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외전} 아이크 이리안
미친.
앤이라는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속으로 그런 말을 내뱉었다.
샤론과 닮다 못해 틀로 찍어낸 것만 같아서, 순간 도플갱어가 떠올라 섬뜩하기까지 했다.
오늘 특이한 사람이 올 거라더니, 특이하다 못해 경이롭지 않은가.
-탑히어로가 보내서 왔습니다.
상관의 계급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군인, 무언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런 군인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샤론의 모습을 보곤 경계를 풀었다.
샤론이 이렇게 대하는 것에 다 이유가 있겠지.
옛날부터 샤론은 이런 쪽에 철저해서, 자신이 싫다고 생각하거나 위험하다고 판단이 되면 깔끔하게 선을 긋는 편이었으니.
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샤론은 저 앤이라는 사람이 올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말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기하네,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저렇게 놀라는 모습을 보니까. 아이크,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이걸 장단을 맞춰줘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앞에 서 있는 저 앤이라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신기하긴 하네. 설마 나 몰래 낳은 자식은 아니지?”
“뭐, 뭔 소리야! 난 네가 처음이라고 했잖아!”
그 새하얀 얼굴을 잔뜩 붉히며 소리치는 샤론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곧 태어날 우리 아이도, 크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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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샤론과 나를 살짝 섞어 놓았다고 해야 할까.
앤은 그런 모습이었다. 누가 보면 우리 딸이라 착각하는 게 아닐지 걱정이 들 만큼 앤은 샤론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제일 신기한 건, 샤론의 쿠키를 잘 먹는다는 것.
샤론이 어지간히 요리를 못하는데, 나말고도 이걸 잘 먹는 사람이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물론 내게도 맛있게 느껴지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먹을 때마다 맛이 왜 이러냐며 성을 내기 일쑤라 이런 앤의 모습이 조금 신기하긴 했다.
“쿠키 맛있지?”
“...당연하죠.”
그런 걸 왜 묻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앤을 보며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썹을 찡그리는 것도 샤론을 닮았네. 어쩌면 누가 신기술로 개발한 클론 같은 게 아닐까?
허무맹랑한 상상이긴 했지만, 앤을 볼때면 그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앤이라는 것도 가명이겠지.’
샤론이 저 아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그냥 두긴 했지만, 머릿속에 떠도는 의심 한자락 마저 버릴 수는 없었다.
혹시 우리에게 해가 되는 존재가 되진 않을까, 이렇게 처음에 살갑게 굴다가 나중에 돌변해서 적이 되는 경우도 직접 본 적이 있으니.
샤론은 저 앤이라는 아이가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그렇고, 쿠키를 잘 먹는다며 손수 차도 타주는 것도 그렇고.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를 그렇게나 쓰다듬어 주고 싶다더니, 저를 닮은 사람을만났다고 마치 딸처럼 대하는 것 같았다.
앤도 부끄러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런 손길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고.
생긴것도 샤론을 닮아 어여쁜 게 맘에 들었다. 우리 아이가 만약 딸이라면, 저렇게 태어나지 않을까?
샤론이 이쁘긴 하지. 나중에 태어날 아이도 샤론을 닮아야 하는데.
그런 생각에 잠시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앤이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슬슬 나가려는 건가, 그런 생각에 손을 흔들어주자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제 처음 만난 사람인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너를 닮아서 그런가.”
“응?”
그러다가 샤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두 눈이 반짝이는 것이 꼭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아서 손을 내밀려다가, 이내 손을 거둔 채 시선을 돌렸다.
꼭, 그리워하던 이를 만나던 것 같지 않은가.
“...아니야.”
도대체 저 아이가 너에게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 알고 싶지만 묻지 않았다.
여기서 더 이야기를 꺼냈다간, 괜히 샤론이 울 것 같아서였다.
#
작전 도중에 겪는 추격전은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오늘의 문제점이라 하면, 추격전이 펼쳐지는 장소가 산인 탓에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겠지.
“샤론, 업어줄까?”
“그런 소리할 시간에 뛰어.”
“아니, 너 아까부터 다리 불편해보여서.”
“...또 그런 건 언제 봤대.”
“항상 너만 보고 있으니까.”
그 말에 귀가 붉어지는 샤론을 보며 웃기도 잠시, 뒤를 돌아보자 여전히 우리를 쫓아오는 녀석들과 거리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가끔 날아오는 총알은 막고 있긴 한데, 이러다가 샤론이 먼저 지치지는 않을까.
“일단 산길로 빠져나가서 본부랑 합류하자. 레이한테 혼나도 어쩔 수 없지.”
“...그러는 게 좋겠지?”
잠시 자기 배를 바라보던 샤론이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산길로 향했다.
그 쪽이 움직이기도 편하고, 그대로 타고 내려가면 우리 쪽의 본부가 있었으니 거기까지만 움직인다면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테니까.
레이 말을 들을 걸 그랬나, 지하실에 얌전히 있으라 명령했던 레이를 떠올리던 찰나, 갑작스레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지?”
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품속에 있던 총을 꺼내려했지만, 샤론이 내 손을 붙잡으며 말렸다.
“앤이라고?”
걔가 도대체 왜 여기에, 마음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던 경계심이 한층 더 커지는 순간이었다.
기껏해야 일병, 그 수준으로 보이는 이가 여기에 왜 혼자 있겠는가.
첩자? 그런 생각이 들어 샤론을 말리려 했지만, 샤론은 그런 앤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앤이 혹시 다치게 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샤론은 태도를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에게 절대 해를 입힐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앤이라는 아이에게 만큼은 마치 나를 대하듯 한없이 신뢰를 주었다.
...도대체 왜?
의심은 허망하리만치 흩어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의구심이었다.
샤론이 저렇게 대할 만큼이나 깊은 관계를 지녔던 아이가 있던가?
그리고 만약 그런 사이라면, 여태 내게 알리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옅은 배신감에 한숨이 나왔지만, 가슴 한켠에 자리 잡았던 그 미묘한 감정은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다 죽였어요.”
적들을, 그 많은 이들을 전부 죽였다는 말에 어째선지 가슴이 아파왔다.
그런 말을 덤덤히 내뱉는 저 아이가 무슨 삶을 살아왔던 건지 보이는 것만 같아서.
이제 겨우 20살이 되었을까, 성인조차 되지 못했을 아이가 저리 무감한 표정을 지는 것이 꼭 가면을 쓴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앤에 대한 의심을 천천히 거두기 시작했다.
앤은 그 나이대의 소녀 같았다.
사귀던 남자 친구를 가끔 씩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고, 그 아이의 얘기를 할 때면 볼을 발그레 붉히는 그런 아이였다.
믿을 수 없을 만큼이나 이능을 잘 다루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여러 번 겪어본 것만 같은 모습이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와 있을 때면 잘 웃는 밝은 아이였다.
일주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꽤나 많이 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다 큰 딸이 있으면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내가 하는 말에 툴툴거리면서도 따르는 모습이, 샤론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면 싫다면서도 조용히 몸을 기대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싫을 때 대놓고 싫다하지 못하는 건 샤론을 닮았고, 입술을 삐죽이는 버릇은 나를 닮았다.
편식은 안하는 것 같았고, 키는 딱 보기 좋게 커서 쭉 뻗은 다리를 볼 때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잘 컸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흠칫 놀라긴 했지만. 이내 다시 웃으며 앤을 바라보았다.
앤은 우리를 닮았다.
가끔 하늘을 빤히 바라보며 별을 바라보는 것도,
잠을 잘 때면 가끔 몸을 들썩이는 것도, 몸에 있는 점도, 머리카락도, 눈도, 코도, 입도.
어떻게 모르겠는가.
샤론은 내게 숨기려하는 것 같았지만,결국 알 수밖에 없었다.
앤이라는 이름을 지닌 저 아이가, 사실은 아이샤라는 우리의 딸이라는 것을.
샤론이 그 아이를 볼때마다 짓는 표정을 보면, 결국에 알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런 사실을 샤론이 알고 있다는 것에서, 이 곳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즉에 그 걸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죽었다는 거겠지.”
씁쓸했다. 좋은 아빠가 되보겠다고 육아와 관련된 책을 그렇게 읽었는데, 결국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샤론은 살아있다는 점이겠지.
아이샤는 행복했을까? 가끔 하는 말을 보면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걸렸다.
아비 없는 아이는, 결국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을테니.
“미안하다.”
어느덧 잠든 아이샤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그런 말을 내뱉었다.
너는 이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아마도 샤론이 무언가를 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꿈에서 무엇을 보든, 설령 그것이 내가 죽는 것일 지라 하더라도.
“네 탓이 아니야.”
그건 네 탓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자기를 탓하지 말고, 언제나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살았으면 했다.
결국 희생을 탓한 것은 자신이었고, 설령 기회가 다시 오더라도, 수십, 수백, 수천 번의 기회가 다시 찾아오더라도.
자신은 결국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제 엄마를 닮은 백금발을 조심스레 쓰다듬다가, 이내 손을 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많아서, 혹여 그런 말들을 쏟아내다가 결국 무너지게 될까 봐 두려워서.
편식 하지 말고, 늘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누가 먼저 때리지 않는 이상 섣불리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이기적인 생각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이능을 사람에게 함부로 쓰지 말고, 애인이 생겨도 돈을 헤프게 쓰지 말고.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가끔은 떠올리곤 했다. 만약 내가 자식을 낳아서, 그 자식이 커 학교 입학식이라도 가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입고 있을까.
“그 때 입으려고 정장도 미리 사뒀는데.”
네가 볼 수 있는 건 군복 입은 내 모습뿐이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론이 맨날 칭찬할 만큼, 자신은 정장이 퍽 잘 어울리는편이었다.
가끔은 멋진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고, 목마도 태워주고 싶었고. 자장가도 불러주고 싶었고, 잘 때면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싶었고, 편식하는 아이에게 채소로 요리하여 먹여주고 싶었다.
자는 아이의 눈을 감겨주며, 그 옆에 누워 자고싶었다.
입학식에 가서 사진도 찍고 싶었고,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레이를 불러 시시콜콜한 옛날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신혼 여행때 만들었던 엘범을 보여주며 젊은 적의 얘기도 들려주고,
전쟁에서 멋지게 활약했던 얘기를 들려줘 어깨도 좀 높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가 애인을 데리고 오면, 그 애인에 진지하게 얘기도 해보고 싶었고.
이 결혼은 안된다며 상도 뒤엎어보고 싶었다.
결국 헤맑게 웃으며 결혼하는 아이를 보며 눈물도 흘리고,
나중에 데려오는 손자들에게 좋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는데.
“결국 못해줬나 보네.”
한없이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 나오자, 문득 눈가에 물이 고여 있음이 느껴졌다.
눈을 닦은 손가락에 묻은 물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주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는데, 결국 해준 게 하나도 없다니.
이런 못난 아빠를, 너는 나중에 용서해줄까.
“...미안해.”
미안하다는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면서, 자는 아이샤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지막 날에서야 이걸 깨달았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앞으로 만날 수 있을까? 저 달이 이대로 멈춰서, 이대로 평생토록 밤이었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별은 움직였다. 하늘이 뒤집히고, 결국 어두운 밤하늘에 푸른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지막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