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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엄마가 싫어(7) (115/115)



〈 115화 〉엄마가 싫어(7)

달렸다.

불안함이 물신 풍기는 그 곳을 향해서. 제발 살아있어 달라고, 내가 늦지 않게 다다르기를 바라며.

비록  곳이 꿈일지라도, 살아주기를 바랐다.
이 세상에서나마 웃으며,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그렇게 행복하기를 바랐다.

비록 일주일이었지만, 어느덧 그 사람들은  마음 속에 자리 잡았으니까.

이게 욕심일까, 아니잖아.

그런데도.

이렇게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보며 내뱉어지는 것은 한없이 사무치는 감정 덩어리들이었다.
왜, 도대체 왜. 허락해주지 않는 걸까. 아련이라도, 태동이라도, 수련이라도.

하다못해 월야라도 뽑게 해준다면.

막을 수 있을 텐데.

번쩍-

번개가 떨어졌다. 하나, 둘. 그렇게 셀 수 없이 떨어진번개 아래에 있는 것은.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원망스러웠다.

 몽환이 보여주려는 것이 이런 거였어?

아이크가 죽는 것을 보여주려고, 이렇게 몸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거였나.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지고, 입안을 깨물어 살이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럼에도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이크가 이능을 사용한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에 허공을 바라봤지만 아이크의 이능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을 지킬 생각이 없는 것처럼.

“왜...왜.”

막으려면 막을 수 있을 텐데. 설령 이능이 부서지더라도, 제 한 몸은 충분히 지킬 수 있을 텐데.
도대체 어째서 막는 것을 포기한 건지.
번개가 온 몸을 부수며 태워가는  고통을 견뎌가면서도, 당신이 이능을 쓰지 않은 그 이유가 뭔지.

번개는 이능이었다. 아이크를 집어 삼킬 만큼이나 강력하며, 순식간에 사람을 잿더미 만들만큼이나 강렬한.

그리고 그런 이능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 가진 이능이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유구한 역사를 종합하더라도 가장 강력한 자연계 이능의 소유자.

“...에드윈 카르멘.”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에게 대항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에 이가 빠드득, 하고 갈렸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적어도 인간의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다 못해 고통 없이 보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크의 몸이 고통에 부들거리며 떨리고있었다.
갈라진 피부에서 진물이 새어나오고, 까맣게 재처럼 변해버린 몸이 바스라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번개는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렇게 그의 몸이 하나의 잿더미가 되어 바닥에 무너졌을 때, 그제 서야 에드윈 카르멘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발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몸을 붙잡고 있던 속박 또한 사라져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와 움직일 수 있다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벅거리다 못해 질질 끌리는 발을 움직여 마침내 거뭇한 아이크의 몸에 다가갔다.
아직까지도 전류가 흘러, 몸이 이따금움찔거릴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미안해요.”

막아주지 못해서.

에드윈 카르멘이 지닌 이능의 힘은 그야말로 강대했다.
아련을 뽑은 내가 상대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이나. 하지만 시간은 끌어줄 수 있을 터였다.
어차피 여기는 꿈 속이었고, 죽어봤자 꿈에서 깨어나는  전부였는데. 죽는 것쯤이야 몇 번이든 상관없었다.

이미 한 번 죽어봤으니까.

...아니, 내가 죽었던가.


문득 튀어나온 생각에 혼란스러워진 생각을 정리하기도 잠시, 이제는 미동조차 없는 아이크의 몸을 들어올렸다.

새까맣게 탄 피부는 가뭄이 일어난 땅처럼 갈라져있었다.
그 장난스런 미소가 만연하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몸에 흐르는 것들은 온통 붉은 색이었다.

그래, 붉은색.

고개를 들어 바라본 주변의 풍경도, 나무에 하릴없이 달린 단풍도.
아이크의 몸에서 흐르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의 모든 것이 붉은 색이어서.

“...아.”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땅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또, 지키지 못했다.

얼굴에서 흐르는 것이 비인지, 눈물인지도 모를 만큼.
머리에 떨어지는 것이 단풍인지, 아니면 다른 이의 손인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한참을 바닥을 바라보다가 이내 머리에 계속해서 느껴지는 감촉에 고개를 들었다.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은 익숙했다.

요 일주일간 느꼈던 감촉과 똑같았으니까.

“...샤론?”

그 이름이 내 입에서 새어나오자, 주변의 풍경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타들어가는 종이처럼, 천천히 일그러지는 풍경에 균열이 생기며. 그렇게 순백의 공간으로 변하는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심지어 움켜쥐고 있던 땅조차 사라져서, 움찔 놀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자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어느새 내 앞에 놓여있었다.

“앤.”

익숙한 목소리였다. 익숙한 얼굴이었고, 익숙한 온기라서, 몸을 일으켰을지언정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이크씨는, 그 말을 내뱉곤  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샤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아. 알고 있었는 걸.”
“...네?”

알고 있었다니. 고개를 들려는 순간, 무심코 고개를 치켜드는 두려움에 행동이 망설여졌다.
아까의 그 번개. 만약  번개에 샤론이 휩쓸렸다면, 결코 멀쩡하지 않을 텐데.

그렇게 겨우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멀쩡한 샤론의 모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주변의 바위가 부서지고, 땅이 파일 만큼의 충격이었다.
도대체 샤론은 어떻게 견뎌낸 걸까, 멀리 떨어져 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할  쯤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를 둘러싼 붉은 색의 막이었다.

그 익숙한 이능에 잠시 아연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거.”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 막을 쳐다본 샤론은, 이내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이크의 이능이지. 아빠가 참 대단하지?”
“아니, 아이크씨...잠시만요. 아빠?”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난데없이 아빠라니, 아빠라면.

설마 아이크를 가리키는 걸까.

그제 서야, 머릿속에 난잡하게 퍼져있던 퍼즐들의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는  같았다.
아이크와 샤론, 18년전의 여명전투. 그리고 샤론의 몸에 쳐져 있는 아이크의 이능. 이능을 쓰지 않고 번개를 직접 맞은 아이크.

그 모든 것은, 결국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살아...있던 거에요?”

샤론 이리안이, 여명 전투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에게 태어났을 아이. 내가꿈에서, 그 폐허 속에서 보았던 여인이 샤론 이리안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그 뱃속의 아이는.

“...나잖아.”

순간몸이 휘청거렸다. 그녀의 입으로 7개월이라 하였다.
그럼 앞으로 태어날 아이는 3개월 뒤, 12월 달에나 태어나겠지.
그리고 아이샤의 생일은, 12월 24일. 아무리 보아도, 모든 정황이 내가 그들의 딸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히, 나는 부모님을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죄책감에, 바닥에 주저 앉은 고개가 땅을 향해 떨어졌다.
나는 아이샤였다. 분명히,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이 소설 속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이상 분명히 나는 아이샤일 터였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는 아이샤가 아니었다.

몸은 아이샤였고, 여태껏 겪었던 모든 일들이 아이샤 이리안으로써 겪었던 일이지만.

결국 아이샤라는 몸에 빙의한 사람이었으니까. 움켜쥔  사이로 눈물이 흘러떨어졌다.
이토록 잔인한 사실을, 어떻게 전해주어야 하는 걸까.

비로소 만난 당신의 딸이, 사실 당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안해요.

그 말을 차마 내뱉을 수가 없어서.
18년 만에 만난 딸이 내뱉을 말이  것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도 죄송스러워서.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가슴을 움켜쥐었다.

“괜찮아.”

귓가에 부드럽고도 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는 자식을 달래듯, 따듯한 손길이 내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너는아직 모르겠지만, 네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던. 너는 분명히 우리의 딸이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마치, 내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 지 아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은  나를 끌어않는 샤론을 멍하니 바라보자, 그녀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이제는 잊힌 기억들을 만날 때란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전부 마주했을 때, 너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을 테지.”

머리를 부드럽게 쓸던 그녀는 이내 내 손을 마주잡았다.

“정말  컸네. 우리 딸.”

손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녀는, 말랑말랑한 손바닥을 꾹 누르더니 후훗, 하고 작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빠도, 엄마도.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이렇게 꿈속에서 말하는 건 조금 그렇지? 어차피  있으면 만나게 될 것 같으니까. 다음에 얼굴 직접 보면서 말하자. 쿠키도 굽고, 네가 좋아하는 차도 끓여줄게.”
“...샤론.”
“역시, 아직 엄마라 부르기엔 조금 어색한가? 그래도 뭐, 이제 슬슬 기억이 돌아올 때가 됐으니까.”

무슨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눈살을 찌푸려봤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을 거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두 손을 꼬옥 마주잡으며, 다시 한  그윽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힘들 거야. 네게 남겨진 것들이 너무도 힘들어서, 가끔은 혼자 견디기에 너무 힘들지도 몰라. 엄마도, 아빠도. 너에게 항상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 씩씩하고, 엄마처럼 예쁘게 자라줘서, 너무 고마워.”

울음으로 퉁퉁 부어버린  눈가를 조심스레 쓰다듬던 그녀는,
이내 활짝 웃으며 내 이마를 툭 건드렸다.

“다음에, 또 보자.”

그렇게, 내 시야는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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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부네요."
"네."
"딸을 만나고 왔어요."

덤덤히 입을 여는 샤론을 바라보며, 여인은 멍하니 시선을 옮겼다.
딸을 만났다면, 그녀가 심어두었던 꿈이 깨어났다는 말이었으니까.

"어떠셨습니까."
"아직 내가 엄마인지도 몰라요. 내가 지웠으니까 당연히 그런 거겠지만. 조금 섭섭하긴 하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슬프십니까?"
"...아뇨."

잠시 바다를 바라본 샤론은, 이내여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서, 너무 좋아서. 너무 만나고 싶어요. 손을 직접 잡아주고 싶어요."
"그럼 만나시면 되지 않습니까."
"아직 저는 해야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이내 다시 시선을 바다로 옮겼다. 아련히,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아마도 저 너머에 있을 그녀의 딸에게 닿고 있지 않을까.

"...쿠키에는 무엇을 넣으면 좋을까요."


그녀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파도를 타고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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