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리텐슈노프 가의 아이들은 5살이 되는 순간 한 명의 전속 수호 기사가 배정된다. 보통 5성 이상의 성취를 보인 젊은 기사들이, 전속 수호 기사가 된다.
수호 기사는 아이들의 스승이자, 어린 리텐슈노프가 처음으로 가질 수 있는 아랫사람이다. 리텐슈노프의 아이들은 수호 기사에게 명령을 내리며 사람을 다루는 법을 익히게 된다.
‘솔직히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앞장선 세르폰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보통 전속 수호 기사는 아이들이 장성하면 최측근이 되는 법이다. 현 가주도 마찬가지고, 내 삼촌들의 최측근도 전부 전속 수호 기사 출신이다.
그런 만큼, 전속 수호 기사를 얼마나 유망한 기사로 배정하느냐는 가문에서 중요한 문제였다.
부모의 입장에선 가장 뛰어난 사람을 자신의 자식에게 붙이고 싶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내 부친이란 사람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다는 거지.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다른 사촌들과는 달리 내 미래에 관심을 둘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에게 좋은 수호 기사가 배정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수호 기사가 누구든 상관없었는데…….’
그런데 세상에!
‘나한테 히드라 슬레이어가 붙을 줄이야.’
물론 그 이유는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세르폰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히드라를 벤 이후지.’
히드라 슬레이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10년 후 미래의 이야기. 지금의 세르폰은 그저 평범한 유망주 기사에 불과하다.
그것도 딱히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유망주 말이다.
‘그러니까 뒷배도 없는 나한테 붙여줬겠지.’
물론, 그 말이 지금 세르폰의 실력이 수호 기사로서 부족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곳은 리텐슈노프 가.
발에 챌 정도로 강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다른 가문이었다면 기사단의 부단장이나 기수가 될 수 있는 뛰어난 인재도, 이곳에선 고작 평기사 취급이나 받는 게 리텐슈노프 가 아닌가?
당장 리텐슈노프 가에 소속된 소드마스터의 숫자가 30명이 넘어갈 정도다. 그러니 일반적으로는 기사단장 급으로 분류되는 5성 기사가, 이곳에서 겨우 유망주 취급받는 것이다.
“……운이 좋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도련님?”
“음,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얼버무리자 세르폰은 의아한 얼굴로 갸웃거렸다. 하나, 별일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그는 다시금 나를 수련동으로 안내하는 데 집중했다.
유아동 본관 건물을 빠져나와 한참을 걷자 높다란 담장이 보였다. 유아동과 수련동 구획을 나누는 담장이었다.
세월의 풍파를 맞아 예스러움이 느껴지는 거대한 벽 앞에서 세르폰은 나를 돌아보았다.
“도련님, 혹시 수련동이 어떤 곳인지 유모에게 설명을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검술이나 마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하던데요? 그리고 세르폰 경이 저를 지도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요.”
세르폰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잘 알고 있으시군요. 물론 저는 기사인 만큼, 검술에 특화되어 있는지라. 마법은 저 말고 다른 분께 배우시게 될 테지만요.”
“그렇습니까?”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다. 당연히 수호 기사가 모든 걸 가르쳐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야, 애초에 기사에게 지도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그걸 알 리가 있나.’
물론 수호 기사이니, 검술 외에 다른 걸 가르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다.
‘……뭐, 상관없으려나?’
난 볼을 긁적였다.
사실, 어차피 세르폰은 덤이나 다름없다.
내가 짠 계획에 전속 수호 기사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일단, 나한테 어떤 기사가 배정될지도 모르는데 수호 기사를 내 계획에 포함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일단, 힘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해.’
강자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리텐슈노프에선 힘을 손에 넣는 순간 모든 게 정당화된다.
그리고 내게 힘을 키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깨우칠 만큼 깨우쳐 봤으니까. 어렵진 않겠지.’
전생에 난 7성 기사였기 때문이다.
30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내가 리텐슈노프 가의 종복으로서 붙어있으려면 강해지는 수밖에 없으니까.
출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다.
재능 있는 녀석들과 비교하면 성장하는 속도는 거북이처럼 늦었지만, 그래도 독기를 품고 노력한 덕분인지 높은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마법이건 검술이건, 결국 기본 원리는 깨달음이지.’
이미 7성의 경지를 이룩한 나에게 다시 검술을 배우라는 건, 이미 오른 산을 다시 타보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때보다 더 빨리 오르면 올랐지, 느려질 리는 없다.
* * * * *
수련동.
그곳은 이름 그대로 수련을 위한 연무장이다. 리텐슈노프 본가에 있는 연무장인 만큼 크기부터가 웬만한 성체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하다.
물론 이런 거대한 연무장을 리텐슈노프 성을 쓰는 직계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리텐슈노프 가와 봉신 관계에 있는 산하 가문, 가신단의 자제. 랭커스터의 성을 가진 방계, 혹은 가문의 패권을 위해 들인 고아들까지.
리텐슈노프의 이름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그런 수련동의 출입 조건은 오직 하나뿐이다.
8세에서 15세 사이의 어린아이일 것.
그보다 나이가 어리면 수련동의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갈 수 없고, 나이가 많다면 가문의 직책을 받아 외부 활동을 하기에 수련동에 출입할 일 자체가 없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수련동에서 훈련을 받았었다. 그렇기에 이곳은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기도 했다.
“헛 둘, 헛 둘!”
오와 열을 맞춘 채, 구령을 외치며 열심히 달리는 꼬마들이 내 앞을 지나쳤다.
저 녀석들은 8~9살 무렵의 아이들이다.
아직 정식 훈련을 받기에는 근력이나 체력이 부족한 나이. 그렇기에 기초 단련부터 하는 것이다.
“하앗!”
“자세가 틀렸다! 다시!”
“죄송합니다!”
손에 훈련용 철검이라도 하나씩 든 채, 이리저리 검을 휘두르고 있는 녀석들은 그보다는 나이가 더 많다.
최소 10살.
저 무렵부터는 이제 검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또한, 마나를 다루는 훈련도 10살부터 시작한다.
연무장 한편에서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소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르폰이 물었다.
“수련생들을 보고 있으십니까?”
“네. 다들 열심히 하는군요.”
“앞으로 도련님께서도 저렇게 훈련을 하셔야 할 겁니다.”
세르폰은 그렇게 말했다.
“일단 검을 잡는 것부터 시작하시죠.”
그는 나에게 검 한 자루를 내밀었다.
날이 세워져 있지 않은 철검. 훈련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충분히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흉기다.
“지금 드리는 건 훈련용이지만, 자세를 제대로 익히지 않으시면 진검을 들었을 때 다치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세부터라는 말이시죠?”
나는 세르폰이 건네준 훈련검을 붙잡았다.
검 손잡이를 쥐자마자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전생,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수련동의 교관이 나에게 건네준 검을 처음 잡았을 때의 추억.
생각보다 차가웠던 가죽 그립. 쇳덩이의 무게.
그 시절의 나는 검을 똑바로 들지도 못했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근육의 밀도도 뛰어나고, 골격도 탄탄하다. 어린아이인 만큼 유연성도 좋다. 그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그 시절과 비교하면 키부터가 차이가 난다.
‘……고작, 그런 차이가 아냐.’
그런 육체적 조건을 제하고서도, 무언가 달랐다.
전생을 기억하고 있기에 더더욱 느껴졌다.
이 몸으로는 처음 잡는 것임에도.
손잡이를 쥐는 순간, 마치 평생 검을 쥐었던 것처럼 착하고 감겨들었다.
마치 검이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이것이, 남들이 말하던 ‘재능’이라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전생에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힘이기에, 더더욱 뼈저리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세르폰의 입에서 호, 하는 감탄이 들려왔다.
아무리 신체적 조건이 좋아도, 처음으로 쥐는 검을 이렇게 익숙하게 들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세르폰이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이거, 시작이 좋으십니다. 만약 검을 제대로 들지 못하셨다면 체력 단련부터 해야 했을 텐데 말입니다.”
세르폰의 목소리에, 난 감상에서 빠져나왔다.
이 몸의 재능에 무언가 감동마저 느끼고 있었기에, 난 퉁명스럽게 세르폰에게 대답했다.
“……어차피 체력 단련은 꾸준히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검을 잡아보지도 않은 채 구보만 하시게 된다면 지루함을 느끼기 쉽거든요.”
그건 사실이지.
실제로 전생에 처음 수련동에 들어왔을 때도, 계속 뜀박질만 미친 듯이 시켜대니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검술을 펼치겠습니다. 잘 보십시오.”
그 말과 함께 세르폰은 자신도 검을 들어 천천히 휘둘렀다.
세르폰이 펼친 것은 굴단 검식.
굴단 검식은 가문에서 일괄적으로 가르치는 기본 검술이다.
따로 비전 검술이 있는 가신단이나, 방계 출신이 아닌 평범한 아이들은 모두 저 검술을 기본으로 수련한다.
“…….”
1식부터 13식까지, 막힘 없이 물 흐르듯 펼쳐지는 세르폰의 검술에서는 어떠한 오류도 찾아볼 수 없다.
‘역시 미래의 소드마스터는 다르군.’
랭커스터의 성을 하사받을 정도의 실력자니, 아마 세르폰은 굴단 검식을 완벽히 익히기도 전에 가문에서 더욱더 뛰어난 검술을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초 중의 기초인 굴단 검식을 저렇게 완벽하게 펼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기본에 충실하며, 성실한지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 이게 굴단 검식의 기본 13식입니다. 도련님께서 실제로 이 검술을 보시는 건 처음이신 만큼, 필요하시다면 몇 번이고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검술을 느리게 펼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르폰의 얼굴에는 땀방울 하나 없었다. 아마 앞으로 내가 몇 번이고 다시 해보라고 해도 그의 얼굴에서 땀이 흐르는 일은 없으리라.
얼마나 큰 노력을 했을까?
‘전생의 나보다는 훨씬 더 많겠지.’
그런 만큼, 세르폰은 분명히 알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짓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말이다.
난 천천히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굴단 검식의 기본자세. 양손으로 붙든 검 손잡이를 오른쪽 귀에 붙이고, 검 끝은 하단을 향한다.
내가 곧바로 자세를 펼치자 세르폰이 칭찬한다.
“잘하셨습니다!”
하나,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이 재능을 시험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무슨 검식이든 상관 없었다.
난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펼치는 것은 굴단 검식. 그런 내 모습에 활짝 웃던 세르폰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후…….”
1식부터 13식까지. 완벽하게 굴단 검식을 펼쳤다. 약간은 실수가 날 줄 알았는데, 예상대로 이 몸의 재능은 날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최초의 기본자세로 돌아왔다. 그 자세를 유지한 채, 난 세르폰을 향해 힐끔 시선을 던졌다.
“……대, 대체.”
경악으로 가득 차다 못해 당황이 넘쳐흐르는 세르폰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