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엄마가 싫어(5)
“이제 오늘이 마지막이야.”
아이크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그 말에, 내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아주 잠깐, 스쳐지나가는 표정이었지만.
마지막이라는 말에 떠오른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뒤집어 놓고 있었다.
“...마지막.”
“그래, 뭐 슬슬 전황도 우리 쪽에서 완전히 잡은 것 같고. 이만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해야지.”
“레이가 혼내겠지?”
당연한 말을, 샤론을 살짝 쏘아보자 그녀는 멋쩍게 웃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마이어씨도 이제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걸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루도 아니고 무려 일주일 동안 단독으로 행동하고 있는데도 찾지 않는 걸 보면,
분명히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되긴 하는가 보네.
그렇게 중얼거리던 내 머릿속은 다시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신경이 쏠렸다.
샤론과 아이크, 두 사람의 죽음이 여명 전투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어째서인지 자꾸만 답답해져서.
“...어차피 꿈인데.”
꿈이었다. 과거도, 미래도. 아무런 관계없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꿈.
그런 꿈 속에서 겪은 일주일은, 솔직히 말해 샤론과 아이크라는 두 사람을 알게 되는데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워낙 활기찬 두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을 즐겨하는 두 사람이었기에.
나는 어쩌면 정이 들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정작 현실 세계로 돌아가면 다시 볼 수도 없는 사람들인데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꿈이니까, 이 몽환 속에서나마 저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우면 되지 않을까.
늘 내 앞에서 밝게 웃는 저 두 사람이 힘없이 쓰러져, 더 이상 웃지 못하는 그 때가 온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꼭 나 혼자 도망치는 것만 같아서, 도저히 진심으로 웃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방관하는 게 옳은 선택일까? 이 것이 꿈인 건 알지만,
그럼에도 내 앞에서 살아 숨쉬는 저 두 사람이 죽도록 놔두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그러다가 문득, 귓가에 다시 한 번 굉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번개가 떨어져 바위가 부서지는 소리. 이토록 청명한 하늘이었건만,
계속해서 떨어지는 번개에 머릿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번개를 다루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었으니까.
처음에는 그저 기상 현상이라 여겼는데, 일주일 동안 계속 반복되는 번개는 결국 이능이라 볼 수밖에 없었다.
번개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번개가 떨어지는 위치는 계속해서 우리를 향한다.
설마 에드윈 카르멘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금 아카데미에 막 졸업하여 한창 히어로로 활동할 때가 아니던가.
그가 처음 히어로가 된 이후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여명 전투가 일어났을 때엔 적어도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
“앤, 듣고 있냐?”
“...아. 네.”
갑작스레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자, 아이크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지막 작전인데 집중 안하냐며 무어라 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자, 샤론이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쳐다보았다.
“앤, 무슨 걱정이라도 있니?”
“걱정...”
“아니, 자꾸 아까부터 혼자 멍 때리는 것 같아서. 우릴 쳐다볼 때마다 표정이 자꾸 구겨지는 거 있지.”
그렇게 티가 났나, 그런 생각에 머리를 긁적이자 아이크가 입술을 삐죽이며 나를 흘겨봤다.
“누가 보면 우리가 곧 죽을 사람인 것 마냥 쳐다보니까, 기가 팍 죽는 거 있지.”
“그러니까.”
도대체 내가 어떻게 쳐다봤길래 저런 말까지 나오는 걸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이렇게나 정이 들어버려서, 저 사람들이 죽는다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픈데.
애써 표정을 숨기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지만, 비틀어진 입꼬리는 다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 고민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이크는 자신의 작전에 대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잠입 작전은 끝, 적군이 만들어둔 기지 내부에 꽤 깊숙이 들어온 상태인 우리가 빠져나가기 위한 탈출 작전이 마지막날에 시행할 유일한 작전이었다.
“이제 상대도 우리의 전력을 완전히 파악했을 거야. 애초에 3명이었으니, 아직까지도 파악을 못했을 리가 없지.”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자, 아이크가 샤론을 바라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샤론, 오늘 조금 뛰어야 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괜찮아. 몸이 조금 무겁긴 한데, 그래도 뛰는데 무리는 없어.”
샤론의 부푼 배를 바라보던 아이크는, 이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앤, 너는 우리랑 따로 움직인다.”
“...뭐라구요?”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그런 생각에 되묻자 아이크는 친절하게도 아까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는, 우리랑 따로 움직인다.”
도대체 왜, 순간 격해지는 감정을 억누르며 나는 잇새로 한숨을 내뱉었다.
이대로 가면 당신들 죽는데, 도대체 왜 나랑 따로 가려하는 걸까.
충분히 내 이능에 대해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아이크나 샤론모두 내 이능에 감탄했고, 나 없이는 작전 수행이 엄청 힘들었을 거라 하지 않았던가.
내 이능을 알면서도, 왜 따로 가겠다고 하는 건지.
내가 그 이유를 물으려 하자 내 의문을 알아챈 건지 아이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선 분산을 위해서야, 우리 셋이 한꺼번에 움직였다가 포위되면 골치 아프니까 차라리 인원을 나눠서-”
“돌파하면 되잖아요.”
내 이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오늘은 이능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아련을 여기서도 뽑을 수 있다는 건 진작에 확인했으니까.
적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도 않은데다 간부라 한들 아이크의 지원을 받으면 둘셋도 거뜬히 제압할 수 있다는 걸 저번에 두 눈으로 보여줬는데도.
아이크는 작전을 번복하지 않았다.
몇 번을 말해도, 심지어 잘못하다간 두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른다며 말해도 아이크는 끝까지 샤론과 자신이 같이 움직인다며 고집을 부렸다.
답답함에 입 안쪽의 살을 깨물자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몇 번을 말해도 바꾸지 않는 아이크의 고집 탓에 먼저 내 쪽이 나가 떨어질 것만 같아서, 깊게 한숨을 내쉰 뒤 등을 돌렸다.
“죽어도 몰라요.”
“안 죽어.”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요, 누군가를 공격하는데에 특화된 이능이라고. 막다가 지치면 어쩌려구요.”
“누가 그러더라.”
툭, 어깨에 올라온 손의 감촉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샤론이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잔뜩 토라진 마음에 손을 쳐내려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자 샤론은 익숙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엄마는 무적이라고.”
“...그래도.”
여명 전투의 마지막을 떠올리던 나는 결국 말 끝을 흐렸다.
일주일 동안 봤던 두 사람이 결국 말을 바꾸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말싸움을 해봤자 결국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알았어요. 나 혼자 가면 되는 거죠?”
한숨을 내쉬며,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작전을 바꾸지 않는 다면, 내가 그 작전을 어길 수밖에.
“좋아. 그럼 지체할 시간은 없으니까 바로 움직이자고.”
아이크의 말에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어느정도 먼저 움직였다가, 두 사람에게 위험한 낌새가 보이면 다시 그 쪽으로 향할 생각이었으니.
일부러 더디게 움직이며 주변을 탐색했다.
마이어씨가 말했던 걸 떠올려보면, 미처 처리하지 못했던 이능력자가 폭주하여 사망했다고 했었나.
하기야 요 일주일 동안 꽤 많은 수의 이능력자를 제압하긴 했었다.
날이 갈수록 우리를 상대하려 나오는 이능력자도, 본부를 타격하는 이능력자 부대도 확연히 줄어들었으니.
“...괜찮을 거야.”
불안했다. 이제는 이 몽환이 내게 무엇을 보여주려는 건지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을 만큼이나 두 사람이 신경쓰였다.
그 부풀어오른 배를 떠올릴 때면, 능청스럽게 웃던 아이크를 생각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져서.
이렇게 떨어져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만스러웠다.
분명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샤론이 내게 웃어줄 때면 왠지 가슴이 간지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포근해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몸이 나른해질 때가 있었다.
아이크가 장난을 치고 샤론에게 혼날 때마다, 나도 그 사이에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살았다면, 그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또 미련이 남는다.
그저 성만 같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일 텐데.
꼭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에 했던 후회가 떠올라서.
그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만 아는 환상이더라도 좋았다.
내가 하는 행동이 그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좋았다.
다만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만큼이라도 살아남았으면 해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번쩍-
번개가 내리치는 그 방향을 향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