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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화 (1/139)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프롤로그.

평생을 개처럼 살아왔다.

부모도 모를 고아. 뒷골목에서 빌어먹다가 스러질 인생이었다. 그런 인생을 바꾸기 위해, 무려 30년이라는 시간을 오직 리텐슈노프 가의 천하를 위해 바쳤다.

보람찬 시간은 아니었다.

가문의 가신으로 선택받지도, 내 공적에 대해 제대로 대우받은 적도 없었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는 내 충성이 보답받을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족보도 없는 잡종은 개 취급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저 이용당하다 쓸모를 다하면 버려질 뿐.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채, 가문의 이익을 위해 처형당하는 날.

그제야 후회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절대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1화.

번뜩!

신음과 함께 눈을 번쩍 떴다. 또 그때의 악몽이다.

“……후.”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고, 잘려 나간 머리가 허공을 빙글빙글 돌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이 빌어먹을 꿈은 언제쯤 끝이 날려나.

제발 평생은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밤사이 흘린 땀에 축축하게 젖은 시트가 끈적하게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유모가 오기 전에,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침대를 정리한 뒤, 땀에 절어 찝찝해진 잠옷을 벗어 던졌다. 혼자서 옷장을 열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7시.

시간을 확인함과 동시에 조심스러운 손길이 내 방문을 두드린다. 소리 없이 문이 열리며 하녀복을 입은 젊은 여성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의 보육을 책임지는 유모, 마리였다. 벌써 잠에서 깨어난 내 모습에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드레커 도련님?”

내 이름을 부르는 마리의 목소리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다행히, 그녀는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벌써 한 달이나 지났지만, 이 이름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평생 리텐슈노프 가에 충성을 바쳤으면서도, 내가 그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꿈도 꿔본 적 없었으니까.

“오늘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옷도 혼자서 다 갈아입으시고……. 침대 정리는 저한테 맡기시라니까요.”

자신이 해야 할 일까지 스스로 다 하는 내 모습에 대견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그녀를, 애써 무시했다.

죽기 전 내 나이가 무려 38살이다. 이부자리 정리를 잘했다고 칭찬받는 건 여전히 부끄러운 일이다.

아니, 그 이전에 누군가에게 봉사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다.

하지만 익숙해져야 한다.

이제 나는 족보도 없는 잡종이 아닌.

‘드레커 리텐슈노프’니까.

* * * * *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내가 여덟 살의 어린애가 되었다는 점도, 3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마자 누명을 뒤집어쓴 채 리텐슈노프 가문을 위해 처형당했던 게, 바로 나다.

나를 죽음으로 내몬 가문의 일원으로 다시금 눈을 떴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신이란 존재를 평생 단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신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회를 준 이유가 뭘까?

나를 죽인 가문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그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 내가 모든 걸 먹어 치우라는 뜻?

하나, 복수고 나발이고 모든 건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법이다.

리텐슈노프 가의 혈통으로 다시 태어난 건 좋은 일이지만, 현재 나의 처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 오직 유모만이 나를 수행한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보통 리텐슈노프 가의 혈족들은 다섯 살만 되어도 전속 수호 기사를 배정받는다. 그러니 원래라면 나에게는 유모와 함께 수호 기사가 따라붙어야 했다.

하지만 수호 기사의 수행은커녕, 난 기사를 배정받지도 못했다. 완전히 방치당하고 있는 거다.

‘방패막이가 되어야 할 인간이 없으니…… 이런 홀대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그 모든 건 내 아버지, 발레르 리텐슈노프 탓이었다.

발레르 리텐슈노프는 현 가주의 막내아들이다.

평범한 가문이라면 후계 구도에서 배제될 위치.

하나, 리텐슈노프 가는 오로지 철저한 능력 지상주의로 후계자가 결정되기에 장남이 아니라는 건 큰 결격 요소가 아니다.

미래의 차기 가주부터가 둘째 아들이 아니었던가?

하물며 발레르의 능력은 현 가주의 아들 중 가장 뛰어났다. 하지만 문제는, 내 아버지가 가문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관심만 없을 뿐인가?

‘……가출이라니.’

검 한 자루만 쥔 채, 아예 가문을 나가버렸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

현 가주 또한 발레르의 그런 작태에 분노했고, 애꿎은 나까지 괄시당하는 중이었다.

수호 기사 배정은커녕, 체력 단련도 하지 못한 내 몸뚱아리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이 강자존의 가문에서 이런 나약한 몸을 가진 리텐슈노프라니!

이런 몸이니 가주가 더더욱 관심을 안 가지지.

‘일단 몸부터 만들어야겠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걷다 보니 어느새 유아동의 중앙 홀에 도착했다. 한 걸음 앞서서 나를 안내하던 마리 유모가 중앙 홀의 입구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도련님, 여덟 살이 되신 걸 축하드려요.”

“응. 고마워 마리 유모.”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드디어 여덟 살이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리텐슈노프 가문의 전통에 따라, 여덟 살의 리텐슈노프는 가문의 수련동에 입소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련동에서는 힘을 기르든, 세력을 키우든 자유다.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들어 가볍게 웃었다.

하나, 마리 유모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뿐이다. 염려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서 날 향한 걱정이 느껴졌다.

“오늘 행사가 끝난 다음부터는 다른 도련님들처럼 수련동에서 수련을 하시게 될 거예요. 저는 수련동에 들어가지 못해서 그 시간 동안은 도련님을 보필하기 어렵지만, 그 대신 수호 기사분이 저 대신 도련님을 도와주실 거예요.”

이제야 내 담당 수호 기사가 정해지는 건가?

‘참 일찍 배정해준다.’

다른 사촌들은 빠르면 태어날 때부터 수호 기사가 정해졌을 텐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버지에게 분노가 치솟는다.

그보다 누가 내 담당 수호 기사를 하게 되려나?

“마리 유모, 수호 기사가 될 사람이 누군지 혹시 알고 있어?”

“아뇨……. 저도 이야기를 못 들었어요.”

마리 유모가 눈을 찡그린다. 아무래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드레커 도련님,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에, 난 눈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리자 마치 마리에게 눈치라도 주려는 듯 중앙 홀의 입구에 서 있던 기사가 성큼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와 동시에 마리가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중앙 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가문의 3세들 뿐. 유모는 이곳에 출입하지 못한다.

작은 행사 따위라고 해도 출입이 불가능한데, 심지어 오늘은 ‘그 날’이 아닌가?

쯧.

가볍게 혀를 차며 난 마리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난 입꼬리를 씩 올리며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 마리 유모. 잘 다녀올게.”

그제야 염려 가득하던 마리의 얼굴이 누그러졌다. 마리를 뒤로 한 채, 나는 힘차게 중앙 홀의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 키의 세 배쯤 되어 보이는 문이 천천히 열렸다.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관리했는지, 거대한 문이 열리는데 작은 소음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시끌벅적하던 내부의 소음이 작아졌다. 난 실내를 훑어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수십 쌍의 눈초리. 모두 가문의 중진들이다. 간간이 키 작은 소년 소녀들도 보였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서늘하게 쏟아졌다.

“…….”

평범한 여덟 살 꼬맹이라면 주눅이 들 광경이겠지만, 난 개의치 않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모습에 곧 사람들의 시선이 거둬졌다.

“늦었네? 드레커.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늦잠이라도 잔 거야? 아니면 혹시 유모가 일을 안 하나?”

“그냥 게으른 거겠지. 쯧, 저런 녀석이 동생이라니.”

그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거울처럼 똑같이 생긴 두 소년이 나를 바라보며 키득거리는 게 보였다.

란체스 리텐슈노프, 그리고 반체스 리텐슈노프.

속칭 체스 형제라고 불리는 쌍둥이였다.

‘이 녀석들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 지랄 같았군.’

체스 형제의 성질머리는, 전생에도 유명했다.

우연히 마주쳤다가 얼굴이 고깝게 생겼다고 뜬금없이 싸대기를 쳐맞았던 게 언제였더라?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이때부터 사람이 덜되었던 게 분명하다.

당장 나한테 시비를 거는 것부터 그렇다.

난 지각한 적이 없다. 애초에 이 행사는 나를 위한 행사다. 내가 주인공인 만큼, 모든 행사는 내 기준으로 맞춰지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만만해 보이니까 시비를 거는 구만.’

그 생각을 하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 입꼬리를 본 란체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웃어? 지금 웃는 거야?”

참 표독스러운 얼굴이다.

겨우 열 살짜리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이놈은 역시 떡잎부터 글러 먹었다.

“그야, 나는 딱 제시간에 맞춰서 왔는걸? 혹시 란체스 형은 그 나이에 시계도 볼 줄 몰라?”

힐끔 시계를 확인하며 어깨를 으쓱거리자, 란체스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너, 너!”

씩씩거리며 란체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였지만, 그 분노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식당의 문이 다시 열렸기 때문이다.

“…….”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마치 잘 만든 인형처럼 앙증맞은 소녀였다. 소녀는 쓱 훑은 것만으로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침부터 시끄럽네. 다들 기운도 넘쳐.”

“랑느야, 이건-”

“오빠들이 싸우는 건 상관없는데, 안 그래도 나 새벽 내내 잠을 설쳐서 피곤하거든? 머리 아프니까 내 앞에서는 입 좀 다물어줄래?”

“…….”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자, 순식간에 식당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 같던 란체스는 입을 콱 다물었고, 반체스는 소녀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테이블에 눈을 콕 박고 있었다.

심지어 시립하고 있던 수호 기사들조차도 자신의 주인이 아닌 소녀, 랑느 리텐슈노프의 눈치를 봤다.

‘역시 실력이 모든 걸 결정하는 집안답군.’

랑느는 유아동에서 거주하는 네 명의 리텐슈노프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났다.

나이, 성별, 계급.

이 가문에서 그딴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강자 독식, 힘을 손에 넣은 자만이 우선된다. 약한 것은 죄고, 강자는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그렇다는 건…….’

나한테도 기회가 있다는 소리지.

물론 다른 형제들처럼 부모의 후광이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들보다 한참 앞서나가고 있으니까.’

이런 엄청난 이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뒤처진다?

‘그럼 접시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 뭐.’

그리고, 난 뒤처질 생각이 없었다.

* * * * *

어수선한 분위기 탓인지, 다들 평소와는 달리 입이 짧아진 모양이다.

다른 날 같았으면 가장 오랫동안 식탁에 앉아 있었을 체스 형제가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란체스가 나가면서 날 째려보는 것 같았지만, 알 게 뭐람?

나 또한 대충 식사를 끝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식욕보다는 얼른 내 전속 수호 기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식당 입구에 서 있던 수호 기사 정복을 입은 청년이 나에게 다가왔다.

“음?”

왠지 묘하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본 적 있나?’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몸에 들어온 이후로 딱히 수호 기사와 마주칠 일은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내 의문은 곧 풀렸다.

수호 기사가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했기 때문이다.

“드레커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도련님을 수행할 세르폰 랭커스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새하얗고 선이 가는 얼굴에 멀대 같은 키. 우락부락한 다른 수호 기사들과는 골격부터 다른 게 힘이라도 쓸 수 있을까 싶은, 솔직히 말하면 기사보다는 연극배우가 어울릴 것 같은 청년이다.

하지만 난 이 청년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아, 그럼 경이 제 전속 수호 기사입니까?”

“그렇습니다, 드레커 도련님.”

대답을 듣자마자,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입가에 머금어졌다.

세르폰 랭커스터.

미래에 히드라 슬레이어라고 불리며, 가문의 기수로서 명성을 떨치는 위대한 소드마스터.

이 사람이 내 것이 된 이상.

‘지금까지 세운 계획은, 전부 취소해야겠는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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