아, 명령할까. 아니면 그냥 여기 올래?”
“...가겠습니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겨우 숨기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흡족한 듯 미소 지으며 내 손을 잡아 당겼다.
“아으, 좋아. 우리 딸도 태어나면 나중에 이렇게 크지 않을까?”
“딸은 아빠 닮는다던데.”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너 닮으면 우리 딸 놀림 받아.”
베에, 그녀가 혀를 내밀며 말하자 아이크는헛웃음을 짓다가 이내 그녀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자극이 가지 않도록 쓰다듬는 그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샤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부부...신겁니까?”
“응,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돼. 여기서까지 말 그렇게 딱딱하게 하면 우리가 오히려 불편하거든.”
“아, 네.”
어색해, 그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꼭 감았다.
아직 내 부모님이라는 것도 모르는데, 어째서인지 그녀가 너무도 친근하게만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말 놓고 편하게 대하고 싶건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탄식하며 그녀의 부푼 배를 바라보았다.
아마 곧 태어나겠지. 하지만 그녀가 이 전투에서 죽었다면, 저 아이가 태어날 수 있을까?
순간 그녀를 바라본 내 시선에 씁쓸함이 담겼으나 어찌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환상이 아니던가.
내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 것인지는모르겠지만, 여기서 내가 무얼 하던 결국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다.
샤론, 아이크.
그 두 명의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그녀가 따라준 차를 바라보았다.
한 모금 마신 탓에 조금이나마 그 양이 줄어들은 차.
다시 따른다면 그 양이 채워지겠지만, 다시 따라진 차는 원래의 차가 아니겠지.
그 차처럼, 돌이킬 수 없었다. 샤론과 아이크의 죽음은.
혹여나 그녀가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있었지만,
결국 그건 내가 꿈 속에서 보았던 것이었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것이 정확하다면,
여명 전투는 바로 내일.
내일이면 죽을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맞지 않게, 겨울보다도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