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03. 멸망의 시작 (3/69)



〈 3화 〉03. 멸망의 시작

"하아, 하아."

뜨거운 숨결을 내뱉는 그녀.

우리들에게나온 여러 체액들로 뒤덮인  쾌락의 여운에 살짝씩 떨고 있는 그 모습은 색정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하반신으로 피가 쏠리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까지의 경험들로 인해 누나가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먼저 방에서 나가며 말했다.

"내가 먼저 씻을게. 누나는 진정되면 가서 씻고 자. 그리고........ 아니다, 잘  누나."

나는 이번에도 그 말을 하지 않은 채 누나를 뒤로 하고 방을 나왔다.

이 관계를 시작하면서부터 어느샌가 우리 사이에 사라진  말.

나 혼자만 신경 쓰는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말은 어느샌가부터 선이 되어 다른 선들과 함께 누나와 나 사이에 그어져 있었다.
아마 암묵적으로 지키던 선을 더 신경쓰게 된 건 할아버지께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였겠지.
그 선을 넘는다면.....

'아냐. 지금 굳이 이런 생각들은 하지 말자.'

나는 떠올랐던 생각들을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리고 샤워부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맞으며 머리를 비웠다.

샤워를 마치고 방 안에 돌아와보니 내 방 안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온갖 액체로 젖었던  침대 시트도 새로 바뀌었고 방에서 향기까지 나는 보니 누나가 무언가를 뿌린 것 같았다.

"오늘도 정리 혼자서 다 했네...."

우리의 '관계'가 끝나고 몇번씩이나 누나 혼자서 치우거나 마무리를 했기에 내가 혼자서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행동을 바꾸지 않았다.
지금도 어렸을 때부터  엄마처럼. 아니 어쩌면 엄마보다 더 나를 챙겨주는 누나.

나는 그런 모습들을 생각하며 다시금 누나가 내게 보여주는 뒤섞여 타오르는 불꽃 같은  감정들을 떠올렸다.

처음  불꽃을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그 맹렬하게 타오르는 감정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 했다.

물론 내가 지금 그녀에게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지만.....

'요즘 드는 생각들이 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들 밖에없냐.'

비워냈던 머리에 상념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두 손으로 뺨을 내려치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컴퓨터나 좀 더 하다 자자.'

시계를 보니 막 12시가 지났기에 새로 올라온 소설이나 읽다가 자려고 마음 먹었을 때.

콰앙!

귀를 찢어버릴 것만 같은 굉음이 들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엄청난 진동과 함께 거대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그 엄청난 굉음에 당황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일  없었다.

"....어?"

그러나 너무 이상하게도 살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크기의 진동이 순식간에 완전히 사라졌다.
분명히 지진이라고 생각될 만큼  진동이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었기에 내가 미친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멸망?"

이 믿을  없는 상황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목소리에서 들렸던 단어 하나가 강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같은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 목소리.

너무나도 이질적이었고 성별의 구분도 할 수 없었으며, 사실 그것이 목소리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소리가 맞기는 한 건지...
그 소리에 대한 어떤 것도 확실히 정의할 수 없었다.

“멸망이라고?”

내 기준에서 ‘멸망’이라는 단어는 소설이나 게임 속에서만 등장하는 단어였다.
아니면 기껏해야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종말론 같은 곳에서밖에 들어보지 못한 단어.

그런 단어를 들었기에 내가 정말 환각을 겪거나 미친건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

쾅!

누군가가 강하게 방문을 열며 들어왔다.

“다운아!”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내 방안으로 들어오는 누나.

"다친데는 없어?"

그녀는 곧바로 내게 달려와 내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며 물었다.

"안 다친거지? 괜찮은 거 맞지?"

"맞아, 누나. 나는 멀쩡해. 누나는? 누나도 괜찮아?"

"응, 응. 나는 괜찮아."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고 이미 흘러내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도 보였다.

아까  겪었던 일이 허상이었다는 생각은 지금 내게 보여주는 모습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다.

"누나.... 누나도 그 일을 겪은 거 맞지?"

"응. 맞아. 대체 그건 뭐였..... 아!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 조부모님의 안전을 확인했고 두분께 조심하라고 몇번이나 말을 한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

"두 분도 똑같이 겪으신거야?"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나를 향해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굉음과 진동과 소리.... 다운이 너도 전부 똑같이 겪은 거지?"

"응."

"그럼 내용도 들었어?"

"'멸망을고한다’ 라는 내용.....?"

나와 대화를 나눌수록 누나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굳어갔다.
누나는 내 앞에서 일어나더니창문으로 걸어가 밖의 풍경을 잠시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

다시 내게로 돌아와 나를 끌어 안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그녀.

"밖을 보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어.  사람들도 지금 우리가 겪은 일을 똑같이 겪은거라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서둘러 핸드폰을 들어 빠르게 정보를 확인하던 그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모든 사람이 겪은 건가?”

"뭐어?"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누나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한국의 모든 사람이라니. 누나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니야? 설마...."

나는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크게 의지하고 믿는 그녀가 그런 모습을 보이자 나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어설픈 내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일어나서 그런거 아닐까? 북한 애들이 한거라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을수도..... 아! 아니면 우리끼리 이러지 말고 차라리 밖에 나가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는게 나을수도 있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나가려고 하자 어느새 누나가몸을 일으켜  팔을 붙잡았다.

"다운아. 나가면 안 돼. 지금 나가는 건 최악의 선택이야. 그리고 전쟁도..... 아마 아닐거야. 여기 다시 앉아."

진지한 누나의 태도에 나는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을  밖에 없었고 팔짱을 끼고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가 휴대폰을 들어 무언갈 하기 시작했다.

"멸망을 고한다, 멸망을 고한다, 멸망을 고한다....."

진동과 함께 들려온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던 누나가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운아, 너도 컴퓨터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좀 봐봐.”

내게 애써 침착한 말투로 말하는 누나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한 명백한 공포가 들어 있었다.
내 앞에서 '그 날'을 빼면 한 번도 지금처럼  앞에서 이런 공포에 질린 모습, 아니 약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던 그녀.

평소 누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그 모습에 갑자기 내 안의 무언가가 흔들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느낌에 깜짝 놀라며누나에게서 시선을 피해주변을 둘러보자 흔들림이 멈췄다.
결국 도저히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볼  없던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방송 채널에 접속해 화면을 바라보았다.

[소리 들으신 분?]
[폭탄 소리랑 목소리 다들 들으셨나요? 진동도 느끼셨죠?]
[실제 상황!! 정체불명의 소리!!]

방송 목록은 전부 지금 일어난  수 없는 상황에 관련된 방송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나는 가장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방송에 접속했다.

그 방송인은 자리에 방금 막 돌아온 듯 땀을 흘리며 급하게 자리에 앉고 있었다.

“지금 이거 실제 상황이에요. 여러분. 저뿐만 아니라 모든 시청자분들. 그리고 저희 부모님도 다 겪으셨대요. 방금 통화로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뭔데 대체?
-전쟁  거 아님? 핵?
-넌 핵  때 [멸망을 고한다] 이러고 방송하면서   같냐?
-킹능성... 있는데...?
-아무리 한국군이 뭐 같아도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을리 없음 ㅇㅇ 사이렌도 안 울렸자너
-아니 ㅋㅋ 진동을 전부 느꼈는데 물건들이 제자리구만 무슨 핵이야 ㅋㅋ 우리 주인님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어.  인간들만 느낀 거라니까?
-주인님이 hoxy...?
-고양이
-진짜 지금 개 무섭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 거 아냐?

방송인이 다시  번 확인시켜주자 채팅창에 수많은 의견이 올라오며 혼돈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때.

-지금 외국방송인들도 다 난린데?

“네? 지금 외국도 난리라고요?”

누군가  충격적인 채팅을 방송인이 발견하고 깜짝 놀라 되물었다.

채팅창에 올라온 충격적인 소식에 방송인이 얼른 방송 화면을 전환했고 그 화면에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방송 채널의 모든 방송 제목이 표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영어로 된 그 방송 제목들을 본 순간나는 몸이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미…. 친…….”

-와. 진짜 다 똑같이 겪었나 봐!
-쟤네 방제가 다 의문의 소리. 멸망 이런거야.......
-아니, 근데 마지막 목소리는 한국어 아니었음?
-기숙사 학생입니다. 제 옆에 중국인 친구 있는데 자긴 중국어로 들렸다고 하네요.
-이거 더 이상 못 보겠다. 가족들한테 바로 가야겠음.
-님들! 티비 트셈! 티비! 지금 긴급 속보 나오고 있음!

“여러분., 티비 트세요! 긴급 속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아! 이거 방송규칙 위배되는거긴 한데 혹시티비  보시는 분들 있으실까 봐 제 화면으로 티비 틀어드릴게요! 저는 화면 전환하고 가보겠습니다! 엄마! 티비 틀어!"

나도 화면에서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누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나! 지금 긴급 속보 나오고 있대! 여기로  봐!”

그러나 이미 누나의 휴대폰에서도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누나가 나를 힐긋 바라본 뒤 손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두들겼다.

나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녀의 옆으로 가서 흘러나오는 말에 집중했다.

“국민 여러분. 현재 정체불명의 굉음과 목소리가 들려오고,  수 없는 진동이느껴진  상황에 대해 정부에서 조속히 이유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이 걱정하고 계시는 전투나 도발은 현재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소식을 듣지 못하신 분들께 꼭 내용을 전달해 주시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섣부른 행동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많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정부의 정확한 원인 파악 후 행동을 부탁드립니다.”

뉴스의 맨 밑에는 자막으로 ‘전투 상황 없습니다. 전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현재 정부에서 원인 파악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박혀 있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말하는 앵커.

나는 그 반복되는 말을 주의깊게 듣고 있는 누나에게 내가 알아낸 또 다른 정보를 말해 주었다.

“근데 아까 보니까 외국에서도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던데…….”

“외국? 외국 어디? 중국, 일본?”

“내가 자세히 확인은 못 했는데 미국은 거의 확실했어. 아..... 가장 이상했던 건 한국에 유학온 중국인은 목소리가 중국어로 들렸다고 하더라.”

“그……. 마지막 목소리 내용이 말이야?”

누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어쩌면  세계가..."

불안에 떠는 그녀를 바라보는게 힘들어진 나는 누나에게서 시선을 돌렸고 마침 컴퓨터 화면에서 틀어진 속보에서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어! 저기?”

내가 다급히 외치며 자막을 가리켰고그곳에서는 자막이 실시간으로 추가되고 있었다.

‘전투 상황 없습니다. 전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현재 정부에서 원인 파악 중입니다. 전세계에서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지금 저희가 전달해드린 이야기 외에도 많은 분께서 대한민국 외에도 타국에서 똑같은 소리가 들린  맞는지 문의를 해주시고 있으십니다. 제보에 대해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굉음, 진동과 함께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왔으며 목소리가 멸망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타국 공영 방송에서도 긴급 속보가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 모두 혼란스러우시겠지만, 정부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최대한 빠르게 이 상황을 규명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앵커가 들려주는 충격적인 소식에 나는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을 전 세계에 모든 사람이 겪을 수 있다고? 마지막에 말한 건 분명히 나한테는 한국어였어. 근데  세계에서는 그 목소리가 각자의 언어로 전부 같은 의미로 들렸다는 거야?'

그러나  생각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누나의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끊기고 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네? 할머니가 쓰러지셨다구요?"

다급하게 핸드폰으로 온 통화를 받은 누나의 입에서는 충격적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참을 할아버지와 통화하던 누나가 나를 부르며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조부모님이랑 통화는 계속 연결 상태로 해 둬야겠어. 충전기 좀 가져와 줄래?"

나는 서둘러 충전기를 가져와 그녀에게 건네 주었고  마디 통화를  한 누나가 조용히 핸드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다운아.“

그리고 누나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별일…. 흑…. 아니겠지? 그냥…. 흐흑…. 우연이겠지? 근데.. 왜 이렇게...흑.....?“

누나가 울고 있었다.

항상 쾌활하고 자신감 넘치던.
나의 삶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둥이자 항상 멋진 모습만 보여주던 그런 사람이 공포에 질려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 안의 무언가를 다시  번 거세게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떨림을 무시한 채 나는 그녀를 안아주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별일 아닐 거야.“

”그래……. 그렇겠지……?"

누나는 내 말에 답하면서도 연이어 들려오는 충격적인 소식들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던소음도 점점 커져갔고 화면에서는 행동을 자제해달라는 이야기만을 앵무새처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앵커도 식은땀을 계속해서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땀을 닦아냈다.

그래.

그의 눈에도 명백히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내 옆의 누나에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화면 속의 앵커에게. 아니, 아마 거의 전세계 모두가.

명백하게 느끼고 있을 공포.

'뭔가 알 수 없는 거대한 게 미친듯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 같......'

콰아앙!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진동과 함께  생각은 멈췄고.

그 끔찍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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