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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화 〉엄마가 싫어(6) (114/115)



〈 114화 〉엄마가 싫어(6)

“앤을 떨어트린 이유가 뭐야?”

짐짓 모르는 척, 앤과 떨어지게 되자 샤론이 물어왔다. 내가 아직까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샤론이 만든 꿈이란 건 진즉에 눈치 챘는데.
끝까지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 게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그녀도 예상치 못했을 상황이라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샤론의 이능인 몽환, 그 속에서  곳이 꿈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건 오직 시전자와 피시전자 뿐이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꿈인 것을 자각하게 되는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애초에 내가 살아있었다면 샤론이 어련히 일깨워 줬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죽었다는 거겠지.

“...뭐.”

그래서 내가 앤이 아이샤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을 숨기려다, 이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죽을 사람이 아니던가. 하고 싶은 말도 있었고, 샤론한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

“아빠잖아.”
“뭐...?”
“언제까지 모를 거라 생각했어. 앤 얼굴 보자마자 뭔가 이상하긴 했는데,  컸네.우리 딸.”

나를 바라보던 샤론이 입술을 꾹 닫았다.
대충 알고 있겠지. 내가 이걸 꿈이라고 깨달은 시점에서, 내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그녀도 알았을 터였다.

“...아이크.”

샤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당장이라도 터질  같은 샤론의 표정을 보자 나 또한 흔들렸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마지막에는, 웃으면서 보내주고 싶어.그렇게 덧붙인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던 순간에, 나는 샤론을 어떻게 보냈을까. 웃으면서? 울면서? 후회하며? 미련 없이?

나도 사람인지라, 아무래도 그렇게 보내기는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터질  같은 감정을 쏟아내면서, 절절하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빠잖아.

조금이라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미련이었다.
이  점의 미련마저 털어내지 못한다면, 참 후회스런 죽음을 맞이할 것 같아서. 그래서 웃었다.

“나는 괜찮아.”

번개가 치는 순간 깨달았다. 아마 우리 셋이 모두 성히 산을 벗어나긴 힘들 거라고.
이건 녀석의 경고였다. 그 녀석의 목표는 나와 샤론, 그리고 뱃속에 있는 아이샤였으니. 도망칠 수 있으면 한 번 해보라는 오만한 경고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단 한 가지 방법.

아마도 현실에서도 난 이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서, 내게 기회가 아무리 많이 찾아온다 한들. 나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아이샤, 많이 보고 싶었을 텐데.”
“...뭐, 괜찮아. 이렇게  큰  보니까 걱정이 놓이기도 하고. 아빠욕 많이 하지?”
“......”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보는 샤론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것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감정이었다.
아직, 아이샤가 저렇게 큰 저 시점까지도.
결국 해결 하지 못한 건가. 사람을 죽였다며 무덤덤하게 얘기했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도대체 무슨 삶을 살아왔을까. 미안해서, 차마 다시 얼굴을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뺨을 맞지 않을까.
어쩌면우리 이름을 듣고도 몰랐을 때, 그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럼에도 신경 쓰이는 건, 샤론이었다.
홀로 자랐을 딸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던 어미의 심정을. 그 누가 이해할  있을까.

“씩씩해 보여. 남자 친구도 사귀고, 혼자서 잘 했나 보네.”

남자 친구를 얘기할 때면 얼굴을 붉히던 아이샤가 떠올랐다.
역시 한창 사춘기일 때라, 아직 이런 얘기를 남한테 하기 껄끄럽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살았음에도 그렇게 밝게 자라서,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근데 밥을 조금  먹는 건가? 왜 이렇게 말랐지.”
“아이크, 그 정도면 적당한 거야.”

아니, 진짜 뼈밖에 없던데. 삐쩍 마른 손목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밥은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하는데, 혼자 산다고끼니를 거르는  아닐지.

“그 남자 친구라는 놈은 아이샤를 신경 쓰긴 하는 거야?”
“남자 친구라니, 아직 내가 허락 안했어.”
“진짜 20살 되면 연애 시키려고? 샤론, 그건 조금 너무한데. 우리도 아카데미에서 사귀고  거 다했-”
“안 돼!”

갑자기 버럭 치는 샤론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아이샤 입장에선 우리가 부모님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끼리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걔는 알까.

“샤론.”

번쩍-

이제는 우리의 바로 옆에 떨어지는 번개를 잠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이 꿈에서, 깨어날 때였다.

“아이샤한테 전해줄 말이 있는데.”
“...말해.”
“사실 어젯밤에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나오질 않더라고. 그래서 밤 꼬박 새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몇 개 추려봤어. 그러니까...음.”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여자는 몸이 따듯해야 하니까, 매일 따듯한 물로 씻고. 좋아하는음식만 먹지 말고, 잠은 12시 넘기 전에 자고, 남자 친구랑 통화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길게 하지 말고.

데이트  때 돈은  남자 친구한테 쓰라 하고, 양치는 하루 3번 꼬박꼬박 하고, 친구 사귈 때 그 사람이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 지보다 인성을 먼저 보고.

술 담배 하는 거 다 좋은데, 성인이 되고 나서 하면 좋겠고. 문신은 절대 안 돼. 내가 하늘에서 지켜볼 거니까. 몸에다 뭐하는 건 아무튼 안 돼. 그리고 남자 친구가 지금은 잘 해주더라도 나중 가면 이상한 놈들 있으니까 결혼은 신중히. 돈보다 사랑을 먼저 할 것. 어지간하면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을 걸.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렇기엔  세상이 너무 썩었네. 늘 긍정적인 생각하기. 직업이 아니어도 좋으니까 자신 만의 꿈을 가졌으면 좋겠고. 그리고.”

목이 매여서, 차마 나오지 않는 한 마디가 있었다.
내 앞에서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샤론의 눈가를 닦는 내가 천천히.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언제나 사랑한다고. 그렇게전해줘.”

좋은 것만, 바른 것만. 그렇게 더 많은 것들을. 경험들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으니까.

이렇게 말로나마 내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으련만.

차오르는 감정을 꾹 억누른 채,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비록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코에선 콧물이 흘러 엉망인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웃으면서 보내주고 싶었으니까.

“샤론, 너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하지 마.”
“내가 전에도 이렇게 말했나 모르겠다. 사람 생각이 다 똑같잖아.”
“...아이크, 이미 들었어. 나는, 18년 전에도. 이미 들었어.”
“사랑해.”

18년 전에도 똑같이 말했었나.
아니,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이 하고 싶었다.

“사랑해.”
“두  말하는 것도, 똑같네.”
“그게 내 매력이지.”
“아이크,  때도 말했지만.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언제고 다시 너를 보게 된다면 똑같이 말하겠지만.”

나도 사랑해.

미안했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홀로 남았을 너를 떠올릴 때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지.
감히 네가 품었음 감정을 이루 말할 수조차 없어서.

이 말을 들은 너는 또 나를 떠올리겠지.

어쩌면 잊었던 기억을 떠올림에 아파할 수도 있겠고.
 것도 전부 미안하지만, 이게 내 마지막 고집이었다.

“날 잊지 말아줘.”
“...너를 어떻게 잊어. 내가.”

퉁퉁 부어버린 샤론의 눈가를매만지던 나는 손을 떼었다.
네가 아파도, 아프다 못해  상처에 늘 얼굴을 찌푸리게 되어도.
나를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 내 마지막 이기적인 소원이었다.

내가 죽었다는 것마저도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손의 감각이 점점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샤론을 끌어안고 있는 팔의 감각이, 체향을 맡던 코가 점점 둔해져서.

이제는, 보내줄 시간이었다. 아이샤를 이 꿈에서, 그리고 미련을  꿈에서.

툭,

샤론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품속에 기대, 부푼 배를 끌어안은 샤론을 조심스레 들어 보이지 않는 수풀 속으로 옮겼다.

“기절 시켜서 미안해.”

아마도 현실에서도 이렇게 했겠지. 아무래도 내 낮은 지능으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그래도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아 가슴이 후련했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먹구름  하늘을 바라보다, 그렇게 내뱉자 곧바로 내 앞에 번개가 일렁였다.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뭘 몰라. 우리 찾아온 거잖아, 스토커 새끼야.”

꼬리 좀 밟혔다고 끈질기게 찾아오는 걸 보면, 아마 다음 탑히어로는 이 녀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샤가 있는 시대의 탑 히어로가  녀석일까? 그 건 좀 불안한데.

난데없이 떨어지는 벼락,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번개는 엄연한 이능이었다. 인간에게 허락된 이능  아마 레이만큼이나 강력한 이능, 차기 탑히어로로 불리는 재목.

“에드윈 카르멘. 그래서, 여기까지 온 이유는?”
“알면서.”

뱀처럼 갈라지는 입술이 얄미웠다.
벌써 몇 년이나 추격해오는 것을 알곤 후회도 했다.
차라리 건들지 말걸. 이렇게 될  알았으면 모르는 척, 그렇게살 걸.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별 수 없었다. 비록 아이샤에게 이런 과제를 넘기고 간다는 것이 많이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히어로니까. 나쁜 것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면 그건 히어로가 아니니까.

내가  것은, 어떻게든 샤론을 살리는 것 뿐이었다.

지지직-

우중충한 하늘에서 빛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파직거리는 전류가 나무를 불태우고, 돌을 부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에휴.”
“이제 와 후회하시는 겁니까? 그러게, 왜 건드리셨습니까. 막지도 못할 거면서.”

 말대로. 지금 내 이능으로는 저 번개 하나 막기도 버거웠다. 몇 겹을 겹쳐 깔아도 부서지니까.

하지만, 그렇다 한들 포기할 수 없었다.

우우웅-

사람에게는 이능의 절대총량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 어떤 수행을 통해서도 넘을 수 없는, 사람의 한계.

하지만 이 절대총량을 넘어서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그 것은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
나를 장작 삼아서 이능을 강화한다.
뇌를 불태워 더 이상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이능을 증폭시켜 만들어내는 이능이야말로.

궁극이라 할  있으니.

“...이게 마지막이야.”

목구멍을 타고 피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뇌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최대한 이능을 끌어올렸다.

반투명했던 막은 이내 붉어지고, 그 두께는 점점 두꺼워져 갔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이내 서있을 조차 없을 만큼 힘이 빠져 땅에 주저앉아, 그렇게 이능을 끌어올린다.
수없이 떨어지는 번개, 거기서 지켜야 할 것은 내가 아니었으니.

번개에 맞는 순간마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강렬한 고통은 차마 익숙해지지 않아피부가 갈라지는 생생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목구멍에서는 더 이상 피가 나오지 않았고, 몸에 있는 피가 전부 열기에 마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견뎌야했다.

내게 쳐져있는 보호막을 전부 지우고, 샤론에게 전부 덧씌웠다.
번개를 맞으면서, 몇 번이고 나를 이 세상에서 지울 듯 떨어지는 번개를 맞으면서.
샤론을 저 녀석이 찾지 못하도록, 미래의 아이샤가 사라지지 않도록.

그렇게 이능을 전부 쏟아내었을 때, 나는 누군가 내 곁으로 뛰어드는 기척을 느꼈다.

새까맣게 타버린 내 몸을 붙잡으며, 하염없이 무어라 소리치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미련은 없었다. 샤론에게 만들어주었던 보호막이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번개가 전부 사라지고, 내게 번개를 쏘아 보냈던 에드윈 마저 사라진 뒤에도, 그 보호막은 남아있었으니까.

‘아버지의 등은 넓었다.’

아주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보았던 구절. 내 몸을 붙잡고 있는 게 아이샤일까. 몸을 쥐고 있는 손에서 억센 힘이 느껴졌다.

지켜냈구나.


나는, 해낸 거구나.

몸이 바스러져무너지고, 갈라진 상처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고. 더 이상 눈도, 코도, 몸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네가 살았다면.

그걸로 되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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