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58. 계획의 시작
그녀가 교장실로 향하면서 나에게 들려준 자세한 이야기는 더 놀라웠다.
방금 그녀를 괴롭히던 교수는 유력한 가문의 안주인이며 지금까지 그녀를쭉 그렇게 괴롭혀 왔다고 말했다.
그 유력가문의 가주는 다른 세력과의 격렬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때에도 전쟁에 직접 출전하지는 않고 후방지원만 해왔던 인물이고 마왕과 다른 가주들이 죽었던 격전에도 출전하지 않아 마지막까지 이곳에 살아남은 인물이라고 했다.
마왕과 경쟁자들이 전사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마왕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기에 세간에서는 그가 전쟁에서 제대로 된 지원도 하지 않아 많은 이들이 죽게 되었다는 소문마저 나돌았다.
그의 평가는 그런 소문과 겹쳐 최악을 달리고있었지만 경쟁자들이 전부 죽어버리고 2세들만 남은 지금 자신이 마왕이 될 거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마왕이 되기 전부터 마치 마왕처럼 행동하고 다니던 그.
그러나 그는 본격적인 마왕선발이 시작되고 마지막 결투에서 베티의 언니에게 패해 마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심지어 베티의 가문은 그의 가문과 대대로 내려오는 원수지간의 가문.
그는 머리 끝까지 분노했지만 마지막 결투에서 베티의 언니에게 압도적인 격차로 패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지만 그 교수가 직접 마법 학교에 교수 신청을 하며 들어왔고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으며 베티를 괴롭혀 왔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나는 그런 베티의 설명을 들으면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니, 왜 언니분께 말씀드리지 않으시구요?"
"언니는... 전쟁 뿐만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 많이 바쁘니까..."
그녀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지만 나는 현실에서도 꼰대 짓을 당하던 기억이 떠올라 그녀에게 말했다.
"직접 죽이세요."
"...응?"
"학교에서 일이 끝나면 직접 손으로 죽이세요. 지금까지 받았던 괴롭힘보다 훨씬 더 괴롭게 만들다가 죽여버리세요."
"그런데 그러면...."
"괜찮아요. 제가 책임질 테니까. 괜찮지?"
나는 아직도 시끄럽게 말을 걸고 있는 사마희에게 물었고 그녀가 화를 내며 나에게 답했다.
(별로 상관 없긴 한데.... 그것보다 주군! 대체 아까 무슨 말씀을 하신거에요!)
(나중에 다 말해줄게.)
(주군! 주구우운!!!)
나는 소리치는 사마희를 다시 무시하며 베티를 향해 웃어 주었다.
"해도 괜찮다고 하네요. 제가 말씀드릴 테니까 그때 직접 죽이세요."
"저, 정말?"
"네."
"정말 고마워."
그녀가 내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으며 고마움을 표했고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답을 돌려주었다.
"그러니까 제가 하는 말만 잘 들어주시면 돼요. 그렇게 해주실 수 있죠?"
"....응. 당연하지."
아주 잠깐 머뭇거린 후에 웃으면서 말한 그녀가 다시 내 팔을 이끌며 교장실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거대한 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녀가 손을 문에 갖다 대고 잠시 기다리자 문이 서서히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문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따라가자 인자해보이는 노년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멋지게 나이를 먹은 그는 젊었을 적에도 꽤 미남이었을 것 같았고 우리를 보자 바로 일어서서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 렌 양! 이번에 찾아온 이유는 제가 지금 기대하는 그 이유 때문에 온 게 맞나요?"
"네. 맞습니다."
"이렇게 기쁜 일이! 내 정신 좀 봐. 일단 앉아서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지 않을래요?"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찻잔 세 개가 놓인 원형 탁자로 안내했고 그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은 우리를 향해 그가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렌 양! 드디어 소환 마법을 성공한 건가요?"
"네. 응원해주신 덕분에 어젯밤에 성공했습니다."
"음! 렌 양은 사실 지금도 저보다 훨씬 뛰어나죠. 그래서 사실 제가 먼저 졸업을 시키려고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서 졸업하면 소환마법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군요! 정말 축하합니다. 렌 양."
"아니에요. 저보다는 아직 교장 선생님이 뛰어나시죠."
"하하! 나는 빈말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이제 졸업 의식만 남은 건가요?"
"네."
웃으며 베티를 바라보던 그가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바로 렌 양의 졸업 의식을 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한가지는 물어보고 싶네요. 어떤 소환수를 소환한 건가요?"
"다른 차원의 소환수에요."
렌은 차분하게 말했지만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럴수가! 다른 차원이라니! 역시 렌양이군요! 저도 아직 과거의 영웅분들밖에 소환할 수 없는데 벌써! 정말 저희에게 큰 축복입니다. 두 자매가 이리도 뛰어난 마녀라니요!"
"아니에요. 교장 선생님. 저는 언니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죠. 다른 차원의 소환수라 저도 아직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언니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음. 과연 다른 차원의 소환수라면 그럴만 하죠. 그럼 얼른 마왕님께 가 보셔야겠군요?"
그가 눈을 살짝 찡긋하며 말하자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언니한테 얼른 말해주고 싶어요."
"하하! 제가 그 마음 이해하죠. 그럼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겠어요? 지금 졸업 의식을 바로 시작하죠."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렌은 그의 앞으로 다가갔고 그는 일어서서 렌을 향해 주문을 외어주었다.
환한 빛이 그의 앞에서 나타나더니 산산이 부서지며 베티에게 내려앉았다.
이윽고 빛이 사라지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베티에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렌 양. 이제 당신은 마법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마녀입니다. 학교를 입학할 때 받았던 제약이 모두 풀리고 이제 당신의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어요. 그 힘과 재능을 마음껏 펼치시길."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렌을 축하해주는 듯 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살짝 슬픈 표정을 지은 렌.
"하하! 졸업하더라도 언제든 학교에 찾아와서 저랑 차를 한잔 해주세요. 졸업한다고 이별이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요. 아시겠죠? 렌 마법단장님?"
"... 정말 감사해요. 교장선생님. 그리고... 죄송합니다."
"네?"
베티가 말을 마친 순간 내 뒤에서 검은 빛이 순식간에 그에게 흘러 들어갔다.
"크아악!"
그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정신을 잃었고 카렌과 사마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주군! 빨리 무슨 말인지 설명해주세요!"
"잠깐 그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저 사람 죽은건 아니지?"
"네. 강력한 복종 주문을 맞아서 순간 저항하다 그 고통에 기절한 것 뿐입니다. 깨어나면 제가 하는 말에 복종하는 꼭두각시나 다름 없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카렌.
쓰러져 있는 교장을 보며 슬픈 눈빛으로 베티가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이렇게 잘할 수 있으면서 아까는 대체 왜 그런거야?"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이번에 잘하면 돼. 그럼 이제 걔한테 가서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할래?"
"...네?"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아까 다시 말한다고 이야기하고 헤어졌잖아? 다시 가서 친절하게 대하고 오라는 거지.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데리고 와서 음..."
나는 높이가 있어 내가 들어가도 될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는 책상을 가리켰다.
"저기에 앉아."
"네? 하지만 저긴 교장선생님의..."
"그런 변명은 너가 알아서 생각할 수 있어야겠지?"
"....네. 알겠어요."
"그래. 그럼 먼저 강당으로 가 있다가 그 놈이 오면 교장실로 데려와서 이야기를 시작해.“
"그럼.. 그 때 말씀하신 그걸 하는 건가요?"
"그래. 왜? 싫어?"
"...아니요. 그럴리가요."
"그래. 카렌. 베티한테 주문을 하나 알려줘."
"알겠습니다, 주인님."
"주군! 잠깐만!"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는 사마희의 말을 손을 들어 막으며 한가지 말을 덧붙였다.
"내가 다 설명할 테니까 기다려. 카렌. 마음속으로 말하는 방법을 나와 베티만 통하도록 가르쳐줘."
"알겠습니다."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지은 사마희를 무시하고 카렌은 베티에게 내가 시킨 걸 전부 가르쳐 주었다.
카렌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문 밖으로 나갔고 그녀가 나가자마자 사마희가 나에게 물었다.
"주군! 이제 말씀해 주세요."
"대충 예상한거 아니야?"
"확실하게 넘어왔는지 실험하시는거요?"
"그래."
"그거라면 다른 방법으로 실험해도 괜찮았어요!"
"그래도 나는 내 능력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고 싶었어. 내 생각에는 우리 계획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어 보였고. 그렇지 않아?"
"후..... 그렇긴 하지만... 주군의 개인적인 즐거움도 포함되어 있는 것도 이유 아닌가요?"
"맞아. 그것도 부정하지 않을게."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쉰 사마희가 내게 말했다.
"좋아요. 주군의 말도 틀린 점이 없고 크게 영향이 가는 게 없으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그렇게계획에 없으신 걸 추가하면 혹시라도 흔들릴 수 있어요."
나는 그녀가 앓는 소리를 하자 그녀를 도발하며 말을 이었다.
"왜? 내가 즉흥적으로 내 즐거움을 위해서 행동하면 그것까지 생각하면서 계획을 완성하기엔 너 실력이 부족한가?"
"...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